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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 폭군 간신 탐구

여희. 온갖 권모술수로 악행을 저지른 희대의 악녀

by 사탐과탐 2021.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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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 진헌공의 아내였던 여희는 앞에선 착한 척 연기를 하며 뒤에서는 온갖 권모술수로 못된 짓을 일삼았던 악녀였습니다.

 

 

오늘 이야기할 인물은 춘추전국시대에 진헌공의 아내였던 여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굉장히 교활한 술수와 모략을 일삼았던 악녀였죠.

 

여희는 춘추전국시대에 여융국의 여인이었습니다.

진(晉)나라의 헌공이 기원전 663년에 여융국을 공격해 들어가 정복하기에 이르렀죠.

그러자 여융국의 왕은 진헌공에 화해를 청하며 여융국의 아름다운 두 자매를 진헌공에게 바쳤는데 첫째는 여희였고 둘째는 소희라는 여인이었습니다.

 

이렇게 두 여인은 진헌공의 아내가 되었고 그의 총애를 받았으며 얼마 안 가 여희는 해제라는 아들을, 소희는 탁자라는 아들을 낳았죠.

 

아들 해제를 낳은 여희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아들 해제를 태자 자리에 올리고 싶은 것이었죠.

 

하지만 진헌공에게는 이미 8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신생, 중이, 이오 라는 세 아들이 총명하기도 했고 인성도 좋아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고 있었죠.

게다가 태자였던 신생의 어머니는 당시 패자이던 제환공의 딸인 제강이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여희에 대한 진헌공의 총애가 매우 컸기 때문에 그 세 아들에 대한 진헌공의 마음은 점점 냉담해지기 시작했고 이를 눈치챈 여희는 자신의 아들을 태자로 만들기 위한 행동을 시작했죠.

 

여희는 우선 진나라의 대부이던 왕오와 벽오에게 뇌물을 써 가깝게 지내기 시작했고 그들로 하여금 진헌공에게 세 아들을 멀리 보내도록 꼬셔보라고 했죠.

곡옥지방과 포성, 굴읍은 진나라에서 의미가 있는 요새이니 똑똑하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세 아들이 가서 그곳을 지키라며 말이죠.

 

그러자 헌공은 이들의 말을 받아들여 태자 신생은 곡옥, 중이는 포성, 굴읍에는 이오를 보내버렸습니다.

그 후 여희는 지속적으로 신생에게 첩자를 보내어 신생을 어떻게 모함하여 폐위시킬 것인지 살펴보도록 했죠.

 

그러다 어느 날 여희는 진헌공에게 말해 태자를 도성으로 불러오게 했습니다.

도성으로 도착한 태자에게 여희는 맛있는 식사를 차려주고 그걸 먹도록 했죠.

 

그러고는 진헌공에게 찾아가 태자가 자신을 희롱하였다며 울며 호소했고 그것을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질 않았던 진헌공때문에 다른 모략을 세웠는데 다음날 그녀는 태자를 밖으로 불렀고 진헌공은 위에서 지켜보고 있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태자를 만나기 전 머리에 꿀을 바르고 나간 여희에게 벌들이 꼬이자 그녀는 조용히 태자에게 벌들을 쫓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것이 여희의 교묘한 술책임을 몰랐던 신생은 여희의 주위를 돌며 열심히 벌들을 쫓아냈는데 위에서 보고 있던 진헌공의 눈에는 신생이 여희를 희롱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너무나도 화가 치밀어 올랐던 진헌공은 바로 태자를 죽이려고 했죠.

그러나 그곳에서 돌아온 여희가 진헌공 앞에 꿇어앉더니 "지금 태자가 죽는다면 이 일은 제가 태자를 모함하여 죽이는 꼴이 될 것이고 궁 내에서 이 일을 아는 사람도 없으니 참으시옵소서"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런 여희의 태도를 보고 '이해심이 많은 굉장히 착한 여자구나' 라고 생각한 진헌공은 일단 태자를 다시 곡옥으로 물러가게 한 뒤 수하들을 보내 태자의 죄가 될만한 것을 수집하도록 하여 태자 자리에서 폐위할 명분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여희는 진헌공의 곁에서 수시로 태자를 비방하는 말을 교묘히 돌려가며 이야기했는데 어느 날 헌공은 여희에게 "나는 태자를 폐하고 해제를 태자로 삼으려 한다" 라는 말을 했죠.

 

그러자 여희는 흐느껴 울며 헌공에게 "이미 모든 제후들이 태자를 인정하고 그를 따르고 있는데 어떻게 적자를 폐하고 서자를 세운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게 하시면 소첩은 스스로 목숨을 끊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진헌공에게 마치 자신은 전혀 왕좌에 욕심이 없어 보이는척하는 동시에 계속해서 비밀리에 사람들에게 태자를 비방하도록 하는 등 아주 교활한 술수를 지속적으로 쓰고 있던 것이죠.

 

그렇게 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기원전 655년 여희는 태자에게 서신을 보냈습니다.

 

'전하께서 돌아가신 어머니 제강을 꿈에서 보셨사온데 태자는 어머니의 제사를 올려야 합니다. 그런 뒤 제사에 올렸던 음식은 군왕께 보내시오' 라는 내용이었죠.

 

그 서신을 받은 태자 신생은 그의 어머니인 제강의 제사를 드리고 난 다음 제사 때 쓰였던 음식들은 아버지인 진헌공에게 바쳤습니다.

하지만 음식을 바칠당시 헌공은 사냥을 나가있었기 때문에 바로 전달을 하지 못하고 궁내에 놓아두었죠.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여희는 그 음식들에 독을 넣었습니다.

이틀 후 헌공이 사냥에서 돌아오자 신하들은 태자 신생이 바친 음식이라며 독이 든 음식들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헌공이 먹으려고 하던 찰나에 여희가 먼 곳에서 온 음식이니 반드시 검사를 해보아야 한다며 그릇에서 고기를 하나 집어 땅에 던졌죠.

그러자 옆에 있던 개가 얼른 그 고기를 집어먹었는데 갑자기 개가 캑캑대다 죽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헌공은 어린 환관에게도 그 고기를 먹였는데 환관 역시 죽어버리는 것이었죠.

 

이것을 본 여희는 또다시 연기에 돌입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어떻게 태자가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는가 전하께서는 이미 연로하셔서 기다리면 후에 자신이 왕이 될 것인데 그것을 참지 못하고 자신의 부친을 시해하고 왕위를 차지하려고 하다니!

 

라며 소리치고는 또다시 헌공에게 이야기했죠.

태자가 이러는 이유는 소첩과 해제 때문입니다
저와 해제가 다른 나라로 떠나겠습니다
혹시 우리가 일찍 스스로 목숨을 끊더라도 훗날 우리 두 모자가 태자의 어육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예전에 전하께서 태자를 죽이려 할 때 소첩은 오히려 그를 도와줬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게 잘못한 짓이었습니다

 

라며 그녀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급의 헐리웃 연기를 선보였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에 헌공은 화가 나 태자의 스승이던 두원관을 참형에 처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태자는 얼른 신성으로 도망을 쳤죠.

 

그리고 태자의 측근 중 한 명이 "독약을 넣은 사람은 여희인데 왜 해명을 하지 않으십니까?" 라고 하니 태자는 "아버지는 이제 여희가 없으면 잠도 편안히 못 주무시고 식사도 못하시니 아버지 곁에 여희가 꼭 있어야 한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측근이 도망칠 것을 권하자 태자는 "이 오명을 쓰고 도망친다면 누가 나를 받아주겠소? 스스로 목숨을 끊을 뿐이오"라고 말하고선 신성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었죠.

 

태자 신생은 제환공의 외손자로써 외가가 힘이 있는 가문이었고 이에 많은 신하들도 그를 따랐으며 수많은 전투에서도 승리해 큰 공을 세웠지만 교활한 여희의 모함을 받아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이때 나머지 두 아들 중이와 이오는 아버지 진헌공을 만나고 있었죠.

이에 여희는 거침없이 나머지 두 명의 공자 중이와 이오도 모함하기 시작했습니다.

진헌공에게 바쳤던 음식에 신생이 독을 넣었다는 사실을 중이와 이오도 알고 있었다고 아뢴 것이었죠.

 

이 소식을 들은 두 아들은 그대로 도성에 머물러 있다가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겠다 생각해 아버지 헌공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자신들의 땅으로 도망치듯 떠나버렸습니다.

 

헌공은 두 아들이 자신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돌아간 것에 화가 났고 이러한 행동은 형이던 신생처럼 역모를 꾀할 생각이 있다는 것으로 여겼죠.

이에 헌공은 군대를 보내 중이가 지키고 있던 포성을 치게 했습니다.

 

그러자 환관이던 발제가 중이에게 얼른 항복하고 자진하라고 하였으나 중이는 담을 넘어 도망쳐버렸는데 그를 뒤쫓던 발제가 칼을 휘둘렀지만 다행히 소맷자락만 잘리고 도망에 성공해 살아서 적나라로 도망갈 수 있었죠.

이 이후로 중이는 19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방랑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후 헌공은 이번엔 군대를 이오가 있던 굴읍으로 파견했습니다.

그러자 이오는 처음엔 방어하며 버티다 결국 양나라로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 아들 모두를 내쫓은 여희는 헌공에게 아뢰어 결국 아들 해제를 헌공의 후계자로 만드는데 성공했죠.

 

그러다 기원전 651년 헌공이 병에 들어 사망하자 뒤를 이어 해제가 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희와 해제에게는 자신들을 지지하던 기반이 전혀 없다시피 했기 때문에 곧바로 해제의 지위가 위태로워졌죠.

 

결국 대부 이극이 정변을 일으켜 해제를 몰아내고 둘째 아들인 중이를 왕으로 옹립하려 했지만 헌공이 죽기 전에 후사를 해제로 삼겠다는 유언을 순식에게 남겼는데 헌공의 유지를 이은 순식은 소희의 아들인 탁자를 왕으로 옹립했습니다.

하지만 탁자가 왕이 된 다음 달 이극이 또다시 정변을 일으켜 탁자와 순식 둘 다 죽여버리는 일이 벌어졌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후 이극은 중이에게 연락을 해 진나라로 돌아와 보위에 오르라는 청을 하지만, 중이는 자신을 해하려는 음모라 생각하고 왕에 오르는 것을 거절했고 그래서 다음 순서인 이오가 결국 왕이 되어 진혜공이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 모든 일의 원흉인 여희는 그동안 교활한 모략을 일삼아 수많은 악행을 저지른 죄로 형장으로 끌고 가 수많은 채찍질을 가한 후 거열형을 당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죠.

 

후에 유방이 한나라를 세우고 척부인의 소생을 태자로 삼으려고 할 때 숙손통은 이 여희의 사례를 들며 결사반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는 여태후가 더 잔혹했었죠.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세워 권력을 잡으려고 못된 모략을 일삼다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여희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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