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칭은 마오쩌둥(모택동)의 부인으로 그의 행동대장 역할을 맡으며 역대급 노답 집단인 홍위병을 지휘하며 온갖 악행을 일삼았습니다.
그녀는 질투와 복수의 화신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사람들을 모조리 감옥에 가두고 죽이기까지 했었죠.
중국 공산당의 악녀 중에 악녀인 장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중국 3대 악녀로는 여태후, 서태후, 측천무후가 있죠.
하지만 오늘 소개할 이 인물은 3대 악녀로 들어가기에 조금의 모자람도 없어 보입니다.
오늘 이야기할 인물은 바로 '장칭' 이라는 인물인데요.
그녀는 마오쩌둥의 네 번째 아내로 문화대혁명과 홍위병들을 진두지휘해 수천만 명에 달하는 중국 인민들의 삶을 파탄시키는데 일조한 대단한 업적이 있으며 마오쩌둥과 손을 잡고 함께 중국을 파괴하고 중국의 4000년 역사를 개박살 내는데 엄청난 역할을 했던 여인이죠.
이런 어마어마한 인물은 태어날 때부터 남달랐는데요.
장칭은 태어날 때부터 한쪽 발의 발가락이 6개였다고 하죠.
또한 그녀의 인생 역시 스펙타클 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가구를 만드는 가게를 운영했었는데 알콜 중독증에 걸려 허구헌날 장칭과 어머니를 폭행했었죠.
그런데 장칭은 나이는 어렸지만 성격은 괴팍해서 그런 아버지에 맞서 싸우기도 하고 아버지의 팔을 물어뜯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열받은 아버지가 장칭의 얼굴을 삽으로 때렸고 그때 앞니가 깨져버렸다고 하죠.
그런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 부모님은 결국 이혼하게 되었고 자신은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사생아라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기 시작하면서 그곳에서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싸움질만 해댔습니다.
그러다 선생님 얼굴에 침을 뱉었다는 이유로 학교를 자퇴하게 되면서 그녀는 담배공장에서 어린이 노동자로 일했죠.
어린 시절부터 불행한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그녀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사회에 대한 적개심과 반항심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칭다오 대학 도서관에서 일하다 학생들로부터 공산주의 사상을 알게 되었고 1933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했습니다.
그리고나서 집을 나온 장칭은 상하이에서 배우가 되었고 동시에 공산주의 활동을 했는데 그러다 체포되어 감옥에 투옥 되기도 했죠.
그러자 장칭은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자살시도를 하기도 했으며 감옥에서 나온 이후 결혼을 두 번이나 했지만 두 번 모두 이혼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칭은 뭔가 결심한 듯 배우 활동을 그만두고 1937년 옌안으로 가게 되었죠.
거기서 자신의 운명을 바꿔줄 마오쩌둥을 만나게 되었고 그와 눈이 맞아 결혼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1949년 국공내전을 승리하며 마오쩌둥이 국가 주석이 되자 그녀 역시 영부인이 되었죠.
하지만 그 이후 마오쩌둥은 장칭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른 여자와 계속 바람을 피웠는데요.
장칭은 마오쩌둥에 대한 배신감과 자신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극심한 우울증이 도졌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엄청 신경질적이고 예민하게 대했습니다.
그러자 마오쩌둥은 장칭을 달래주기 위해 그녀를 당 간부로 임명해 정치활동을 시키기 시작한 것이죠.
그러던 중 마오쩌둥이 실시한 대약진운동의 대실패로 인해 그의 위치가 흔들리게 되면서 잠깐 최고의 위치에서 내려왔지만 얼마 안 가 1965년 해서파관 사건을 시작으로 중앙문화혁명소조가 결성되면서 그녀는 거기의 수장으로 일하며 권력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또한 장춘차오, 왕훙원, 야오원위안과 함께 4인방이라는 팀을 결성해 문화대혁명과 홍위병들을 진두지휘하기 시작한 것이죠.
이때부터 그녀는 권력을 마구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는데요.
마오쩌둥을 지키고 보필한다는 구실로 엄청난 악행들을 일삼았습니다.
그녀가 행한 악행들 중에선 개인적인 복수도 많았죠.
장칭은 현대발레를 해야 한다며 경극과 같은 중국 전통 예술을 없애버렸고 수십 년 전 자신이 배우 활동을 할 때 자신의 역할을 가로챘던 여배우 '왕잉'을 잡아들여 지독한 고문을 한 뒤 형무소에서 죽여버렸죠.
또한 자신보다 예쁘다는 이유로 류샤오치의 아내 왕광메이도 체포해 엄청난 고문을 가했으며, 다행히 죽지 않고 풀려났지만 왕광메이는 초주검이 되어 제대로 서있지도, 걷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왕광메이의 자식은 옥에서 죽게 내버려 두었고 여배우 쑨유스는 마오쩌둥을 유혹했다는 이유로 스파이로 몰아 감옥에 가둔 후 7개월 동안 매일 두들겨 패 결국 죽여버렸죠.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국민당 형무소에 있을 때 있었던 간수들과의 매춘행위가 들킬까 두려워 자신과 친하던 동료와 친구, 그리고 그 사실을 아는 지인 모두를 체포해 감옥에 가둬버렸으며 자신을 욕하고 비판하는 사람들 역시 모조리 잡아가둬버렸습니다.
이렇게 잡혀온 사람들 대부분은 극심한 고문을 받아 옥사해버리고 말았죠.
장칭 스스로도 자신이 해온 행실을 알았던 것인지 항상 자기는 암살당할 거라고 말하고 다녔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과 갑자기 큰소리가 나는 것에 극도의 공포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자신이 복용하던 약을 먹은 뒤 넘어진 적이 있는데 이는 "주치의와 간호사가 자신을 암살하려 한 증거다" 라고 주장하기도 했죠.
그 정도로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보니 작은 소리에도 굉장히 예민하게 굴었는데 문이나 창문을 열 때도 조용히 열었어야 했고 자신을 오랫동안 바라보는것 조차 금지 시켰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뛰지 못하게 했죠.
심지어 그녀를 모시던 하인들이나 직원들은 장칭의 집 근처에 새와 매미를 쫓아내는 것이 하루 일과였을 정도였고 심지어 직원들에게 구두는 신지 못하게 했으며 옷 스치는 소리까지 예민하게 반응해 팔도 들고 흔들지 못하게 하고, 다리도 벌리고 걸으라며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광저우저택은 강 옆에 있었기 때문에 장칭이 그곳에 머물 때면 강의 배들이 왔다 갔다 하지 못하게 금지하면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히기도 했고 비교적 먼 거리에 있던 조선소마저 가동을 중지해야 했죠.
또한 자신의 주치의인 쉬타오는 어느 날 장칭의 지시로 창문의 차양막을 치고 있었는데
햇빛이 장칭의 눈을 비춰버렸고 그 이유로 체포되기도 했죠.
거기다가 그녀의 방은 겨울엔 21도, 여름엔 26도를 유지했어야 했는데요.
춥다고 소리를 질러대는 장칭에게 26도가 맞다고 온도계를 보여주다가 정신적 고통을 준 죄로 잡혀가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보니 그녀를 만나는 고위관료들의 수행원들은 장칭을 만나기 꺼려해 자동차 안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하죠.
이런 골치 아픈 그녀였지만 마오쩌둥은 장칭에게 계속해서 정치일을 시켰는데요.
자신의 어떤 극악무도한 명령이라도 아무 말 없이 무조건 해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죽하면 나중에 장칭은 "나는 마오쩌둥의 개였다. 그가 물라고 하면 나는 물었다." 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죠.
문화대혁명이 막바지에 이르자 마오쩌둥은 그녀에게 더 이상 많은 일을 맡기지 않았는데요.
그러다보니 장칭은 할일없이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아졌는데 그때부터 장칭의 사치스러운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허구헌날 포커나 치며 놀았고 밤마다 일반인들에게는 상영이 금지된 외국 영화를 보기도 했습니다.
문화대혁명의 영향으로 모든 중국인들이 반려동물을 키우는걸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원숭이를 비롯한 여러 반려동물들을 키웠으며 어떤 공원에서는 사람들의 출입을 막은 뒤 승마를 하기도 했죠.
또한 수십 km 떨어진 곳에서부터 광천수를 끌어와 자신의 수영장에 물을 댔고 경치 좋은 산을 다니려고 도로를 까는데 시끄럽다는 이유로 폭약 사용을 금지시켜 수많은 인부들이 큰 암석을 일일이 다 깨트려 도로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더 어이없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옷이나 의자 등의 물품들을 베이징에서 광저우까지 가지고 오기 위해 비행기를 띄우기도 했으며 자신의 전용 기차를 아무데나 정차 시키는 바람에 뒤따라오던 기차들 전체가 멈추어야 하는 등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었죠.
이런 상황에서 항상 본인은 민폐라고 생각하지 못한다는게 문제인데요.
오히려 사람들에게 "내가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라는 개소리를 하기도 했고 "나를 섬기는 것은 인민을 섬기는 것이다" 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장칭은 마오쩌둥이 직접 하지 말라고 금지시킨 기이한 짓까지 하는데요.
바로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젊고 건강한 남자들의 피를 뽑아 자신에게 수혈한 것이죠.
그러고서 그 남자들에게 하는 말이 "너희들의 피가 내 몸속에서 돌고 있는 걸 영광으로 알아라" 라고 하는 등 엽기적인 행각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장칭이 이런 기행을 일삼을수록 마오쩌둥은 그녀를 멀리하려 했죠.
그러다보니 두 사람은 허구헌날 싸우기 일쑤였고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이후부터 둘은 따로 살았었는데 나중에 마오쩌둥은 자신의 집에 장칭이 들어오지 못하게까지 했습니다.
그녀는 항상 자신이 마오쩌둥의 후계자라 주장했지만 누구도 그녀를 지지해 주지 않았고 인민들의 적일 뿐이었죠.
결국 1976년 9월, 마오쩌둥이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마오쩌둥의 자리를 꿰차려 했지만 결국 4인방 모두가 긴급체포되어 감옥에 감금되고 말았습니다.
장칭은 감방 벽에 머리를 찧고 스스로 자살을 하려고 했지만 교도소에서는 미리 감방 벽을 고무판을 붙여 그렇게 하지는 못했고 화궈펑이 장칭에게 "죄를 인정하고 이제부터 착하게 살면 석방해 주겠다"라고 했지만 장칭은 불같이 화내며 "석방되면 반년 안에 당신들 일당을
완전히 제거해 버릴 것이다"라고 했다고 하죠.
결국 1980년 11월이 되자 다른 4인방과 함께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재판장들에게 욕을 하고 난리를 치자 덩샤오핑은 장칭을 사형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사형 및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한국의 집행유예와는 다르게 감방에 수감되어 사형집행을 유예 해주는 것으로 집행유예 기간 중 사고만 안 치면 형을 감해주는 것이었죠.
결국 감형을 받아 무기징역이 확정되었습니다.
이때 장칭이 예전에 고문으로 반쯤 죽게 만들었던 왕광메이가 재판장에서 두 눈 똑바로 뜨고 그녀의 몰락을 지켜보았다고 하죠.
이후 그녀의 수감생활은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고 철저히 비밀에 붙여졌습니다.
장칭은 감옥 안에서도 괴팍한 성격은 어딜 가지 않았는데 무슨 요구를 했을 때 거절당하면 목구멍을 젓가락으로 쑤셔 자살하려 하기도 했고 양말로 목을 매기도 했으며 수면제 50알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는 등 온갖 난동을 부렸죠.
그녀는 10년만 있으면 다시 혁명 노선이 부활할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결국 1984년 5월 인후암 판정을 받았고 치료를 받다가 1991년 3월엔 형 집행정지를 받아 풀려났지만 그해 5월 유서를 쓴 뒤 화장실에서 손수건으로 목을 매어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5월 18일 그녀의 시신은 화장되었는데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에서는 6월 4일이 되어서야 그녀의 죽음을 발표했죠.
또한 2년 후인 1993년에 유서가 공개되었고 그녀의 부검 결과를 발표하지 않아서 장칭은 덩샤오핑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음모론도 많았다고 합니다.
현재 그녀의 평가는 거의 대부분의 중국인들에게 미움과 욕을 먹는 처지인데요.
그들이 국부로 생각하는 마오쩌둥의 눈과 귀를 막고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오명과 마오쩌둥의 잘못도 그녀가 전부 다 뒤집어쓰고 죽었기 때문이죠.
장칭이 문화대혁명 시절 씻을 수 없는 많은 죄를 짓기는 했지만 중국 공산당의 정통성과 덩샤오핑의 권력 유지를 위해 희생양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왠지 중국 3대 악녀는 서태후, 가남풍, 장칭으로 다시 뽑아야 할 것 같네요.
마오쩌둥도 굉장히 골 때리는 인물 같지만 그런 남편을 말리지 못하고 오히려 더 난리를 쳤던 장칭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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