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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앤 불린. 희대의 변태왕 헨리 8세를 사로잡았지만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게되는 여인

by 사탐과탐 2023.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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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변태왕 헨리 8세를 사로잡았지만 아들을 낳지 못해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게되는 여인 앤 불린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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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난번 다뤘던 영국의 변태왕 헨리 8세의 왕비들 중 가장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중요한 왕비중 하나로 평가받는 앤 불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그녀의 집안인 불린 가문은 원래 상인 집안이었지만 점점 성장을 거듭한끝에 앤 불린의 아버지 대에 이르러서는 고위 귀족과 결혼할 수 있을 정도로 권세가 막강해졌다고 하는데요

1501년 7월 노퍽 지방에서 태어난 앤은 어린 시절을 프랑스에서 보냈는데 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5개 국어를 능숙하게 할 만큼 언어에 대해 엄청난 재능을 보였다고 하죠 

 

15살이 되던 해에 귀국한 그녀는 궁정에 들어가 헨리 8세의 첫 왕비였던 아라곤의 캐서린의 시녀가 됩니다 

캐서린과 결혼 생활 중에도 헨리 8세는 숱한 여자들과 염문을 뿌렸고 앤 불린 또한 새로운 애인으로 삼을 목적으로 접근했지만 앤 불린은 그저 단순한 애인자리에 만족하지 않았죠

 

젊고 재치 있는 데다 매력적인 앤을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 헨리 8세는 그녀에게 구애를 계속했지만 그녀는 다른 귀족 여인들과 달리 왕을 거부하고 몸을 허락하지 않으면서도 교묘하게 헨리 8세를 애태웠습니다

앤은 단순히 매력적인 외모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신학에도 나름 관심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헨리 8세와 신학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기도 했죠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을 앤 불린에게 빠져 지낸 헨리 8세는 마침내 앤과 결혼할 마음을 품게 됩니다

 

사실 헨리 8세가 캐서린과의 이혼을 시도하기 시작한 건 캐서린이 더 이상 임신을 하지 못하던 1520년대 초반부터였는데요

당시 유럽의 왕들은 적법한 결혼을 한 상대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에게만 후계 자리를 물려줄 수 있었기 때문에 만약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친척에게 왕위를 넘겨주는 경우도 흔했죠 

 

때문에 후계자를 낳지 못한 본처를 수녀원으로 쫓아내거나 교황청에 로비를 해서 혼인무효를 얻어내는 식으로 새 장가를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헨리 8세 또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첫 번째 부인인 캐서린은 원래 헨리 8세의 형이었던 아서와 정략결혼을 한 사이였지만 둘이 혼례를 제대로 치르기도 전에 아서가 결핵에 걸려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당시 교황이었던 율리오 2세가 둘의 결혼을 무효라 선언했고 캐서린은 헨리 8세와 다시 정략결혼을 했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때문에 헨리 8세는 캐서린이 자신의 형과 혼인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녀와의 결혼이 처음부터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난 것이었다고 주장하며 교황에게 그녀와의 이혼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하지만 교황은 헨리의 결혼 무효화 요청을 받고도 오랜 시간 확답을 주지 않다가 결국에는 그의 청을 거부했죠

그렇게 교황에게 거절당하고 왕비인 캐서린 또한 거세게 저항하자 헨리 8세는 결국에 종교 개혁까지 일으키며 잉글랜드 교회를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시켜 버리고 스스로 그 교회의 우두머리 자리에 오른 뒤 캐서린 왕비를 궁정에서 추방해 버리기로 결정을 내립니다

 

결국 1533년 캔터베리 대주교가 교황 대신 헨리 8세와 캐서린의 결혼 무효를 승인해 주었고 그 해 여름에 앤의 대관식이 거행되었죠

하지만 앤 불린이 왕비가 되는 과정을 지켜봤던 잉글랜드 백성들은 앤을 대단히 싫어했다고 하는데요

어느 시대에서든 남의 남편 뺏어간 여자는 결코 사람들에게 고운 시선을 받기 힘든 법인 데다가 앤에게 남편을 빼앗긴 상대가 바로 백성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던 캐서린 왕비였기에 앤은 특히나 더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앤 불린은 이미 계획적으로 아이를 가진채 결혼식을 올렸는데 헨리는 앤이 임신한 아이가 그렇게나 기다리던 아들일 거라 굳게 믿었고 점성가들 대다수도 왕자의 탄생을 예고하면서 이미 궁정서기들은 왕자의 탄생을 알리는 공식 문서까지 작성해 놓은 상태였다고 하죠

하지만 사람들의 바람과는 달리 앤의 첫 아이는 딸인 엘리자베스 1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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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훗날 여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이 엘리자베스 1세는 역대 영국의 왕들 중 가장 뛰어난 여왕이라 평가받는 인물이지만 당시의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리는 없었기에 그들은 그저 아들이 태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에 실망할 뿐이었죠

앤과 헨리 8세 또한 태어난 딸을 보고 매우 실망했지만 헨리 8세는 이미 첫 번째 왕비인 캐서린과의 사이에서 4명의 아이를 연달아 잃고 첫 딸인 메리를 얻은 경험이 있었기에 건강한 공주가 태어났으니 왕자도 곧 태어날 거라고 말하며 오히려 앤을 위로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잠깐 캐서린의 딸 메리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면 왕비의 자리에 오른 앤은 메리 공주에게 자신을 왕비로서 존중할 것을 요구했지만 어머니의 폐위로 인해 공주 지위를 잃고 사생아가 된 메리는 어머니와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앤에게 결코 머리를 숙이려 하지 않았고 앤은 그런 메리를 괘씸하게 여겨 그녀를 자기 딸의 시녀로 임명하는 모욕을 주기도 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렇게 앤이 전처의 딸을 학대하기도 하고 기대하던 아들을 낳아주지도 못했지만 헨리는 여전히 앤에 대한 사랑을 거두지 않았기 때문에 앤은 비싼 옷과 보석, 장신구 등 여러 사치품을 수집하고 여러 궁전들을 자신의 취향대로 개조하느라 막대한 돈을 소비하는 등 자신의 권위를 마음껏 누렸습니다

하지만 그런 앤의 권력이 언제까지고 계속될 수는 없는 일이었죠

 

왜냐하면 앤과 달리 다른 공주 출신 왕비들은 자신의 모국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지만 그들에 비해 출신이 한미 했던 앤은 오직 아들을 낳는 것만이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할 유일한 방법이었는데 그녀는 첫 출산 이후로는 건강한 아이를 낳지 못하고 연달아 유산을 하거나 사산을 계속했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그녀의 위신은 점점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평소 앤을 미워하던 사람들은 그녀가 유산을 거듭하자 앤이 신의 저주를 받아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이라고 수군댔고 그런 앤에게 점점 시들해진 헨리 또한 결국 다른 여자를 찾기 시작했는데 그럼에도 아들을 낳지 못한 앤은 남편이 다른 애인과 놀아나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헨리 8세가 앤과 연애 중이던 시절에는 그녀의 불같은 성격과 직설적인 표현을 마음에 들어 했지만 결혼 후에는 아들을 낳아주지도 못하면서 계속해서 자신을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순종적인 자세를 취하지도 않는 앤에게 오히려 불만을 품게 됩니다

그렇게 수년동안 쌓였던 둘의 사랑은 빠르게 식어가기 시작했죠

그러던 1536년에 첫째 왕비 캐서린이 병으로 사망하면서 앤에게도 다시 실낱같은 희망이 찾아오는 듯했습니다

 

당시 결혼한 지 3년이 되도록 아들을 못 낳으면서 남편과의 사이가 멀어지고 반대파들의 견제를 받기도 하던 앤에게 헨리의 전처인 캐서린은 비록 추방당하기는 했지만 살아있는 것 자체로 그녀에게 큰 위협이 되는 대상이었으며 왕인 헨리 8세도 캐서린의 존재를 부담스럽게 여기고 있었는데 그런 캐서린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헨리와 앤은 모처럼 한마음이 돼서 축제를 벌였다고 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앤이 또다시 임신하고 있던 아이를 유산해 버리면서 헨리 8세는 더 이상 아들을 낳지 못하는 앤 대신 얌전하고 순종적인 성격을 가진 제인 시모어를 새로운 왕비 자리에 앉힐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게다가 헨리는 당시 영국과 오래도록 대립하고 있던 프랑스를 배후에서 괴롭혀줄 수 있는 존재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와의 동맹을 원하고 있었는데 이 카를 5세의 이모인 캐서린을 폐비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앤이 잉글랜드 궁정에 존재하는 한 양국 간의 동맹은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앤을 내쳐야겠다는 헨리의 결심은 더욱 확고해졌죠

 

결국 헨리 8세는 앤이 자신의 오빠를 포함한 다섯 명의 남자와 근친상간을 했다는 죄목과 반역을 꾸몄다는 누명까지 씌워 그녀를 체포해 버렸습니다

앤은 끝까지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결과가 이미 정해진 재판의 판도를 바꿀 수는 없었고 결국 그녀에게는 유죄 판결과 사형 선고가 내려졌죠

그렇게 앤은 36세의 나이로 자신이 갇혀있던 런던탑의 내부 처형 집행장에서 참수형을 당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처음에 헨리 8세는 앤을 마녀로 몰아 화형 시키려 했지만 처형 직전에 마음이 바뀌었던 것인지 그녀가 빨리 죽을 수 있도록 참수형으로 처형 방식을 바꾸었죠

앤은 죽음 앞에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인지 자신의 처형방식이 화형에서 참수형으로 바뀌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내 목은 가늘어서 빨리 끝날테니 다행이라는 농담을 남겼으며 이후 처형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나는 정당한 이유로 처형을 당하는 것이며 헨리 8세는 성군이니 그에게 충성을 다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는 의연한 태도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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