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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 폭군 간신 탐구

나합부인. 기생 출신으로 당시 최고의 세도가 김좌근의 첩이 되어 정경부인급의 권력을 휘두른 여인

by 사탐과탐 2021.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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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의 기생이던 양씨는 외모도 예쁘고 춤과 노래도 잘해 한양에까지 소문이나 김좌근의 첩이 됩니다.
그녀는 당시 최고의 세도가 김좌근을 등에 업고 엄청난 권력을 휘두르는데요.

 

 

장옥정, 장녹수, 정난정, 김개시, 어우동을 조선의 5대 요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그런데 어우동을 빼고 이 인물을 넣는 경우도 있죠.

그녀는 조선 철종시대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극에 달했을 때 세도정치의 중추였던 김좌근의 첩, 나합부인 입니다.

 

5대 요부라고 일컬어지는 여인들의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나합부인은 조금 생소한 이름이긴 하죠.

그녀는 어떤 인물이었길래 5대 요부에 이름을 올릴 정도가 되었을까요?

 

전남 나주 영산포에서 한 여자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 아이는 태어났을 때부터 남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었는데요.

양씨성을 가진 그 여자아이는 자라면 자랄수록 동네 남정네들의 혼을 쏙 빼버릴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가 빛을 발했습니다.

그녀가 지나갈 때면 사람들이 넋을 놓고 쳐다보고 있을 정도였죠.

 

양씨는 처녀시절 도내기샘에서 물을 긷기도 하고 설거지도 했는데 그녀가 그곳에 뜨는 날이면 동네 남자들이 몰려들었다고도 합니다.

양씨는 자라면서 노래와 춤을 배워 기생이 되었는데요.

워낙 자태가 곱고 특출난 미모에 심지어 춤도 노래도 잘하다 보니 그녀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지게 되었고 그 소식은 당시 최고의 권력을 휘두르던 세도가 김좌근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죠.

 

그녀에게 호기심이 생긴 김좌근은 곧바로 그녀를 한양으로 불러 올렸는데 과연 소문대로 미모나 춤과 노래, 심지어 김좌근을 한방에 홀릴 정도의 테크닉까지 겸비한 여인이었습니다.

김좌근은 한눈에 반해버려 곧장 첩으로 삼아 밤낮으로 그녀와 시간을 보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녀에 대한 김좌근의 총애는 남달랐기에 그러자 첩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권세를 누렸는데요.

오죽하면 양씨를 거치지 않고서는 김좌근을 움직일 수 없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던 것입니다.

 

지방의 관리로라도 나가려는 양반들은 너도나도 양씨를 찾아와 관직 청탁을 하기 시작했고 일명 '배갯머리 송사'라하여 김좌근과의 잠자리에서 그녀는 온갖 아양을 떨며 꼬리쳐 김좌근에게 부탁해 매관매직을 일삼았던 것이죠.

 

심지어 청탁을 하려고 찾아온 양반들 중에 젊고 잘생긴 남자가 있으면 조용히 자신의 방안으로 불러 개인면담을 하기도 했는데 그 누구도 그녀를 거역하지 못했고 시키는 대로 해야만 했으며 만에 하나 그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기라도 한 날이면 그날로 벼슬자리가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뇌물을 바쳐 벼슬을 샀다 하더라도 그녀의 눈밖에 나면 언제든지 자리에서 쫓겨나기 일쑤였고 그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것이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그녀를 '합부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요.

당시 정승을 합(閤)이라 했고, 정승을 부를 때는 합하(閤下)라고 했으며 정승의 부인은 합부인(閤夫人)이라고도 했었기에 그녀는 비록 첩의 신분이었지만 정승 부인보다 더 콧대가 높은 행동을 하다 보니 합부인이라 불렀던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거기다 나주 출신이었고, 그렇게 '나'자를 붙여 '나주의 정승'이란 의미로 나합부인(羅閤夫人)이라 부른 것입니다.

또한 합(閤)은 쪽문이나 협문 등의 뜻도 있는데 사람들이 쪽문을 통해 들어와 뇌물을 찔러주고 청탁을 하다 보니 그런 의미로 나합이라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었죠.

 

그런데 김좌근의 권세를 등에 업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권력을 휘두르다 보니 결국 나합부인이라는 소문이 김좌근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김좌근이 집에 돌아와 나합부인을 불러 "세상 사람들이 너를 '나합'이라 부르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 라며 화내자 나합부인은 "사람들이 저를 희롱하기를 '나주에서 온 벌린 대합조개' 라는 뜻으로 나합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라는 답변을 해 김좌근도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합부인은 갈수록 안하무인이 되어 갔는데요

어느 날 그녀는 대청마루에 앉아 한양을 내려다보고 싶다며 앞에 시야를 가리고 있는 아래채와 민가들을 헐어버리자고 김좌근에게 말했죠.

그러자 김좌근은 아래채의 기둥을 잘라 지붕을 주저앉혔고 주위 민가 몇 채는 사들여 허물어 버렸습니다.

 

그야말로 나합부인의 마음대로 되는 세상이었죠.

그렇지 않아도 세도정치를 통해 왕을 개무시하고 온갖 못된 짓을 일삼아 세도가 안동김씨들을 백성들이 좋게 보지 않고 있었는데 나합부인 때문에 김좌근과 나합부인에 대한 민심은 날이 갈수록 더 나빠졌고 둘을 욕하는 소리가 한양에 가득해지자 김좌근의 양아들이던 예조판서 김병기는 아버지를 찾아와 나합부인 단속 좀 잘하라고 요구 하기까지 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 소식을 들은 나합부인은 김병기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그를 꼬시려고 했지만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안동김씨들은 회의까지 열어 나합을 쫓아내라 했지만 김좌근의 보호에 부딪혀 나합을 쫓아내지는 못했죠.

 

또한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잡기 전 파락호로 살고 있을 때 김좌근을 찾아간 적이 있는데 나합부인을 보자 절을 하며 형수님이라고 불렀다고 하죠.

다른 양반들은 그녀를 첩이라 하며 절은커녕 인사도 잘 안 했는데 왕족인 흥선대원군이 일개 기생 출신 첩에게 절을 했다니 정말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이죠.

 

그러자 김좌근도 흥선대원군을 후하게 대접했고 나합부인도 그를 좋게 보았다고 합니다.

이후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잡게 되고 헌종의 어머니였던 효유대비는 나합부인을 불러 죄를 물었고 고향인 나주로 돌아갈 것을 명했죠.

 

하지만 흥선대원군은 김좌근과 나합부인에게 고종의 결혼비용 10만 냥과 경복궁 재건비용 10만 냥을 받고 이 일을 무마 시켜주었으며 모든 권력을 빼앗겼지만 그녀는 다행히 목숨은 부지한 채 조용히 살았다고 합니다.

또한 김좌근 역시 나라를 한 손에 움켜쥐고 뒤흔들었던 세도가였지만 천수를 다 누리고 편안하게 생을 마감했다고 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나 이후 나합부인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고 합니다.

나합부인이 김좌근의 애첩이었다는 기록은 나주 금성관에 가면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데요.

 

전국에 흉년이 들었을 때 김좌근에게 부탁해 자신의 고향인 나주에 구휼미를 보냈고 나주 백성들은 이 일에 대한 보답으로 김좌근의 선정을 기리는 비를 나주 관아에 세운 것이죠.

나중에 백성들이 이 비를 부숴버리기도 했지만 두동강 난 채 버려져있던 비를 1987년에 다시 금성관 안으로 옮겨 세웠다고 합니다.

 

조선후기 조선에서 가장 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김좌근의 여자가 되어 자신도 마치 정승이 된 것마냥 행동했던 악녀 나합부인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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