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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김은부. 호족들에게 개무시 당하던 현종을 보필해 훗날 자신의 집안을 고려 최고의 가문으로 만들어놓은 인생역전의 대명사

by 사탐과탐 2024.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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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족들에게 개무시 당하던 현종을 보필해
훗날 자신의 집안을 고려 최고의 가문으로 만들어놓은
인생역전의 대명사 김은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김은부는

고려의 국왕 현종이 거란의 침입을 받고 피난길에 올랐을 때

다른 지방호족들이 모두 그를 무시하거나 죽이려 들었던 것과는 달리

유일하게 현종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대가로

훗날 현종에게 무려 세명의 딸을 시집보내며 인생역전에 성공한 인물입니다

 

고려사 열전에 따르면 경기도 안산에서 태어난 김은부는

매우 부지런하고 검소한 성품을 갖고 있었던 탓에 주변사람들로부터 평이 좋았으며

나름 능력도 있었는지 성종 때 '견관승' 벼슬을 했다고 하죠

그리고 현종이 왕으로 즉위했을 때쯤 공주의 절도사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1010년 12월 요나라의 황제 성종이 직접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하면서 제 2차여요전쟁이 시작됐고

이후 요나라 군은 통주에서 강조의 30만 고려군을 격파한 뒤

무서운 기세로 남쪽으로 진격해 고려 제2의 수도인

서경까지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패닉에 빠진 고려 조정에서는

항복을 하자는 의견이 대세가 되었는데

이때 예부시랑 강감찬이 현종에게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한 뒤

일단 남쪽으로 피난갈 것을 권하면서 현종의 몽진이 시작되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현종의 몽진길은 고난 그 자체였습니다

오늘날의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을 지날 적엔

군졸인 견영이 이끄는 무리의 습격을 받았으며

 

이후 지금의 경기도 양주시 회천동에 이르렀을 땐

그곳의 지방 호족에게 무시당하는 수모를 겪은 것도 모자라

밤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적들의 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충청남도 천안에 도착했을 땐 김응인과 유종 등의 신하들이

현종을 속이고 왕명을 조작해 현종이 탄 어마의 말안장을 팔아먹은 후

자기들만 살겠다고 도망가버리는 일도 있었죠

그렇게 온갖 고난 끝에 현종이 도착한 곳이 바로 지금의 충청남도 공주였는데요

 

현종이 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공주절도사 김은부는

교외까지 마중을 나가 현종을 극진하게 맞아들이며 위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현종과 그를 따르는 신하들이 입을 옷과

공주에서 나는 지역 특산물까지 바쳤다고 하죠

 

현종이 공주까지 오는 동안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김은부가 이렇게 공손하고 극진히 그를 대접해 주니

이때 현종이 느낀 감동이 얼마나 컸을까요

 

이후 현종이 파산역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그곳의 역리들이 모두 도망을 가버린 후였기 때문에

현종이 먹을 음식조차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때 김은부가 또 자신이 가져온 음식으로 현종의 식사를 만들어 올리며

아침저녁으로 그를 정성껏 받들었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후 현종은 나주까지 피난을 갔다가 요나라 군이 철수하자

다시 개경으로 향하게 되는데 이때 또다시 공주에 들르게 되죠

이때 김은부는 자신의 큰딸에게 현종이 입을 어의를 지어 올리게 했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현종이 그녀를 자신의 왕비로 맞아들이게 되는데

그녀가 바로 현종의 3번째 왕후인 원성왕후입니다

 

이후 현종이 김은부의 다른 두 딸들까지

각각 '원혜왕후', '원평왕후'로 맞아들이면서

김은부는 국왕에게 세명의 딸을 시집보낸 왕의 장인이 되었고

얼마 후에는 형부시랑 벼슬을 받기도 했죠

 

김은부는 거란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거란의 사주를 받은 여진족들에게 납치를 당하면서

몇 개월 동안 고려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지만

이후에 지중추사를 거쳐 호부상서로 승진했다가

중추사 상호군으로 임명이 되는 등 계속해서 출세의 길을 걸었습니다

 

거란이 여진족을 시켜 그런 짓을 했던 이유는

고려를 침공했던 거란의 황제 성종이 개경을 점령했을 때

피난을 갔던 현종이 보내온 사신에게서

고려 국왕이 직접 친조를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그 후로 몇 번이나 사람을 보내 독촉을 해도

현종은 친조를 하러 오지 않았기 때문에

화가 난 거란인들은 그런 식으로 고려의 사신을 납치해 버렸지만

그 소식을 들은 현종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김은부의 첫째 딸 원성왕후는 현종과의 사이에서 2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을 낳았는데

장남은 고려의 9대 국왕인 덕종이 되었고

둘째 아들은 10대 국왕 정종이 되었죠

 

첫째 딸은 11대 국왕인 문종의 첫 번째 왕비가 되기도 하는 등

계속해서 국왕과 왕비를 배출하면서

김은부의 집안은 고려최고의 가문으로 거듭나기 시작했습니다

 

김은부는 1017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현종은 그가 세 왕후의 아버지라는 이유로

그에게 추충수절창국공신이라는 칭호와 1천 호의 식읍을 하사했으며

 

김은부의 아버지 김긍필과 김은부의 장인 이허겸에게도

각각 1천5백 호의 식읍을 하사하면서

김은부가 지난날 자신에게 베풀었던 호의에 보답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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