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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임해군. 선조의 첫째 아들이었지만 세자자리를 동생인 광해군에게 빼앗긴 이유

by 사탐과탐 2024.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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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 첫째 아들이었지만 세자자리를 동생인 광해군에게 빼앗긴 이유
임해군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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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에게는 여러명의 아들들이 있었는데요

 

그 중 둘째아들이던 광해군이 세자가 됩니다

 

하지만 그땐 첫째아들인 임해군도 살아있었는데

그를 제치고 둘째인 광해군이 된것이죠

 

그렇다면 임해군은 어쩌다 세자자리를 동생에게 빼앗기고 만것일까요?

 

오늘은 선조의 첫째아들인 임해군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그는 1572년, 선조와 공빈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는데요

 

임해군이 5살이 되었을때 어머니인 공빈 김씨가 23살의 젊은나이에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그리고 임해군과 광해군은 이후 의인왕후의 손에서 자라게 되는데

광해군의 나이는 고작 2살밖에 되지 않아서 어머니를 기억하지 못했던 반면

임해군은 어머니인 공빈김씨의 사랑을 받고 자라면서

얼굴이나 목소리 등 모든걸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의인왕후와는 사이가 썩 좋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 이후 어머니가 일찍 죽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의 성격은 비뚤어지기 시작했죠

 

그러던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선조는 첫째인 임해군 말고 둘째인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했는데

그 이유는 임해군의 성격이 너무나도 포악했기 때문이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선조는 명색이 장남인 임해군을 세자로 삼으려는 생각이 추호도 없었는데요

 

선조 역시 그의 더러운 인성을 보고

그가 왕이 된다면 연산군보다 더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 않은 암군이자 폭군이 될거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죠

 

어쨌든 선조는 임해군은 함경도에, 순화군은 강화도로 보내

병력을 모으라는 명을 내렸지만

이미 강원도는 가토 기요마사의 수중에 넘어간 상태라서

순화군은 함경도에 있던 임해군과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이들은 허무하게 왜군의 포로가 되어버리는데요

 

그들이 포로가 된 이유 또한 정말 가관이죠

 

왕자들 둘다 인성이 워낙 개차반이었다보니 전쟁이 한창중일때도

병력을 모으는 임무는 제쳐두고 둘이서 함께 기생들과 술이나 먹으면서

탱자탱자 놀기 바빴던 것입니다

 

심지어 자신들이 거처하던곳의 관리들과 백성들에게 온갖 행패를 부리고 다니니

결국 참다못한 국경인, 국세필 등 여러 백성들이 가토 기요마사와 내통해

그들을 붙잡아 왜군에 넘겨버렸던 것이죠

 

자국의 왕자들을 잡아 왜군에 넘겼을만큼

백성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다행히(?) 임해군과 순화군은

왜군과의 몇차례 협상후에 풀려날수 있었지만

임해군은 감히 백성들이 자신을 붙잡아 적에게 넘겼다는것 자체를

엄청난 굴욕으로 느끼고 포로생활 이후로는 더욱 막장이 되어갔죠

 

심지어 명나라에서 훗날 장남 임해군이 있는데

왜 차남인 광해군을 세자로 삼았냐고 딴지를 걸자

조선 조정에서는 "임해군은 왜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풀려난뒤

미쳐버렸기 때문에 광해군을 세자로 삼은것이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임해군의 인성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나서도

조정 내의 모두가 알고 있을 정도로 개차반이었던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가 행한 악행은 수도 없이 많은데요

조선왕조 실록에도 여러번에 걸쳐 임해군의 악행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임해군은 확인된 악행만 하더라도 폭행이나 강도, 살인는 기본이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백성들이나 사대부들의 재산을 빼앗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조정으로 올라가는 공물도 약탈을 했는데

이는 세금을 훔친거나 다름없었기에 당시에도 중범죄에 해당했죠

 

그리고 임해군이 일으킨 굉장히 유명한 사건 중 하나가 바로

도승지 유희서를 살해한 사건입니다

 

그렇게 고위 관직자였던 유희서를 죽인 이유도 어이가 없는데

바로 그의 첩실을 빼앗기 위해 강도로 위장해 죽여버렸던 것이죠

 

임해군은 부하였던 김덕윤에게 그를 없애라고 지시했는데

훗날 김덕윤이 체포되고 난 이후

감옥에서 의문사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은 임해군이 범인이라고 지목하기도 했다고 하죠

 

또한 당시 영의정이던 이덕형은 살해당한 유희서의 고종사촌이었는데

유희서 사건에 대해 임해군을 처벌해야한다고 선조에게 상소를 올렸습니다

 

이에 선조도 임해군을 불러 크게 화를 내었는데

임해군이 자신이 그런게 아니라고 끝까지 발뺌을 하자

선조는 임해군에게 아무 처벌도 내리지 않고 그냥 사건을 넘겨버렸다고 하죠

 

이에 이덕형은 사직서를 내고 관직을 떠나버렸고

이후 선조는 더 어이없는 짓을 저질러 버리는데요

 

임해군을 수사했던 포도대장을 파면한 뒤 감옥에 하옥시켜버렸으며

임해군을 고발했던 유희서의 아들 유일에게는 곤장 100대를 때리고

유배를 보내버렸습니다

 

심지어 유일은 처음엔 감히 왕자를 고발했던죄로 사형에 처해질뻔 했지만

유희서의 어머니가 손자만은 살려달라고 간청해 특별히 선처해줘서

곤장 100대에 유배형으로 끝냈다고 하죠

 

그러자 너무나 어이가 없었던 사관이 실록에 댓글을 달아놓았는데

'선조는 도리에 어긋났고 실책을 저질렀고 끝맺음을 잘못했다' 등등의

악플을 달았던 것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 외에도 궁노(궁궐에 소속된 노비)들을 풀어 남의 땅을 빼앗고

돈이 많은 상인들에게 누명을 씌우거나 협박해 돈을 삥뜯었으며

심지어 사찰에서 시주받은 돈까지 빼앗아갔고

아무 죄없는 남자를 죽이고 그 남자의 아내를 강제로

궁노와 결혼 시켜버리는 등의 악행도 서슴없이 저질렀죠

 

심지어 임해군을 따르는 무뢰배나 시정잡배들, 그리고 가노들도

임해군을 믿고 오만방자하게 행동하기도 하고

심지어 그를 사칭하면서 악행을 저질렀는데

선조는 행실이 더러운 임해군을 불러 혼낼 생각은 하지않고

사칭한 무뢰배들만 잡아 처벌했던 것입니다

 

또한 예전에 임해군과 함께 왜군의 포로가 되었던 순화군도

임해군 못지않은 악행을 저질렀는데

매년 10여명의 무고한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다보니

백성들은 순화군을 호환 피하듯 피해다녔다고 하죠

 

그런데 실록에서는 순화군의 악행이 임해군보다는 덜했다고 하는거 보면

임해군의 막장악행은 얼마나 심했는지 대충은 짐작이 갑니다

 

임해군의 악행이 나날이 심해지자

대간들과 삼사, 사헌부까지 임해군의 죄를 묻고 처벌할것을 청했지만

선조는 모두 묵살해버렸으며

이후에도 임해군 뿐만아니라 정원군과 순화군 역시

끊임없이 탄핵을 받았지만 선조가 감싸줬던 덕에

아무일 없이 무사했다고 하죠

 

그러다보니 임해군은 더욱 기고만장해졌고

계속해서 미친듯이 날뛰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임해군은 친동생이던 광해군 때문에

자신이 세자가 되지 못했다고 생각해

광해군을 굉장히 미워했다고 하는데요

 

광해군 역시 친형인 임해군이 왕자로써 모범은 보이지 않고

악행을 저지르고 다니는것에 치를 떨었다고 하죠

 

그렇게 친형제 사이도 굉장히 나빴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임해군이 미쳐 날뛰는것도 선조가 승하하고 나서 종지부를 찍게 되는데요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자마자 조정 대신들은 기다렸다는듯이

일제히 임해군을 처벌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리기 시작했던 것이죠

 

심지어 당파 가리지 않고 서인, 북인, 남인 등

모두가 임해군을 빨리 처단하라는 상소가 매일 산더미 같이 쌓였던 것입니다

 

또한 임해군이 사병을 양성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왔는데

이때 광해군은 내 형이 그럴리가 없다며 형식적이나마

임해군을 감싸주기도 했다고 하죠

 

하지만 얼마안가 임해군을 잡아들이라 명했고

그렇게 임해군은 진도에 안치되었습니다

 

임해군은 잡히기 직전까지 정신 못차리고 허구헌날 시정잡배들과 어울리고 다녔는데

자신을 잡으러 온다는 소식을 듣자 여장을 하면서까지 도망치려고 했다고 하죠

 

그러지 않아도 역적이라고 대신들이 탄핵하는 마당에

도망치려고까지 해버렸으니

이는 자신이 역적이라고 말하는것과 다름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 임해군의 종들까지 모조리 잡혀와 혹독한 고문을 당했는데

종 1명이 고문을 이기지 못해 무기들을 땅 밑에 숨겨두었다고 진술해버린 것이죠

 

이에 광해군은 "바보가 아닌이상 벌써 파냈을거다" 라고

답정너 같은 모습을 보이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백 하기를 강요했고

이후 수많은 대신들은 임해군을 대역죄로 다스려 처형해야 된다고 진언했지만

광해군은 받아들이지 않은채

결국 임해군은 교동도로 유배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안가 귀양지에서 임해군은 의문사 하고 말았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조선왕조 실록 광해군일기에는 "수장 이정표가 핍박하여

임해군에게 독을 마시게 했으나 따르지 않자

목을 졸라 죽였다." 라고 되어 있지만

그 밑에 추가로 임해군이 어떻게 죽었는지 언제 죽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적혀있다고 하죠

 

또한 한 인조반정 이후 임해군의 가족들이

임해군에게 음식을 넣어주던 관비에게 물었고

그러자 관비는 그가 독살 당했다고 말했다고는 하지만

반정세력이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조작했을거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부인 허씨가 관을 열었을때 보니

목에는 새끼줄을 감았던 붉은 흔적이 있었다 라고도 기록되어 있는데

사실 임해군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사실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죠

 

하지만 그가 저지른 악행만큼

그 역시 말년엔 어떤식으로든 비참하게 죽어갔을것 같긴 하네요

 

그리고 선조가 왜 지금까지

그렇게 욕을 처먹고 있는지도 확실히 알게 된것 같죠

 

지금까지 선조의 개막장 아들 원탑

임해군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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