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대군은 권력을 가지려 형을 독살하고 조카를 내쫓고 왕이 되었죠.
최고의 황금기였던 조선을 순식간에 개판 쳐놓은 왕 세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종대왕의 아들이자 단종의 아버지인 문종이 일찍 사망한 것은 원래 몸이 허약한데다, 과로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문종은 한 사람의 지시를 받은 어의 전순의에 의해 교묘하게 독살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는데요.
조선왕조실록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면 그 인물이 문종의 사망에 관여한 정황을 볼 수 있죠.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왕이 되기 위해 자신의 형을 독살했으며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된 후로는 여러 면에서 조선을 말아먹었던 왕 세조입니다.
조선의 5대 왕인 문종은 평소에도 몸이 약했는데 어머니와 아버지의 3년 상까지 연달아 치르면서 극도로 쇠약해져 즉위 2년 만에 죽음을 맞이했다, 많은 사람들이 문종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알고 있으실 텐데요.
하지만 실제로 문종이 죽은 이유는 고질병처럼 달고 있던 종기가 악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죠.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을 잘 살펴보면 수양대군(세조)이 문종의 종기를 악화시켜 사망하도록 관여했다는 정황이 여러 면에서 나타납니다.
수양대군이 꾸민 계략을 직접 실행했던 사람은 당시 어의였던 전순의와 왕의 비서실장인 도승지 강맹경인데요.
전순의는 천민 신분에서 어의 자리에까지 올랐을 만큼 실력이 뛰어난 어의였습니다.
그런 전순의가 수양대군의 지시로 문종 살해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는 까닭은 문종의 종기를 치료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행동을 했기 때문인데요.
조선왕조실록에 적힌 전순의의 죄목은 크게 3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종기가 도진 문종이 무리하게 활동하도록 내버려 둔 것인데요.
원래 종기가 있는 환자는 움직이는 것을 최대한 금지해야 하는데 전순의는 문종의 종기를 살피고는 '해롭지 않다'라고 말하며 문종이 사신을 접대하게 하고 관사(활 쏘는 것을 구경하고 상을 주는 것)하게 하는 등 몸을 움직이는 것을 보고도 전혀 말리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 고름이 생기지 않은 종기를 고의로 건드려 증상을 악화시켰다는 점인데요.
종기에 고름이 생겼을 때는 침을 써서 고름을 빼지만 초기에 건드리면 도리어 증상이 악화되고 염증이 심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전순의는 이런 기초 지식을 모두 무시하면서까지 문종에게 비상식적인 처방을 한 것이죠.
세 번째는 전순의가 문종에게 독성이 있는 꿩고기를 계속 먹게 했다는 점입니다.
꿩은 독성이 강한 반하라는 풀을 자주 먹는데 문종처럼 종기가 있는 경우 반하를 먹은 꿩고기가 치명적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민간에서 겨울철에만 꿩고기를 먹으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름에 야생에서 반하가 잘 자라므로 꿩고기에 독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내용을 잘 알고 있을 전순의가 이를 무시하고 문종에게 계속 꿩고기를 섭취하게 했다는 것은 고의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처방이라는 것이죠.
이 모든 일의 배후에 수양대군이 있다고 의심받은 이유는 바로 조선왕조실록에 남아있는 기록 때문인데요.
당시 왕의 비서실장이었던 도승지 강맹경은 왕의 치료에 관한 모든 일을 수양대군의 명을 받아 의정부에 고한 후 시행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문종을 치료하는 모든 과정을 수양대군이 주도했다는 이야기죠.
결국 지병이 악화된 문종은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아들인 단종이 뒤를 이어 12살의 어린 나이로 조선의 왕이 됩니다.
원래 어의는 왕이 사망할 경우 큰 벌을 받는게 일반적이었으나 의관 전순의는 작은 형벌에 그쳤다가 다시 복귀하게 되죠.
게다가 수양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된 이후에는 전순의가 일개 의관 신분으로 1등 공신으로까지 책봉을 받는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혹을 주고 있으며 문종의 죽음에 많은 관여를 했던 도승지 강맹경이 2등 공신에 봉해졌다는 사실도 사람들의 의심을 더욱 키웠죠.
자신의 형이 죽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두 사람을 나란히 공신에 임명하는 것은 너무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였기 때문인데요.
이러한 기록 때문에 근래 들어서 세조 또는 그의 책사인 한명회가 어의 전순의와 도승지 강맹경을 협박하거나 자기편으로 만들어서 문종을 독살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이죠.
세조는 왕위를 찬탈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학살을 저질렀습니다.
조카인 단종을 비롯해 자신의 친형제들인 안평대군과 금성대군마저 살해했으며 이를 말리던 자신의 숙모 성녕대군 부인은 폐서인 시켜버렸는데요.
또한 김종서를 비롯한 수많은 능력있는 대신들을 오직 권력을 잡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죽여댔습니다.
심지어 자신에게 악몽을 꾸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이미 세상을 떠난 형수 현덕왕후의 묘를 파헤쳐 버리기까지 하죠.
이러한 학살의 업보였을까요?
세조의 자손들은 모두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남인 의경세자는 세조가 즉위한지 3년 만에 요절했고 차남 예종은 즉위 13개월 만에 죽었는데 둘 다 20세를 넘기지도 못한 나이였다고 하네요.
증손자인 연산군은 폐위당하면서 30세에 비참한 죽음을 맞았고 고손자인 인종 또한 30세에 요절하게 되죠.
결국 고대하던 왕의 자리에는 오르게 됐지만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쿠데타를 일으켜 즉위했기 때문에 세조에게는 정통성이 너무나도 부족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지나치게 공신들에게 의존하는 정치를 펼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세조대의 조선은 공신들의 무법천지가 돼버렸죠.
남의 재산을 빼앗고 온갖 횡포를 일삼아도 처벌받는 공신은 없었고 오히려 자신들을 조금이라도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이 보이면 가차 없이 죽여 버렸습니다.
게다가 세조는 건전한 관리들을 양성하는 인재 집합소인 집현전을 폐지해버리며 자신이 멋대로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는데요.
특히 세종 대에 육성된 인재들을 세조가 대거 처형하면서 당대 조선의 능력 있는 인재들이 대부분 사라졌죠.
나중에는 인재가 너무 없다 보니 그나마 남아있는 능력 있는 공신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처벌할 수가 없게 되어버립니다.
시간이 지난 뒤에는 세조도 힘이 너무 커져버린 공신들이 걱정되었는지 남이와 구성군 같은 새로운 인재들을 이용해 한명회와 신숙주, 권람 같은 기존의 공신들을 견제하려고 했지만 얼마 후 세조가 병으로 사망하면서 결과적으로는 그들을 정리하는데 실패하게 되는데요.
공신들은 훈구파라 불리는 기득권 세력까지 만들게 되고 이들은 명종대까지 무려 100년 동안 온갖 비리를 저지르며 백성들을 괴롭힙니다.
세조의 실책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당시 조선의 화약병기는 문종 때까지 세계적인 수준에 오르며 화포와 화차 같은 신식무기까지 쓸 정도였는데요.
하지만 세조는 화기의 개발에 매우 소극적이었는데 바로 반대 세력이 화기를 반란에 이용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죠.
따라서 기존의 화약무기들을 그대로 유지만 하는 수준에 머물면서 오랜 기간 발전을 하지 못했는데요.
특히 세조는 화약무기를 사용하는 총통위라는 부대마저 해산시키고 대부분의 병사들을 활을 쏘는 궁병 위주로 바꿔버리면서 병사들이 창검술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되어버립니다.
조선군의 화력뿐만 아니라 백병전 능력까지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것이죠.
이러한 이유로 임진왜란이 일어날 때쯤에는 아예 조선군의 근접 전투 기술 자체가 거의 실종되면서 왜군들과의 근접전에서 참패하게 되는 비극을 낳게 됩니다.
게다가 세조는 지금의 부사관에 해당하는 갑사라는 군 계급을 없애버렸는데요.
말단 부대를 통제하고 지휘할 부사관이 없으니 전투가 벌어졌을 때 장군이나 장교가 전사하게 되면 부대가 순식간에 엉망이 되어버렸죠.
그리고 당시 조선의 백성들에게 부여된 국방의 의무는 실질적으로 전투를 하던 '정군'과 경제적으로 정군을 보조하는 '보인'으로 나눠져 있었는데요.
기존에는 정군 1명당 보인이 3명씩 편성이 돼있었는데 세조가 이를 정군 1명당 보인 2명으로 줄여버립니다.
3명이서 나눠내던 세금을 2명이 내게 되자 경제적 부담은 훨씬 커졌고 이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군역을 포기하고 도망가는 보인들이 늘어났죠.
경제적인 지원이 사라지자 정군들 또한 제대로 기능을 수행할 수 없게 되어버렸고 임진왜란이 시작된 시기에는 조선에 제대로 된 군인층이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고 하네요.
사실상 세조 하나 때문에 후대의 왕이나 신하들 그리고 수많은 백성들까지 오래도록 고통받게 된 것이죠.
자신의 욕심 때문에 세종 못지않은 성군이 될 수 있었던 형을 독살해버리면서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맞을 수 있었던 조선을 박살 내버린 왕 세조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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