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침략에도 버텨낸 송나라가 몽골의 공격에 끝내 무너지고
황제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처참한 최후
요나라의 침공을 받아 결국 '전연의 맹'을 맺고
매년 요나라에 막대한 돈을 바쳐야 하는 신세가 되었죠
이후 요나라가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금나라에 의해
송나라는 황제였던 흠종과 휘종이 포로가 되고
황후와 공주들이 처참한 일을 겪게 되는 '정강의 변'이 일어납니다
이때 휘종의 9남이던 조구는 송나라의 수도 개봉에 있지 않았던 덕분에
황족 모두가 포로로 잡혀갈때 그는 장강 남쪽으로 도망칠수 있었고
이후 남쪽으로 도망쳐 왔던 신하들의 추대를 받아
송나라의 10대 황제 송고종으로 즉위하게 되었죠
지금은 정강의 변을 기점으로 이전을 북송, 이후를 남송이라 부르지만
같은 왕조이긴 하기 때문에 송고종은 10대 황제가 되는것입니다
이때가 바로 악비, 한세충 등이 활약하고
희대의 간신 진회도 등장한 시기이죠
어쨌든 그 이후로 금나라를 잘 막아낸 남송은
쭉 이어져 내려오는데요
결국엔 그 다음 등장한 원나라에 의해 멸망하게 되죠
오늘은 요나라, 금나라의 침략에도 끈질기게 잘 버티던 송나라가
결국 원나라의 공격으로 멸망하게 된 최후의 전투
애산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전세계를 호령하던 세계 최강의 원나라 기병은
세계를 휩쓴 뒤에 남송을 향해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죠
그런데 세계 최강의 군대는 남송에 의해 가로막혀 버리는데요
그 이후 1235년부터 1279년까지 무려 44년 동안
남송은 놀라운 저력을 발휘해 원나라 군을 막아내는데 성공했던 것입니다
원나라 입장에서는 오랜기간 굴복하지 않는 송나라를 상대하는데
굉장히 애를 먹기도 했지만
점점 전세는 기울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원나라 군대는 남송의 수도 임안을 포위할수 있었죠
수십년동안 너무나도 격렬히 버티고 버텼던 남송을
드디어 끝낼수 있는 최종장에 다다랐던 것입니다
![](https://blog.kakaocdn.net/dn/cVZLfk/btsCEKZJjRs/fWOfHG4lnvynGalcvgpHt0/img.jpg)
이에 남송의 조정은 원나라에 사신을보내 화의를 요청했지만
당연히 거절을 당했고
결국 고작 6세 되지 않았던 공제는
할머니 사태후와 어머니 전태후와 함께 원나라에 항복하고 말았죠
하지만 원나라와 끝까지 싸울것을 결의한 3명의 신하가 있었으니
이들은 '송말삼걸'이라고 불리는 문천상, 육수부, 장세걸 이었습니다
그들은 익왕 조하와 위왕 조병 등 어린 황자들을 데리고
남송의 재부흥을 위해 도망쳐 길고 긴 방랑길에 오르게 되었죠
그리고 세명은 남송 부흥군을 조직한뒤
회의를 거쳐 나이가 제일 많던 조하를 황제로 올렸는데
그가 바로 송단종 입니다
나이가 많았다고 해도 송단종은 겨우 7살밖에 되지 않았었죠
그리고 부흥군은 중국 동남지방의 해안선을 따라 계속 도망치며
쫓아오는 원나라의 추격군에 맞서 항전을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기울어져버린 대세는 거스를수 없었고
송나라의 수많은 호족들도 하나 둘 원나라에 항복을 하고 있었죠
그런데 육수부는 도망치는 와중에도
송단종이 훗날 훌륭한 황제로 자라면
분명 송나라가 다시 부흥할수 있는 기회가 있을거라 생각해
송단종과 위왕 조병 등에게 제왕학이나 여러 학문들을
시간이 나는대로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격렬히 저항했던 남송이 다시 세력을 불린다면
골치 아파질것이 두려워진 원나라군은 집요하게 부흥군을 추격하고 있었죠
그렇게 원나라군은 1278년에는 복주를 함락시켰고
이후에 천주마저 함락시키면서 부흥군을 끈질기게 쫓아왔습니다
결국 부흥군은 원나라 군대를 피해
중국 대륙의 남쪽 끝 애산까지 내려가기로 마음먹은뒤
배를 타고 남쪽을 향해 도망치게 되었죠
그런데 제대로 된 배를 구할수 없었던 부흥군은
결국 바다에서 표류하고 마는데 이때 강한 태풍을 만나는 바람에
송나라의 군인의 40%가 물에 빠져 목숨을 잃었고
단종까지 물에 빠지고 만것입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이 일로 인해 병에 걸려
단종은 9살의 어린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부흥군은 이럼 참담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는데요
이후 단종의 동생이던 위왕 조병을 다음 황제로 옹립한뒤
원나라에 대한 저항을 계속 이어나갔죠
위왕 조병이 바로 송나라 마지막 황제 송소제 입니다
송소제가 황위에 올랐을 나이도 고작 7살밖에 되지 않았었죠
그리고 길고 긴 시간을 지나
마침내 애산(현재 마카오 근처)에 도착을 할수 있었습니다
이후 부흥군은 애산을 최후의 거점으로 삼꼬
결사항전을 이어 나갈것을 마음먹은 것이죠
![](https://blog.kakaocdn.net/dn/GogRq/btsCDhi1x5J/wNzUpzon7ka2kWUON6ajr0/img.jpg)
그런데 문제가 있었으니
애초에 애산이라는 작은 섬지역을 거점으로 삼은이유가
바로 몽골족이 해상에서 약하다는것을 노린것이었지만
몽골은 장홍범같이 항복한 한족 장수들을 이용해
대규모 수군을 편성했기 때문에
이 계책은 물거품이 되고 만것이었습니다
또한 이미 무너질대로 무너진 송나라는
원나라 군대의 상대가 절대 될 수 없기도 했고
이미 나라라고 할만한 정도가 아니었지만
쿠빌라이 칸 입장에서는 그들을 가만히 뒀다간
남송인들 저항의 구심점이 될것이라 여겼기에
그들을 끝내버리기 위해서
장홍범을 원수로 삼아 부흥군을 공격하라 명했죠
장홍범은 먼저 육지에 남아 부흥군을 이끌며
게릴라전을 벌이던 문천상을 공격해
결국 문천상이 포로로 갇혀버리게 되었고
이후 애산에 갇힌 남송 부흥군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멸망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각지에서는 남송 부흥군을 돕기위해 약 20만명의 의병이 몰려들었고
송나라 황실과 운명을 함께할것을 결의했죠
장홍범이 이끄는 원나라 대군이 코앞까지 들이닥친걸 본 장세걸은
배수진을 친다는 각오로 섬에 있던 황궁과 거처들을 모두 불태워 버리고
모든 병력과 황제까지 배에 타라고 한뒤
1000여척의 배를 서로 묶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또한 화공에 당할것을 대비해
배에다가 진흙을 발라 불이 붙지 않도록 조치했죠
이는 결사항전을 각오 한것이기도 했으며
한편으로는 누구도 도망갈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도 육수부는
배위에서 여전히 어린 송소제의 교육을 시키고 있었다고 하죠
이후 몇차례에 걸쳐 두나라 군대는 전투를 치뤘고
남송부흥군이 분전하며
여러번 원나라 군대를 격퇴시켜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장홍범은 애산에서 밖으로 나가는 모든 해로와 육로를 차단한뒤
보급을 끊어버리는 계책을 썼는데요
그러자 식량과 물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부흥군은
굶주림과 탈수에 시달리기 시작했으며
너무 목이 말라 바닷물을 마시는 병사도 있었지만
당연히 더 목이 마르거나 구토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죠
그렇게 오랜기간 이어져 오던 양측의 대치는
원나라 군대에 부원수로 이항이라는 인물이 합류하면서 끝이나게 됩니다
![](https://blog.kakaocdn.net/dn/cQVlaJ/btsCyccwAsp/0bH0EiwwxYkksKosY3Ndk0/img.jpg)
1279년 3월, 이항이 합류한뒤 장홍범은 곧장 군을 재정비했고
다음날 아침이 되자 곧바로 함대를 출진시켰죠
이미 오랜기간 굶주림과 갈증으로 진이 다 빠져있던 부흥군은
기를쓰며 열심히 싸웠지만 원나라 함대의 공세를 막아낼수 없었습니다
부흥군은 비처럼 쏟아져내리는 화살에 맞아 죽거나 부상당하면서
결국 혼란에 빠져버렸고 얼마안가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했죠
또한 배를 묶어놓았기 때문에 후퇴도 할수 없는 상황에
원나라 병사들이 송나라 배로 뛰어들어 근접전투가 벌어졌고
그 결과 엄청난 수의 부흥군이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 남송의 지휘관들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바다로 뛰어 들었으며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는걸 안 장세걸은, 최후의 돌파를 해
전장을 빠져 나가기 위해 육수부와 송소제를 데려오라고 명령했죠
그런데 얼마안가 장세걸에게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집니다
육수부는 배안에서 송소제에게 대학을 강론하고 있던 중
원나라 군대가 바로 앞까지 몰려왔다는 소식을 듣고나서
송소제에게 "오랑캐들에게 붙잡혀 욕을 당하시느니
차라리 이 노신과 함께 바다에 몸을 던져
구천에 계신 조상님들을 뵙는것이
대송나라의 천자로써 떳떳한 바가 될것입니다" 라고 말했다고 하죠
이에 송소제는 육수부에게 업힌채 바다에 뛰어들기 직전
"내 다시는 제왕의 핏줄로 태어나지 않겠다" 라고 절규한뒤
둘은 같이 바다에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렇게 남송 역시 멸망하면서
지도상에서 송나라 라는 나라는 지워져버렸죠
이후 송소제의 어머니이던 양태후도 절망하며 바다에 뛰어들어 자결했으며
남송의 황족과 귀족들, 그리고 많은수의 원나라의 지배를 거부한 군인과 백성들도
장렬히 전사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장세걸은 대월로 망명해 후일을 기약하기 위해
남아있는 함대를 이끌고 퇴각하기 시작했죠
하지만 바다위에서 폭풍우를 만나게 되는데
이때 장세걸은 "하늘이 송나라를 망하게 하려거든
나의 배를 모조리 바다 속에 가라앉게 하소서" 라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결국 하늘도 송나라를 망하게 하려 했는지
배들은 모조리 침몰해 장세걸과 송나라 부흥군은 모두 수장되고 말았죠
훗날 원나라 기록에 의하면 다음날 바다위에 떠오른 시신만
10만구가 넘었다고 합니다
또한 대도로 끌려간 문천상 마저 처형 당하면서
남송 부흥운동 역시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죠
애산전투가 있고나서 약 60여년뒤
막강하던 원나라의 명운도 위태로워진 원나라 후기
호주라는 곳에 가난뱅이 농부 주오사 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https://blog.kakaocdn.net/dn/bFxcp5/btsCIDTnFzx/4rjDwIN7HZFaHDSG3l7VNk/img.jpg)
주오사의 장인어른은 당시 99세까지 살았을 정도로 장수를 했었는데요
이 노인이 바로 애산전투에 참전했다가 겨우 살아남은 생존자였던 것이죠
이 노인은 평생의 자랑이 장세걸을 모시고 끝까지 원나라와 맞서 싸웠던 것인데
전우들 대부분이 목숨을 잃은것 또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상처였던 것이죠
노인이 과거 애산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면
같은 이야기를 몇번이고 했어도
말하던 노인도 듣던 사람들도 모두 눈물을 훔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노인에게 두 딸이 있었는데 한명이 주오사에게 시집 온 진씨였고
주오사와 진씨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중 한명이
바로 주중팔이라는 인물이었죠
원나라의 공격에 끝까지 항전하던 한족 병사의 손자인 이 주중팔은
결국 원나라를 무너트리고 명나라를 건국하는 주원장이라고 합니다
이는 명나라가 세워질때 명분도 있어야 하고
뭔가 신화적인 일을 가미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 일수도 있기 때문에
어느정도 가려 들을 필요가 있어 보이긴 하죠
하지만 주원장의 외할아버지가
애산전투의 생존자였을 확률은 굉장히 높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송나라의 처절했던 최후,
애산전투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사탐과탐 다른 포스팅은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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