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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 폭군 간신 탐구

해릉양왕. 중국 3대 폭군 중 한 명인 독특한 취향의 금나라의 황제

by 사탐과탐 2021.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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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의 폭군 해릉양왕은 중국 3대 폭군으로 아주 못된 짓만 골라서 했는데요.
해릉양왕 그는 무슨 짓을 저질렀길래 폭군으로 불리게 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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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릉양왕은 금나라의 4대 황제였습니다.

훗날 황제 자리에서 폐위되면서 왕으로 격하 되었고 그래서 해릉양왕으로 불리고 있지만 금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금사(金史)에서는 왕이라는 호칭도 과하다며 해릉서인 이라고 부르고 있죠.

 

그는 어쩌다 수많은 폭군을 배출해낸 중국 역사에서 손에 꼽히는 3대 폭군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을까요?

그는 수양제 만큼이나 교활한 연기자였습니다.

해릉양왕이 번왕이었을 때 당시 황제였던 희종은 해릉양왕을 꽤나 신뢰했었죠.

 

희종은 무슨 일이 있거나 할 때 그를 자주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금나라 태조가 나라를 건국할 때 겪은 힘들었던 일들을 이야기할 때 가만히 듣고 있던 해릉양왕이 갑자기 눈물을 왈칵 쏟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희종은 굉장히 대견해 했는데 사실 그것은 희종의 신뢰를 얻기 위한 악어의 눈물이었죠.

희종은 처음에는 곧잘 나라를 운영했었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황제가 되고 10년이 지나면서부터 사치와 향락에 빠지기 시작했고 술을 먹고 대신들을 때리거나 욕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는 등 폭정을 일삼았죠.

그러한 폭정에 시달리던 신하들은 결국 해릉양왕과 함께 희종을 몰아내려는 계획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희종 다음 황제로 누구를 옹립할 것인가 고민하던 신하들은 여러 대안을 제시했지만 해릉양왕은 모두 반대를 했죠.

결국 해릉양왕은 '황제 할 사람이 나밖에 없네' 하면서 다음 황제가 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반란을 일으켜 희종을 잡아 처형시켰고 다음 황제로 해릉양왕이 오르게 되었죠.

 

그는 황제에 오른 후 착한 척 연기를 했는데요.

신하들에게

짐은 고대의 현명한 군주들을 본받고 싶고, 경들의 직언을 듣고 싶소.
내가 잘못하는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간언해주길 바라오.

 

라는 얼토당토안한 말을 했습니다.

 

그러고는 병영을 순시했는데 한 병사가 흙이 들어간 밥을 먹고 있는 걸 본 해릉양왕은 그 밥을 빼앗아 먹고는 병사들에게 더 좋은 밥을 주도록 했으며 스스로 낡은 옷을 자주 입었고 심지어 일부러 옷에 구멍을 내고 그 구멍을 꿰매게 하는 등 검소한 모습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그런 연기를 해도 결국에는 다 탄로나게 마련이죠.

그는 얼마 안 가 지독한 폭정을 시작했습니다.

 

황제 취임사부터 가관이었는데요.

'국가의 대사는 모두 자기가 지배한다'거나 '남송을 정벌해 남송 황제에게 죄를 묻는다'거나하는 건 그나마 들어줄 만 했는데 '천하 절색의 미녀를 모두 나의 부인으로 삼는다'라는 말을 취임사로 하는 등 시작부터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죠.

 

그리고 그는 젊은 여자들 보다 유부녀들에게 그렇게 관심이 많았는데 신하들의 아내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여동생들을 강제로 범했으며 자신의 숙모, 처제, 조카딸들에게까지 그 마수가 뻗쳤죠.

어쩌다 남편들이 거부하거나 방해했을 땐 가차 없이 죽였습니다.

오죽하면 신하들이 '제발 유부녀 말고 처녀 좀 건드려라' 라고 말했을 정도였죠.

그리고 사촌 형이었던 희종 황제의 첩을 겁탈하고 귀비로 삼았는데 얼마 안 가 그녀에게 싫증이 난 그는 귀비의 딸 역시 후궁으로 삼았고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딸과의 잠자리를 즐길 정도로 악독한 인간이었죠.

이에 충격을 받은 귀비는 궁인과 동성애를 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해릉양왕은 귀비와 궁인을 잔인하게 처형하기까지 했습니다.

 

게다가 신하의 아내를 강제로 강간할 때도 당하는 여자의 남편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도록 했을 정도로 미치광이에 가까웠죠.

그리고 더 막장 인건 여자와 잠자리를 하는 도중에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 없이 칼로 상대 여자를 죽이기도 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게다가 어떤 신하의 부인에게 남편을 죽이고 자신에게 오라는 명령이자 협박을 했는데 부인은 남편을 독살했고 이후 해릉양왕의 황후가 되었죠.

얼마 안 가 해릉양왕은 그녀에게 싫증을 내고 찾지 않게 되었고 그녀는 다른 남자와 간통하다 걸려 역시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해릉양왕은 이러한 여성편력 이외에도 수많은 패악질을 해댔는데요.

자신과 함께 희종을 몰아냈던 공신들도 희종 황제를 시해했다는 죄로 모조리 숙청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있다 싶으면 그냥 죽여버렸죠.

 

또한 그는 거위요리를 굉장히 좋아했는데요.

온갖 진수성찬을 준비해도 '나는 거위고기면 충분하다'라고 할 정도로 거위고기를 좋아했습니다.

근데 이게 적당히 좋아하면 문제가 안되었는데 금나라 거위의 씨가 마를 정도로 거위요리만 찾았죠.

나중에는 거위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기도 했으며 해릉양왕에게 거위고기를 바치기 위해 소 한 마리와 거위 한 마리를 교환하기도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꼭 이런 폭군들은 대규모 토목공사를 안 하면 죽을 병에라도 걸리는 걸까요?

그 역시 수도를 현재의 베이징 쪽으로 옮겼는데 궁을 짓는데 필요한 나무 하나를 옮기는데도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었으며 궁전 전체를 황금으로 장식해서 바람이 불면 금가루가 날리는 모습이 마치 눈이 오는듯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존에 있던 궁들도 마음에 안 들었는지 모조리 때려 부수고 새로 궁을 다시 다 지었죠.

여기서도 엄청난 국고가 낭비되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대소신료들을 모아놓고 '하늘에서 사자가 내려와 송나라를 정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라며 남송을 정벌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금나라는 남송과 화평조약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신하들은 남송을 공격하는 것에 대해 반대를 했지만 그는 반대하던 신하들을 모조리 처형했으며 어머니인 태후가 '전쟁을 벌이면 안 된다고' 하자 태후마저 살해하는 패륜을 저질렀죠.

심지어 어머니의 시신을 불로 태우고 남은 뼈를 물에다가 뿌려버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러고는 남쪽에 남송을 정벌 후에는 동으로는 고려, 서로는 서하까지 모두 정복하겠다고 선언했죠.

그렇게 남송을 정벌하기 위한 병력은 무려 50만 명이나 강제로 징집되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을 일으키기엔 나라의 재정상태는 이미 파탄이 나있었으며 전쟁터에 끌려가는 가족들 때문에 이를 원망하는 소리가 나라 전체에 울려 퍼졌죠.

 

그런 상태였음에도 남송 공격은 강행되었습니다.

하지만 해릉양왕의 금나라 군대는 강 조차 건너지 못하고 남송과의 전투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했죠.

또 금나라 내부에서는 사촌동생 완안옹이 반란을 일으켜 수도인 중도 대흥부를 접수했고, 거란족 또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해릉양왕은 반란을 진압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남송 정벌에만 집착하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해릉양왕은 매번 패퇴를 거듭하던 장수들에게 이번에도 강을 건너지 못하면 모조리 사형에 처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강을 건너자니 남송의 수군에게 몰살 당할 게 뻔했고 강을 건너지 못하면 황제에게 죽임을 당할 처지에 처하자 궁지에 몰린 장수들은 결국 해릉양왕을 죽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던 1161년 어느 날, 해릉양왕은 막사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자신의 막사로 화살이 날아들었죠.

그는 깜짝 놀라며 화살을 확인해보니 그건 남송의 화살이 아닌 금나라의 화살이었습니다.

반란이 일어난 것을 알아차린 해릉양왕은 헐레벌떡 도망을 치기 시작했는데 결국 장수들에게 붙잡히게 되었죠.

그렇게 해릉양왕은 부하들에게 붙들려 참수형에 처해져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해릉양왕의 사촌동생이던 완안옹의 아내는 해릉양왕에게 겁탈 당할뻔 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했는데 그 완안옹이 칼을 갈고 있다가 자신의 아내의 복수를 해낸 것이죠.

그리고 그는 다음 황제인 금세종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금세종은 황위에 오른 후 해릉양왕의 태자를 비롯해 그의 자손들을 모조리 몰살했고 해릉양왕도 서인으로 격하시켰죠.

그리고 그의 시신을 황제 묘역에 묻지 않고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모래밭에 대충 묻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해릉양왕의 무덤은 흔적조차 없다고 하죠.

 

여담으로 그는 황제였던 당시 몽골의 암바가이 칸을 목마에 못 박아 처형시킨 일이 있었는데 암바가이 칸은 처형당하며 해릉양왕을 향해 자신의 후손들이 반드시 복수할 것이라는 저주의 말을 퍼부었는데 그의 자손이 바로 칭기즈 칸이었죠.

그리고 금나라는 원나라에 의해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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