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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가사도. 남송 초반에 진회가 있었다면 남송 후반엔 그가 있었다

by 사탐과탐 2023.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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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이 멸망하는데 크게 기여한 남송 후기 간신 가사도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남송 초기의 간신하면 진회를 빼놓을수 없는데요

남송 후기에는 송나라가 멸망하는데 큰 공헌을 한 간신이 또 있습니다

 

그는 바로 '가사도' 라는 인물이죠

그는 중국을 대표하는 간신 중 한명인데요

 

오늘은 이 가사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가사도의 아버지는 금나라에 대항했던 명장 중 한명인 가섭이었죠

그 덕에 가사도는 음서로 관직에 나갈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맡았던 일은 현의 곡식창고를 관리하던 하급관리였는데

명장이던 맹공이 가사도의 능력을 알아보고 송이종에게 천거를 해주었죠

 

그 덕분에 고위직이던 감찰어사가 되었고

이후 맹공이 죽자 그의 자리였던 경호제치사가 되었습니다

 

또한 가사도의 누나이던 가귀비가 송이종의 총애를 받으며

그는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했죠

 

심지어 가사도는 미술품이나 예술품 수집을 좋아했고

그 방면에 있어서 전문가였을 정도로 뛰어난 안목을 갖추었었는데

송이종 역시 예술품 수집을 좋아했기 때문에

서로 굉장히 마음이 잘 맞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송이종에게도 총애를 받으며

국경 수비대장에까지 오르게 되었죠

 

하지만 이때 이미 북쪽에서는 몽골세력이 급속히 커져가고 있었으며

결국 1259년에 몽케 칸이 직접 이끄는 몽골군이

남송을 침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송이종은 가사도를 우승상으로 삼아

쿠빌라이가 공격중인 악주를 구원하게 했는데요

 

그렇게 도착한 가사도는

하루아침에 악주성 주위에 목책을 설치하기도 하는등

쿠빌라이의 칭찬을 들었을 정도로 재능을 인정받기도 했죠

 

하지만 전황은 날이갈수록 불리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조어성을 공격중이던

몽케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렸고

이에 몽골군은 모두 철수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쿠빌라이의 군대는 계속 악주를 공격했는데

가사도는 몰래 쿠빌라이에게 매년 막대한 양의 은과 비단을 바치겠으니

군대를 철수시켜 달라는 밀서를 보내게 됩니다

 

한편 쿠빌라이는 가사도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수 없었는데요

몽케칸이 죽자 자신의 동생이던 아리크부카가 자신을 몰아 내려고 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에 자신도 급히 철수를 해야하는 상황이었던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오히려 잘됐다 싶었던 쿠빌라이는 가사도와 밀약을 맺었고

퇴각할때 송나라군이 공격을 하되 큰 피해는 입히지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가사도와 쿠빌라이 사이의 이 '비밀화의'는

사실 현재 역사학자 사이에서도 진위를 두고 말이 많은 상황이죠

 

실제로 가사도가 쿠빌라이에게 화의를 청하는 사자를 보냈을 것이라는 주장과

쿠빌라이가 악주를 공격했으나 실패했고

이미 퇴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입지가 흔들리지 않기 위해 송나라에서 항복해왔기 때문에

철수해 줬던것으로 패배를 감추려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또한 쿠빌라이가 철군하는 도중 송나라의 공격을 덜받기 위해

먼저 쿠빌라이가 화친을 제시했다 라는 주장도 있으며

현재까지도 많은 논란이 있다고 하죠

 

어쨌든 가사도는 서로 맺은 밀약대로

퇴각하던 쿠빌라이의 군대를 공격하는 시늉을 한뒤

총대장이던 자신이 몽골군을 격퇴하여 그들이 도망쳤다는것으로

공적을 부풀려 보고해버렸습니다

 

그러자 송이종은 가사도의 보고를 믿고

그를 나라를 구한 영웅이라고 칭송하며 개선하는 가사도를 성대하게 맞이 했으며

그를 우승상으로 임명했습니다

 

심지어 신하들이 황제에게 해야했던 여러 의식들을 면제해 주기도 했고

조정회의에도 10일에 한번만 참석할수 있는 특권을 내려줬죠

또한 국경 수비대장의 지위도 유지되어 문무관을 전부 장악해

더 빠른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가사도는 송나라의 최고 권력자로 우뚝서게 된것이죠

 

가사도가 권력을 잡은 이후

처음부터 악행을 일삼은건 아니었는데요

 

당시 권신들 소유의 땅은 굉장히 넓었는데

그걸로 인해 왕조가 몰락하는 경우가 많았죠

 

그리고 권신들의 토지에서 나오는 곡식들은 정부에서 돈을 주고 사들였는데

이로인해 정부의 재정에도 문제를 끼쳤던 것입니다

 

이에 가사도는 정부에서 곡식을 사들이는 정책의 철폐를 건의 하면서

일정 규모 이상의 토지 소유를 금지하고

초과된 토지는 국가가 매입해 공전으로 전환시키는 정책을 했던 것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에 큰 땅을 소유하고있던 권신들은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가사도는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그대로 강행해버렸으며

이후 공전에서 발생되는 수입은 군비로 돌리면서

권신들의 권한은 약화되고 국가의 재정이 늘어나는 효과를 만들어 냈던 것이죠

 

거기다가 악주전투때 군비가 부당하게 사용되고

부패한 병사들의 모습을 본 가사도는

군대의 모든 경비를 엄격하게 조사하도록하는 타산법을 제정하기도 했는데

이로인해 타격을 받게된 신하들과 귀족들에게 탄핵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태학생들의 처우를 개선해 주기도 했으며

환관과 외척 등의 정치개입을 막는 등의 개혁정책을 실행해 나갔죠

 

여기까지만 했으면 비밀화의를 맺었더라도

정상참작 되어 후대에까지 욕먹는 희대의 간신이 되지 않았을텐데

문제는 그 이후부터 였습니다.

 

1261년에는 다음 칸이된 쿠빌라이가 밀약에 따르라고 요구하는 사신을 보내자

어차피 몽골군 철수를 위한 가짜약속이었기 때문에

가사도는 그 사신을 억류해버렸죠

 

또한 1264년에 송이종이 세상을 떠나고 송도종이 황위에 올랐는데

도종은 지적장애가 있었던 걸로 보일만큼 어리석은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황제의 눈과 귀를 막은 가사도는 모든 요직을 독점하면서

본격적으로 악행을 일삼기 시작했죠

 

또한 21살의 어린나이에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한 문천상 같은 인물도

자신을 따르지 않는다며 요직에서 몰아냈으며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에게 반대하는 인물들은 철저히 쳐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위협이 될만한 장수인 고달이나 이정지 등에게는

몽골이 공격해 왔음에도 지원군을 보내지 않았죠

 

심지어 원군을 보내긴 했어도

그들의 명령에 따르지 말라는 말을 하기도 했고

송도종이 변방에서 들려온 몽골의 침략소식을 가사도에게 말하자

가사도는 이미 적들은 모두 퇴각했다고 거짓을 고하며

누구에게 들었는지 물었는데

송도종이 어느 궁녀가 이야기 했다고 말하니

곧장 그 궁녀를 찾아가 잔인하게 죽여버렸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조정에 올라오는 모든 문서들을 중간에서 모두 확인했으며

자신에게 좋지않은 내용의 문서는 없애버리고

그 글을 쓴 사람을 색출해 제거해버렸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또한 그는 귀뚜라미 싸움을 너무나 좋아해

어전회의를 나왔을때도 품에 귀뚜라미를 품고 다녔는데

심지어 어전회의를 하고있는 중에도 귀뚜라미 우는소리가 들렸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송도종에게 하사받은 호숫가 정원을

굉장히 화려하게 꾸민뒤 후락원이라는 이름을지어

조정에 나가지는 않고 그곳에 가

창기들과 여승 그리고 궁녀들을 불러

밤낮없이 음란한 잔치를 벌였다고 하죠

 

그러다보니 사람들 사이에서는 '조정에는 재상이 없고, 호숫가에 재상이 있다'

라는 말이 퍼져나가기도 했으며

그는 귀뚜라미 싸움을 워낙 좋아했던 나머지 귀뚜라미에 대한 전문서적인

'촉직경'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는데

사람들은 그를 '귀뚜라미 재상'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심지어는 '가충(가씨벌레)' 이라고 부르기까지 했죠

 

하지만 그가 그렇게 놀이와 향락만 즐기고 있을때

송나라는 이미 몰락의 길에 접어든 상태가 되었는데요

몽골은 악주까지 함락시키고 말았으며

장강 일대를 지키던 무장들 대부분이 이미 몽골에 항복해버렸을 정도로

국경이 이미 무너진 상태였던 것이죠

 

이에 조정내에서도 악주전투의 영웅 가사도가 출정해야 한다는 압박이 강해지자

마지못해 가사도도 13만의 대군을 이끌고 출진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쿠빌라이에게 했던것처럼

몽골군의 대장이던 바얀에게 선물을 바치면서

땅을 떼어주고 배상금을 바치겠다며 철군을 간청했죠

 

하지만 당연히 쿠빌라이때는 칸이 죽어서 어쩔수 없이 철수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이번에 바얀은 당연히 그의 제안을 거절했고

그렇게 되자 가사도는 손호신의 군대를 전방에 주둔시킨뒤

자신은 후방으로 물러나 있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리고 이후에 벌어진 정가주 전투에서 몽골군대에 개박살이 나버렸고

남송의 대부분의 병력을 잃게되었죠

 

손호신의 패배를 보고받은 가사도는

이후 도망쳐온 손호신과 함께 모든걸 내팽겨쳐둔채

작은배를 타고 양주로 도망쳤습니다

 

그러자 조정내에서는 가사도를 처벌해야 한다는 소리로 가득차게 되었죠

 

이에 결국 가사도는 파면 되었고 그를 처형시켜야한다는 상소가 빗발쳤지만

결국 가사도는 멀리 유배를 가게 됩니다

 

이때 정호신이라는 현위가 자신이 가사도를

유배지에 데리고 가겠다고 자원하고 나섰는데요

 

사실 정호신은 과거에 가사도에 의해 전가족이 몰살당하는 일을 겪었고

가족들의 복수를 위해 자원을 했던 것이죠

 

그렇게 유배지로 가는 도중에 여러번 정호신은 가사도에게 자결을 종용했지만

가사도는 끝까지 구차한 삶을 연명하고자 했고

결국 정호신은 직접 그의 목숨을 빼앗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당시 최고의 권력가이던 가사도는 63세의 나이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것이죠

 

이후 그의 시신은 아무데나 버려졌는데

시신의 행방은 알수가 없다고 합니다

 

가사도는 참 능력이 뛰어난것 같으면서도

없는것 같기도 한 이상한 인물인것 같네요

 

지금까지 진회에 버금가는 남송의 간신

가사도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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