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껏 봐오던 과거 헤어스타일이 다 가발이었다?
기원전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가발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오늘날의 가발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짜 자신의 머리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는 것이 보통이죠
그런데 과거의 많은 국가에서는 가발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요즘과는 많이 달랐던거 같습니다
태양왕이라 불렸던 프랑스의 루이 14세를 비롯해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나 바흐, 모차르트처럼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인물들도 가발을 썼던걸 보면 말이죠
대체 이들은 어떤 이유에서 가발을 쓰고 다녔던 것일까요?

사람들이 가발을 쓰기 시작한 역사를 살펴보자면 생각보다 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바로 기원전 30세기경 고대 이집트인데요
그 시대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머리를 밀고 가발을 썼다고 하죠
당시의 가발은 장식으로 쓰이거나 신분을 과시하는 동시에 머리를 햇빛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도 했다고 하죠
색깔은 검은색을 가장 많이 썼는데 기원전 12세기경 무렵부터는 빨강이나 파랑, 초록 등 여러 가지 색깔이 나왔다고 하네요
일반적으로 남성은 자기 머리를 깎고 가발을 썼으며 여성은 자기 머리 위에 가발을 썼다고 합니다
이집트인하면 떠오르는 바가지머리가 사실은 전부 가발이었던 것이죠
심지어 파라오의 특징이라고 할수있는 기둥 모양의 수염조차 장식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는 가발 쓰는 것도 더웠는지 얇은 천으로 머리 모양을 만들어서 대신 썼다고 하죠
이렇게 전국민이 사용하는 물건인 만큼 신분에 따른 차이도 있었는데요
최하층민인 노예는 가발을 쓸 수 없었으며 머리를 자를 수는 있지만 삭발할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신관들은 보통 머리를 밀기만 하고 가발은 쓰지 않았다고 하죠
100%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가발은 비싼 편이었으며 양털로 만든 것은 그나마 조금 싼 편이었고 식물 섬유로 만든 가발이 가장 싸구려였다고 합니다
소득에 따라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맞는 가격대의 가발을 사서 썼기 때문에 가발만 보고도 그사람의 신분을 어느 정도 짐작할수 있었다고 하죠
검은색 가발이 가장 많이 쓰였지만 드물게 금발 가발을 쓰는 사람도 있었고 투탕카멘의 이모로 유명한 네페르티티의 경우 푸른 가발을 썼다고 합니다
이집트의 가발 문화는 로마로 이어졌는데요
하지만 권력의 상징물로 가발이 사용됐던 이집트와는 달리 로마에서는 가발이 주로 탈모를 감추기 위한 용도로 쓰였다고 하죠
그 유명한 카이사르도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가발을 썼다고 합니다
하지만 로마는 실용적인 것을 중시하는 나라였기 때문에 이집트와는 다르게 짧은 모양의 가발이 대부분이었다고 하죠

정복전쟁을 자주 일으키는 로마에서 긴 가발은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는 물건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부유했기로 소문난 로마시대에도 진짜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가발은 무척 비싼 물건이었다고 하죠
그래서 부자들은 자신의 가발을 만들기 위해 머리카락을 제공하는 가발용 노예를 사들이기도 했습니다
그 중 가장 비싼 건 빨간 머리를 한 노예였다고 하죠
빨간색 가발을 구하기가 무척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중세시대 유럽에서는 가발이 권위의 상징으로 쓰였다고 하죠
때문에 귀족들 중에서도 특히 장군이나 제독 같은 고위 장교와 고위 공무원들은 공식 석상에서 가발을 애용했다고 하네요
옛날 유럽 인물들의 초상화를 보면 어지간한 군주나 정치인, 군인 등의 귀족들은 대부분이 풍성한 가발을 착용하고 있는 것을 볼수 있죠
특히 태양왕이라 불리었던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크고 아름다운 가발을 써서 전 유럽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프리드리히 1세 등 후대의 다른나라 군주들 또한 루이 14세의 절대적인 권위를 빌리고 싶은 마음에 그의 것과 매우 비슷한 모양의 가발을 많이 썼다고 합니다
또한 바흐나 모차르트 같은 음악가들도 가발을 사용했는데 당시 그들이 썼을 것으로 묘사되는 가발의 모양을 보면 흰색 머리카락에 웨이브를 주고 묶어서 롤처럼 돌돌 말린 모양이 유행했던 것으로 짐작되죠
이런 모습은 마치 푸들이나 양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헨델의 초상화인데요
지금 현대인의 기준으로 보면 정말 오묘하다고 볼수 있는 헤어스타일이기 때문에 "대체 저런 머리가 뭐가 좋다고 한거지?"라는 생각이 들수도 있습니다
당시에는 가발이 대부분 수공업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만큼 가격도 굉장히 비쌀수밖에 없었죠
때문에 가발 도둑이 극성을 부렸다고 합니다
가발을 훔치는 방법도 여러가지였다고 하는데 가장 흔하게 쓰였던 방법은 어린아이를 큰 바구니에 실은뒤 그 위를 천으로 가린 후에 여성이 바구니를 들고 목표물의 옆을 지나가죠

그리고 가발 쓴 사람의 바로 옆을 지나치는 순간 바구니 위에 있던 아이가 가발을 낚아챘다고 합니다
이런 수법의 절도 범죄가 워낙 극성을 부려서 당시 가발 쓴 사람들은 바구니를 머리에 올려둔 여인이 다가오면 기겁을 하면서 얼른 피하기 일쑤였다고 하죠
군인들도 흰머리 가발을 쓰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고 하는데요
그것은 해군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해군 병사들의 경우 이 가발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당시 유행했던 흰색 가발을 하얗게 만드는 재료가 바로 밀가루였는데 자는 동안 배에 있는 쥐들이 그 밀가루를 다 파먹어버렸기 때문이죠
돈이 없어서 가발을 사지못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자신의 머리에 밀가루를 뿌려 흰색을 냈다고 하죠
역사고증이 잘 된 서양 영상물들을 보면 워낙 가발에 밀가루를 덕지덕지 처발라서 그런지 출연 인물들의 머릿결이 퍼석퍼석한 경우가 많은것으로 봤을때 그 당시 사람들의 머릿결도 별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올백 모양과 포니테일 머리모양은 만들기가 워낙 어려워서 한 번 한 사람은 길게는 몇달을 그대로 놔두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머리위에 있던 밀가루가 땀과 머리카락 기름 등과 반응해 썩거나 쥐가 한밤중에 파먹으러 달려드는 바람에 고통을 겪어야 했는데요
심지어는 머리에 이가 들끓는 바람에 피부병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현재에도 영국이나 몇몇 영연방 국가의 판사와 변호사들은 하얀 말총모양의 가발을 쓰고 있는 경우가 있죠
그것이 그들 나름의 자부심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같이 가발을 쓰게 된 법조인들 중에서는 몇 백만 원씩 나가는 가발을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역사에 대해서 어느정도 잘 알고 있는 같은 유럽 문화권에서마저 여태까지 그런 가발을 쓰는 것은 조금 우스꽝스럽다는 반응이 많죠
그나마 2008년부터 형사재판을 제외한 다른 재판에서는 변호사들이 가발을 착용하지 않아도 되는 걸로 바뀌었는데 변호사가 아닌 판사는 형사재판이 아니더라도 가발을 써야 한다고 하네요
우리나라의 경우는 '삼국사기'에서부터 가발을 사용한 기록을 볼수있다고 하죠
그 당시에는 가발을 '다리'라는 이름으로 불렀는데 신라 성덕왕이나 경문왕 시절 당나라에 사신을 보낼때 다리를 예물로 가져갔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고구려 고분벽화중 여인도의 머리모양을 보면 고구려에서도 다리를 이용했던 것으로 짐작되죠

조선 영정조 때는 가체가 크게 유행했는데 당시에 있었던 가발은 모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일일이 손으로 만들어야 했기에 값이 엄청나게 비쌌습니다
때문에 나중에는 국법으로 가체를 금지했다고 하죠
영조가 금지하기 전까지만 해도 사대부의 기혼 여성이면 누구나 다 가체를 했는데 특히 후궁이나 왕비의 가체는 그 가격이 기와집 한채와 맞먹는 가공할 값을 가졌다고 합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웬만한 고급 주택이나 아파트값 수억원이 가발 값으로 들어간 것이죠
거기다 가체와 가체를 장식하는 장신구를 합치면 무게가 많이 나가서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불편했다고 하는데요
이와 관련해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도 있는데 정말 실화인지는 알수없지만 어느 집안의 13살된 며느리가 가체를 한 채로 앉아 있다가 시아버지가 오자 인사를 하기 위해 일어서다가 가체의 무게 때문에 목이 부러져 즉사했다는 안타까운 내용이라고 하죠
지금까지 옛날 사람들이 우스꽝스러운 가발을 쓴 이유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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