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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마르고트 뵐크. 강제로 히틀러의 기미상궁이 되어버린 불행한 여자

by 사탐과탐 2022.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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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가 먹는 음식에 혹시 독이 들어가 있을까 먹어봤던 일종에 조선시대의 기미상궁이 강제로 되어버린 여자 마르고트 뵐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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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왕족을 비롯한 고위 귀족들은 음식을 먹을 때마다 독살의 위협에 시달려야만 했죠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왕이 먹는 수라상 음식에 독이 있는지 미리 검사해 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기미상궁이라 불렀습니다

 

중국에서는 기미 대신에 상선이라고 해서 왕 곁에서 시중을 드는 시선태감이 직접 음식을 맛보거나 은으로 만든 젓가락 등을 음식에 대어 독을 검출했다고 하죠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같은 독재자들도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을 두었다고 하는데요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치 독재자인 히틀러의 독살을 막기 위해 강제로 기미상궁역할을 해야만 했던 여인 마르고트 뵐크입니다

 

"매번 밥을 먹을 때마다 이게 내 삶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식사를 마칠 때마다 마치 짐승처럼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내가 이번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기쁨 때문이었죠"

나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의 독살을 막기 위해 강제로 동원된 기미 상궁 중 한 명이었던 마르고트 뵐크가 당시의 생활에 대해 남긴 소감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히틀러의 검식관 일을 했던 15명의 여성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인 뵐크는 2014년 9월 16일 밤 독일 RBB의 TV방송에 출연해 70년간 그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했던 당시의 끔찍했던 경험담을 털어놓았는데요

나치당원도 아니었던 뵐크가 검식관이 된 것은 그녀가 독일군 동부전선 사령부 근처의 작은 도시 파르치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죠

 

열렬한 나치의 지지자였던 그곳의 시장이 자기 마음대로 뵐크를 포함한 15명의 젊은 마을 여성들을 히틀러의 검식관으로 정해버렸고 매일 아침 히틀러의 친위대가 그녀들을 버스에 태운 채 사령부로 데려가 히틀러가 먹을 음식을 미리 먹어보게 했던 것이었습니다

1917년 독일인 철도노동자의 딸로 태어난 뵐크는 별다른 사건 없이 평범한 청소년기를 보냈는데 나치가 집권하기 전까지만 해도 주변에는 유대인 친구들도 많이 있었다고 하죠

 

1941년 그녀가 살던 베를린의 아파트가 폭격을 당하고 남편 칼마저 병사로 징집당하게 되자 갈 곳이 없어진 그녀는 어머니의 고향인 파르치로 가게 되었고 그것이 그녀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게 됩니다

 

뵐크는 자신이 검식관 일을 할 당시 히틀러의 식단에 대해 얘기하기를

“모두 채식이었다 그는 고기를 먹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쌀과 국수, 후추, 완두콩, 양배추 등이 주어졌다

우리는 음식을 모두 먹은 다음 1시간 정도를 기다렸고 그때마다 몸에 무슨 이상이 생길지 몰라 불안했다"라고 말했죠

 

당시 사령부의 경비가 워낙 삼엄했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동안 한 번도 히틀러를 직접 본 적은 없었다고 하죠

그녀는 검식관 일을 하면서 히틀러의 친위대인 SS대원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끔찍한 경험을 한 적도 있었으며 1944년 7월 20일에는 몇몇 독일군 장교들이 사령부에 폭탄을 터뜨려 히틀러의 암살을 시도한 것도 목격했다고 말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당시 동료 검식관 여성들과 벤치에 앉아있었던 뵐크는 갑자기 엄청난 폭발음을 듣고 깜짝 놀라 일어났으며 소란스러운 와중에 히틀러가 죽었다고 외치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실제로 히틀러의 암살 시도는 실패로 끝났으며 이 사건으로 약 5천 명의 독일인이 나치에 손에 처형됐다고 합니다

 

소련군이 진격해오던 1944년 말 25살의 뵐크는 어느 친절한 SS대원의 도움을 받아 탈출에 성공했고 나치의 선전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가 사용하던 열차에 겨우 올라타 폐허가 된 베를린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고 하죠

안타깝게도 그녀 외에 다른 검식관 동료들은 모두 소련군에 체포돼 총살당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치로부터 탈출했음에도 그녀의 불행은 끝나지 않았죠

 

1945년 5월 베를린이 소련군의 손에 넘어가면서 그곳에 남아있던 뵐크에게도 시련이 계속됐습니다

뵐크의 증언에 따르면 그곳에 남아있던 여자들은 몰려오는 소련군을 보고 어떻게든 자신의 나이가 많아 보이도록 옷을 입으며 불행을 피하려 했지만 소련군의 성폭행을 피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죠

 

그녀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들은 우리가 입고 있던 옷을 찢어버리고 어느 아파트로 끌고 가서 그곳에 우리를 가둔 채 14일간 성폭행했다. 정말 지옥 같은 순간이었으며 그 악몽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말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뵐크는 그때의 충격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됐다고 합니다

그녀가 말하길 자신은 늘 딸을 갖기를 바랐으며 나중에 50살 무렵이 되었을 때 딸이 있다면 25살 정도겠지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슬프게도 자신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네요

 

이후 큰 충격을 받은 뵐크를 노먼이라는 이름의 한 영국군 장교가 회복할 수 있게 옆에서 돌봐주었다고 합니다

뵐크를 돌봐주는 과정에서 그녀에게 호감을 느낀 노먼은 전쟁이 끝난 뒤 베를린으로 돌아와 자신과 삶을 함께 하자는 편지를 뵐크에게 보냈지만 그녀에게는 이미 남편 칼이 있었기 때문에 노먼의 제안을 거절했죠

 

그리고 1946년 소련군에 포로가 됐던 칼이 예전에 그녀와 함께 살던 아파트에 나타났습니다

칼은 몸무게가 45kg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말랐고 머리에는 붕대가 감겨있어 처음에는 그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고 하죠

 

그렇게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어떻게든 정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뵐크는 끝내 예전의 악몽을 떨쳐버리지 못했고 결국 둘은 헤어진 채로 각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 후 칼은 1990년에 세상을 떠났고 뵐크는 치욕스러운 과거의 기억을 안은 채 홀로 살아가고 있다고 하네요

지금까지 히틀러의 기미상궁 마르고트 뵐크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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