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에 LA에서 일어난 폭동에서 경찰은 온데간데 없고 한인들은 스스로 코리아타운과 자신의 생명을 지켜야 했는데요
그때 무슨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991년 3월 3일, LA의 210번 고속도로에서는 한대의 흰색 자동차와 경찰차 간의 숨막히는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장시간의 추격전 끝에 결국 그 차를 멈추게한 LA 경찰은 범인을 차에서 내리게 했는데 그 범인의 이름은 바로 '로드니 킹' 이라는 인물이었죠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일어나기 시작했는데요
경찰은 로드니 킹이 마약에 취해 매우 거칠게 굴었다면서 그에게 엄청난 폭행을 가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다른 문제는 또 있었으니, 로드니 킹은 흑인이었고 경찰들은 모두 백인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로드니 킹이 체포되고나서 마약검사를 받았지만 모두 음성으로 나왔고 경찰들의 말은 모두 거짓이었던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흑인들이 인종차별이라며 반발하기 시작하자 그를 구타한 경찰 4명은 기소되고 말았죠
이렇게 경찰 네명이 처벌받고 문제가 해결되는듯 싶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기소된 경찰들이 재판받는곳을 흑인들이 많은 LA가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겼고 1992년 2월 재판을 할때도 배심원 12명중 10명이 백인이었으며 1명은 아시아계, 마지막 1명은 히스패닉으로 배정했던 것이죠
당시 아시아와 히스패닉보다 인구가 많았던 흑인을 배심원으로 한명도 배정하지 않은것은 명백한 인종차별이었습니다
그렇게 재판은 시작되었고 1992년 4월 29일, 기소된 경찰 3명은 무죄에 1명은 재심사 결정이 나버렸죠

그들의 무죄 판결 소식은 TV와 라디오의 전파를 타고 캘리포니아 전역에 알려지게 되었고 이에 LA에 살던 분노한 흑인들은 모두 길거리로 쏟아져나와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시나면서 시위는 점점 폭동으로 변해가기 시작했죠
그리고 그들이 던지는 화염병에 가게들이 불타기 시작했고 어떤가게에서는 약탈이 자행되었으며 이에 자신의 가게를 지키려는 사람들과 총격전이 벌어져 죽고 다치는 사람이 속출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지나가는 차를 세운뒤 운전자를 구타하기까지 했지만 경찰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으며 분노한 흑인들을 통제할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었죠
그렇게 고삐풀린 망아지 마냥 폭동의 규모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흑인에 더해 히스패닉 갱단까지 폭동에 합세하며 경찰들 마저도 감당할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죠
그들의 통제되지 않은 약탈과 방화는 한인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던 코리아타운도 피해가지 못했는데요
코리아타운의 수많은 가게가 완전히 털렸고 곳곳은 불타고 있었습니다
당시 피해를 본 한인들은 아무리 경찰에 신고해도 경찰들은 출동하지 않았죠
당시 경찰들은 폭동이 일어나자마자 백인 거주지역이던 비버리힐즈, 할리우드로 총 출동해
그곳으로 가는 길을 완전히 막았지만 코리아타운 가는길은 그대로 열어놨던 것이죠
그러다보니 폭동을 일으킨 흑인들은 자연스럽게 코리아타운으로 흘러들어가게 되었고 그렇게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된것입니다
심지어 당시 코리아타운 총포상 점주는 "폭동이 일어나기 직전에 주위에는 경찰차가 4대나 있었는데, 폭동이 일어나자마자 경찰들은 죄다 도망쳤다" 라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죠
그러자 의지의 한국인들은 당하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코리아타운과 우리들의 가게는 우리가 지킨다' 라고 하며 자경단을 결성한것이죠
한인들 대부분이 군대를 다녀온 군필자라 총기를 다룰줄 알았고 어떤 사람은 월남전에 참전했던 사람도 있었죠
그들은 자동차를 방어용으로 쓰고 바리케이트를 친뒤 총기와 탄약을 들고 건물 지붕위로 올라가 24시간 교대로 경계근무를 서는 등 경험을 바탕으로해 체계적으로 그들에게 맞섰습니다

필요에 따라선 폭도들과 총격전을 벌이기도 했죠
거기다가 당시 한인 라디도 채널인 라디오 코리아 에서는 피해를 받고 있는 한인들에게 제보를 받았고 어느지역에 폭도들이 나타나면 그곳으로 지원군을 보내 도와주라는 식으로 중계소와 '폭동피해 대책본부' 역할을 자처했으며 이에 한인 자경단은 라디오에서 알려주는 곳으로 지원을 나가 한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켰습니다.
옥상에서 총을 쏴가며 강력하게 저항하는 한인들의 모습에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약탈을 하러 갈 이유가 없었던 폭도들은 한인들이 지키는 곳은 알아서 피해가기 시작했고 LA 경찰들도 막지못한 폭도들에게서 목숨과 재산을 스스로 지켰던 것이죠
그러자 지붕위의 한국인 이라는 뜻으로 루프 코리안 (Roof Korean)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거기다가 불 끄러가는 소방차에까지 총질을 해대던 폭도들에게서 한인 자경단이 소방차와 소방관들을 지켜주기도 했는데 이에 당시 경찰과 소방관들은 한인들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좋았다고 하죠
그러나 안타까운점은 한인들간에 서로 폭도로 착각하고 오인 사격을 해버린일이 발생했는데요
한인청년단 소속이었던 당시 19살 이재성군이 총에 맞아 사망해 유일한 한인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또 어처구니 없는 일은 사실 경찰들은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킬것이라고 2일전인 4월 27일부터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것인데요
만약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키면 경찰들을 후퇴시키기로 결정했던 것이죠
그런데 폭동이 일어날거 같으면 경찰을 추가로 배치하는게 상식적인 일인데 그러지 않았던 이유가 너무 빨리 흑인 폭동을 진압해버리면 더 큰 폭동이 일어날것이라 생각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폭도들이 약탈도 좀 하고 마구 날뛰고나서 과열된 분위기가 좀 식으면 그때 진압하기로 했기 때문에 백인 거주지역과 흑인 거주지역 중간에 위치해 있던 코리아타운이 큰 타격을 입었던 것이죠
거기다가 코리아타운이 큰 피해를 입은건 당시 한인들과 흑인들과의 갈등도 한몫했었는데요
바로 한인이 운영하는 일부의 가게에서 흑인 손님들을 차별하는 일이 빈번했던 것입니다
또한 한인가게에서 흑인들은 아예 직원으로 써주지도 않았으며 흑인들을 무시하고 무례하게 굴자 흑인 래퍼들은 한인들을 욕하는 곡을 썼을 정도로 한인과 흑인간의 갈등은 폭발 직전 이었던 것이죠
거기다가 한인 이민자이던 두순자가 흑인 라타샤 할린스를 죽인 사건을 수많은 언론에서 연일 떠들어대며 한인들에 대한 흑인들의 증오심과 공격심을 부추긴것도 한몫했던 것입니다
또한 몇몇 정치인들은 한인들이 흑인 상권을 침해했다고까지 했으니 마치 백인들에 대한 흑인들의 분노를 모두 한인에게 돌리려는것 같았죠
그렇게 폭동은 그치질않고 수일간 다른 지역에까지 계속해서 번져나갔는데요
결국 부시 대통령의 명령에 의해 캘리포니아 주 방위군과 육군, 해병, 특수부대, FBI 까지 투입해 4월 29일에 시작된 이 폭동은 6일만인 5월 4일에 진압되었습니다
이 폭동으로 인해 당시 일어난 전체 피해액이 7억 달러에 달했는데 주요 타깃이 되었던 코리아타운의 피해액은 3억 5천만 달러로 전체 피해의 반 이상이 코리아타운에서 발생했던 것인데요
한인의 점포 2300여곳이 손실되거나 약탈, 불에 타버렸고 다행히 피해를 받지 않은 곳도 있었지만 아주 극소수밖에 되지 않았죠
현재 전 세계적으로 유행중인 전염병으로 인해 미국내에서는 동양인들에 대한 차별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인종차별을 싫어하고 난리를 치는 흑인들이 오히려 동양인을 갑자기 공격하면서 인종차별하는걸 간간히 뉴스 영상으로 보면 그들의 내로남불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이죠
왜 사람의 피부색이나 인종으로 차별을 하는지 이해를 할수가 없네요
1992년 LA에서 일어난 흑인 폭동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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