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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선의왕후. 실록에도 기록되어 있는 기이한 죽음을 맞이한 경종의 아내

by 사탐과탐 2024.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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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죽음을 맞이한 경종의 아내 선의왕후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는 정신병에 걸려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이상한 악행을 저지르다 결국 뒤주에 갇혀 죽고 마는데요

 

사도세자의 아내였던 혜경궁 홍씨는

사도세자가 정신병을 앓게된 이유가 있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이유는 바로 불길한 저승전에서 자라고

취선당에서 만든 밥을 먹은 탓이기 때문이라고 했죠

(저승전: 다음 왕위를 이을(承) 세자(儲)의 집)

 

이 말이 무슨말이냐면 사도세자가 살기전에 저승전에는

영조를 엄청 싫어했으며 굉장히 괴이하게 죽어간 선의왕후가 살았고

취선당에는 그의 형인 경종의 친어머니이던 희빈장씨가 살던곳이라

그곳에서 나오는 좋지 않은 기운 때문에

사도세자가 미쳐버린 것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희빈 장씨야 그렇다 치고서라도

경종의 아내 선의왕후는 대체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그녀는 1718년 14세의 나이로 세자빈에 간택된

어유구의 딸이었습니다

 

이때 경종의 나이는 30살이나 되었었는데

그와의 나이차이를 좁히기 위해

원래는 18세 부터 22세까지의 처녀를 간택하려 했지만

당시엔 13,14세만 되면 거의다 결혼을 해버리는 바람에

그 나이대의 처녀는 없었고, 있더라도 뭔가 문제가 있는 여성이었던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래서 최대한 나이를 높인것이 14살이었고

그렇게 16살 많은 남편과 결혼을 하게 된것입니다

 

그런데 좀 특이한 점은 어유구는 노론계 인사였는데

소론의 지지를 받고있던 경종과는 정치성향이 반대인 집안의 딸이던 그녀가

경종의 아내가 되었던 것이죠

 

이것 때문에 그녀는 훗날 아버지에게도 공격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2년후인 1720년이 되자 숙종이 세상을 떠났고

경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선의왕후도 왕비가 되었죠

 

그런데 문제는 경종이 굉장히 병약했기 때문에

그때까지 자식을 낳지 못하고 있었던 것인데요

 

이때 있을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것은 바로 경종의 동생이던 연잉군이 왕세제로 책봉된것이죠

 

당시 경종은 기껏해야 30대 초반의 나이이고

심지어 선의왕후의 나이는 고작 17살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든지 후사를 얻을수 있는 나이였기에

동생인 연잉군이 왕세제가 되었다는건

정말 있을수 없는일이었던 것입니다

 

이는 노론 4대신으로 일컬어지는 이이명, 김창집, 이건명, 조태채 등이

후사를 빨리 봐야 한다고 권하는게 아니라

'몸도 안좋은데 애 낳을 생각말고 그냥 동생인 연잉군을 세제로 삼으라'고

경종을 계속해서 몰아 붙였기에 벌어진 일이었죠

 

노론 대신들의 이런 행동은 경종의 권위를 대놓고 무시하는 행위나 다름없었고

심지어 왕비였던 선의왕후까지 자식도 못낳는 왕비로

낙인 찍어버리는 행위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노론이었던 자신의 아버지인 어유구까지

자신의 딸은 자식을 못낳는다고 말하고 다녔으니

그녀가 얼마나 굴욕적이고 비참했는지는 상상할수도 없겠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또한 왕대비이던 인원왕후까지 나서서 연잉군을 밀어주자

어쩔수 없이 경종은 1721년에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세제 책봉을 했다고 청에 알리러 갔을때

청나라에서도 왕이 아직 젊은데 왜 동생을 세제로 책봉했냐고

의아해 하기도 했는데요

 

그러자 사신으로 갔던 이건명은 청나라에

"왕이 발기불능이라서 자식을 둘수가 없다" 라며

경종을 모욕하는 말까지 했다고 하죠

 

당시 대신들이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하라고 계속해서 경종을 압박하자

선의왕후는 연잉군 대신 소현세자의 증손자였던 밀풍군 이탄

아니면 밀풍군의 아들인 이관석을 양자로 들여

그를 후계자로 올리려는 생각을 했지만 실패하고 맙니다

그런데 이것도 상당히 무리수인 이유가 있는데

밀풍군과 경종의 촌수는 8촌이나 되었기 때문에 굉장히 멀었고

경종에게는 엄연히 친동생이 있었기 때문에

밀풍군을 양자로 삼아 세자로 삼는다는건 명분이 없기도 했었죠

 

이러한 후계자에 대한 이야기만 보더라도

명분도 없이 밀풍군을 양자로 삼으려던 선의왕후는

연잉군이 너무 싫었고

어떻게 해서든 경종이 자식을 못낳게 하고

연잉군을 세제로 만들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노론은

격하게 경종을 몰아내려 했던것이 눈에 선하긴 합니다

 

그런데 경종은 재위에 오른지 불과 4년만인 1724년 8월에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그렇게 연잉군이 왕위에 올랐으니

그가 바로 영조였죠

 

선의왕후는 그렇게 불과 20살의 나이로 왕대비가 된것입니다

 

그런데 선의왕후가 영조를 싫어했듯이

영조도 선의왕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그래서 둘 사이도 좋지 않았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오죽하면 즉위 초부터 선의왕후는

영조를 위한 예식과 여러 절차들을 하길 거부했고

영조는 선의왕후에게 올려지는 여러 물품들을 삭감시켜

국고에 넣어버리거나 백성들에게 뿌려버리기 까지 했던 것이죠

 

그리고 영조는 선의왕후를 대비전이 있던 창덕궁이 아닌

창경궁 저승전에서 지내게 했는데

이곳이 바로 영상 처음에 말했던 그 저승전 인것입니다

 

그러던 1728년 3월, 이인좌가 반란을 일으키는데요

 

야사에 따르면 이때 선의왕후는 이인좌에게 비밀리에 언문교서를 내렸는데

그것은 "왕실의 씨가 바뀌었으니 바로잡아라" 라는 내용이었다고 하죠

 

그런데 실제 영조실록에는 내용은 모르지만

이인좌 등이 선의왕후의 밀명을 받았다는 흔적이

수차례 등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는 바로 정통성이 부족한 자가 왕이 되었다는 의미로

반란을 일으켜 영조를 끌어내리라는 의미였던 것이죠

 

하지만 고작 3개월만에 이인좌의 난은 진압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해 12월, 또 다시 역모와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는데

바로 효장세자가 9살의 나이로 갑작스레 죽어버린 것이었죠

 

그렇게 영조는 효장세자의 임종까지 지켜보며

자식을 가슴에 묻었는데

2년이 지난 1730년 3월,

우연히 어느 전각 아래에서 뼛조각 등

흉물스러운 물품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입니다

 

이 흉물을 묻어 놓은것은

어떤 사람을 병들게 하거나 죽기를 바라는

'매흉'이라고 불렸던 저주 행위였는데

이후 사건의 조사를 명령한 영조에 의해

수많은 궁녀들이 붙잡혀 와 잔인한 고문을 당하게 되었죠

 

그때 그들의 입에서는 선의왕후를 섬기는 상궁인 김상궁의 이름이 나왔고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피바람이 벌어졌으며

선의왕후는 이후 어조당에 유폐되어 살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고작 5개월후인 1730년 8월

세상을 떠나고 말았는데

실록에는 그녀가 죽기 전날에 한 이상한 행동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죠

 

그 내용은 '지나치게 몸을 떨고 통곡하는 소리를 내며

읍성을 냈다고 합니다

 

또한 별로 아픈곳은 없는듯한데 우는소리를 내며

손으로 무언가를 치는듯한 모습을 보였다고 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리고 다음날, 결국 그녀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그녀가 사망한 이유에 대해 오랜 지병을 앓아서 그런것이 아니라

어조당에 유폐된 이후 분을 이기지 못한 선의왕후가

음식을 거부하여 끝내 굶어 죽은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죠

 

하지만 이는 야사일뿐 이에 대한 일체의 기록은 없습니다

 

어쨌든 혜경궁 홍씨는 굉장히 이상한 행동을 보이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된 선의왕후 때문에

사도세자가 정신 질환을 앓았던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죠

 

그런데 확실히 선의왕후의 죽음에 대해 조선 왕조 실록에도

'무엇 때문에 죽었다' 라고 정확하게 적혀있지 않다는 점이

굉장히 찜찜하긴 하네요

 

여담으로 영조는 선의왕후의 국상 중에

후궁이던 귀인 이씨를 내명부 정1품 빈으로 삼고

큰 연회를 열었다고 하는데

이에 수많은 백성들 뿐만아니라

노론 대신들까지 탄식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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