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도 야한 그림(만화) 시장이 있듯이 과거 한중일에도 춘화라 하여 성욕을 자극시켰던 19금의 야한 그림이 널리 성행했었습니다.
유교의 나라 조선시대에는 의외로 양반들 중심으로 인기가 좋았었는데요.
야릇하고 성욕을 자극하는 춘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춘화는 굉장히 오래전부터 그려져오기 시작했죠.
보통 춘화라 하면 옛날 사람들이 그린 에로물이나 야하고 저급한 그림 정도로 치부하지만 성에 대해 굉장히 보수적이던 조선시대에도 춘화는 계속해서 그려졌습니다.
이 일명 하위문화에 저급하다고 치부된 춘화는 채색과 인쇄 기술의 발전을 가져왔고, 제지 기술 또한 발전시켰으며 그리고 성교육을 위한 시각 자료가 되기도 했죠.
이런 장점도 있었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춘화를 무조건 다 때려잡지는 않았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문화가 사회 전반에 자리 잡고 있었던 이유로 성적인 것에는 지극히 보수적이었기에 결혼하는 신랑 신부가 성 지식이 없이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죠.
신랑 신부가 잠자리를 가질 때 지식이 전무하다 보니 항문에 삽입하는 것이 가장 흔한 경우였습니다.
아니면 그냥 신부의 가랑이 사이에 문지르는 경우도 허다했고 심지어는 손만 잡고 자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죠.
그만큼 성에 대한 지식이 없었고 그걸 공유하는 것조차 남사스러워 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결혼하기 전에 미리 춘화를 보여주며 만일에 있을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성교육이 있었던 것입니다.
설마 그런 일이 있겠냐고 하시겠지만 실제로 최근의 중국에서는 임신이 안되는 부부의 불임 원인이 항문 성교를 한 것으로 밝혀진 사례도 있죠.
몇몇 춘화에서는 나이가 든 기생이 어린 기생들에게 춘화를 보여주며 성교육을 시키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기도 하죠.
또한 채색 기술과 인쇄기술의 발전에도 많은 기여를 했는데요.
당시 사람들은 채색이 되어진 컬러풀한 춘화만을 선호했기 때문에 최고의 인쇄기술을 사용했었죠.
춘화 한 장을 찍어 낼려면 색상에 따라 흑색, 적색, 청색, 녹색을 구별하여 목판을 만들었고 그렇게 한 장의 종이로 4개의 목판을 사용해 수많은 컬러 춘화를 찍어 낼 수 있었습니다.
글자만 적힌 책은 고급 서적이라도 검은색만 있으면 되었기 때문에 인쇄기술 발전에는 크게 공헌하지는 못했죠.
춘화는 역사 또한 굉장히 오래 되었는데요.
중국은 무려 기원전 2세기에 토우 등을 이용해서 이런저런 성행위를 표현하기도 했고 한나라 때는 알몸인 남녀가 성행위를 하는 장면을 그린 병풍이 유행하기도 했으며 당나라의 기방에서는 춘화를 병풍으로 만들어 사용했다고 하죠.
심지어 한나라의 재상까지 지낸 진평이란 인물은 취미로 춘화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중국의 4대 기서에는 <삼국지연의>, <서유기>, <수호지> 그리고 <금병매> 가 있는데요.
금병매는 굉장히 수위가 높은 야한 소설로 참 더럽고도 자세하게 온갖 듣도 보도 못한 체위 및 성관계 장면을 매우 적나라하게 묘사해 놓은 걸로 유명하죠.
그만큼 춘화와 금병매는 당시 중국인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고 명나라 때에는 춘화가 크게 유행하며 종이에 그린 것뿐만 아니라 부채, 식기, 그릇, 도자기 등에도 소설 금병매의 장면을 그려 넣기도 했다고 합니다.
우리 한반도에서도 신라시대 때 출토된 토우만 봐도 굉장히 강렬한 묘사를 볼 수 있는데요.
개성 근처에서는 고려 시대의 구리거울이 출토가 되었는데 거기에 마치 춘화처럼 남녀의 성관계 체위를 그대로 묘사해 놓기도 했죠.
그러나 유교문화를 받아들인 조선에서는 이전부터 대대로 내려오던 춘화는 점점 어두운 곳으로 숨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점은 유교를 숭상하며 춘화를 배척하던 양반들이 거의 독점적인 춘화의 소비층이 되었죠.
춘화라는게 기본적으로 채색이 되어야 했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은밀히 거래되면서 가격이 높아지다 보니 돈 없는 백성들이 사서 볼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또한 한국의 춘화는 배경을 그리는데 굉장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요 단순히 남녀 간의 성관계를 묘사하는 것보다 배경과 주인공의 전체적인 조화를 중요시 했던 것이죠.
조선 후기인 18세기가 되면서 서민문학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야한 소설과 함께 춘화 역시 신분을 막론하고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비하는 계층도 많아지고 수요도 많아지며 이에 따라 춘화나 야한 소설은 꽤나 짭짤한 돈벌이가 되었죠.
춘화는 법적으로는 금지되어 있었지만 기본적인 본능인 성욕을 완전히 억압하지는 못했으며 그러다 보니 춘화를 정말 잘 그리던 화가들의 수입은 상당했다고 합니다.
19세기에 유행하던 춘화에서는 김홍도나 신윤복이 그린 춘화라며 짝퉁을 판매한 적도 많은데요.
조선 최고의 화가들이 그린 작품이라고 속여 비싸게 팔기 위해서였죠.
이렇다 보니 정부에서는 춘화나 야한 소설을 만들다 잡히면 이마에 '음란' 이라는 낙인을 찍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선을 넘지 않는 한 심하게 단속을 하지는 않았다고 하죠.
그런데 춘화는 조선시대 내시의 '최악의 적'이기도 했습니다.
조선에서는 중국 내시와는 달리 음경은 그대로 두고 음낭만 제거를 했었는데요.
음낭이 완벽하게 제거되지 않아서 발기가 되는 경우도 존재했었죠.
그래서 궁에서는 정기적으로 내시들에게 춘화를 보여주고 남자로서의 성 기능이 확실히 제거가 된 것이 맞는지 확인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많은 수의 내시들이 이때 적발되어 궁에서 쫓겨났다고도 하죠.
조선에서는 이렇게 그나마 춘화를 탄압하던 것에 반해 성진국 일본에서는 아주 한중일 삼국 중 가장 파이팅이 넘쳤는데요.
헤이안 시대에 중국의 춘화를 수입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이후 '우키요에' 라는 일본만의 독특한 춘화를 만들기에 이르렀죠.
일본의 춘화는 역시 성진국 답게 배경 따윈 개나 줘버리고 남녀의 성행위에 집중된 그림만 그렸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과장되게 표현했으며 그 성행위를 하는 부분만을 화려하게 색칠해서 더욱더 돋보이게 만들었죠.
남녀의 성기는 더 과감하고 생동감 있으며 과장되게 표현했기 때문에 적나라함에 있어서는 한국이든 중국이든 일본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한국과 중국에서는 주로 기생을 주인공으로 표현했던 반면 일본은 상상력이 넘쳤는데요.
일본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여성을 대상으로 만들었죠.
처녀, 유부녀, 귀족 여인들, 공주나 궁녀 등 많은 여자가 춘화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또한 무사들도 칼집에 칼 대신 춘화를 넣고 다닐 정도였다고 하죠.
18세기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갔던 신유한은 일본의 이런 행태를 보고 엄청난 비난을 했는데 "짐승과 같을 정도로 남녀 간의 풍기가 굉장히 문란하며 사람마다 춘화를 지니고 다닐 정도다"라고 기록했다고 합니다.
에도시대부터 '우키요에'가 굉장히 유행하기 시작했는데요.
원래 우키요에는 가부키 배우, 유곽의 유녀, 스모선수 아니면 후지산, 도카이도, 바다 등 풍경, 풍속, 인물 등의 폭넓은 주제를 판화로 찍어낸 것이었죠.
그러나 우키요에로 가장 많이 만들어지고 잘 팔렸던 주제는 다름 아닌 춘화였습니다.
아무래도 화가가 한땀한땀 그린 춘화가 아닌 판화로 찍어낸 춘화이다 보니 가격이 훨씬 저렴해졌기 때문에 수많은 서민들에게도 춘화가 널리 보급되는 중요한 역할을 했죠.
하지만 서민이든 귀족이든 모든 신분의 인물들이 좋아했던 춘화는 사진이 나오면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아직도 야한 만화 같은 성인용 만화가 많이 나오는 걸 보면 춘화를 그리는 문화가 완전 쇠락하진 않은 거 같긴 하네요.
춘화를 저급한 문화라고 무시만 할 수도 없는 것이 춘화가 예술적 가치가 없다고 비하하기도 하지만 춘화는 인류 역사에 엄청난 공헌을 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한국, 중국, 일본의 춘화에 대한 야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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