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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신라시대 성문화. 색공, 마복자 등 신라만의 독특하고 파격적인 성에 대한 이야기

by 사탐과탐 2021.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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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에는 신라만의 독특한 성풍습이 있었는데요.
바로 색공이나 마복자 등 여러가지가 있었죠.
파격적이고 개방적이었던 신라시대의 성문화 이야기 입니다.

 

 

 

고대로 가면 갈수록 성에 대해서는 관대 했던것 같은데요.

예전에 소개해드린 고대 로마 성문화나 고대 그리스 성문화만 보더라도 상당히 개방되있었고 성을 음란한 무언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드렸던것 같습니다.

 

오늘은 신라시대의 개방되어있고 관대한 성문화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신라시대때 왕족이나 귀족들의 성생활은 굉장히 자유분방했다고 하죠.

신라의 고분(古墳)에서 출토된 성행위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해놓은 토우들이나 목재로 만든 거시기등을 보면 신라인들의 개방된 성생활을 느낄수 있습니다.

 

신라시대에는 남녀가 서로 눈맞아 성관계를 맺는건 정말 허다한 일이었고 동성동본은 기본에 조카와 결혼하는 경우나 고모나, 이모, 사촌 관계에도 결혼했을 정도로 근친결혼은 흔했죠.

신라 왕족인 성골의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서 근친혼은 너무나도 활발하게 이루어 졌습니다.

 

화랑세기에 나오는 풍월주 '양도'공은 어머니는 같지만 아버지가 달랐던 누나인 '보량'과 혼인을 하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양도는 이부형제와 결혼하는 풍습을 썩 내켜하지는 않았었죠.

 

그러자 양도의 어머니는 "신라에는 신라의 도가 있는데, 어찌 중국의 도를 따르려 하느냐?" 라며 그를 꾸짖었고 그렇게 양도와 보량은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 중국의 유교적인 가치관이 신라에 들어오고 있었는데 양도의 어머니가 한 말은, 중국에는 중국것이 있고 우리 신라에는 우리만의 가치관이 있다라는 뜻이었죠.

 

그리고 만약 형이 죽으면 형수였던 여인을 동생이 아내로 삼았던 형사취수(兄死娶嫂) 사례도 있었는데요.

이는 북방의 기마민족이었던 흉노족의 풍습이랑 비슷하죠.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아버지는 김용수라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동생보다 먼저 사망을 하게 되었는데 그는 죽기전에 동생인 김용춘에게 아내였던 천명공주와 아들 김춘추를 맡겼다고 하죠.

동생 김용춘은 형수였던 천명공주를 아내로 삼고 조카였던 김춘추는 아들로 삼았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삼국유사에는 문무왕시절 지방 관리가 찾아온 손님에게 아내를 동침하도록 바치는 이야기도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신라의 독특한 성풍습 중 하나는 바로 '마복자'라는 풍습인데요.

 

배를 문지르면 아버지가 된다는 의미로 마는 문지르다 또는 부비다의 의미였고 복은 배를 뜻했죠.

바로 배를 문지르면 아버지가 된다라는 의미였습니다.

이 풍습은 임신을 한 여자가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하면 그 남자가 임신한 아기의 아버지가 된다는 독특한 풍습이었죠.

 

신분이 낮은 사람의 아내가 임신을 하면 신분이 높은 사람과 아내가 성관계를 하도록 했고 그렇게 뱃속에 태아는 신분이 높은사람의 자식이 되어 태어나서도 친자식 처럼 보살펴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출생한 아이를 '마복자'라고 불렀고 일종의 대부제도와 같다고 볼수 있죠.

 

마복자들은 그렇게 친아버지의 신분보다는 더 높은 지위를 얻을수 있었다고 합니다.

마복자와 좀 다르지만 비슷하고 독특한 성풍습도 있었는데요.

바로 '색공'이라는 풍습이었죠.

 

신라인들은 성(性)을 색(色)이라 표현했었습니다.

색공은 색(성)으로 받들다라는 의미로 신라의 왕들에게 색(성)을 바치는 색공지신이라는 신하가 있었죠.

그들의 임무는 왕과 왕족들에게 자식을 낳아주는 것이었습니다.

색공지신들은 색공의 대가로 신분을 상승시키기도 했죠.

 

그 유명한 미실 또한 색공지신 이었는데요.

진흥왕, 진지왕, 진평왕, 이 세명의 왕에게 색을 바쳤던 여인이 바로 미실이었죠.

미실은 진흥왕에게 색공을 하여 왕궁에 살았었는데 진흥왕의 아들이던 동륜태자의 죽음에 관련되어 궁에서 쫓겨난적이 있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때 미실은 남편 세종과의 관계에서 아이를 임신했는데 미실과의 잠자리를 잊지못한 진흥왕이 그녀를 다시 궁으로 불렀고 임신한 미실과 잠자리를 가진 진흥왕은 미실의 복중 태아를 마복자로 삼았죠.

 

그렇게 훗날 진흥왕의 마복자로 태어난 아이의 이름은 '하종'으로 전군(殿君)의 지위에 봉해졌고 미실 또한 왕에게 색공을 해서 황후궁의 전주가 되었으며 그녀의 지위는 황후와 같았다고 합니다.

이 일화만 봐도 색공과 마복자가 다 들어가있는 재미있는 일화이죠.

 

색공에 대한 이야기는 또 있는데요.

미실에게는 미생이라는 남동생이 있었는데 어느날 '당두'라는 남자의 아내가 예쁘다 하여

그 집으로 가서 그 아내를 불러 관계를 가졌죠.

 

이후 미생은 그 여자를 첩으로 삼으려고 집으로 들였는데 그 여자의 남편이었던 당두는 미생의 누나인 미실에게 찾아가 "아이가 아침저녁으로 어미만 찾고 있습니다색공만 하는 첩이 되게 해주십시오" 라며 하소연하자, 미실은 미생을 꾸짖고 그 여자를 당두에게 돌려보냈다고 하죠.

 

그리고나서 미생은 당두를 관직에 오르도록 도와주었고 그 은혜를 고맙게 여긴 당두는 색공을 하러 미생집에 가는 아내에게 미생에게 갖은 아양을 떨어서 사랑을 받아라고 했다고 합니다.

당두의 아내가 미생에게 색공을 바치자 당두가 관직에 나갈수 있었고 이후 재산도 많이 모았다고 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 두 일화에서 나오는 미실은 신라 최고의 요부라고 일컬어지는데요.

미실의 남성편력은 가히 신라 최고의 요부라고 불릴만할 정도로 대단했었습니다.

 

김대문의 <화랑세기>에 의하면 신라의 왕 3명과 동륜태자 그리고 동생 미생공을 포함한 풍월주 4명까지 총 8명의 남자를 자신의 성 노리개로 삼았다고 하죠.

그만큼 미실의 미모는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전의 색공이던 옥진에게 방중술을 배웠다고 하고 또한 교태를 부리는 방법과 남자를 홀리는 춤과 노래까지 배웠다고 하죠.

덕분에 진흥왕은 미실과 한번 잠자리를 가진 후부터는 자신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삼국유사에는 또 다른 성적인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데요.

신라 22대왕인 지증왕은 거시기의 크기가 약 45cm에 달했다고 합니다.

지증왕과 잠자리를 가졌던 여자들은 하나같이 다 고통을 참지못해 혼절해버린 탓에 그는 밤마다 혼자 쓸쓸히 보냈다고 하죠.

 

그러다보니 그는 각지로 신하들을 보내 자신의 거시기를 감당해줄만한 여인을 찾았는데요.

한 신하가 어디를 지나가다가 독특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개 두마리가 북만큼 큰 똥덩어리의 양끝을 물고 으르렁 대는것을 본것이죠.

 

그래서 신하는 길을 지나던 백성에게 저 똥을 싼사람이 누군지 물어봤고 백성은 묘랑부 상공의 딸이 싼똥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곧장 그 집을 찾아가 그 똥을 싼 상공의 딸을 봤는데 키가 7척 5촌 (약 225cm) 이나 되는 거구의 여인이었죠.

 

그렇게 궁으로 데려온 그 처녀는 과연 지증왕과 찰떡 궁합이었고 그녀는 왕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35대왕이던 경덕왕의 거시기도 8치(24cm)나 됐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하죠.

 

신라시대의 개방적이고 관대했던 성풍습은 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신라하면 생각나는 화랑은 귀족의 자제중에서도 용모가 빼어난 남자들만 모아 문무를 겸비하도록 수행을 시키던 곳인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 화랑 안에서는 워낙 잘생기고 예쁜 남자들만 모아놓다보니 동성애가 빈번했다고 하죠.

조선시대의 학자 이익은 자신이 쓴 성호사설에 화랑은 남색집단이라며 동성애 행위를 비판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또한 법흥왕은 사찰마다 공중목욕탕을 만들었었는데 이 목욕탕은 다 남녀혼탕이었다고 하죠.

김대문이 지은 <화랑세기>는 화랑들의 대장이었던 풍월주 32명의 전기를 쓴 책인데요.

이 화랑세기에는 풍월주들의 전기도 기록되어 있었지만 더 흥미로운건 신라 왕족들과 귀족들의 성풍습도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었죠.

 

1980년 부산에서 화랑세기 필사본이 발견된 이후 계속해서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학계의 쟁점이 되어왔습니다.

하지만 원본 화랑세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죠.

 

옛날 유럽에서도 왕가의 재산이나 권력유지를 위해서 근친혼을 즐겨했다고 하는데 신라시대 역시도 왕족의 유지를 위해 근친혼이 성행한걸 보면 과거에 생각이나 행동들은 어느나라든 다 비슷했던것 같네요.

색공이나 마복자같은 풍습은 신라만 가지고 있던 굉장히 독특하고 재미있는 성풍습 같기도 하죠.

 

근친상간, 색공, 마복자, 동성애, 남녀혼탕 등 굉장히 개방적인 성풍습을 가지고 있던 신라의 성문화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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