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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조선시대 왕의 장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억울하게 최후를 맞았던 인물 모음

by 사탐과탐 2024.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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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임금의 국구(장인)라는 이유로 어이없이
억울한 최후를 맞았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신분제 사회인 조선에서 임금의 장인인 '국구'들은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기만 하다 갔을 거 같지만

의외로 이들 중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불행한 최후를 맞은 이들이 많았다고 하죠

과연 왕을 사위로 둔 국구들의 최후는 어땠는지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3대 국왕인 태종 이방원의 스승인 민제는

제자인 이방원을 자신의 사위로 맞았는데

그 사위가 훗날 정변을 일으키더니 국왕의 자리에까지 오르면서

민제도 순식간에 왕의 장인이라는 신분이 되어버렸는데요

 

하지만 문제는 왕위에 오른 태종이 당시 정계와 군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민제의 아들

민무구와 민무질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태종은 훗날 세자인 양녕대군이 왕위에 오르면

민 씨 형제가 외척이 되어 권세를 휘두르게 될 것이라 생각하며

그들을 유배 보내버렸죠

 

이후 민 씨 형제를 죽여야 한다는 상소가 계속 올라오자

민제는 어떻게든 자신의 아들들을 살리기 위해

태종에게 부탁해 민무구와 민무질의 유배지를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옮기게 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이후 아들들의 일 때문인지 병을 얻어 자리에 누웠다가

1408년 9월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후 그의 아들 4명은 모두 태종에게 목숨을 잃게 되는데

어쩌면 사위가 아들들을 죽이는 꼴을 보기 전에 세상을 뜬것이

민제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4대 국왕인 세종의 장인 심온은

태종의 맏아들인 양녕대군이 세자로 있던 시절

일개 왕자에 불과했던 충녕대군에게 자신의 딸을 시집보냈는데

훗날 충녕대군이 왕으로 즉위하면서 국구가 된 인물입니다

 

심온의 가문은 고려말부터 강력한 권세를 자랑했는데

심온이 국구인 민제의 아들 민무휼과 사돈을 맺기까지 하면서

그와 가문의 권세는 그 후로도 계속 이어질 것처럼 보였죠

 

하지만 심 씨 가문의 권력이 날이 갈수록 커지는 것을 경계하던 상왕 태종이

심온이 국구의 자리에까지 오르는 것을 보고는 큰 위기감을 느끼며

세종이 즉위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아 심온을 처형시켜 버렸죠

 

앞에서 나온 민제의 여흥 민 씨 집안과

심온의 청송 심 씨 가문이 외척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방원에게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방원이 그들을 죽인 이유는 그들 가문의 권세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면서 왕권을 위협할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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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심 씨 가문이 더 문제였는데

심온의 아버지 심덕부는 여말선초 고려의 군부에서

최영과 이성계 다음의 서열에 있던 실력자였고

 

조선이 세워진 이후에는 그의 아들들이 군부의 요직에 앉으면서

조선의 군부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기 때문에

이성계와 이방원이 모두 견제를 해오던 가문이었죠

 

그런 상황 속에서 심덕부의 여섯째 아들 심종은

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던 이방간과 대놓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교류를 하다가 유배를 가게 되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일곱 번째 아들인 심정은 양녕대군에게 군사적인 지식을 알려주라고 붙여놨더니

매와 여자를 바치는 등 오히려 양녕대군이 비행을 저지르는걸 옆에서 부추기며

계속해서 태종의 심기를 건드려 왔습니다

 

그래도 청송 심 씨 가문이 그동안

나라를 위해 세운 공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태종은 그들에게 관대한 처분을 내리고 있었는데

세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죠

 

세종이 일개왕자에 불과했을 때는

그의 처가인 심온의 집안이 권세가 강한 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세종이 왕이 되면서 심온이 국구가 된 상황에서는

세종이 심 씨 가문의 권세에 짓눌려

자신의 뜻을 펼치기 어려운 상황이 될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심온은 본인이 저지른 죄가 딱히 없었음에도

그의 가문의 권세가 너무 강하다는 것과

왕의 장인이 되었다는 이유로 죽음을 맞게 되었죠

 

6대 국왕 단종의 장인인 송현수는

수양대군과 어릴 적부터 친한 친구사이였는데

자신의 딸을 단종에게 시집보내면서 국구가 되었습니다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물러난 후 조정에서는 송현수를 탄핵했지만

세조는 절친한 친구였던 송현수를 어떻게든 지켜주려 했죠

 

하지만 단종복위 운동이 일어나고 송현수가 거기에 휘말리면서

더 이상은 세조도 친구였던 그를 지켜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송현수는 장형 100대를 맞고 먼 지방의 관노가 되었다가

1457년 음력 10월에 역모에 가담했던 금성대군등과 함께 처형되었다고 하네요

 

11대 국왕 중종의 장인 윤여필은

신수근의 딸이었던 중종의 첫 번째 부인 신 씨가 중종반정 직후 폐비되고

그의 딸이 중종의 새 중전이 되면서 국구가 되었죠

그 이유는 바로 윤여필이 반정 1등 공신인 박원종의 매형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윤여필의 딸은 훗날 인종이 되는 세자를 낳은 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외손자인 인종마저 즉위한 지 8개월 만에 승하해 버렸으며

아들인 윤임은 을사사화 때 문정왕후측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되죠

그렇게 자식들과 손자가 죽고 가문이 몰락하는 것을 지켜본 윤여필은

아들이 죽은 후 10년을 더 살다가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18대 국왕 현종의 장인 김우명은 명재상으로 소문난 김육의 아들로

그는 아버지처럼 똑똑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딸을 세자였던 현종에게 시집보내면서 훗날 국구가 되었죠

 

사위인 현종이 나라를 다스리던 시절에는 같은 서인이었던 송시열과 대립했고

외손자인 숙종 시절에는 왕의 5촌 숙부들과 정치적인 대립을 벌이던 그는

왕족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막으려 하다가

오히려 종친을 모함한다는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쫓겨났고

상심이 컸던 나머지 술에 빠져 살다가 2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네요

 

19대 국왕 숙종의 장인인 민유중은 서인의 지도자인 송준길의 사위이자

서인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송시열의 제자이기도 했습니다

숙종의 정비였던 인경왕후가 죽고

그의 둘째 딸이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가 되면서 국구가 되었죠

 

장인과 스승의 영향을 받아 뼛속까지 서인이었던 그는

남인들과 격렬한 당파 싸움을 벌이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민유중이 나라의 병권과 자금을 부릴 수 있는 권력을 장악한 채

중요한 일들을 마음대로 처리하고 있으며

자신의 친인척들까지 끌어들여 관직을 독점하고 있다는 상소가 끊임없이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민유중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사위인 숙종에게 자신을 탄핵한 자들을 처벌해 달라고 요청했죠

하지만 그의 생각과 달리 숙종은 그 이후로 다시는 민유중을 만나주지 않았고

사위에게 버림받았단 사실을 깨달은 그는 모든 관직을 내려놓은 채

집안에만 틀어박혀있다가 1687년 5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조선의 마지막 국왕인 순종의 장인 윤택영은

임진왜란 때의 대신 윤두수의 후손으로

태자였던 순종의 태자빈이 죽고 순종이 그의 딸과 혼인을 하게 되면서

조선의 마지막 국구가 되었죠

 

순종이 왕으로 즉위할 시점에서는 이미 대한제국이 망하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윤택영도 아예 친일로 돌아서버렸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일제로부터 많은 작위와 돈을 받았지만

엄청난 사치를 부린 끝에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써버린 후 빚쟁이가 돼버리면서

고종이나 순종을 비롯한 주변사람들에게 돈을 빌리러 다니기 바빴다고 하죠

 

이완용 못지않은 매국노로 유명한 친형 윤덕영과는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서로 주먹질까지 했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일제조차 빚더미에 올라앉은 윤택영을 보고는

이건 좀 아니다 싶었는지 그에게 내린 작위를 박탈해 버렸고

결국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던 그는 중국으로 야반도주를 한 후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길거리에서 죽음을 맞았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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