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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사마의. 삼국지 최후의 승자 사마의의 신중하고 끝까지 참으면서 인내한 삶

by 사탐과탐 2024.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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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삼국지 최후의 승자 사마의의 참고 인내한 삶을 살았던
사마의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삼국지에는 수많은 영웅들이 등장했지만

결국 최후의 승자는 이 인물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사마의 인데요

 

사마의는 소설 삼국지 연의에서는

제갈량의 목각인형만 나타나도 도망가는 겁쟁이에

제갈량이 성문을 열어놓고 거문고만 튕기고 있어도

쫄아서 전군을 후퇴시키는 그런 인물로 묘사되었죠

 

하지만 사마의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할수도 있는데요

 

왜냐하면 라이벌 제갈량과의 싸움에서

승자는 바로 사마의 였기 때문이죠

 

오늘은 영웅들끼리 치고박고 하는 상황에서

끝까지 인내하고 기다렸다가

마침내 삼국지 최후의 승리자가 된 사마의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사마의는 굉장히 금수저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죠

 

아버지 사마방은 청렴결백하고 현명한 인품을 가졌으며

주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사마의는

어릴적부터 굉장히 총명했고 식견이 넓었다고 하죠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은 그를 훌륭한 인재가 될것이라고 칭찬했으며

사마의는 어릴적부터 한나라에 어두운 망국의 그림자가 드리워진것을

걱정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201년 어느날, 수많은 군웅들 중 한명인 조조에게서 서신이 왔는데

사마의에게 관직을 내린다는 내용이었죠

 

사마의의 총명함을 알아본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조조 휘하에 있던 순욱과 최염 이었습니다

 

순욱과 최염은 적극적으로 조조에게 사마의를 등용해야 한다며 추천했고

그래서 사마의에게 관직을 내렸던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사마의는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조조가 내린 관직을 거절했는데요

 

그때까지만 해도 조조의 세력은 수많은 군웅 중 한명일 뿐이었기에

자칫 군주를 잘못 섬겼다가는 사마의의 가문이 풍비박산이 날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마의는 일단 정세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보기 위해

아프다는 핑계로 조조의 밑에 들어가는것을 미뤘던 것이죠

 

그만큼 사마의는 주군을 고르는것에도 굉장히 신중을 기했던 것입니다

 

사마의의 주특기가 바로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오직 참고 인내하는것이었죠

 

한편 조조도 쉬운인물은 아니었는데요

 

사마의가 진짜 아픈지 알아보기 위해 사람을 보내 그의 감시를 시켰던 것이죠

 

그러자 사마의는 철저하게 환자 행세를 하며

감시하던 사람들을 속였는데

그러던 어느날 하마터면 들킨뻔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평소에 책 읽는걸 좋아한 사마의는

따뜻한 햇볕에 서책을 말리며 책을 읽고 있었죠

 

그런데 갑자기 엄청난 소나기가 쏟아진것입니다

 

깜짝 놀란 사마의는 널어놓은 책들이 비에 맞을까봐

급한 마음에 벌떡 일어나 마당으로 뛰어나가 책을 걷었고

이 모습을 한 시녀가 보고 만것이죠

 

그때 사마의의 아내이던 장춘화는 그 모습을 보고

혹시나 시녀가 소문을 내면 남편과 가문에 화가 닥칠까 우려해

그 시녀를 죽여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조조의 의심을 뿌리칠수 있었죠

 

사마의가 환자행세를 한지 7년의 세월이 지난 어느날

한나라 조정에서 승상의 자리까지 꿰찬 조조는

당시 제일 강한 세력을 형성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천하통일을 향한 야망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죠

 

그럴려면 강한 군대도 필요하지만

그에 맞는 훌륭한 인재들도 필요했기 때문에

조조는 다시 사마의에게 관직을 주면서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때 조조는 이번에도 사마의가 오지 않는다면

붙잡아 감옥에 가두라는 명령을 내렸죠

 

그러자 이를 두려워한 사마의는 벌떡 일어나 조조의 부름에 응했고

그렇게 문학연이라는 관직에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사마의는 조조의 부름을 받고 조조를 찾아가게 되는데요

 

바로 사마의가 낭고상 이라는 소문을 들은 조조가

그를 직접 보기위해 불렀던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낭고상은 이리나 늑대가 몸통을 움직이지 않고

머리를 180도 돌려 뒤를 바라보는 모습을 말하는것이었는데

이는 관상에서 겉과 속이 다른 반역의 상으로 일컬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조조는 사마의와 어느정도 대화를 나눈후에

고개를 돌려보게 했는데 소문대로 몸을 움직이지 않고

얼굴만 뒤를 향해 돌아보는것이었죠

 

그 이후 조조는 사마의를 의심하고 경계하기 시작했으며

아들 조비에게 "사마의는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될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항상 경계하라고 충고하기까지 했습니다

 

조조가 자신을 경계하고 있다는걸 눈치챈 사마의는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몰라

더욱 허리를 굽히고 항상 긴장하며 살게 되는데요

 

조조의 말에는 절대 토 달지 않고 무조건 OK 였으며

심지어 어릴적부터 뛰어난 인재라고 촉망받았고

소문이 자자했던 명문가 출신의 사마의지만

가축의 똥도 치우고 관리하는 하찮은 일까지 하면서

조조의 경계를 풀기위해 노력했죠

 

이후 조조는 더욱 승승장구 하면서 대륙의 가장 강한 세력으로 성장했고

마침내 216년 위왕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러자 사마의는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요

 

조조가 한중을 먹었을때 사마의는 유엽과 함께

이 기세를 몰아 유비가 점령한지 얼마 안되어 안정이 필요한 익주지역을

공격할것을 건의했던 것이죠

 

만약 이 기회를 놓친다면 유비의 세력은 더욱 커질것이고

이후에는 유비를 치기가 더욱 힘들어 질것이라며 설득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이미 60살이 넘어 많이 약해진 조조는

"이미 한중까지 얻었는데 익주를 치는건 과욕이다" 라며

사마의의 건의를 거절했던 것이죠

 

이에 사마의는 속으로 "이제 조조도 많이 늙었구나.." 라고 탄식하며

군말없이 조조의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사마의는 신중하고 인내력이 강했던 만큼

굳이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내세우면서

조조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을려고 했던 것이죠

 

사실 역사속 수많은 인물들은 군주의 심기를 거스르는 말이나

과욕을 부리는 행동을 하다가 목숨은 잃은 일이 많은 만큼

참고 인내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었습니다

 

그것을 사마의는 굉장히 잘하고 있었던 것이죠

한마디로 눈치가 굉장히 빠르고 남 눈치보는걸 잘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 조조가 익주를 공격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는 미지수 이지만

훗날 익주가 안정을 되찾고 군을 재정비한 유비는

조조가 차지한 한중을 빼앗으면서

위나라에 엄청난 위기를 가져다 주기도 했죠

 

이걸보면 사마의가 조조에게 올린 의견이 맞았을 수도 있을것 같네요

 

한편 한중을 유비에게 빼앗긴 위나라에는

또다시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한중이 유비의 손에 떨어지자

조조 아래에 있던 수많은 지방 제후들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 반란을 제압하느라 조조는 눈코 뜰 새 없었던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게다가 엎친데 덮친격으로 형주에 있던 관우가

군대를 이끌고 북진 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 벌어진 전투에서

맹장이던 방덕도 관우의 손에 죽임당하고 우금까지 붙잡혔으며

조인이 지키고 있던 번성과 양양까지 포위되고 말았죠

 

이러다 만약 번성까지 관우의 손에 들어간다면

가까운 거리에 있던 위나라 수도 허창까지 침략당할 위기에 직면한 것입니다

 

그러자 조조는 엄청난 위협을 느끼고

수도를 하북 지역으로 옮겨야 하나 고민을 하기 시작했죠

 

이때 수많은 신하들은 꿀먹은 벙어리 마냥 조용히 있었는데

사마의가 나서서 말했습니다

 

"천도한다면 적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니 백성들이 크게 불안해 할것입니다

손권과 유비는 겉으론 친밀하나 안으로는 소원하니

손권에게 관우의 후방을 기습하도록 권하면 번성의 포위는 자연히 풀릴 것입니다"

라고 건의했고 그 말을 들은 조조는 사마의의 의견을 받아들였죠

 

형주는 적벽대전 이후 유비가 차지한 땅이었는데

훗날 익주를 손에 얻으면 손권에게 돌려주기로 약속한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비는 돌려주지 않았고

손권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유비를 향해 이를 갈고 있었던 것이죠

 

또한 손권은 관우에게 사신을 보내

손권의 아들과 관우의 딸을 결혼시키자고 말한적이 있는데

관우는 어떻게 호랑이의 자식을 개의 자식과 혼인 시키냐며

매우 무례한 태도로 거절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손권은 유비 뿐만아니라 관우도 굉장히 미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손권의 상황이 그렇다는걸 이미 다 파악하고 있었던 사마의는

그 점을 이용하자는 것이었고

나중에 형주를 차지하면 함께 형주땅을 나눠갖자고 손권에게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손권은 조조의 사신의 말을 듣자마자 여몽을 대장으로 한뒤

즉시 군대를 동원해 형주를 치고 들어갔고

결국 관우는 오나라군에 패해 참수되고 말았죠

 

사마의의 계책 덕분에 위나라는 싸우지도 않고 위기에서 벗어났고

관우까지 죽이는데 성공했으며

촉나라의 눈을 오나라로 돌리는데도 성공했습니다

 

관우의 죽음에 분노한 유비는 대대적으로 군사를 일으켜

관우의 복수를 명분으로 오나라를 침공 하는데요 (이릉전투)

 

하지만 결국 대패하고 말았고 유비와 촉나라의 기세는 꺾여버리고 말았죠

 

사마의의 계책은 결국 유비까지 흔들어

촉나라 국력을 소진 시키는데도 엄청난 효과를 거두었던 것입니다

 

그 덕분에 사마의는 태자중서사와 군사마 직책에 까지 오를수 있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220년 마침내 천하를 호령하던 조조도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이후 조비가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요

 

과거부터 조비를 보좌하고 스승의 역할을 했었던 사마의는

더욱 높은 벼슬을 얻게 되고 승승장구하게 되죠

 

그리고 조비는 헌제에게 양위를 받아 위나라의 황제로 즉위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조비는 사마의에게 "짐이 동쪽에 있을 때는 그대가 서쪽을 맡고

짐이 서쪽에 있을 때는 그대가 동쪽을 맡으시오" 라고 말했을 정도로

사마의에게 두터운 신뢰를 보여주기도 했죠

 

하지만 얼마안가 조비는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요

 

죽기직전 사마의, 조진, 진군을 불러 황태자였던 조예에게

"이 세명의 신하와 틈이 생기더라도 결코 의심하지 말라" 라는

유언을 남기기 까지 했죠

 

그리고 이후 조예가 위나라 2대 황제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사마의는 조조, 조비, 조예 삼대를 모셨던 만큼

이후 표기 대장군 자리에 까지 오르게 되는데요

 

위나라에서 많은 일이 있었던것 만큼 촉나라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죠

 

바로 유비가 세상을 떠나고 아들 유선이 즉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제갈량은 열심히 준비한 끝에

227년 출사표를 올리고 위나라 정벌을 나서게 되죠

 

그리고 기세좋게 위나라 성들을 하나하나 점령해 나가자

위기를 느낀 위나라에서는 제갈량을 막을수 있는사람은 사마의 뿐이다라며

사마의를 불러들이게 됩니다

 

이때 바로 맹달이라는 인물이 나타나는데

맹달은 원래 촉나라 장수였지만

관우가 위기에 빠져 원군을 요청했을때 쌩까버렸고

관우가 죽고 난 이후 유비가 자신에게 책임을 물을까 두려워

위나라에 항복했던 그런 인물이었죠

 

그러자 조비는 그를 굉장히 환대 해주었던 반면

사마의 만큼은 그를 믿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맹달은 자신을 환대해주던 조비가 죽고나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때 제갈량의 사신이 그를 찾아와

반란을 일으켜 함께 위나라를 공격하자고 설득한 것이죠

 

하지만 항상 맹달을 주시하고 있었던 사마의는

맹달이 반란을 일으킬려는 조짐을 알아챌수 있었는데요

 

사마의는 얼른 서신을 보내 맹달을 안심시키는 한편

그는 주둔지였던 완에서 병력을 급하게 움직여

맹달이 있던 상용까지 고작 8일만에 도착하였고

맹달이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 성을 함락시켜 맹달을 참수해버렸던 것입니다

 

그렇게 맹달을 이용하려던 제갈량의 계책은

사마의의 재빠른 판단력과 움직임으로 인해 실패하고 말았죠

 

또한 제갈량의 말을 듣지 않은 마속이 가정을 지키다가

사마의가 보낸 장합군에 의해 패배하고 말았으며

그렇게 제갈량의 1차 북벌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때 그 유명한 장면이 등장하는데요

 

바로 퇴각하는 촉나라 군을 추격하던 사마의는

성문을 활짝 열어놓고 성 위에서 혼자 거문고를 치는 제갈량을 보고

무슨 계책을 숨겨 놓았을지 모른다며 전군을 퇴각 시켰던 사건이죠

 

굉장히 신중한 성격의 사마의는 충분히 그랬을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 일은 연의에서 창작된 내용입니다

 

이후 제갈량의 북벌은 1차 북벌 이후

7년동안 총 5차례에 걸쳐 행해지는데요

 

촉군의 약점이 군량에 있다는것을 간파한 사마의는

제갈량이 쳐들어 올때마다 그냥 온전히 방어만 하면서

계속해서 촉나라군을 물리칠수 있었죠

 

사실 삼국지를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시원시원하게 싸우지 않는 사마의가 답답하게 느껴질수도 있는데

자칫잘못하면 나라가 망하고 나와 내 가족들이 몰살당할수도 있는 상황에

가장 좋고 무조건 이길수 있는 방법을 쓰는 사마의가

사실 가장 현명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4차 북벌에서 퇴각하는 촉군을

장합에게 무리하게 추격하라 시켰다가

결국 장합은 수많은 화살을 맞고 죽고 마는 패착을 하기도 했죠

 

결국 제갈량의 북벌은 계속 실패했고

제갈량은 오장원이라는 곳에 진영을 꾸리는데요

 

끝까지 수비만 하는 사마의에게

제갈량은 여자옷과 여자들의 장신구를 보내며

겁쟁이라고 그를 도발하기도 했죠

 

그러자 사마의는 웃으며 제갈량이 보낸 사신에게

제갈량은 잘 지내냐고 물었는데

사신은 제갈량이 잠도 잘 안자고 잘 쉬지도 않으며

잘 먹지도 않은채 자신을 혹사하면서 일만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이때 제갈량의 죽음이 임박해 있음을 깨달은 사마의는

끝내 나가서 싸우지 않았고

마침내 제갈량은 오장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사마의는 제갈량에게 승리를 거두게 되었죠

 

삼국지 연의에서는 이때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제갈량의 죽음을 알게 된 사마의는

퇴각하는 촉군을 추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추격하던 도중 언덕위에 나타난 제갈량의 목각인형을 보고 살아있는줄 착각해

놀라서 도망쳤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쨌든 제갈량이 죽고나서 촉군이 퇴각하자

제갈량이 만들어 놓은 촉군의 진영을 살펴본 사마의는

제갈량을 두고 '천하의 귀재'라고 평가하기도 했다고 하죠

 

위나라의 가장 주적이던 촉나라와 제갈량을 이기고 돌아온 사마의는

이후 승승장구 하게 되는데요

 

조예가 죽고나서 그의 아들인 조방이 8살의 나이로 황제로 즉위했는데

이때 조예는 조상과 사마의를 불러 아들 조방을 잘 부탁한다고 유언을 남겼죠

 

그런데 조상은 이후 사마의를 심하게 견제하기 시작했고

위기감을 느낀 사마의는 지금은 싸울때가 아니라 판단해

또 아픈척하고 관직에서 물러났던 것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후 조상은 사마의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사람을 보냈는데

사마의가 정신도 오락가락 하고 음식도 잘 먹지 못해 질질 흘린다는 보고를 받고

경계를 풀게 되었죠

 

그리고 조상이 고평릉에 참배를 하러 간사이

사마의는 벌떡 일어나 반란을 일으켜

조상을 죽이고 위나라의 권력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후 모든 권력을 아들들에게 넘겨주고

251년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죠

 

그리고 아들 사마소는 진나라의 왕위에 오르게 되고

그의 아들 사마염이 이후 오나라를 점령하면서

서진이 천하통일을 이룩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유비, 조조, 손권 등 수많은 영웅들이 서로 패권을 다투던 삼국시대는

사마의가 기초를 마련해 아들 사마소와 손자 사마염이 통일을 했고

그렇게 사마의는 삼국지 최후의 승자가 된것이죠

 

여담으로 일찍이 조조는 세마리의 말(馬)이 한 구유(槽)통에서 먹이를 먹는 꿈을 꾸었는데

조조는 세마리 말을 마등, 마초, 마대 삼부자로 여기고 있었다고 합니다

(구유 : 마소의 먹이를 담아 주는 나무 그릇. 목조(木槽)

(조(槽) = 조조의 조(曹)로 해석)

 

이후 조조가 죽기 직전 또다시 같은 꿈을 꾸자 가후를 불러 해몽을 부탁했는데

가후는 이를 길몽으로 해석했지만

꿈에 나온 세마리의 말은 알고보니 사마의, 사마소, 사마사 삼부자를 뜻하는 것이었죠

 

강한자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는자가 강한것이다

라는 말을 사마의가 몸소 실천했던 것인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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