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우연한 이유로 목숨을 건질수 있었던
전두환에 대한 이야기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 이야기 입니다
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데요
최근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죠
12.12 군사정변 이후 대통령이 된 전두환은
훗날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미얀마에서 발생했던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 때문이죠
미얀마에서 아웅 산은 우리나라로 치면 이순신 수준의
국민적인 존경을 받는 위인인데요
이 아웅산의 딸이 바로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가이자
노벨 평화상을 받은 아웅 산 수 치 입니다
그런 존경받는 위인의 묘소를 폭파 시켜버린
정말 미친거 아니고서야 할수 없는 일을
북한이 해냈던 것이죠
오늘은 전두환이 죽을뻔 했다가
정말 운좋게 살아남게 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1970~80년대에는 한국과 북한의 갈등이 극에 달해 있던 상황이었는데요
이때는 한국과 북한 둘다 다른나라와 먼저 수교를 맺고
상대방 국가와는 단교하도록 해서
상대 국가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
여러나라에 온갖 뇌물을 쓰고 선물공세를 하는 등
치열한 외교전이 전개되던 시기이기도 했죠
이는 북한보다 한국이, 아니면 한국보다 북한이 더 낫다는 것을 외국에서도 인정받고
자국의 외교적 정통성과 국격 등이 더 뛰어나다는것을 보이기 위해서 펼치던
총칼없는 전쟁과도 같았습니다
또한 1970년대 이후 한국이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북한보다 우위에 서게 되면서
한국은 더욱더 적극적으로 외교전에 임하기 시작했는데요
이런 이유로 전두환은 미얀마를 한국과 우호적인 국가로 확실히 하기 위해
여러 순방 국가 중 미얀마를 첫번째 순방국으로 지정했던 것이죠
사실 당시 미얀마는 사회주의 이념을 지지하던 국가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북한과 더 우호적인 모습을 보였었지만
경제와 현실적인 이유 등으로 인해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많은 의욕을 보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편 한국에서는 미얀마와 같이
국력이 약한 나라에 굳이 갈 필요 있겠냐는 의견과
미얀마가 북한을 더 지지하는 성향이기도 하고
또한 북한에 의한 암살이나 테러 위협이 있을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미얀마에는 가지 말자는 반대의견이 많았었죠
미얀마 순방이 결정되기 직전까지 반대의견이 많았지만
당시 전두환은 해외순방을 워낙 많이 나가기도 했고
여러 순방들이 아무일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었기 때문에
미얀마를 비롯한 다른 해외 순방길도 별 탈없이 마무리 될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죠
또한 전두환은 북한과의 외교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에 더 우호적이던 미얀마에 무조건 가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1983년 10월 8일, 마침내 전두환을 비롯한 참모들 및 관료들은
서울을 떠나 미얀마의 양곤으로 향했죠
무사히 미얀마에 도착한 전두환 대통령 일행은
미얀마 대통령인 우 산유의 영접을 받았고
영빈관에서 양국 정상끼리 대담도 나누는 등
순조롭게 첫날 일정을 진행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인 10월 9일 오전 10시 30분에는
미얀마의 국부인 아웅 산 장군의 묘소에 참배행사가 예정되어 있었죠
한편 전두환의 미얀마 방문 일정을 사전에 알고 있었던
강민철, 신기철, 김진수로 이루어진 3인조 북한 공작원들은
이미 1983년 9월 17일에 북한 화물선을 타고 미얀마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바로 전두환의 암살이었죠
그리고 북한 대사관에 몸을 숨기고 있던 그들은
사건 3일전인 10월 6일 아웅 산의 묘소를 미리 정찰했으며
묘소 건물 천장에 3개의 폭탄을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그 근처에서 노숙을 하며 전두환이 오는
10월 9일 10시 30분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죠
10월 9일 아침이 되자 서석준 부총리를 비롯한 이범석 외무장관 등
정부 수행원들과 기자들은 먼저 호텔을 빠져나와
아웅 산 묘소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10시 18분에 도착한 그들은 미리 행사 준비와
예행 연습을 하고 있었죠
이때 북한 공작원들은 이 모습을 숨죽인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10시 26분 경, 앞에 태극기를 단 벤츠 차량을 선두로 한
여러대의 차량들이 오토바이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묘소에 도착을 했죠
그러자 자연스레 거기있던 사람들의 시선은 그곳을 향했고
그때 그곳에 있던 나팔수들은 애국가를 연주하기 시작했으며
대머리 남자가 많은 사람의 호위를 받으며 차에서 내렸던 것입니다
그 대머리 남자는 거기 있던 선발대 일행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고
다함께 묘소로 진입하면서 앞 열 가운데 자리에 서는것이었죠
그러자 북한 공작원 신기철은
전두환이 10시 30분에 도착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있었기에
그 대머리 남자가 전두환일거라고 생각해
오전 10시 28분에 미리 설치해 두었던 폭탄의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이 폭발로 인해 그곳에 있던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 장관을 포함하여
17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이기백 합동참모의장을 비롯한 수십명이 부상을 당하고 말았죠
그런데 사실 전두환은 아직 그곳에 도착도 안한 상태였는데요
알고보니 묘소에 도착해 차에서 내린 대머리 남자는
이계철 미얀마 대사 였던 것이죠
이계철 대사가 차에서 내린뒤 곧 각하께서 오실테니 정렬하자는 말에
수행원들이 그를 따라 줄을 지어 섰던것이고
시간이 남았으니 한번 더 애국가 연주를 연습했던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본 신기철이 그를 전두환으로 오인해
스위치를 작동 시켰던 것이죠
그런데 원래대로라면 그곳에 도착했어야 했던 전두환은
왜 아직 도착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사실 그 이유는 정말 천운이 따랐던 것인데요
원래 전두환의 일정은 이러했습니다
10월 9일 오전 10시 15분, 미얀마 외무장관이 전두환 대통령의 숙소인
영빈관에 도착해 전두환을 잠깐 접견한 이후
10시 20분쯤 함께 묘소로 출발할 예정이었죠
그런데 영빈관으로 향하던 외무장관 차의 타이어가 펑크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외무장관의 차를 운전하던 운전기사는
얼른 지나가던 택시를 끌고와 다시 외무장관을 태우고 영빈관으로 향했고
그렇게 몇분이 지체되고 만것이죠
한편 10시 15분에 1층 로비로 내려온 전두환은
외무장관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국가 원수인 전두환이 로비에서 외무장관을 기다리고 있는것이
영 모양 빠지는 모습이기도 했기에
수행원들이 말에 따라 전두환은 다시 2층으로 올라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할일도 없으니 영빈관에서 영접 요원들에게 격려차
한명한명 인사를 나누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후 원래 만나려던 10시 15분에서 4분이 늦은 19분에
미얀마 외무장관이 도착했지만
격려 인사를 나누고 있던 전두환은 중간에 멈추는것도 애매해
끝까지 격려 인사를 하고 내려갔는데 그로인해
또 다시 2~3분 더 늦어지게 된것이죠
그렇게 약 10시 25분에 묘소로 출발을 하게 되었는데
어차피 오전 일정이 한국의 수행원들끼리 진행하는 묘소 참배였다보니
외교적 결례가 될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 늦었어도 크게 상관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스케쥴이 몇분간 지연된것이
전두환의 목숨을 구할수 있었던 것이죠
하필이면 이날 외무장관의 차 타이어가 펑크가 나서
전두환 대통령 스케쥴에 지연이 발생했고
또한 이계철 대사가 태극기 휘날리는 차를 타고 등장해
머리 모양과 안경까지 쓴것이 전두환과 매우 닮은 모습이었으며
그가 차에서 내리고나서 연습삼아 애국가까지 울려퍼지는 등
여러개의 우연이 한번에 겹치면서 전두환은 살아남을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른 3명의 북한 공작원은
북한으로 도망치기 위해 다시 북한 화물선을 타러 양곤강으로 갔죠
그런데 양곤강에 도착했지만 북한 화물선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들이 타고왔던 화물선은 이집트를 갔다가 미얀마로 돌아와
10월 6일 재입항을 신청했지만
전두환의 방문이 이틀뒤를 앞둔 상황이라
미얀마 측에서 입항을 거부했던 것이죠
그러자 용의자 중 한명인 김진수는 중국쪽으로 도망치기 위해
새벽에 혼자 양곤강을 헤엄쳐 건너가는 도중
이를 이상하게 여긴 미얀마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들에게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또 다른 용의자인 강민철과 신기철은 강을 건너기 위해 그곳에 있던 뱃사공 2명에게
돈을 주고 배를 탔지만 먼저 타고 있던 주민 두명 중 그들을 이상하게 여긴 주민 한명이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며 배에서 내리더니 신고를 해버렸고
그렇게 출동한 경찰에 의해 둘은 경찰서에 잡혀가게 되었죠
그러나 경찰서에서는 도망치려는 둘과 총격전이 벌어졌는데
이 과정중 신기철은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고
강민철은 다시 체포 되었습니다
특이한 점은 강민철과 김진수는 도망칠때 들고 있던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았는데
안전핀을 뽑자마자 수류탄이 바로 폭발했으며 둘다 심한 상처를 입었죠
사실 이 수류탄들은 공격용이 아니라
안전핀을 뽑자마자 터지도록 설계되어 있었던 것인데
이는 공작원들의 신분노출을 숨기기 위해
몰래 개조해 놓았던 수류탄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공작원들은 그걸 모르고 안전핀을 뽑았던 것이죠
김진수는 수류탄 때문에 팔 한쪽을 잃고 실명이 된채
계속해서 진술을 거부하다가 결국 처형되었고
강민철은 한 팔을 잃었고 북한의 소행임을 시인하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은채 평생 감옥에서 살다가 2008년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쨌든 이 사건으로 인해 미얀마를 비롯한
전두환 대통령 일행은 난리가 나고 말았는데요
곧바로 전두환은 모든 순방일정을 전면 중단하고 서울로 귀국했고
다른 순방 일정들 역시 연기되었죠
그리고 자국의 국민 영웅인 아웅 산의 묘소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은 미얀마 정부와 국민들은 격분하여
북한과 즉시 단교 조치를 함과 동시에
북한 대사관을 강제로 철수 시켰으며 국가 승인도 취소해버렸습니다
거기다가 이 소식을 접한 미국 등 다른 전세계 69개국이
대북 규탄 성명을 발표하였고
60여개국 역시 북한과 단교 조치 또는 외교 관계를 축소시키는 조치를 취했으며
심지어 10여개 국가는 북한을 향후 절대로 수교할 수 없는 나라로 선포하면서
북한의 대서방 외교는 치명타를 입게 되었죠
하지만 역시 북한에서는
'피의자들은 북한사람들도 아니고 북한과 관계 없다'며
범행 사실을 잡아 뗐다고 하죠
어떤 사람들은 이때 전두환이 목숨을 잃었다면
한국의 민주화가 더 일찍 이루어졌을거라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당시 노태우도 멀쩡히 살아있기도 했고
당시 노태후는 명실상부한 2인자 였기 때문에
전두환이 사망했어도 하나회를 비롯한 군부세력들에 의해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었을거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전두환이 목숨을 잃을뻔 했던 사건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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