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족 이었지만 이성계와 의형제까지 맺고 성까지 바꿨던
이성계의 오른팔이자 심복, 파트너, 전우였던 이지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여기저기서 침략해 오던 외적들을 무찌르고 다녔습니다
이때 이성계는 자신의 뒤를 맡길수 있는 의형제 한명이 있었는데
그는 바로 이지란 이죠
이지란 역시 이성계와 마찬가지로 고려말 조선초를 대표하는 장수 이기도 한데요
오늘은 이성계의 의형제이자 둘도없는 전우,
그리고 심복중에 심복이었던
조선의 1등 개국공신 이지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이지란은 원래 북청 지역에서 활동하던 여진족 족장의 아들이었죠
그리고 그의 원래 이름은 성은 퉁이고 이름은 투란티무르로
보통 퉁두란이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퉁두란은 여진족으로 오랜시간 살다가 41살때 고려로 귀화해
고려의 장수로 활동하게 되죠
그리고 이성계의 휘하에 들어간 뒤
그후로 죽기직전까지 이성계와 함께 평생을 살게 됩니다
둘이 처음만났을때 야사가 있는데요
퉁두란과 이성계는 사냥한 사슴을 가지고 다투다가
서로에게 활을 쏘는 대결을 하게 되었다고 하죠
그때 퉁두란이 쏜 화살을 이성계가 모두 피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패배를 인정하고 이성계의 수하가 된것이라고 합니다
또 조선 중기의 문인 홍만종이 쓴 순오지에도 둘에 대한 재미있는 야사가 있는데요
이성계의 수하로는 들어갔지만 별로 썩 내키지 않았던 퉁두란은
밤에 뒷간에 가는 이성계를 따라가 활을 3발 쐈다고 하죠
그리고 이성계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조금 있다가 이성계는 멀쩡히 걸어나오며
퉁두란에게 화살을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부터 퉁두란은 이성계에게 까불지 않았다고 하죠
어쨌든 둘은 이후 의형제의 결의를 맺게 되는데
이때부터 퉁두란은 이성계의 성인 이씨를 쓰게 되면서
이두란 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에는 이지란과 이두란이라는 이름이
섞여서 쓰였다고 하죠
그런데 특이한점은 이지란이 이성계보다 나이가 4살 형이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당시엔 나이가 적어도 지위가 높거나
인품이 뛰어난 사람이 형이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성계가 이지란의 형이 되었다고 하죠
그만큼 이성계는 이지란을 아끼고 무력과 용맹을 굉장히 칭찬하기도 했는데요
이성계는 "이두란이 말을 타고 사냥하는 재주는
비슷한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그가 전투 중 적군을 무찌르는데는
이두란보다 나은 사람은 없다" 라고 평가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이지란은 이후 이성계의 행보에 없어서는 안될 인물이 되어 있었죠
이지란이 휘하에 들어오면서 다른 여진족 부족들 역시
이성계의 밑으로 속속 들어올수 있었으며
황산대첩 때는 왜구의 수장이던 아기발도를 쓰러트릴때
둘은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게 됩니다
그런데 아기발도는 갑옷도 입었고 얼굴까지 철가면으로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화살로 그를 죽이기가 굉장히 난감했는데
이때 이성계는 이지란에게 자신이 투구끈을 맞춰 투구를 벗길테니
그때 얼굴을 쏘라고 했죠
이후 이성계는 아기발도의 투구끈을 맞췄지만
아기발도가 벗겨지려던 투구를 다시 붙잡아 쓰는것이었습니다
이에 이성계는 다시 투구의 꼭지를 맞춰 결국 투구를 떨어트렸고
이지란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아기발도의 얼굴을 쏴 마침내 그를 죽일수 있었죠
또한 황산대첩 당시 왜군이 달려드는것을 이성계가 보지 못하자
위험하다고 소리쳤지만 이성계는 듣지 못했고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지란이 활을 쏴 이성계를 구해내기도 하는등
둘은 서로 등을 맞대고 적과 싸울수 있을정도로
최고의 전우 였던 것입니다
이후에도 수많은 전투에 이성계와 함께 출진해 많은 전공을 쌓았고
그렇게 많은 칭호와 벼슬을 제수받기도 했죠
이렇게 전장에서 활약하는 이지란은 사극 드라마에서
털이 북슬북슬 나있고 왠지 강해보이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사실 그의 외모는 여자처럼 피부가 맑고 희었으며
단정하고 예쁜 용모였다고 묘사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냥 생각했을때 이지란 하면 삼국지의 장비처럼 전형적인 호걸상 이었을것 같지만
그의 초상화를 보면 얼굴이 동글동글하고 통통하게 생겼다고 하죠
심지어 이지란은 신중한 성품을 가진 인물이기도 했는데
이성계가 우왕과 함께 사냥을 나왔을때
활을 쏴 단 한발만에 과녁에 명중하는 모습을 보이자 우왕이 굉장히 기뻐했다고 합니다
이때 이지란은 조용히 이성계에게 다가가
뛰어난 재주를 남에게 보이지 말라며 말해 주었는데
그때 이성계는 이지란의 조언을 듣고 반성했다고 하죠
당시 이인임을 비롯한 고려 조정에서는 이성계를 경계하고 있었기에
이성계가 능력자 임을 보여주는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후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회군을 하게 되었고
고려의 최고 권력자로 우뚝 서게 되면서
이지란 역시 정도전과 함께 이성계를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힘쓰기 시작했죠
또한 그는 이성계의 아들이던 이방원과도 친했다고 하는데요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일 계획을 세우고나서
이지란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정몽주를 죽여야 한다고 설득했는데
이지란은 어르신(이성계)께서 반대하시는 일을 할수 없다며
끝내 이방원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1392년 조선이 건국되고나서
그는 공로를 인정받아 1등 개국공신이 되었고 청해군에 봉해졌죠
이때 이미 그의 나이는 62세의 노장이었지만
경상 절도사가 되어 왜구의 침략을 막아 내기도 했고
이후엔 자신의 고향인 북청을 지켜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훗날 벌어진 1,2차 왕자의 난에서는
끝내 이방원의 편에 서주기도 하는데요
이지란은 군사를 동원해 이방원을 도왔고
훗날 그 공훈을 인정받아 정사공신, 좌명공신에 책봉되었다고 하죠
하지만 이성계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버린 이방원의 편을 들어준것 때문에
이성계에게 굉장히 미안해 했다고 합니다
이후 태종이 왕위에 오르고 나서는 이미 70세가 넘은 고령의 나이였기에
별다른 정치적 활동은 보이지 않았고
이성계가 양위한뒤 함흥으로 갈때 이성계와 함께 함경도로 떠났다고 하죠
그리고 훗날 전장에서 수많은 살생을 했던것을 참회하는 의미로
불교에 귀의해 승려가 되어 은둔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402년 그는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죽기직전 태종 이방원에게 자신의 장례를 여진족 풍습에 따라
시신을 태워 장사지내 달라고 했으며
태종 역시 그의 뜻대로 하도록 허락했다고 하죠
그렇게 72세의 나이로 그가 세상을 떠나자
태종은 사흘간 조회를 정지 했으며
그때 명나라 사신을 위한 연회가 계획 되어 있었지만
태종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고려말 위화도 회군과 조선의 건국,
그리고 왕자의 난까지 조선초에 있었던
굵직한 사건에는 모두 주요한 역할을 했던만큼
조선 건국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인물이기도 했던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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