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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한세충. 마치 무협지의 주인공처럼 역사에 기록된 여포는 명함도 못 내밀 무력 원탑의 송나라 명장

by 사탐과탐 2023.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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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척준경과 금나라의 사묘아리 그리고 송나라의 한세충은
같은 시대를 풍미했던 각 나라를 대표하던 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사 기록으로만 따지면 그 중에서도 한세충이 제일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무협지에서나 나올듯한 그의 미친 활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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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척준경과 금나라의 사묘아리 그리고 송나라의 한세충은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셋다 그 시대 최강의 무장이라는 평가를 받은 인물들인데요

오늘은 그중에서도 단순히 기록만 놓고 보면 척준경보다 더 뛰어나다는

한세충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한세충은 졸병으로 시작했지만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미칠 듯이 승진을 한끝에

죽은 후에는 왕으로 봉해질 정도로 엄청난 성공신화를 써낸 인물이었죠

 

한세충의 전공을 자세히 살펴보면 정말 놀라운 것이

그의 기록 중에는 많은 병사들을 이끌고 적을 격파한 전공보다도

개인의 무력으로 해결을 해버린 경우가 더 많이 나온다는 것인데요

 

때문에 송사 한세충 열전에 나오는 그의 기록을 보다 보면

척준경과 사묘아리, 한세충이 서로 싸웠을 때

과연 누가 이길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라고 합니다

 

그가 세운 공적들이 워낙에 말도 안 되는 내용이 많다 보니

또 중국인들 특유의 뻥튀기를 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의 행적이 기록된 송사를 쓴 것이 송나라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원나라의 몽골인들이었다는 점 때문에

단순히 자국의 인물을 높게 쳐주기 위해서

한세충의 공을 과장했다는 평가는 적은 편이라고 하네요

 

한세충은 어린 시절부터 풍채가 좋은 데다 몸놀림이 민첩했고

젊었을 때부터 주변 사람을 압도하는 패기가 어마어마했다고 하죠

젊은 시절 한세충은 딱히 직업도 없었던 데다

그의 집안에 돈이 많았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매일 술을 마시고

사람들과 싸움을 하러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 지역의 관청에서는 그런 한세충을 좋게 보지 않았지만

워낙 그가 괴물 같은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감히 그를 건드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하네요

 

한세충은 성격이 무척이나 더러웠기 때문에

만약 그가 무력이 뛰어나지 않았다면

여기저기서 사람들에게 많이 맞고 다녔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어느 날 한세충이 길을 가다 점쟁이 한 명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점쟁이는 한세충의 관상을 보고 깜짝 놀라며

당신은 훗날 매우 높은 벼슬에 오를 것이라는 말을 해줬죠

 

그런데 한세충은 자신을 높이 평가해 주는 말을 듣고도

점쟁이가 건방지게 자신을 놀린다며 화를 내고는

그 자리에서 점쟁이를 때려눕혀버렸다고 합니다

 

한세충은 18살의 나이로 군에 입대를 하게 되는데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 쏘는 실력이 워낙에 뛰어나서

병사들이 참여한 대회에서 1등을 할 정도였다고 하죠

당시 송나라는 서하와의 전쟁이 한창이었기 때문에

18살의 한세충도 변경지역에서 일어난 은주성전투에 참여하게 됩니다

 

서하의 장수는 어차피 시간이 지날수록 원정을 온 송나라군은 지칠 수밖에 없으니

굳이 성을 나가서 무리한 싸움을 하기보다는

성을 굳게 지키며 시간을 끌겠다는 작전을 세웠죠

 

하지만 그 합리적인 작전은

한세충이라는 괴물의 존재로 인해 무참히 박살이 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전투가 시작되자 한세충이 갑자기 성벽을 기어 올라가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적진에 뛰어들어 달려드는 적군 병사들을 베어 넘기다가

적장을 찾아내 그의 목을 벤 뒤 성 밖으로 던져버렸기 때문인데요

 

괴물 같은 한세충의 무력을 보고 깜짝 놀란 서하군은

잔뜩 겁을 집어먹은 채 송나라군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반대로 기세가 오른 송나라 병사들은 성을 타고 올라가

끝내 은주성을 함락시켜 버렸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출전한 전투에서 엄청난 공을 세운 한세충이었지만

아직까지는 큰 인정을 받지 못해 십부장에 머물러있었는데

그 뒤에 참여한 호평령전투에서도 또다시 대박을 터뜨렸죠

 

전투가 시작되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던 한세충은

적진에 웬 기병 한 명이 혼자 서있는 것을 보고

주변 동료들에게 저 사람이 대체 누구냐고 물었는데

동료들은 그가 바로 서하 국왕의 사위 올위라는 대답을 해줬습니다

 

그 말을 들은 한세충은 갑자기 말을 타고

미친 듯이 혼자 적진을 향해 돌격하더니 단숨에 올위의 목을 베어버렸죠

그렇게 어이없이 적장을 잃은 서하군은 또다시 송에 대패하게 됩니다

너무 터무니없는 무력을 보여주며 공을 세웠다 보니

송나라 조정에서도 한세충의 전공을 믿으려 하지 않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당시 송나라 조정의 실력자는

송나라를 망친 간신으로 유명한 동관이라는 인물인데

동관은 비록 간신배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무력도 가지고 있고

전쟁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고 있는 수준은 됐다고 합니다

 

때문에 서하와의 전투에 대한 보고를 받다가

한세충이 세운 공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

머나먼 변경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라 내가 직접 확인을 하지 못한다고

너무 자기들 마음대로 허무맹랑한 공을 꾸며댔구나"라고 말하고는

그저 한세충의 녹봉을 조금 올려주는 정도로 그쳤다고 하죠

 

한세충의 동료들은 한세충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자

자기들이 더 억울해했지만 정작 한세충 본인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 정도 공은 얼마든지 더 세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을까요

이후 한세충이 벌인 일들을 보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는 한세충이 유연경이라는 장군을 따라 성채를 쌓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밤에 잠깐 성을 비운사이 적들이 성을 빼앗는 사건이 있었죠

기껏 고생해서 만든 성채를 적군이 빼앗아버리자

한세충은 크게 화를 내며 성벽을 타고 올라가

끝도 없이 적들의 목을 베기 시작했고

그의 활약을 보고 질린 적군들은 겁을 먹고 도망을 쳐버렸죠

이때의 전공으로 한세충은 드디어 장교가 되었습니다

 

이후 송의 황제 휘종이 계속 사고를 치면서 백성들을 못살게 굴자

반란군이 송나라로부터 독립해 나라를 세우는 '방랍의 난'이 일어났는데

이때 한세충은 '왕연'의 부장 신분으로 전투에 참여해

2천의 병력을 이끌고 선봉에 서서 적들을 마구잡이로 쓰러트렸습니다

 

그 모습을 본 왕연은 계속해서 감탄을 하면서

한세충이야말로 혼자 만 명을 상대할 수 있는 장수라는 말을 남겼죠

한세충의 활약으로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적의 대장인 방랍이 도망가버리면서 한세충이 그를 추격하게 되었는데

그는 집요하게 조사를 한끝에 마침내 한 동굴에서 방랍을 찾아냈습니다

 

동굴 앞에는 방랍의 부하 수십 명이 그를 지키고 있었지만

한세충에게 그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죠

한세충은 혼자서 방랍의 부하 수십 명을 모두 때려죽이고 방랍을 사로잡았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신흥종'이라는 인물이 온갖 인맥을 동원해

한세충이 아닌 자신이 방랍을 잡은 것처럼 보고를 올리면서

한세충에게는 겨우 종 9품의 관직만이 돌아갔죠

 

1121년에 송나라가 요나라를 향한 북벌을 시도했다가 패배했을 때

한세충은 50기의 기병을 거느리고

아군의 뒤를 지키는 임무를 맡게 되었는데요

한세충과 50명이 적의 추격대를 막으며 시간을 끄는 동안

나머지 병사들만이라도 살리겠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한세충은 단순히 송나라군의 뒤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추격을 하는 적군에 혼자 뛰어들어

요나라군의 깃발을 든 병사 두 명을 사로잡아버렸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사기가 오른 한세충의 부하들까지 뛰어들면서

한세충 부대는 2천 명이나 되는 요나라의 추격대를 물리쳐버렸죠

 

시간이 흘러 송나라를 위협하던 요나라가 멸망했지만

이번에는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가 송의 '준주'라는 지역을 침공해 왔습니다

갑작스러운 공격을 당한 수만 명의 송나라 군사들은

대혼란에 빠지며 서로 살겠다고 사방으로 도망을 쳐버렸는데

 

마침 준주에 있었던 한세충은 창 한 자루를 들고

수십 겹으로 둘러쌓인 금나라 병사들의 진영을 혼자서 돌파해 버린 후

다리를 건넌 후에 불을 질러 적의 추격을 잠시동안 막는 활약을 보여줬죠

 

그렇게 금나라가 쳐들어오면서 나라가 혼란해지자

송나라 곳곳에서 반란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산동지역에서는 수만 명이나 되는 반란군이 모여들었죠

 

이때 한세충은 1천 명의 병사를 이끌고 싸우러 나가서는

별다른 전략도 없이 개인의 무력 하나로

수만 명이나 되는 적군을 물리치는 공을 세웠습니다

 

물론 상대가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은 적도 없이

그냥 무기 하나 집어 들고 뛰어든 농민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겠죠

 

다시 금나라와의 전쟁이 시작됐을 때 한세충은 조주성을 지키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성안에 있던 군량이 다 떨어져 버리면서

사람들은 한세충에게 성을 버리고 달아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하지만 한세충은 그들의 제안을 무시한 후

때마침 폭설이 내리고 있는 것을 이용해서

한밤중에 3백 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적의 진영을 습격해 버렸죠

 

자다가 기습을 당한 금나라군은 깜짝 놀라 혼란에 빠졌고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무기를 휘둘러대다가

결국 적장이 칼에 찔려 목숨을 잃는 사고가 벌어졌습니다

그렇게 허무하게 대장을 잃은 금나라군은 후퇴를 할 수밖에 없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렇게 조주를 구해낸 한세충은 천명의 병사를 이끌고

다른 전장에 뛰어들어서 수만 명의 적군을 물리치고

적장의 목까지 베어버리는 공을 세웠는데요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전투가 벌어졌을 때

한세충을 따라온 천명의 병사들은 처음에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는데

한세충이 갑자기 혼자서 적진에 뛰어들어 적장의 목을 베어버리자

적군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는 뒤늦게 전장에 뛰어들었다는 것이죠

 

이후 한세충은 묘부와 유정언이라는 인물이 반란을 일으켜

송의 황제 고종에게 황제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강요한 '명수의 난'때

수도인 임안부를 반란군으로부터 해방시키고

황제를 구출해 내는 엄청난 공적을 세웠습니다

 

이후로도 한세충은 금나라와의 전쟁에서 계속 공을 세우면서

명장 '악비'와 함께 송나라를 떠받치는 기둥 같은 존재가 되었죠

 

그가 세운 공이 얼마나 많았는지 보통 송사 열전에는

1권에 6명에서 8명 정도의 인물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한세충의 경우 공적이 너무나도 많아서

혼자서만 1권의 분량을 다 채울 정도였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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