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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도조 히데키. 비굴하게 죽으려고 했지만 미군이 강제로 살려내 전범재판대에 세워 사형당한 A급 전범

by 사탐과탐 2022.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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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조 히데키는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총사령관으로 일본 패망한 직후 스스로 죽으려고 했지만 미군이 강제로 살려내 전범재판을 통해 사형당한 A급 전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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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은 1910년 8월부터 약 34년 11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의 일제강점기를 거쳐 1945년 8월 15일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독립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일본군 주요 전쟁 범죄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군사 재판소에서 재판을 했죠

그렇게 일본 전범 920명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3000여 명에게는 징역형을 선고했습니다

 

또한 A급 전범 용의자 25명은 도쿄 극동 군사 재판을 열어 도조 히데키 일본 수상과 다른 7명에게 사형이 선고되었으며 나머지 17명에게는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죠

그런데 진주만을 기습공격하고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당시 일본 수상이자 A급 중에 A급 전범 도조 히데키는 체포되기 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었지만 미국이 그를 악착같이 살려내 사형을 시켰는데요

 

오늘은 이 도조 히데키의 자살미수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1945년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한 직후 일본의 고위관료와 장성 중 많은 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죠

그런데 정작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주범 도조 히데키는 자결을 하지 않고 자신의 집에 짱박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8월 30일에 맥아더 장군이 일본에 도착했고 9월 2일에 USS 미주리호에서 일본 외무대신 시게미츠 마모루가 항복 문서에 서명을 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 시게미츠 마모루는 얼마 후 도조 히데키를 찾아가 조만간 연합군이 전범들을 체포할 텐데 도조가 그 리스트에 제일 꼭대기에 있다고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이에 성난 시민들에게 돌을 맞고 시신이 거꾸로 매달려 진 무솔리니의 사진을 본 뒤 겁을 잔뜩 먹은 도조는 주변 사람들에게 '추악한 시체는 되고 싶지 않다' 라고 말했다고 하죠

그리고 만약 자신을 체포하러 온다면 명예를 지키기 위해 전진훈에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전진훈이란 '살아서 적의 포로가 되는 치욕을 당하지 마라', '무조건 항복금지' 라는 의미로 도조 히데키가 전진훈을 젊은 일본 군인들에게 강요하며 자살을 종용했던 그런 것이었죠

한편 맥아더가 일본에 도착한 뒤로 일본 국민들은 도조에게 노골적으로 저주를 퍼부으며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 요구했습니다

심지어 해외에서 파견 중이던 좌관급 장교들이 귀국한 뒤 도조를 찾아가 패전의 책임을 지고 자결하라 하기도 했죠

 

하지만 당시 독일에서는 뉘른베르크 국제 군사재판이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요

도조는 독일 전범들이 재판에서 어떤 판결을 받는지 촉각을 곤두세우며 독일의 소식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또한 자신은 전범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개소리를 시전했죠

그러면서 자결을 종용하는 사람들에게 향후 미군의 행보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살아 있어야 한다며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둘째 아들이 도조에게 찾아와 가족 전체가 전쟁의 책임을 지고 다 같이 죽자며 자결을 권하기도 했었지만 자신은 조국의 재건과 젊은이들의 미래를 위해 죽어선 안된다는 되지도 않는 변명을 대며 그마저도 거부했죠

전범의 우두머리격인 도조가 책임을 질 생각은 전혀 없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며 뻔뻔한 행동을 계속하자 그의 집에는 날마다 엄청난 투서가 쏟아졌는데요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성난 일본 시민들이 도조의 세 아들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걸 지적하며 그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아들들을 살린 것이라고 하면서 할복하라, 자결하라는 식의 수만 장의 편지를 도조의 집으로 보내버린 것이었죠

그러나 도조는 무시로 일관된 모습을 보이며 자신의 첫째 아들은 만주국의 경찰로 있었고 둘째는 항공 기술자, 셋째는 육사 생도였기 때문에 자신의 빽으로 아들들을 살린 건 아니라고 변명했습니다

 

하지만 미군에서 전범들을 체포할 움직임을 보이자 도조는 비밀리에 유서를 작성했는데 그 내용에는 개전 책임자로써 책임을 통감하지만 전쟁 책임은 영국과 미국에 있다는 식으로 적었다고 하죠

훗날 일본의 한 법학자는 그의 유서 내용을 본 뒤 도조 히데키식 무책임론의 정수라며 맹비난 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유서를 쓴 도조는 이웃집에 살던 의사를 찾아가 심장의 위치를 물은 뒤 붓을 이용해 심장 위치에 동그랗게 표시를 해두었죠

그 이유는 바로 미군이 자신을 체포하러 오면 표시해둔 곳에 총을 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행여나 표시한 것이 지워질까 봐 목욕을 할 때마다 동그라미를 다시 그리며 그 위치를 잘 표시 해뒀다고 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시간이 흘러 맥아더 장군은 도조 히데키를 체포해야 할 A급 전범 용의자 1위로 두고 전범들 103명을 체포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렇게 9월 11일 오후 1시가 되자 미군 지프차 여러 대가 도조의 집을 포위하고 미군 군사경찰 30여 명이 그 집 마당을 지키고 섰죠

정작 자신의 집은 포위했는데 체포하러 들어오지는 않는 미군을 보고 도조는 자신을 사살하려는게 아닌가 하고 굉장히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 오후 4시가 되자 군사 경찰 지휘관인 폴 크라우스 중령이 도착해 도조의 집 현관문을 두드렸죠

그 소리를 들은 도조는 권총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후 창문을 열고 체포 영장을 가지고 왔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폴 중령이 영장을 보여주자 도조는 문을 열겠다 하고는 자신의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죠

 

그리고 동그랗게 표시를 해두었던 심장 쪽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하지만 평소 왼손잡이였던 그가 오른손으로 총을 쏜 데다가 발사하는 순간 총이 위로 들리는 바람에 총알이 심장을 비껴가고 말았죠

집안에서 총소리가 나자 미군 경찰들은 문을 부수고 집안으로 진입한 뒤 피를 흘리고 있는 도조를 발견하게 됩니다

 

심장은 비켜갔지만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된 도조 히데키는 그렇게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는데요

도조를 법정에 세운 뒤 죗값을 치르게 하고 싶었던 미군은 그를 살려내고자 가까이 있던 일본인 의사를 급히 불렀지만 그 의사는 도조의 자결을 돕기 위해 이미 늦었다는 핑계를 대며 응급처치를 하지 않았죠

 

맥아더는 도조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급히 미국인 의사를 그리로 파견해 그를 치료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당대 최고의 의료진을 일본으로 급파해 전력을 다해 도조 히데키를 치료했고 결국 그를 살려내기에 이르렀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 소식을 들은 일본인들의 반응은 매우 냉담했는데요

도조 히데키를 자살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바보라고 하기도 하고 무사로서의 마음가짐이 부족하다거나, 도조는 연기를 한 것이 틀림없다고 하면서 그런 추태를 보인 도조를 욕하기에 바빴습니다

심지어 맥아더에게 도조를 빨리 처형해달라는 편지를 엄청 보냈다고 하죠

 

10월 7일이 되자 도조는 많이 회복되어 오모리 수용소로 이송되었습니다

당시 오모리 수용소에는 이미 수십 명의 전범이 수용되어 있었는데요

그들 대부분은 도조 히데키를 냉담하고 싸늘하게 대했고 도조 역시 그들을 무시했죠

이후 극동 국제 군사재판이 열려 그는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도조는 사형 선고를 받자마자 마지막까지 군인다운 모습으로 죽겠다며 군복을 입은 채로 총살형을 받기를 원했지만 연합군 측은 그에게 너 같은 전쟁 범죄자는 교수형이 어울린다며 거절했고 그렇게 결국 도조는 교수형에 처해졌죠

그는 처형되기 전까지 참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는 두 번 죽는 수모를 받게 되었는데요

 

도조 히데키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도 그의 자살미수는 일본인들에게 두고두고 욕을 먹었다고 하죠

또한 자살기도를 한 전범을 그대로 죽게 내버려 두지 않고 끝까지 치료해 살려낸 뒤 법의 심판을 받게 해 결국 사형에 처한 미국의 행동은 현재까지도 칭찬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이없는 일은 현재 일본에도 일어나고 있죠

 

도조의 시신은 다른 사형수들과 마찬가지로 화장되어 태평양 어딘가에 버려졌는데요

누군가가 화장지에 남아있던 그의 유골의 일부를 챙겨와 아이치현 산가네산 정상에 묻은 뒤에 그곳을 순국칠사묘라고 이름 붙였으며 현재도 영웅으로 칭송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곳에는 태평양전쟁의 총책임자인 도조 히데키를 포함해 A급 전범 판결을 받고 처형된 7명의 묘지가 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또한 '순국칠사묘' 의 입구 비석의 글씨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가 썼다고 합니다

비석의 글씨를 쓸 당시 기시 노부스케는 일본의 총리였는데요

총리라는 사람이 앞장서서 전 세계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 침략전쟁 주범들을 영웅으로 둔갑시킨 것이죠

 

이곳은 일본극우인사들의 성지가 되어 매년 4월 29일에 은밀히 참배 행사도 치러지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야스쿠니 신사에도 도조 히데키의 위패가 있어 현재까지도 수많은 일본인들에게 참배 받고 있죠

역사를 왜곡하고 전범을 순국한 영웅으로 둔갑 시키고 있는 일본의 저열하고 뒤틀린 역사인식은 정말 답도 없는 것 같네요

 

일본 A급 전범인 도조 히데키가 자살시도를 하자 다시 살려내 결국 사형시킨 미국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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