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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도미나가 교지. 군사적으로 완전 무능의 극치를 보여줬지만 정치질 하나로 살아남았던 일본 삼대 오물

by 사탐과탐 2022.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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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조 히데키 라인을타 그의 총애를 받아 승승장구한 도조의 돈주머니 도미나가 교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스기야마 하지메, 무타구치 렌야와 함께 일본의 삼대 오물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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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태평양 전쟁에서 너무나 큰 삽질을 하면서 일본군의 패망을 앞당겼던 일본군 장성 3명을 같이 묶어서 현대 일본에서는 3대 오물이라고 부릅니다

그중에서도 무타구치 렌야는 우리나라에도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어둠의 광복군이라는 별명으로 조롱당하기도 했죠

그런데 이 3대오물 중에서도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도미나가 교지는 무타구치 렌야조차 능가하는 무능함으로 유명했다고 하는데요

 

대체 어떤짓을 했길래 수십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일본인들에게 욕을 먹고있는것인지 지금부터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892년 일본의 나가사키현에서 태어난 도미나가는 꼴통 그 자체라 불리는 무타구치 렌야보다 무능한 인물이었다고 하죠

무타구치는 비록 무능하지만 그나마 뭐라도 하려는 행동력이라도 있었는데 이 사람은 무능한데다 행동력까지 없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군사적으로는 바닥을 뚫고 지하까지 내려간 수준으로 무능한 도미나가였지만 대신 그에게는 하늘이 내려준 정치질 능력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도미나가는 육군사관학교와 육군대학교를 다닐시절 형편없는 성적을 받았지만 졸업 후 당시 일본총리였던 도조 히데키 라인을 타게 됐고 이후 정계와 군부, 그리고 일본의 재벌들을 잇는 뇌물 셔틀 역할을 하면서 '도조의 돈주머니'라는 별명까지 가지게 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도조의 총애를 받게 된 그는 이후 참모본부의 참모와 관동군 보병사단 참모를 차례로 역임했고 요직인 육군성 인사국장을 거쳐 육군 차관까지 승진하게 됩니다

당시 도조 히데키가 육군대신과 육군참모총장을 겸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실질적인 업무를 차관인 도미나가가 대신 해줬다고 하네요

 

그런데 1941년 도조가 진주만 공습을 명령해서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후 전쟁 초기에는 일본군이 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며 승승장구했지만 미드웨이 해전 이후로 전세가 역전되면서 점점 더 일본군이 불리해져만 갔죠

이후 태평양 전쟁이 그야말로 개막장으로 치닫자 일본내에서 도조에 대한 비난 여론이 급격히 늘어났고 결국 도조가 실각하게 되면서 도미나가 또한 실직자가 됐습니다

 

이 때 일본군부에서는 도미나가를 어떻게 처리하냐가 문제로 떠올랐죠

비록 도조가 실각하기는 했지만 아직 일본내에서 무시못할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도미나가는 바로 그 도조의 총애를 받는 인물이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일본은 당시 가장 안전한 곳이라 생각되는 필리핀 항공 주둔군 사령관 자리에 도미나가를 임명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도미나가가 육군출신이었기 때문에 항공군을 지휘해본 경험이 전혀 없었던데다 공군의 기본적인 전략전술조차 하나도 몰랐다는 것인데요

자기가 무능하다는걸 알면 가만히라도 있었으면 차라리 민폐는 안끼쳤을텐데 도미나가는 항공기를 출격시킬 때마다 중2병이라도 걸린것처럼 활주로에서 칼을 휘두르며 '발진!'을 외쳤다고 하죠

 

전쟁이 끝난후 그의 참모였던 인물들이 회상하기를 "어차피 전투기를 조종하는 파일럿들에게는 보이지도 않았는데 쓸데없이 활주로 바로 옆에 나가서 칼을 휘둘러대서 전투기가 이륙하는데 심하게 방해만 됐다"라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삽질은 그가 일본군 입장에서는 귀중하기 짝이 없던 항공대의 전력을 카미카제로 다 말아먹은 것인데요

1944년 9월 본부로부터 카미카제 허가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도미나가는 줄기차게 자살특공을 지시했다고 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 결과 총 62차례의 특공을 시도하면서 400여기나 되는 전투기를 적군에게 갖다바쳤다고 합니다

심지어 전투기가 고장나서 돌아오거나 간신히 목숨을 구해 살아돌아온 대원에게도 충성심이 모자라다며 훈계질을 하고는 다시 전투기에 태워 특공을 보냈다고 하죠

 

인간의 존엄성따윈 개나 줘버린듯한 전술일뿐만 아니라 육성하는데 있어서도 엄청난 돈과 시간이 들어가는 귀한 항공기와 그보다 더 귀중한 조종사를 1회용 폭탄으로 삼은것인데 그마저도 10번 시도하면 1번을 성공할까말까한 전술적으로도 손해인 뻘짓을 한것입니다

 

더군다나 400여 대를 한꺼번에 투입해도 성공할까 말까인데 62차례로 나누어서 순서대로 투입시켰으니 적에게 피해를 입히는게 아니라 말그대로 제물을 갖다바친 꼴이었죠

이런 도미나가의 특공명령 덕분에 원래대로라면 서쪽으로 진군하는 미군에게 충분한 위협이 될수있었던 육군 제4항공군의 항공 전력은 순식간에 반토막이 나버렸습니다

 

만약 제4항공군이 전력을 보존한채 일본 본토나 필리핀을 탈환하는 방어전투에 나섰으면 미군은 훨씬 더 심각한 피해를 입을수 있었다는 점에서 보면 도미나가가 얼마나 멍청한 짓을 했는지 짐작할수 있죠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도미나가는 카미카제 특공을 앞둔 조종사들에게 술 한병을 들고 나타나서는 꼰대짓을 하는 능력밖에 없는 사령관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특공하는 항공대원들 앞에서 절대 제군들만 보내지는 않을 것이고 자신 역시 마지막 전투에서 특공혼을 불살라 제군들을 따라갈 것이라며 온갖 허세를 부렸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도미나가는 이후로도 전투기를 조종해본 일자체가 없었다고 하네요

그도 그럴것이 도미나가에게는 애초에 항공기 조종 자격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그가 전투기를 조종할수 있을 리가 없었던 것이죠

 

이후 일본군이 연합군에게 밀리기 시작하면서 필리핀 지역 사령관이 도미나가에게 후퇴를 명령했지만 도미나가는 "우리는 계속해서 특공을 보내고 있습니다 마닐라를 포기할 여유가 없으니 여기서 죽을각오를 하겠습니다" 라고 허세를 부리며 필리핀지역 사령관을 설득시켰죠

하지만 얼마 뒤 도미나가는 위궤양이 악화됐다는 핑계를 대며 타이완의 타이베이로 도망가버렸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와중에도 자신이 아끼는 기생들과 위스키들은 잊지않고 꼼꼼히 챙겨갔죠

이후 도미나가는 목숨이 아까워 도망쳐온 주제에 대낮부터 군용차에 기생을 태우고 다녔으며 위궤양을 치료한다는 핑계로 타이베이에 있는 베이터우 온천에 가는 등 남다른 뻔뻔함을 보여줬는데요

그러면서도 처벌받는것은 두려웠는지 1945년 2월에 위궤양 진단서를 떼서 자신의 직속상관인 야마시타 도모유키를 찾아가 자신이 부하들을 버리고 도망간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도미나가가 하는 짓을 보고 극도로 분노한 야마시타는 "부하들을 버리고 도망간놈 따위와는 만나고 싶지도 않다" 라며 그를 만나주지도 않고 쫓아내버렸죠

하지만 운좋게도 당시 필리핀의 대부분 지역이 미군에게 넘어가며 일개 중장 1명에게 처벌을 내릴만큼 여유가 없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도미나가는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고 오히려 그 틈을 타서 잽싸게 전역을 해버렸습니다

 

하지만 일본육군 본부는 적이 무서워 도망간 놈을 본토에서 예비역으로 편하게 살게 놔둘수는 없다며 도미나가를 1945년 7월에 다시 재입대시켜버렸는데요

그렇게 그는 만주에 주둔하고 있던 관동군 139사단장에 임명됐는데 얼마 뒤 소련군이 만주를 향해 밀고 내려오자 싸움 한 번 해보지도 않고 소련에 항복을 해버렸죠

 

이후 포로가 된 그는 전범 재판을 받고 소련에서 10년 가까이 수용소 생활을 하게됩니다

그 뒤 소련과 일본간 국교 정상화가 되면서 포로송환을 통해 1955년에 일본으로 돌아왔죠

그리고 1960년 노환과 포로수용소 생활의 후유증이 겹치면서 6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는 일본에서 무타구치 렌야, 스기야마 하지메와 묶여 삼대오물이라 불리며 태평양 전쟁을 패전으로 이끈 주범 취급을 받고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중에서도 도미나가는 카미카제로 멀쩡한 항공 전력을 말아먹은 데다가 군 사령관의 신분으로 적을 눈앞에 두고 부하들을 내버려둔채 도망치면서 남방전선의 항공군을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인물은 정치질외에는 할줄 아는게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고 하는데요

삼대오물중 나머지 두사람은 그래도 어느정도 업무를 처리할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이라도 있었지만 도미나가는 말그대로 아무것도 못했다고 하죠

 

무타구치 렌야는 임팔전투를 치를때 기생집을 차리고 노는 와중에도 정해진 업무 시간에는 그럭저럭 일을 했다고 하는데 도미나가는 정말로 일이라고는 아예 안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의외인것은 군사적으로는 무능함의 극치를 보여준 도미나가였지만 인간적으로는 다른 일본군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은 면을 보여준 일화가 많다는 것인데요

 

그가 참모본부에서 일하던 시절 일본군이 중국 저장성의 닝보라는 지역에서 생화학무기를 사용하려 하자 도미나가가 "야 이 미친X들아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거기 사는 민간인들은 사람이 아니냐!"라고 호통친 덕분에 화학무기 사용계획이 중지된 일이 있었으며 제 4항공군 사령관 시절에도 모든 일본군이 민간인들을 상대로 약탈과 방화를 저지를때 그의 부대만은 약탈이나 방화, 학살을 저지르는 일이 없었고 오히려 피난민들과 원주민들의 생활을 지원하면서 대민지원을 했다고 하죠

 

더불어 마닐라 대학살 때도 만약 우리가 점령한 지역에서 너희들이 민간인을 학살한다면 아군이라 해도 거리낌없이 공격할것이라며 학살을 막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화들을 보면 한나라의 장군으로 봤을때는 최악이지만 인간이하의 만행을 벌이고 다녔던 일본군들 중에서는 그나마 인간적으로 나은 면을 보여준것이 아닌가 싶네요

지금까지 도미나가 교지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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