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 탐구284 문자명왕. 고구려가 강대국에서 쇠퇴기로 접어드는 과도기때 나라를 다스린 왕 고구려가 강대국에서 쇠퇴기로 접어드는 과도기때 나라를 다스린 왕문자명왕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고구려 역사의 흐름 속에서 문자명왕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제21대 국왕으로서 그는 고구려의 전성기와 쇠퇴기 사이를 이끌었죠문자명왕은 장수왕의 손자로, 고구려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장수왕에 이어 왕위에 올랐는데요할아버지의 업적이 워낙 대단했기 때문에 부담이 됐던 것일까요그는 어쩌다가 고구려의 전성기와 쇠퇴기 중간에 끼게 된 군주가 된 것인지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문자명왕은 492년 1월에 국왕에 올라 27년간의 고구려 통치를 시작했습니다그의 본명은 나운으로 알려져 있으며, 명리호, 개운, 고운 등의 이름도 전해지는데요 문자명왕의 즉위 과정은 특별했습니다그의 아버지 고조다가 할아버지인 장수왕보다.. 2024. 10. 11. 장수왕. 고구려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최강의 군주 고구려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최강의 군주 장수왕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고구려의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를 꼽으라면 단연 장수왕 시대를 들 수 있습니다긴 수명을 뜻하는 시호 그대로, 394년에 태어나 491년까지 97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았던 장수왕은 그의 긴 생애만큼이나 1세기에 걸쳐 고구려 역사와 함께 했었는데요 광개토대왕의 맏아들로 태어나 18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79년 2개월이라는 기나긴 재위 기간 동안 고구려를 동아시아 최강국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그의 치세 동안 고구려는 중국의 남북조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명실상부한 초강대국의 지위를 누렸죠 지금부터 장수왕의 업적을 자세히 살펴보며, 그가 어떻게 고구려를 동아시아의 초강대국으로 이끌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장수왕은 394년에 광개토대왕.. 2024. 10. 2. 광개토대왕.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자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자, 광개토대왕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한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정복자로 꼽히는 인물은 단연코 광개토대왕입니다그의 칭호는 '땅을 널리 개척한 왕'이라는 뜻을 담고 있죠18세의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올라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고구려를 동아시아의 강대국으로 만들어냈습니다광개토대왕은 어떻게 해서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인지 지금부터 그의 일대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광개토대왕은 374년, 당시 태자였던 고국양왕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그의 이름은 담덕이었죠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자질을 보였던 그는 386년에 13세의 나이에 태자로 책봉되었고, 391년에 18세의 나이로 고구려의 왕위에 올랐습니다 광개토대왕이 즉위할 당시 고구려를 둘러싼 정세는 그리.. 2024. 10. 1. 안시성주. 당태종을 막아낸 엄청난 업적을 남겼지만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한국 역사상 최고로 미스테리한 인물! 양만춘으로 불렸지만 사실 아니었다!?당태종을 막아낸 엄청난 업적을 남겼지만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한국 역사상 최고로 미스테리한 인물 안시성주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당 태종 이세민은 수양제 이후 혼란스럽던 중원을 평정하면서중국사 최고의 성군으로 평가받는 사람 중 한 명이죠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흑역사가 있었으니 바로 고구려 정벌에 실패했던 일인데요 수나라와는 달리 초반의 전투에서는 승리를 거두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 채 전쟁을 계속 이어가던 당태종은 안시성 전투에서 패배를 당하면서 결국 본국으로 물러나게 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때 당태종에게 패배를 안긴 안시성의 대장은 그저 '안시성주'라는 기록으로 남아있을 뿐 정확한 이름을 알 수가 없죠 그런데 17세기 초부터 조선의 지식인들 중.. 2024. 9. 27. 고국양왕. 재평가가 시급한 고구려의 숨은 명군. 재평가가 시급한 고구려의 숨은 명군, 고국양왕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고구려 최전성기의 기틀을 마련한 소수림왕, 그리고 고구려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광개토대왕의 업적은 너무나 위대합니다 그런데 이 두 명군 사이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이 있는데요 바로 고구려의 18대 국왕 '고국양왕'입니다 소수림왕의 동생이자 광개토대왕의 아버지인 그는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종종 간과되곤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는 단순히 위대한 형과 아들 사이의 '평범한' 통치자였을까요?오늘은 고국양왕의 업적과 그의 시대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그의 진정한 가치를 재조명해보고자 합니다 384년 11월, 소수림왕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그의 동생인 고국양왕이 왕위에 올랐습니다그의 이름은 '이련' 또는 '어지지'라고 전해지는데요소수림왕이 .. 2024. 9. 26. 소수림왕. 아버지가 전쟁터에서 전사하고나서 망하기 직전이던 고구려를 다시 일으킨 왕 아버지가 전쟁터에서 전사하고나서 망하기 직전이던 고구려를 다시 일으킨 왕소수림왕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오늘은 아버지인 고국원왕의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이루어 주었던 소수림왕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그는 하마터면 전성기는커녕 회복 불능으로 빠진 채 극단적으로는 나라가 망할 수도 있었던 위기의 고구려를 다시 일으킨 개혁군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명군 중 한 명이었죠 371년 10월, 고구려는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습니다16대 국왕인 '고국원왕'이 평양성에서 백제 '근초고왕'이 이끄는 군대와의 전투 중 화살에 맞아 전사한 것입니다당시 고구려는 안과 밖으로 큰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는데요 대외적으로는 정복왕 근초고왕이 이끄는 백제의 맹렬한 공세에 시달렸고, 내부적으로는 북쪽의 신흥 강국이었던 전연의 침략으로 수도 환.. 2024. 9. 24. 전쟁과 약탈만 한게 아니었던 고구려의 막강한 경제력 전쟁과 약탈만 한게 아니었던 고구려의 막강한 경제력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고구려의 영토는 척박한 산지 지형이 많아서주로 주변국가들을 약탈하는 것으로 필요한 물건들을 구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물론 고구려가 세워진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부터 꾸준히 약탈을 통해 나라의 경제를 유지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고구려가 약탈만을 통해 나라를 유지했던 것은 아니고 시간이 지날수록 자체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었다고 하죠 지금부터 고구려의 경제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고구려가 건국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초기에는 약탈 중심의 경제 체제를 유지했다고 하죠 그들의 영토는 대부분이 농사를 짓기에 불리한 지역이었으며인구 역시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구가 적다 보니 대규모 병사들을 동원할 능력 또한 없었기 때.. 2024. 9. 21. 미천왕. 소금장수에서 고구려 전성기의 뿌리를 마련한 명군이었지만 마지막이 최악이었던 고구려의 왕 소금장수에서 고구려 전성기의 뿌리를 마련한 명군이었지만마지막이 최악이었던 고구려의 왕 미천왕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고구려 제15대 국왕이었던 '미천왕'의 인생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대하드라마와 같습니다왕족의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온갖 고난을 겪어야 했고, 소금장수로 연명하다 극적으로 왕위에 오른 그의 이야기는 지금 봐도 정말 신기할 정도입니다 미천왕은 300년부터 331년까지 32년간 고구려를 통치하며 영토 확장과 국력을 키우는데 힘썼습니다그의 치세 동안 고구려는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에서 강국으로 떠오르게 되면서 고구려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기틀을 마련할 정도로 명군이었지만 동시에 한국사 역대급으로 고인능욕을 당한 비운의 왕이기도 했죠오늘은 이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던 미천왕의 이야기를 자세.. 2024. 9. 18. 이전 1 2 3 4 5 ··· 3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