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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유대인 민족 국가를 만들려는 이스라엘과 자신들이 살던 땅을 떠나고 싶지 않은 팔레스타인인의 끝나지 않을것 같은 싸움

by 사탐과탐 2022.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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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민족 국가를 만들려는 이스라엘과 자신들이 살던 땅을 떠나고 싶지 않은 팔레스타인인의 끝나지 않을것 같은 싸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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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월 14일,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아랍인들은 이스라엘 건국을 반대, 거부했고 그렇게 이스라엘과 아랍, 팔레스타인 분쟁은 시작되었죠

오늘은 현재까지도 끝나지 않은 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지난번에 유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한적이 있는데요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이곳에서 유대인들은 번성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했었죠

이 가나안땅이 바로 지금의 이스라엘 영토인 팔레스타인 지역 입니다

 

기원전 15세기 경 이곳에 들어온 유대인들은 이 팔레스타인 땅에 고대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으나 이후 여러차례 외세의 침략을 받았으며 결국 로마에 의해 점령되어 유대인은 전세계로 흩어지게 되었죠

그렇게 로마에 의해 통치되던 팔레스타인 지역은 637년 이슬람교의 믿음 아래 뭉친 아랍인들이 로마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이후 아랍 무슬림들이 들어와 통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이곳 팔레스타인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성지가 함께있는 종교적으로 매우 복잡한 지역이 되어버린 것이죠

시간이 흘러 19세기가 되자 유럽에서는 반유대주의가 고조되면서 유럽인들이 유대인들을 눈엣가시 처럼 여기기 시작하자 유대인들은 유대인들만의 독립국가를 건설하자는 '시오니즘'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유대 국가 건설의 예정지를 성서에서 약속한 땅인 가나안 땅, 바로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정했고 전유럽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은 이곳으로 이주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오니즘 운동으로 인해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인구가 계속해서 늘자 아랍인들의 반발을 사기엔 충분했고 이에 유대인과 아랍인들간의 갈등이 격화 되기 시작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어느날 당시 영국의 외무장관 아서 벨푸어는 미국 내 유대인의 환심을 사 미국을 1차 대전에 끌어들이기 위해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민족 국가 건설을 지지하겠다고 약속한 벨푸어 선언을 했고 이후 유대인들의 이주는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영국은 1차대전에서 독일편에 있던 오스만제국 내의 아랍인들의 협력을 요청하면서 아랍인들에게도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독립국가로의 독립을 약속하는 맥마흔 선언을 했죠

 

영국이 밸푸어 선언과 맥마흔 선언을 동시에 한 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뿐만아니라 중동전쟁이 발발하게 되는 불씨가 되어버렸습니다

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팔레스타인 지역은 영국이 위임통치를 시작했는데요

영국은 유대인 우대 정책을 시행하면서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유대인의 이주가 계속 되었는데 이는 나치 독일의 유대인 박해와 맞물리게 되면서 유대인의 이주는 더욱 가속화 되었죠

 

그렇게 팔레스타인에서의 유대인 비율이 급격히 높아지자 땅 문제나 경제적 문제, 종교 문제 등 여러 문제들이 겹치기 시작하면서 이곳에서의 유대인과 아랍인들의 갈등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마냥 고조되었습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아랍의 협력을 얻기 위해 영국은 유대인 이주를 제한 하고자 했지만 이는 오히려 유대인들의 반발만 야기했으며 결국 둘의 갈등은 해결하지 못한채 이 문제를 1947년에 유엔으로 떠넘겨 버렸죠

 

그 결과 1947년 10월에 유엔은 팔레스타인 지역 중 48%를 아랍지구, 52%를 유대지구로 분할하고 예루살렘은 국제 신탁통치 지역으로 만든다는 결의안이 채택되었습니다

하지만 시오니즘 운동은 팔레스타인에서 아랍인들의 독립을 반대하고 아랍인들을 쫓아낸뒤 오직 유대인들만의 나라를 이루려는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내의 아랍인들을 인정하지 않았죠

 

그래서 당연히 유엔의 결의안에 불만을 가진 양측은 결국 내전으로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내전 중에도 유대인은 1948년 5월 14일 유대인 국가 이스라엘의 건국을 선포했고 그러자 팔레스타인 지역의 아랍인들 뿐만아니라 주위의 아랍국들 역시 이스라엘의 수립을 거부하며 반발하기에 이르렀죠

그렇게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레바논 등의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의 건국과 동시에 선제공격을 가함으로써 그렇게 1차 중동전쟁이 발발하고 말았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런데 수많은 국가의 공격에도 결국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이스라엘은 유엔이 분할했던 지역보다 더 많은 지역을 확보하게 되었죠

그리고 이후 1974년까지 4차례의 걸쳐 중동전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1967년에 발생한 제3차 중동전쟁에서는 이스라엘이 대승을 거두며 전쟁이 발발하고 단 6일만에 종결되었는데요

 

이때 이스라엘은 골란고원, 요르단강 서안지구, 가자지구와 시나이반도를 점령하여 팔레스타인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죠

이렇게 여러차례의 중동전쟁을 거치고나서 수십만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난민이 발생했습니다

또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하는 비밀 저항 조직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결성되어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투쟁을 시작했죠

 

하지만 1979년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의 중재로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에 캠프 데이비드 협정이 체결되면서 이집트는 아랍국 중 최초로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했고 이에 이스라엘도 이집트에게 점령했던 시나이 반도를 되돌려 주면서 서로간에 평화조약을 맺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아랍국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시리아가 돌려달라고 요청한 골란고원도 이스라엘에서 반환을 거부해 갈등은 더욱 고조되었죠

 

또한 PLO의 계속된 저항으로 1982년에는 이스라엘 역시 레바논에 있던 PLO 본부를 공격했으며 팔레스타인인들의 집단적인 반 이스라엘 저항운동인 '인티파다' 까지 계속해서 일어나기도 하면서 아랍국과 이스라엘간의 분쟁은 끊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1989년 소련이 붕괴되고 냉전시대가 해체되자 미국의 도움이 약해질것이 우려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평화를 모색하게 되었고 이에 1993년 9월에 이스라엘과 PLO는 '오슬로 협정'을 체결하게 되었죠

 

이로써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립에 합의했으며 예리코와 가자지구 등 일부 점령지에서 철수했습니다

마침내 1994년 7월 5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립을 공식 선언했죠

하지만 1997년에 팔레스타인인에 대해 강경파였던 네타냐후 총리가 동예루살렘 지역에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강행하자 이에 반발한 팔레스타인과의 충돌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동예루살렘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성지가 모두 모여 있던 곳이죠

당시 서예루살렘에는 주로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었고 동예루살렘에는 주로 팔레스타인인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또한 동예루살렘은 국제법적으로도 이스라엘의 영토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3차 중동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을 점령해버렸고 그곳에 유대인들을 이주시키기위해 정착촌을 만든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영토의 주권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정체성에서 나오기 때문에 유대인들을 계속 유입시켜 인구의 우위를 통해 동예루살렘 영토 주권을 빼앗는 동시에 안정화 시키려는것이 이스라엘의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노골적으로 동예루살렘에 살던 팔레스타인인들을 쫓아내려는 이스라엘의 움직임에 팔레스타인인들은 유대인 정착촌 건설에 반대하고 나섰던 것이죠

 

지금 중국이 티벳이나 위구르등 소수민족 거주지에 한족을 이주시키는것과 비슷한 거라고 볼수있습니다

이후 또다시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평화협정이 다시 이루어 지지만 동예루살렘의 주권을 서로 가지겠다고 주장하며 양측의 대립이 지속되자 협상은 난항을 거듭했죠

그런데 2000년 9월 이스라엘 보수당 총재인 샤론이 동예루살렘 내의 이슬람 성지 알 아크사 모스크를 방문하면서 평화협상은 또다시 파국을 맞게 되었는데요

 

샤론은 매우 극우적 성향의 인물이었는데 그의 이슬람 성지 방문은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이 '알 아크사 모스크'까지 장악하겠다는 메세지로 해석되었던 것이죠

그러자 또 다시 인티파다가 발생했으며 이스라엘이 이를 강력하게 무력진압 하면서 양측의 사이는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었죠

이후 사우디 아라비아의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 왕세자는 한가지 평화안을 제시했는데 아랍국들이 3차 중동 전쟁 때 빼앗긴 영토를 돌려주면 전면적으로 이스라엘과 정치, 경제, 문화 관계를 수립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3차 중동전쟁때 새로 만든 국경선에서 철수하게 된다면 분명히 이스라엘 안보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며 이스라엘의 안보를 해치는 결정은 절대 받아들일수 없고 예루살렘 분할 역시 있을수가 없다라고 하면서 이 평화안 마저 거부 했죠

 

이후로도 미국과 UN, EU, 러시아 등 국제사회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을 종식 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평화안을 제시했고 2005년 9월 12일 이스라엘이 3차 중동전쟁 이후 계속해서 점령해온 가자지구에서 38년만에 완전 철수하면서 잠시나마 평화가 찾아온듯 했습니다

 

그러나 2006년에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이슬람주의 강경파이자 정당인 하마스가 다수당을 차지하면서 평화는 다시 깨지기 시작하는데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다시 공격과 보복의 악순환이 반복되기 시작했죠

이에 이스라엘은 곧바로 경제 제재조치를 취했으며 그들의 무자비한 공격을 저지하겠다는 명분으로 유대인 정착촌이 있는 서안지구에 장벽과 검문소를 설치하면서 서안과 가자 지구를 봉쇄했습니다

 

또한 2008년 12월에는 하마스의 본거지를 궤멸시킨다는 명분으로 공군과 육군을 동원하여 가자지구를 공격하기까지 했죠

그리고 2009년에 이스라엘 총리로 극우파였던 네타냐후가 재취임하면서 양측간의 갈등은 더 깊어졌습니다

게다가 2012년 2014년에도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에 계속된 교전으로 수많은 팔레스타인인이 죽거나 다쳤으며 이에 국제사회가 개입하여 양국간의 휴전 합의를 이끌어 냈지만 양측은 언제든지 다시 무력 충돌이 벌어질수 있는 그런 위태한 상황이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런데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는 서안지구에 유대인 정착촌을 확대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심기를 계속 건드리자 유엔 안보리에서는 이스라엘에 정착촌 건설을 중단하라고 했지만 이스라엘은 이 마저도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2018년 7월에 이스라엘을 ‘유대국가’로 선언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인구의 20% 이상이나 차지하는 팔레스타인인의 권리를 배제시켜 버리기 까지 했죠

 

과거에는 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은 아랍과 이슬람에 대한 문제로 받아 들여 많은 아랍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고 아랍국가들도 더이상 적극적이지 않은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간의 평화협정인 아브라함 협정이 체결되면서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 여러 아랍국가들은 명분이나 대의보다는 자국의 경제적, 정치적 이득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앞으로도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아랍 국가의 숫자는 더 늘어날것으로 보이죠

 

그러면 아랍국가들의 지원이 없는 팔레스타인은 시간이 갈수록 이스라엘과 동등한 입장에서 평화 협정를 하는건 어려워 질 것이고 그러면 그럴수록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세계에 알리고자 더 과격해 질수도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이스라엘에서도 네타냐후 총리에 이어 극우적 성향의 나프탈리 베네트 총리가 취임했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사이는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좋아질것 같지는 않아 보이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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