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으로 금융거래 하다가는 나라 망한다고 난리났었던 금융실명제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1993년 대한민국 100대 스타투표에서 굉장한 일이 벌어집니다
5위까지의 순위를 말씀드리면 5위는 서태지, 4위는 김원준, 3위는 허재, 2위는 최진실 그리고 대망의 1위는 연예계 스포츠계의 톱스타들을 제치고 당당히 김영삼 대통령이 차지하게 되었죠
그 이유는 그가 실시한 금융실명제 덕분이었는데요
오늘은 이 금융실명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2023년은 금융실명제를 실시한지 30년이 되는 해이죠
1993년 8월 12일 목요일 저녁 7시 45분 가족들이 도란도란 저녁을 먹거나 저녁을 다 먹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시간에 갑자기 KBS 뉴스에 김영삼 대통령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나서 대통령 긴급명령권을 발동해 금융실명제를 전격 실시 하겠다고 말했죠
이 시간 이후 모든 금융거래는 실명으로만 이루어진다고 선포했습니다
은행에서 돈을 인출할때나 계좌를 만들때 신분을 확인하겠다고 한것이죠
그리고 3천만원 이상을 출금하면 국세청에 통보하고 자금의 출처를 조사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로 따지면 이게 뭔소린가 싶지만 당시에는 실명이 아니어도 모든 금융거래를 할수 있었던 것이죠
통장을 만들때 내 이름이 아니라 김개똥 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도 아무 문제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TV를 보고있던 모든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는데요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이 한국 경제가 이제 거덜날거라며 곧 나라가 망할것 같이 선동을 하기 시작했죠
그러자 국민들도 금융거래를 할때 뭔가 잘못되는거 아닌가 싶은 불안심리가 가중되면서 은행에 돈을 맡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나라에 혼란을 가져올수도 있는 금융실명제를 도대체 왜 하게 된것일까요?
사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저축을 장려하기 위해 예금주의 가명이나 차명, 그리고 무기명으로도 금융거래를 허용 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저축도 늘어나긴 했지만 그만큼 범죄도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온갖 부패와 비리의 온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세금을 내기 싫으면 차명으로 만든 계좌에 돈을 나눠 넣어 놓기만 해도 본인이 자백을 하지 않는한 걸리지 않았고 수사기관이나 세무당국에서도 어떤 사람이 정확히 얼마를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가 없었죠
거기다가 막대한 자금이 정치쪽으로 흘러 들어가는데에 차명계좌가 이용되었는데 마음만 먹으면 돈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외엔 그 누구도 알수없게 만들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부자들은 자식들에게 그냥 돈을 줘도 증여세는 안내도 되었죠
그리고 차명계좌는 극악 범죄였던 납치, 유괴 사건에도 자주 이용되었습니다
계좌의 실 소유주가 누군지 추적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계좌로 몸값을 받기도 한것이죠
다행히 당시엔 돈을 인출하려면 은행에 직접 갔어야 했기 때문에 형사들은 범인들이 올만한 은행지점에 잠복해있다가 현장에서 돈을 인출하는 범인을 잡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수많은 범죄를 야기하고 심지어 금액 규모가 어마무시할 정도였으니 이를 바로 잡긴 잡아야 했던 것이죠
그렇게 금융실명제는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를 뿌리 뽑고 우리나라 내수경제에 투명도를 높이자는 의도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사실 김영삼 대통령이 이것을 시행하기 전에 두번의 시도가 있긴 했었는데요
1982년, 이철희 장영자 부부 어음사기 사건이 터졌는데 문제는 이 사기꾼들이 당시 대통령이던 전두환과 인척관계 였던 것입니다
다들 알다시피 전두환 역시 수천억을 해먹었었기 때문에 금융실명제 이전 금융 상황을 잘 이용해 먹고 있었는데 어음 사기 사건 때문에 마지못해 금융실명제 실시를 발표했던 것이죠
하지만 제대로 시행되지는 못한채 무산되었고 훗날 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이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자 부동산 열풍을 진정시키려는 목적에서 다시 검토했지만 역시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만큼 금융실명제를 실시하기엔 반대여론도 있었을 뿐만아니라 쉽지 않았던 것이죠
그런 상황을 의식해서 인지 김영삼 정권에서는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케하는 철저한 보안속에서 금융실명제의 준비와 발표가 이루어졌습니다
금융실명제를 준비하던 사람들은 과천 주공아파트 한채를 빌린뒤 가족이나 동료들에게 해외 출장을 간다하고 짐을 싸고 집을나와 그곳에서 숙식을 하면서 비밀리에 작업을 했던 것이죠
심지어 가족들이 공항까지 마중을 나오면 진짜로 일본으로 출국했다가 몰래 다시 귀국해 과천으로 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두달간 과천 아파트에서 일을 하는데 한번 들어가면 끝나기전엔 현관문을 나설수 없었고 쓸데없이 창문 근처에서 서성대지 못하는 수칙이 있을정도로 철통 보안속에 준비를 해나갔죠
얼마나 철저히 보안유지가 되었었냐면 당시 국무총리이던 황인성도 금융실명제를 추진한다더라 정도만 알았지 전혀 세부내용이나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몰랐고 당시 박재윤 경제수석은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또한 애매하게 목요일 저녁에 발표한 이유도 있었는데요
발표하고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은행에 몰려가 급하게 돈을 인출하는 뱅크런 사태가 일어날수도 있었기 때문에 은행문이 모두 닫힌 시간에 발표를 했던 것이죠
원래는 은행에서도 준비할 여유를 주고 충격을 최소화 하려는 목적으로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하필이면 일요일이 8월 15일 광복절이었고 만약 더 미뤘다가는 비밀이 새어나갈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발표시기가 조금 더 앞당겨 진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김영삼 대통령은 정석대로 국회에서 입법절차를 밟았다가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검은 돈들이 어떠한 경로로든 다 빠져나갈테고 기득권들의 막대한 저항이 있을것이라 생각해 대통령 긴급명령이란 형식으로 갑자기 발표해버리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던 것이죠
그렇게 하룻밤사이에 대한민국이 달라져 버렸습니다
며칠동안 나라 전체가 떠들썩하고 마치 얼마안가 한국의 경제가 파탄날것이라며 난리가 났죠
대통령 명령에 따라 전국의 은행 및 금융기관은 오후 2시에 문을 열었고 모든 금융기관은 돈을 인출하거나 실명으로 전환 하려는 손님들로 아비규환이 펼쳐졌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돈을 인출 하려고 하면 그냥 줬던 은행에서 갑자기 신분증을 요구하자 국민들은 어리둥절해 했죠
평소엔 1분도 안걸리던 은행 업무가 신분증을 확인하느라 시간이 더 걸리게 되면서 항의하는 사람도 수두룩 했습니다
또한 은행 출입문 앞에서 실명 전환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는 정치인, 고위공직자, 사채업자들이 넘쳐났죠
그리고 불안심리 때문에 은행에 돈을 맡기지 않으려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또한 자신의 명의를 남한테 빌려줬던 사람이 돈을 인출해버리는 사건이 있었지만 그 돈의 실제 주인은 그돈이 내것이라고 증명할 길이 없어서 무죄판결을 받기도 했죠
뿐만아니라 금융실명제의 충격으로 투자심리가 얼어붙어 약 천여개의 종목이 하한가를 쳐버렸으며 사채도 쉽게 이용할수 없게 되자 사채시장 역시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아무도 모르게 숨기고 있었지만 대기업의 사업주와 그 가족들이 가지고 있던 차명 주식을 처리하는 문제 때문에 기업들도 난리가 났고 기업들이 몰래 굴리고 있던 검은 돈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골머리를 썩혀야 했죠
하지만 나라가 망할것 같던 혼란은 생각보다 빠르게 수습되기 시작했는데요
사람들은 툴툴대면서도 빨리 적응해 나갔고 고작 이틀만에 혼란은 사그라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실명전환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가명 계좌 95%가 실명으로 바꿔 놓았다고 하죠
금융실명제 도입 이후 각종 불법거래나 나쁜 관행들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세금 환수율도 올라갔습니다
또한 아예 없앨수 없었던 정치자금 비리도 많이 줄어들었는데 금액 규모면에서도 확실히 많이 작아졌죠
거기다가 은행들에서도 여러 금융 상품을 내놓으며 경쟁하기 시작하면서 국민들은 더 좋은 금융 상품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금융거래가 투명해 지면서 거래가 활성화 되었고 그만큼 금융 산업 자체가 발전할수 있는 원동력이 된것이죠
현재 금융 거래를 하려면 신분 확인이 필수인데요
아직까지 금융실명제가 없었다면 왠지 더 끔찍한 금융범죄들이 만연했을것 같긴 하네요
여담으로 김영삼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대체적으로 금융실명제 시행은 잘했다고 인정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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