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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노량 : 죽음의 바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실제 역사속 모습의 차이점

by 사탐과탐 2024.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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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 : 죽음의 바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실제 역사속 모습의 차이점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아무리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라고 하더라도

재미를 위해서 각색을 하다 보면

실제 역사에서 있었던 일과는 조금 다르게 나오는 부분도 있기 마련이죠

 

영화 노량에서는 조선수군을 도와 싸웠던 명나라 장수들과

조선수군을 상대로 싸웠던 일본군 장수들이 나오는데

과연 이들이 영화 속에서 보여줬던 모습들과

실제 역사 속에서 했던 일들은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재능은 있었지만 탐욕스러웠던 장수 진린입니다

그가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뇌물을 받고

고니시가 보낸 연락선을 몰래 통과시켜 준 것은 사실이라고 하죠

 

그럼에도 결국은 이순신을 따라 싸움터에 나갔던걸 보면

진린이 그래도 명나라 장수들 중에서는

왜적을 토벌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강성파라는걸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명나라조정에서도 일본군의 퇴각을 굳이 막지는 말라는 입장이었고

다른 명나라 장수들도 굳이 남의 나라를 위해

적극적으로 싸우려들지는 않는 분위기였는데

그래도 진린은 이순신에게 협조해 노량에서 싸웠으니까요

 

처음 이순신과 만났을 때만 해도 진린은 다른 명나라 장수들처럼

이순신을 좋게 보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공을 가로채기도 하려 했죠

하지만 이순신이 채찍과 당근을 적절하게 번갈아 사용하면서

때로는 진린에게 자신이 세운 공을 다 넘겨주기도 한끝에

결국 진린은 이순신의 지휘력과 인품에 완전히 빠져들게 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때부터 진린은 자기보다 두 살 어린 이순신을

'노야'라는 호칭으로 높여 불렀고

자신이 탄 가마가 감히 이순신이 탄 가마보다

먼저 나가는 일이 없도록 했을 정도였다고 하죠

 

그리고 그는 조선 조정에 이순신을 견제하는 세력이 있는 것을 걱정해

이순신의 공적 일부를 일부러 본인의 것으로 바꿔 올리고

대신 명나라 조정에는 이순신의 공적을 많이 기록한 보고서를 올렸다고 합니다

 

노량해전 때 진린이 탄 배가 적들의 왜선에 포위를 당했지만

이순신이 구해주면서 겨우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는데

이후 이순신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진린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죠

그는 노량해전 이후 남해왜성 소탕전까지 참가해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조선군과 함께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명으로 돌아간 후 1607년까지 살다가 사망하게 되죠

 

명나라가 멸망한 후 진린의 직계 손자가 조선으로 망명해

해남에서 정착해 살아가게 되었는데

이들이 바로 광동 진 씨의 시초라고 합니다

 

등자룡은 영화에서는 시마즈에게 죽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 그가 죽는 과정은 조금 다르다고 하죠

전투 중에 등자룡의 배가 명나라 아군의 포격을 맞고 불이 나자

일본군들은 등자룡의 배를 집중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등자룡은 배에 올라탄 일본군들과 백병전을 벌이다 전사하게 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순신이 등자룡에게 판옥선을 선물한 장면은 실제로도 있었던 일이며

이순신은 진린과 등자룡에게 각각 판옥선 1대씩을 선물했다고 하네요

그 외에 명나라 장수인 진잠과 심리는

영화에서는 진린을 구하며 죽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노량에서 죽지 않는다고 하며

그들이 명나라로 복귀하기 전 선조가 진잠의 부대를 방문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영화에서는 북소리에 절규하는 장면으로 끝이 나면서

그가 죽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실제로 그는 무사히 퇴각하는 데 성공해서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전투에도 참가했다고 합니다

 

노량해전에서 시마즈는 조명 연합수군의 약점인 진린이 있는 방향을 맹렬하게 공격했지만

진린의 함대가 뚫리기 전 이순신의 본함대에게 먼저 뒤를 공격당해 박살이 나면서 패배했죠

이후 도망갈 길을 찾다가 관음포에 갇히고

여러 차례 탈출 시도를 한끝에 극적으로 겨우 탈출에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그가 이끄는 대부분의 함대가 바닷속에 잠겨버렸고

결국 요시히로는 목숨만 간신히 건진 채로 본국에 돌아갔죠

비록 전투에서 패하면서 가지고 있던 병력을 전부 잃었지만

시마즈가 조선 수군을 공격한 것 때문에 해상봉쇄가 일시적으로 풀리면서

일본군이 도망갈 길이 열렸다는 점을 인정받아 상을 받았다고 하네요

 

참고로 일본의 영주들은 전투에서 패한 책임을 지고 할복하는 경우는 많지만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에서 전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편이라고 하죠

그를 따르던 무사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필사적으로 영주를 지키기 때문인데요

 

다만 그것은 일본인들의 충성심이 유난히 강해서가 아니라

영주가 패해서 죽으면 그를 따르던 무사들은

떠돌이 낭인이 되어 비참하게 생활하다 죽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모시는 영주가 죽으면 자신도 무사하지 못하니

어떻게든 그를 지키려 했던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말년의 시마즈 요시히로는 치매에 걸려

식사나 화장실도 혼자서는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 정도였으며

그의 가신이 출전을 알리는 소라고동을 불면

잠시동안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게 다였다고 하죠

결국 1619년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는 고니시 유키나가가 전투에 참전하려고 출정하는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 고니시는 참전할 의지가 전혀 없이

그저 전투를 지켜만 보다가 부산으로 도망갔다고 하는데요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이미 장도해전에서 무려 40척의 전선을 잃은 데다

이순신에 의해 고립당해 식량난에 처하면서

도저히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도쿠가와와의 전투에서 패배해 참수를 당하게 되죠

 

자신이 가톨릭 신자라는 이유로 할복을 거부했기 때문에

대신 참수를 당한 것이라고 합니다

아리마 하루노부는 영화에서는 혀가 잘린 후 포격에 맞아 죽지만

실제로는 퇴각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 쪽에 붙어서

고니시의 성을 공격하는 공적을 세우며 자신의 영지를 지켜냈죠

 

하지만 이후 어떤 사건으로 인해 도쿠가와의 눈 밖에 났다가

1612년 기독교 세력을 확장하려다 들키면서 처형당하게 됩니다

실제로 고니시가 총대장이기는 했지만 동료나 다름없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영화에서처럼 그가 고니시를 상전 모시듯 하지는 않았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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