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범죄자들의 피난처가 되어버린 홍콩 최악의 무법지대 구룡성채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영화 쿵푸 허슬의 주무대인 돼지촌은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무법지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무법지대는 영화속만이 아닌 현실에서도 존재하고 있었는데요
홍콩의 유명 배우 양조위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아편굴투성이에 쥐와 바퀴벌레가 득실거리는 더러운 곳인데다 법이 통하지 않는 지역이기 때문에 무척 위험한 홍콩의 신시티같은 곳이라고 하죠
영화 중경삼림의 무대가 되었던 장소로 유명한 충킹맨션과 함께 홍콩의 양대 마굴이라 불리는 이곳의 이름은 구룡성채입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마계촌이라 불리는 구룡성채는 원래 송나라 시절 해적들에게서 지역 특산품인 소금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군사기지였습니다
1842년 아편전쟁 이후 난징조약으로 홍콩 섬이 영국의 식민지가 되자 영국이 중국 본토를 노리지 않을까 걱정한 청나라는 구룡성채를 영국을 감시하기 위한 요새로 사용했죠
2차 아편전쟁 후 북경조약에서 청나라는 구룡성채가 있는 구룡반도를 영국에 영구적으로 내어주는 상황 속에서도 구룡성채만은 끝까지 중국의 관할 구역으로 남겼습니다
이후 청나라에서는 구룡성채에 계속 군대와 행정관을 남겨두며 주권을 행사하려고 했지만 영국은 온갖 핑계를 대며 기어이 그들을 모두 쫓아내 버렸죠
그렇게 구룡성채는 영국과 중국 어느 쪽에서도 관심을 갖지 않는 버려진 땅이 되었습니다
어찌 됐든 구룡성채는 여전히 청나라의 영토였기 때문에 주변의 한족들이 빈 성채를 점령한채 그곳에서 살기 시작했는데요
이때까지만 해도 평범한 성벽 마을이었던 구룡성채가 슬럼가로 악명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직후부터였습니다
1941년 홍콩을 점령한 일본군은 구룡성채의 성벽을 밀어버렸죠
그 이유는 자신들의 군 수송기가 오가기 쉽도록 카이탁 공항의 확장공사를 하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자재를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후 1945년 일본군이 패망하면서 본국으로 물러나자 성벽이 없어진채 비어있는 구룡성채에 홍콩의 부랑민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일종의 거주 지역이 만들어졌죠
그때까지도 구룡성채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난민촌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중화민국(지금의 대만)이 이곳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부터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죠
중화민국은 영국 군대와 홍콩 경찰들이 이곳에 진입하지 못하게 한데다 자신들이 구룡성채를 관리하는 것조차 거부했는데요
결국 구룡성채는 사실상 어떤 국가에도 속해있지 않는 무법천지가 돼버린 것이죠
이렇다 보니 각종 난민들은 물론 범죄조직까지 모조리 구룡성채로 몰려들게 되었고 그 안에서 자신들만의 성채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이곳은 점차 괴상한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성채 안에는 무허가 병원과 무허가 치과 등의 불법 업소들이 수없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도박과 마약 등의 각종 불법 행위들이 매일 곳곳에서 벌어졌습니다
그렇게 국가의 간섭 없이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갈 곳 없는 사람들과 범법자들이 구룡성채로 계속 몰려들었죠
하지만 구룡성채의 총면적은 0.03km로 잠실야구장 하나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끝없이 몰려든 사람들은 어느새 5만 명이나 되었기 때문에 난민들은 좁은 면적 안에서 어떻게든 살 공간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건물 위로 무허가 건물들이 제대로 된 설계 하나 없이 마구잡이로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죠
그러다 보니 구룡성채안은 마치 미로와도 같이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원래 구룡성채는 2~3층 규모의 작은 단독주택들이 모여있는 곳이었지만 증축에 증축을 거듭하며 15층까지 늘어나게 되었죠
원래부터 15층 건물이 아닌 2층이었던 건물을 억지로 15층까지 증축한 것이었기 때문에 구룡성채는 건축학상 안전에도 많은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마구잡이로 지어진 구룡성채였지만 가운데에는 건물을 쌓아올리지 않았는데 이곳에는 구룡성채의 대형 상점과 유치원, 양로원 등의 시설이 있었다고 하네요
구룡성채의 내부는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건물 옥상까지 쓰레기가 널려있었고 복도에는 살찐 쥐들과 바퀴벌레가 득실거리는 더러운 환경이었습니다
1인당 평균 1.1평밖에 쓸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좁은 구조였기 때문에 화장실과 세면장은 공동(화장실은 문과 칸막이가 없는 중국식 화장실) 시설이었죠
옥상과 가장 외곽에 있는 주택을 제외한 모든 주택은 마치 고시원처럼 햇빛이 차단된 상태였기 때문에 이곳의 주민들은 24시간 불을 켜고 생활해야만 했습니다
햇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 어둠의 세계에 온갖 범죄자들이 모여들었으니 당연히 범죄율이 높을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던 관할 문제 때문에 성채 내에서 온갖 범죄 행위들이 벌어져도 홍콩 경찰들은 아무런 힘을 쓸 수가 없었는데요
살인이나 강도 같은 강력사건마저 어떤 경찰관도 손을 댈 수 없었고 손을 대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만약 범죄를 저지르다가 적발돼도 경찰이 처벌할 수 있는 것은 홍콩 거주권자뿐이었기에 홍콩 거주권이 없는 대부분의 구룡성채 난민들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당시 경찰들은 그 지역을 지배하고 있는 삼합회에게 뇌물을 받고 그들과 한패가 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1960~70년도까지의 구룡성채는 그야말로 삼합회의 말이 법인 곳이었다고 합니다
비록 그곳을 지배하면서 이득을 챙기기는 했지만 범죄자들의 조직인 삼합회가 제대로 된 정부의 역할을 할리는 없었죠
그래서 구룡성채의 주민들은 도시의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전혀 누릴 수 없었는데요
화재가 발생했을 때 소방서의 도움을 받기 힘들었고 환자가 생겨도 구급차를 부를 수 없었기 때문에 성채 안에 있는 병원으로 가야만 했죠
당연히 의무교육 같은 것은 받을 수 있을 리가 없었고 교육 시설이라고는 구세군 교회에서 세운 유치원밖에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전기와 수도는 밖에서 무단으로 끌어다 쓰거나 자체적으로 우물을 찾아서 해결해야 했죠
배수관은 길거리에 노출되어 있었으며, 길을 가다가 오래된 배수관이 터져 갑작스러운 물 폭탄을 맞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법의 허점을 틈타 홍콩에서 가장 유명한 성매매 업소와 도박, 마약 무허가 병원, 무허가 한의원, 무허가 치과 등의 불법 업소들도 이곳에 자리를 잡았는데요
때문에 홍콩인들은 더럽고 위험한 곳이라며 구룡성채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않았다고 하죠
물론 구룡성채에 범죄와 연관된 업소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저렴한 인건비와 세금이 없다는 장점 때문에 식품공장이나 의류공장, 플라스틱 공장 같은 시설도 구룡성채에 많이 생겨났죠
당연히 무허가이긴 했지만요
구룡성채의 이런 음란하고 퇴폐적인 이미지는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고 사이버펑크 소설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성채는 치외법권 지역이었던 만큼 홍콩에선 금지된 온갖 어둠의 요소들이 판을 쳤기 때문이죠
성매매가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건 물론 홍콩에서 금지된 개고기를 파는 식당이 즐비했으며 마약 소굴도 여러 곳 있었고 무면허 치과의사의 진료도 성행하는 등 온갖 수상한 영업이 판을 치는 악의 소굴이었습니다
하지만 구룡성채도 결국은 사람 사는 동네였죠
그 험한 곳에서도 옥상에서 천진난만하게 노는 아이들이 있었으며 정식 기관은 아니지만 성채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던 학교도 있었습니다
연장자를 위한 양로원도 있었으며 이발소도 있었고 국수와 만두 등을 파는 식당도 있어서 성채 주민들이 이곳에서 식사를 해결했죠
심지어 성채 안에는 시내에 내다 팔 에그타르트나 딤섬, 장난감을 만드는 공장도 많았습니다
마약과 성매매에 무면허 의사가 몰려있는 "악의 소굴"이었지만 그 속에는 보통 사람들의 삶 또한 있었던 것이죠
1986년 더 이상 구룡성채를 방치해둬서는 안되겠다고 판단한 홍콩 정부는 경찰을 동원해서 구룡성채 안에 있던 범죄자들을 싹쓸이해버렸는데요
이후 몇 년에 걸쳐 그곳 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킨 후 1994년 철거 작업까지 모두 끝내면서 악명 높던 구룡성채의 주택가는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현재 그 자리에는 예전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구룡채성 공원이 생겼다고 하죠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장면들이지만 역사 속으로 사라진 구룡성채에 대한 이야기들은 아직도 인터넷상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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