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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과거 일본의 잔인하고 무시무시한 고문 방법과 사형 방법

by 사탐과탐 2023.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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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일본의 잔인하고 무시무시한 고문 방법과 사형 방법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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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과거 한국과 중국의 무시무시했던 형벌과 사형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요

오늘은 과거 일본에 있었던 고문과 사형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일본 에도시대에는 6가지의 사형 방법이 있었죠

바로 '게슈닌' 이라고 불리는 참수형, '시자이' 라고 불리는 교수형 또는 참수형, 그리고 '고쿠몬' 이라고 불리는 효수형, '하리쓰케' 라고 불리는 책형, '가자이' 라고 불리는 화형, 그리고 '노코기리비키' 라는 톱질형(?) 입니다

 

참수형이나 교수형, 그리고 화형은 다들 생각하시는 것과 같은 방법인데요

참수형이나 교수형을 당하는것이 여섯가지 방법중 가장 편안하고 가벼운 축에 속했습니다

참수형은 주로 서민들에게 적용 되었고 재산몰수 같은건 없었죠

그러나 교수형은 주로 도적이나 강도 등에게 적용했는데 일단 교수형이나 참수형으로 죄인의 목숨을 끊은 후 칼이 잘드는지 시험해 보기위해 죄인들의 시신에다가 베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고 하죠

 

또한 사형 이후 조리돌림 당하기도 했고 죄인의 재산이 몰수 당했으며 시신을 매장하지도 못하고, 애도하는것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던 사형방법과는 조금 다른 방법도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리쓰케와 노코기리비키 라는 방법이죠

 

하리쓰케는 책형으로 죄인을 나무 십자가에 묶은 뒤 창으로 죄인을 찌르는 방법이었는데 옆구리에서 들어가서 어깨에서 나오게 하는 굉장히 무시무시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래도 죽지 않으면 마지막으로 목을 찔러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던 형벌이죠

 

하지만 더 잔인하고 끔찍한 처형방법이 있었는데요

일본 전국시대의 최강자로 잘 알려져 있는 오다 노부나가에게 멸망한 가문의 수는 굉장히 많았었죠

그러다보니 멸망한 가문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를 죽이고 싶어했을 정도로 증오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래서 틈만나면 오다 노부나가를 암살하려는 시도도 많았던 것이죠

오다 노부나가의 공격으로 멸망한 스기타니 가문 중 스기타니 젠쥬보 라는 인물은 그를 암살하기 위해 1570년 5월 6일, 말을 타고 길을 가던 오다에게 총 2발을 발사했고 그렇게 오다 노부나가는 총을 맞고 말에서 떨어져 죽은 줄 알았지만 총알이 갑옷을 뚫지 못했기 때문에 오다 노부나가는 살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오다는 곧장 범인을 잡아오라 명했고 얼마안가 붙잡히고 말았는데 그때 그는 '노코기리비키' 라는 형을 받고 세상을 떠나게 되죠

6가지 사형 방법 중 가장 최고형이자 가장 잔인하고 무시무시한 방법이던 노코기리히키는 결박한 죄인을 땅에 목만 나오게 묻어버립니다

이후 톱을 이용해 목에 작은 상처를 내는데 그 피를 묻힌 톱을 죄인의 옆에 두었죠

 

그러면 그 죄인에게 피해를 받은 사람들이나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번씩 죄인의 목을 톱으로 켜는데 그렇게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하던 형벌이었습니다

이때 죄인이 지르는 비명소리 때문에 입에 천을 집어 넣은뒤에 집행했다고 하죠

심지어 죄인이 한번에 죽게하는 일이 없도록 관리를 그곳에 두고 감시하는 역할까지 있었다고 하니 죄인에게는 얼마나 무서운 형벌이었는지 짐작할수 있겠죠

하지만 사형을 처하기 전에 반드시 재판을 거쳐야 했는데요

당시에는 현대와는 다르게 명백한 증거를 들이대고 판결을 내리지 않고 죄인의 자백을 무조건 이끌어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일본 뿐만아니라 한국이나 중국에서도 매우 가혹한 고문을 가했고 고문을 받다 세상을 떠난 사람도 많았으며 죄를 짓지 않았지만 너무 고통스러웠던 나머지 없던 죄를 자백하는 경우도 많았죠

 

일본 에도시대 때도 상당히 무섭고 잔인한 고문들이 많았습니다

그중 일본인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가장 잔인하다고 하는 고문기술 '아나즈리'가 있죠

이는 구멍위에 거꾸로 매다는 고문이었는데요

 

1549년 처음 일본에 기독교가 전파되었지만 나중에는 기독교 금지령이 내려지면서 전국적 규모로 기독교인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붙잡힌 기독교 신자들은 감옥에 갇혀 있다가 배교하지 않는다면 하나 둘씩 끌고가 고문을 가했던 것이죠

여자는 옷이 다 벗겨진채 중요부위를 불로 지지기도 했으며 아나즈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 아나즈리는 땅을 깊이 판뒤 그 위에 거꾸로 사람을 매달았는데 이때 죄인의 내장이 밑으로 쳐져 죽지 않도록 몸을 포대로 둘둘 말아 밧줄로 중간중간을 단단히 묶었다고 하죠

거기다가 머리에 피가 쏠리니 관자놀이에 작은 구멍을 뚫어 피가 빠져나오게 했는데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어갔던 것입니다

심지어 판 땅에는 오물을 채워 넣기도 했죠

 

이정도면 처음에 말했던 참수형이나 교수형이 왜 가장 가벼운 축에 속했는지 알것 같네요

이 외에 '무치우치'라는 고문은 채찍질을 가하는 고문으로 죄인의 상의를 벗기고 양손을 등뒤로 묶은 뒤 채찍으로 어깨부위를 때리는 고문이었죠

그렇게 맞다가 피부가 찢어져 피가나는 경우엔 모래로 지혈을 하고나서 다시 때렸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시다키'라는 고문 방법은 '돌 끌어안기'로 조선의 압슬형과 비슷한데요

기둥에 죄인의 몸과 양팔을 묶은 뒤 삼각으로 날카롭게 홈이 파인 삼각판 위에 꿇어 앉도록 하죠

그리고 허벅지 위에 무겁고 큰 돌을 올려놓는것입니다

당시 올리던 돌의 무게는 한장에 약 50kg에 달했으며 돌이 한장한장 올라가면서 죄인의 다리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을 맞게 되는것이죠

 

최대 10장까지 올렸다고 하고 5장 정도만 올려도 대체적으로 기절하고 말았으며 간혹 6~7장의 돌을 올려도 버티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들은 온몸이 시퍼렇게 변하고 입으로 피를 토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목숨을 잃는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올려놓은 돌을 마구 흔들기도 했는데 이때 고통은 훨씬 가중되었다고 하죠

 

다음은 '에비제메'라고 불리는 고문으로 에비란 일본어로 새우란 뜻입니다

에비제메는 양팔을 뒤로 돌려 묶은 상태에서 양반다리(아빠다리)로 앉게 한다음 허리와 머리를 앞으로 굽히게 하죠

그리고 양발을 당겨올려 턱에 닿으면 그 상태로 또 밧줄로 묶어 버리는 방법입니다

이 모습이 마치 등이 굽은 새우와 비슷하다 하고 또한 오랫동안 있으면 피부색이 붉어진다 해서 에비(새우)제메라는 이름을 붙인것이죠

 

이 고문을 받게 되면 처음 자세를 취할때부터 굉장히 고통스러운데 자세가 잡히고 나서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혈액 순환에도 장애가 오고 30분 정도가 지나면 온몸이 보라색으로 변하며 의식마저 흐릿해진다고 합니다

진짜 자기가 하지 않은 일마저 자백할수밖에 없겠네요

 

또한 '쯔리제메' 라는 고문 방법은 죄인의 양팔을 등 뒤로하고 꽁꽁 묶은 다음 공중에 매다는 방법입니다

죄인의 양팔을 묶은 이유는 이러지 않으면 어깨뼈가 빠져버리기 때문이었죠

이렇게 매달리게 되면 죄인의 몸무게가 그대로 어깨와 팔에 실리게 되어 엄청난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몽둥이 같은걸로 두들겨 패면서 자백을 강요했던 것이죠

 

이 방법들을 보면 없는죄도 만들어서라도 실토할것 같은 방법들인것 같은데요

이렇게 자백을 받고나면 재판에 따라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았다고 하죠

여기까지 과거 일본에 있었던 유명한 고문 방법과 사형방법에 대해 이야기 해봤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까지 악랄하고 잔인할수 있는지 정말 충격적이고 무서울 지경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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