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 마지막 주인공이자 촉한 최후의 명장 강유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이후 유비가 죽고나면 제갈량으로 이어져 제갈량이 여러차례 북벌을 하면서 주인공자리를 이어 받게 되죠
그리고 제갈량에 이어 삼국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그는 바로 제갈량의 유지를 이어받아 제갈량이 죽고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북벌을 하게 되는 '강유' 입니다
강유는 촉한 최후의 명장으로 평가 받고 있는데요
그런데 강유는 거품이 많이 끼었다라며 강유 고평가 논란이 있긴 하죠
오늘은 이 강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관우가 여몽에 의해 세상을 떠난 이후 열받은 유비는 엄청난 병력을 이끌고 오나라로 쳐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육손의 화공에 의해 대패해 버렸고 이 전투에서 수많은 장수들도 목숨을 잃었으며 결국 유비 자신도 세상을 떠나게 되죠
그 이후 제갈량이 촉나라를 이끌어나가게 됩니다
제갈량은 약 5년간 촉나라 내실 다지기에 들어갔고 227년, 마침내 1차 북벌을 떠나게 되었죠
이때 천수태수이던 마준은 부하장수이던 양서, 윤상, 강유와 함께 천수 일대를 순찰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갈량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여러 성에서 성문을 활짝 열고 제갈량과 촉군을 맞아들였고 그러자 마준은 함께 했던 장수들도 배신을 한것이 아닌가 생각해 혼자 상규성으로 도망쳐버린것이죠
이때 강유 역시 상규성으로 따라갔지만 그를 의심한 마준은 성문을 열어주지 않아서 결국 강유는 촉군에 투항하게 된것인데요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강유가 제갈량의 계책을 꿰뚫어본뒤 제갈량이 깜짝 놀라게 만들고 조운과 호각으로 싸우는 그런 이야기는 사실 정사에는 없던 내용인것입니다
하지만 강유는 굉장히 총명한데다가 무예도 겸비한 뛰어난 인재였기에 제갈량은 그에 대해 극찬했다고 하죠
이후 여러차례에 걸친 제갈량의 북벌에 다 따라다니며 그의 곁에서 활약하게 됩니다
하지만 234년 오장원에서 제갈량이 세상을 떠난뒤 촉군은 사마의가 이끄는 위군 몰래 조용히 후퇴를 하기 시작했는데요
이때 사마의는 제갈량이 죽었다는걸 확신하고 촉군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기위해 촉군의 뒤를 추격하게 되었죠
사실 별다른 손실없이 퇴각을 한다는것은 당시 가장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제갈량까지 죽은 마당에 촉군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았던 것입니다
이때 강유는 추격하는 위군을 보고 북을 치면서 공격하는 제스처를 취하며 퇴각은 사실 사마의를 성 밖으로 나오게 하기 위한 계책이었던것처럼 움직이자 화들짝 놀란 사마의는 결국 추격을 포기하고 퇴각하고 말았죠
그렇게 촉군은 큰 타격없이 무사히 전군 퇴각을 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삼국지 연의에는 미리 준비해놓았던 나무로 만든 제갈량을 본 사마의가 깜짝 놀라 달아나는것으로 연출되었는데 이것도 사실은 강유의 계책이었던 것이죠
이후 장완이 제갈량의 뒤를 잇게 되었는데 강유는 제갈량의 유지를 이어받아 장완, 비의와 함께 북벌을 다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244년, 조상이 이끄는 10만의 위군이 촉나라 한중을 공격한 일이 벌어졌는데요
하지만 왕평이 지휘하는 촉나라군에 패배해 버렸고 조상이 퇴각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우물쭈물 하는사이에 비의와 강유가 이끄는 대규모 지원군이 도착해 조상의 퇴로를 막아버렸는데 막힌 퇴로를 일일이 뚫어가며 퇴각하던 위군은 강유의 뒤치기까지 맞아가며 정말 겨우겨우 전멸을 면했을 정도의 무지막지한 피해를 입고 말았죠
이렇게 기세가 등등할때 북벌을 감행해야 했지만 갑자기 장완의 지병이 악화되면서 결국엔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북벌계획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촉한의 대장군자리를 물려받은 비의는 북벌에 소극적인 편이었죠
비의는 제갈량도 못한걸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며 우선 내정을 튼튼하게 하면서 국력을 키우고 훗날 제갈량급의 대단한 군사적 재능을 가진 인물이 나타나면 그때 북벌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이때의 강유는 반란을 일으킨 이민족을 평정했고 247년부터 249년까지 요화와 함께 양주나 옹주 등 위나라의 변방지역으로 공격해 들어가기도 했죠
하지만 이때마다 강유는 대병력을 이끌고 출진을 하고 싶어했지만 비의는 항상 만명 안팎의 병력만을 내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강유는 뭘 하고싶어도 마땅히 할게 없는 그런 상황이었던 것이죠
그러던 253년 1월 1일, 새해 연회 도중 위나라 출신 항장이던 곽순이 갑자기 비의를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후 내정에는 진지가 군사에는 강유가 일을 맡게 되었죠
그리고 이후 약 10여년간 강유는 미친듯이 북벌을 벌이게 됩니다
심지어 부장이던 장익이 “나라가 작고 백성들이 지쳐 있어 전쟁을 자주 치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충고를 하기도 했지만 강유는 이를 다 무시해 버렸죠
하지만 강유의 북벌은 정말 쉽지 않았지만 많은 전공을 세우기도 했는데요
254년 6월, 적도로 출병한 강유는 적의 지휘관인 서질의 목을 베고 대승을 거두었고 이때 많은 성을 함락시키기도 했죠
하지만 오래 머무르기엔 한계가 있다고 느낀 강유는 다시 퇴각할수 밖에 없었고 다음해인 255년 8월, 다시 한번 적도로 출병해 엄청난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이때 옹주자사이던 왕경과 맞붙은 강유는 위군 수만명을 죽였다고 기록될 정도로 그야말로 대승을 거두었죠
이는 제갈량이 했던 북벌을 통틀어 가장 큰 전공을 세웠던 전투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왕경을 적도성으로 몰아 넣는데 성공했죠
심지어 이때 촉나라의 기세가 워낙 강하다보니 등애는 일단 옹주를 촉나라에 넘겨주고 나중에 되찾자며 적도성 구원을 포기하자는 말을 하기도 했을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진태의 생각은 달랐고 결국 위나라의 구원군으로 인해 하는수없이 강유는 적도성의 포위를 풀고 퇴각하는수 밖에 없었죠
비록 퇴각은 했지만 이 전투 덕분에 강유는 대장군의 자리에 올라서게 됩니다
그만큼 강유는 군사적 재능이나 통솔력, 지략 등은 당시 누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였으며 촉나라에 귀순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혼자만의 힘으로 대장군 자리에 오른걸 보면 마냥 거품이라고 말할수는 없을것 같죠
하지만 강유가 모든 전투에서 다 이긴건 아닌데요
엄청난 피해를 입은 전투도 많았죠
어쨌든 이듬해인 256년, 또다시 기산으로 출병한 강유는 그가 다시 올것이라고 예상한 등애가 방비를 든든히 했던탓에 여러번의 전투에서 계속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강유는 진서대장군이던 호제와 연대해 강유가 등애와 전투를 치르고 있을때 호제의 한중군이 등애의 뒤를 칠 계획을 세웠지만 호제가 알수없는 이유로 오지 않았고 이로인해 강유는 또 다시 등애군에 패배해 후퇴하게 되었죠
그런데 등애의 추격군에게 덜미를 잡혀 단곡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으며 대패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상황이 얼마나 아수라장이었는지 단곡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촉나라 장수만 10명이나 되었고 사마씨의 전횡에 열받아 촉나라로 귀순했던 하후패가 단곡전투 후 종적을 감췄는데 많은 사람들이 하후패 역시 이때 죽지 않았을까하고 추측하고 있죠
이때의 패배로인해 촉나라 사람들은 강유를 엄청나게 원망했으며 강유는 대장군에서 위장군 행대장군사로 스스로 지위를 강등시켰습니다
단곡전투가 있고나서 약 2년이 지났을 무렵 촉나라 조정에는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는데요
그것은 바로 촉의 내정을 담당하고 있던 진지가 세상을 떠났던 것이죠
그러면서 촉나라 조정의 모든 권력은 환관이던 황호에게 쏠려버렸고 황호는 대신들도 눈치를 볼만큼 강력한 권세를 휘두르게 되었습니다
이에 강유는 황호의 전횡을 눈뜨고 볼수 없어 유선에게 황호를 죽여야 한다고 상소를 올렸지만 유선은 황호는 소인배일 뿐이라며 강유의 요청을 거절했고 그러자 강유는 성도에 있다가는 황호에게 해코지를 당할것이 두려워 이후 답중에 계속 머무르며 성도에는 가지 않았죠
한편 250년 이후부터 계속해서 북벌을 해오던 강유는 촉나라 백성들의 원성을 듣고 있었는데요
또한 촉의 조정내에서도 북벌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황호와 사이가 좋지않던 제갈첨과 동궐마저 북벌로인해 국력이 너무 많이 소진되었다며 강유의 군권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고 요화는 강유에 대해 '지모가 적보다 뛰어나지 않고 역량도 적으면서 끊임없이 출병을 한다'며 그를 맹비난하기도 했죠
뿐만아니라 강유에게 앙심을 품고있던 황호가 자신과 결탁한 염우를 대장군으로 삼아 강유자리로 보내자고 유선에게 요청했지만 강유만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 유선이 황호의 요청을 거절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262년에도 다시 한번 북벌을 감행했지만 또 실패하고 말았고 강유에 대한 민심은 계속해서 나빠졌을 뿐만아니라 조정내에서도 강력한 비판들이 나오는 상황이었죠
이후 263년, 사마소는 결국 촉나라를 평정하기로 마음먹고 종회, 등애, 제갈서를 대장으로 삼아 촉나라로 공격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강유는 위나라의 침공 소식을 성도에 알렸지만 황호가 소개해준 점쟁이의 '적은 오지 않는다' 라는 점괘만 믿고 안심한 유선은 계속해서 향락만 일삼았죠
이후 강유는 여러번 조정에 글을 올렸지만 황호가 강유의 글들을 중간에서 빼돌린뒤 찢어버렸기 때문에 유선은 지금 국경에서 벌어지고 있는일들을 알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때 강유는 등애와 제갈서의 병력에 의해 포위된 상황이었는데요
강유는 기지를 발휘해 옹주를 지나 장안으로 공격해 들어가는척 하자 깜짝 놀란 제갈서는 군을 황급히 물렸는데 제갈서가 길을 내준 틈을타 병력 손실없이 한중으로 퇴각할수 있었죠
하지만 이미 한중은 종회군에 의해 평정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강유는 결국 한중을 포기하고 검각으로 들어가 최후의 방어진을 펼쳤습니다
검각은 험준한 지형에 천연의 요새였기 때문에 적은 병력으로도 많은 적을 막을수 있었고 위군은 이곳을 뚫어내지 못하고 있었죠
종회는 여러번의 공격에 나섰지만 큰 피해만 입고 결국 검각을 뚫지 못했고 퇴각을 결정하게 됩니다
그렇게 적을 잘 막아내고 있던 와중에 강유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음평으로 우회해 돌아간 등애군에 의해 성도가 함락되고 유선이 항복했다는 소식이었죠
이에 강유는 눈물을 흘리며 부랴부랴 다시 돌아온 종회군에 항복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강유는 종회에게 반란의 기미가 있다는걸 눈치챘고 자신도 촉나라를 다시 부흥시키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이 둘은 의기투합해 264년 걸림돌이었던 등애를 제거해버린뒤 어떻게 반란을 일으킬것인가 작전을 강구 했죠
그리고 강유는 종회에게 먼저 위나라 장수들을 제거 하자고 했고 264년 종회는 촉과 위의 관리들을 모두 성도로 불러모은뒤 자신의 반란에 함께하지 않는 위나라 장수들은 모조리 가둬버렸습니다
그리고 강유는 은밀히 유선에게 '조금만 더 모욕을 참으시면 제가 다시 촉나라를 부흥시키겠습니다" 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고 하죠
한편 강유는 갇혀있던 위나라 장수들을 다 죽여야 한다고 했지만 종회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종회가 우물쭈물 하고 있는 틈을타 갇혀있던 호열이 밖에 있는 아들 호연에게 이 사실을 전했고 하룻밤 사이에 이 소식은 위군 전체에 알려지게 되죠
그리고 호연을 비롯한 위나라 병사들은 아무 명령도 없었음에도 성도로 몰려들어 종회와 강유를 습격해버렸고 그렇게 강유는 63세의 많은 나이로 몇명의 병사들을 쓰러트린뒤 자신도 마침내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무리 하게 됩니다
하지만 화가 덜풀린 병사들은 강유의 시체를 형체를 알아볼수 없을정도로 난도질 해버렸죠
촉한의 최후의 명장이던 강유는 그렇게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던 것입니다
강유가 여러 기지를 발휘해 전쟁에서도 승리하고 퇴각할때도 큰 피해없이 병사들을 물린 모습들과 많은 촉나라의 인물들이 죽은 이후에도 제갈량의 뜻을 받들어 홀로 계속해서 북벌을 이끌어 나간걸 보면 별 시덥잖은 인물은 엄두조차 못낼 일들을 해낸것 같은데요
'많은 거품이 끼었다' 라는 평가는 확실히 아닌것 같네요
지금까지 촉나라 최후의 명장이라 일컬어지는 강유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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