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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황진이. 허례허식 가득한 콧대 높은 양반 남자들에게 굴욕을 선사한 조선 최고의 기생

by 사탐과탐 2024.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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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례허식 가득한 콧대 높은 양반 남자들에게
굴욕을 선사한 조선 최고의 기생 황진이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을 빛낸 백명의 위인들에도 이름이 나올만큼

기생하면 딱 생각나는 인물이 한명 있습니다

 

그녀는 바로 황진이이죠

 

황진이는 이매창과 함께 조선 최고의 여류시인으로 꼽히고 있는데요

 

하지만 그녀에 대한 기록이 애매해서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어디까지가 지어낸 이야기인지

심지어 언제 태어났고 언제 죽었는지 조차 잘 모른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황진이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가 많은데

들으면 들을수록 우리가 생각하던 그런 기생들과는 다르고

오히려 대단하다고까지 느껴지고 있죠

 

오늘은 조선 최고의 기생이자 최고의 여류시인

황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황진이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가지가 있는데요

 

그 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바로 황진사의 서녀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어릴적부터 굉장히 영특하고 총명했던 황진이는

8살때부터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해

10살때는 웬만한 한문 고전을 읽었고 한시를 지었을 정도였으며

시와 서예 그리고 가야금에도 뛰어난 실력을 보였죠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출중한것이 있었으니

바로 아름다운 미모였다고 합니다

 

그녀가 15살때 예쁜 외모가 소문이나자 동네 총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황진이 집의 담을 넘어가 몰래 그녀를 훔쳐보았다고 하죠

 

그런데 너무 아름다웠던 나머지 첫눈에 반해버렸는데

이후 상사병에 걸리게 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리고 눈앞에 아른거리는 황진이를 잊지못해

황진이의 어머니를 찾아가 결혼을 시켜달라고 말했지만

황진이의 어머니가 거절했고

결국 상사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나버렸죠

 

그리고 장례를 치르고나서 상여가 황진이의 집앞을 지나갈때였습니다

잘 움직이던 상여가 갑자기 꼼짝도 하지 않았던 것이죠

 

문 밖에서 나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밖으로 나온 황진이는

그 총각의 사연을 듣고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자신이 입고있던 치마를 덮어주고 위로해주었더니

그제서야 상여가 움직였던 것입니다

 

이 사건이 있은 이후 황진이는 여느 평범한 여자로 사는것이

불가능할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그러고 얼마지나지 않아 그녀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데요

사실 어머니는 기생신분이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양반 이었다고 해도 종모법에 따라

자신도 천민신분이었던 것이죠

 

이에 충격을 받은 황진이는 결국 기생이 되기로 마음먹었고

명월이라는 이름으로 기생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기생이 되자마자 널리 명성이 퍼져나가는데요

 

그녀의 빼어난 외모 덕분이기도 했지만

어릴적부터 재능을 보이던 시와 서예, 음악 솜씨 덕분에

수많은 저명한 문인이나 학자들에게 관심을 받고

그들과 교류할수 있었던 이유도 있었죠

 

그러다보니 날이면 날마다 황진이를 찾는 남자들로

항상 기생집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는데

이때 그녀는 허례허식이 가득차 있는 양반들에게

반감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그녀는 남자들은 다 똑같다고 생각했으며

속에 든 것 없이 겉만 번지르르한 양반들과

콧대 높은척하는 이름 깨나 알려진 명사들을 찾아가

그들의 민낯을 까발려 굴욕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렇게 그녀는 살아있는 부처라고 불릴만큼

10여년간 면벽수행을 하던 지족선사를 찾아가게 됩니다

 

이후 철벽을 치던 지족선사를 결국 유혹하는데 성공해

함께 사랑을 나누게 되었고

생불이라 칭송받던 지족선사는 그렇게 파계승이 되어버렸죠

 

거기다가 그녀는 왕실 종친이던

벽계수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기도 했는데요

 

벽계수는 성격이 근엄하고 여자를 멀리할 뿐만아니라

기방에 일절 출입을 안하던 인물이었죠

 

심지어 그는 당시 최고의 기생이던 황진이 조차도

과소평가를 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났던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황진이는 그의 콧대를 납작하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해

그가 지나다니던 길목에 숨어있다가

그가 지나갈때 나와서 시를 한수 읊었던 것입니다

 

'청산에 흐르는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 하면 다시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이 시를 들은 벽계수는 깜짝놀라 황진이의 얼굴을 보기위해

고개를 뒤로 돌렸다가 말에서 떨어지는 굴욕을 맞보게 된것이죠

이에 황진이는 비웃으며 '명사가 아니라 그냥 풍류객일 뿐이네' 하면서

그냥 가버렸다고 합니다

 

생불로 불리던 지족선사도 파계해버리고

여자를 멀리하며 명사라고 불리던 벽계수 마저

황진이의 미모에 굴복했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게 되자

당시 뛰어난 문신이던 소세양이라는 인물이 나서게 되었죠

 

그는 "여색에 혹함은 남자가 아니다.

듣건대 개성에 절색인 황진이가 있다 하나,

나 같으면 30일을 같이 살면 능히 헤어질 수 있으며,

추호도 미련을 갖지 않겠다.”라고 호언장담 했던 것입니다

 

이에 황진이는 소세양을 찾아갔고 30일동안 동거를 하게 되죠

그렇게 30일간의 시간이 지난이후 소세양이 황진이를 떠나려고 하자

황진이는 남루에 올라 시조를 한수 읊었는데요

 

달 아래 뜰가에는 오동잎이 다 지고, 서리 속 들국화만 노랗게 피었구나.

높은 누각 하늘과는 한 자 사이 맞닿았고, 사람들은 일천 잔의 술에 취해 흥 돋운다.

유수는 거문고와 어우러져 싸늘하고, 매화 향기, 피리 소리 어우러져 풍겨 오네.

내일 아침 서로 보며 이별한 그다음에는 깊은 정 흘러내려 푸른 물결 같으리라

 

그녀가 읊는 구구절절한 시조를 들은 소세양은 마음이 바뀌어

"나는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라고 말한뒤

며칠더 황진이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고 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자 많은 사람들은 소세양을 두고

인간도 아니라면서 놀렸다고 합니다

황진이는 이렇게 명사들 도장깨기를 하면서 다니다

마침내 송도 최고의 은둔학자이던 서경덕을 찾아가게 되었죠

 

그리고 그녀는 서경덕을 유혹하기 시작했는데

다른 남자들과는 다르게 서경덕은 눈하나 깜짝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무리 유혹해도 실패하자 황진이는

서경덕의 지조와 절개에 감탄을 하게 되었죠

 

그리고 자신이 한 행동들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서경덕을 스승으로 모시기 시작했으며

그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유일하게 자신의 유혹에 빠지지 않은 서경덕이 세상을 떠나자

황진이도 기생일을 접고 은둔생활을 시작했으며

이후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고 하죠

 

그리고 송도사람들에 의해 그녀의 시신이 안장되었는데

훗날 선조때의 문인이던 임제는 그녀의 초라한 무덤을 보고 안타까워하며

아무리 당대 최고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세월이 지나면 초라함만 남는다는 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현재 북한 남정현 고개에 그녀의 묘가 있다고 하는데요

 

묘비 명에는 '명월 황진이의 묘'라고 적혀있으며

현재 유적으로 지정되어 잘 정돈되어 있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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