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상 최고의 국모라고 불렸으며
주원장의 킹메이커이자 아내 마황후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중국에서는 새해가 되면 '복 복(福)'자를 뒤집어서
문 앞에 붙여 놓는 풍습이 있습니다
이렇게 뒤집힌 복자를 다오푸(倒福) 라고 하는데요
이를 직역하면 '복이 뒤집어졌다' 라는 뜻인데
이 글자가 '복이 온다' 라는 뜻의 다오푸(到福)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복이 온다라는 의미로 복자를 뒤집어서 붙여 놓는다고 하죠
그런데 이 풍습이 오늘 이야기할 인물 때문에 생겼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오늘 이야기할 인물은 바로 주원장의 아내이자
마황후라고 불렸던 효자고황후 입니다
그녀는 당시 귀족들의 풍습이던 전족을 하지 않아서
발이 큰 걸로 유명했는데요
어느날 주원장은 마황후의 발이 크다며
그녀를 조롱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죠
그래서 격분한 주원장은 범인이 누군지 찾아내라 명했고
마침내 범인은 문앞에 복자를
거꾸로 써놓은 집에 사는 사람인것을 알아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마황후는 사람들을 시켜
백성들의 모든 집 앞에 복자를 거꾸로 써놓게 했고
범인을 잡으러 간 병사들은 어떤집인지 몰라서
범인을 잡지 못한채 황궁으로 돌아와야 했다고 하죠
마황후는 혹시 고작 발 크기를 놀렸던것 때문에
백성이 남편에게 죽임당하지 않을까 걱정되어 그렇게 했던 것인데요
이 이야기가 널리 퍼지면서 백성들이 마황후의 어진 마음에 감사해
이후 거꾸로 쓴 복자가 복을 가져다 준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면서 이 풍습이 생겼고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고 합니다
그만큼 마황후는 숙청의 달인이던 주원장과는 다르게
굉장히 살육을 싫어하고 백성들에게 어진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그런 인물이죠
그녀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국모로 불리는 인물이자
남편 주원장이 황제가 되는데 가장 가까운곳에서 보좌했던 킹메이커 였습니다
그리고 주원장이 황제가 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옳은 조언을 해주며
주원장이 악행을 저지르지 않도록 어느정도 제어를 해주던 인물이기도 하죠
그녀는 1332년 안휘성에서 태어났고 이름은 마수영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마공 이라는 인물이었는데
원래 장사를 했었지만 먹고 살기 힘든 궁핍한 집안이었죠
그런데 마공은 원나라 말기 홍건적 장수이던 곽자흥과 절친사이였는데요
어느날 마공이 이른나이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곽자흥은 마공의 딸이던 마수영을 수양딸로 삼아 키워주었던 것이죠
마수영은 어렸을적부터 글씨를 깨우치고 책읽는걸 굉장히 좋아해
엄청 똑똑한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품도 따뜻하고 인자해
곽자흥은 그런 마수영을 굉장히 예뻐했다고 하죠
시간이 흘러 그녀가 21살이 되었을때
곽자흥은 부하였던 주원장과 마수영을 짝지어 줬는데
곽자흥이 왜 자신이 아끼던 양녀인 마수영을
쥐뿔도 없고 탁발승 출신에 심지어 천연두까지 앓아서
얼굴 상태도 좋지 않았던 주원장과
결혼시켰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상태입니다
곽자흥은 자신의 부하이던 주원장에게
뭔가 특별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걸 느껴서 사위로 삼았다는 설이 있으며
이와는 반대로 주원장의 뛰어난 능력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를 사위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있죠
어쨌든 결혼을 한 둘은 굉장히 금슬이 좋았고
그렇게 5남 2녀의 자식을 두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이후 열심히 주원장의 내조를 하게 되는데요
곽자흥은 다른사람의 말만 듣고 주원장을 굉장히 의심하기도 했는데
마수영이 곽자흥을 설득한 덕에 주원장은 곽자흥의 신임을 얻게 되기도 했죠
그런 주원장을 시기한 곽자흥의 아들 둘은
주원장에게 누명을 씌워 결국 감옥에 가둬버리는데
이때 마수영은 옷속에 전병을 숨겨 감옥으로 찾아가
주원장에게 먹으라며 건네주기도 했습니다
이후 이 사실을 알게된 마수영의 양어머니는 곽자흥에게 모든 사실을 말해줬고
이에 분노한 곽자흥은 두 아들을 처벌했으며
주원장은 겨우 풀려날수 있었던 것이죠
그만큼 그녀는 주원장의 목숨을 여러번 구해줬을만큼
명나라 건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이긴 했던 것입니다
이후 주원장이 반란군의 수장이 되고 난 이후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검소한 생활을 하는데요
자신은 배를 곪아도 항상 말린 고기를 준비해 주원장에게 건네주었고
계속해서 여러 여인들과 함께
옷과 신발을 만들어 병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죠
심지어 강력한 세력이던 진우량과 결전을 벌이기 직전에는
자신이 들고 있던 금은보화들을 다 팔아서
군사들에게 나눠주며 위로를 하는등 내조의 여왕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내조가 있었던 덕분인지 주원장은
수많은 군벌들을 물리치고, 1368년에는 원나라까지 무너뜨린뒤
명나라를 건국해 자신은 황제 자리에 오르게 되었죠
이때 마수영도 명나라의 초대 황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검소한 생활을 이어나갔고
나라에 흉년이 들었을땐 자신도 형편없는 반찬만을 먹으며
백성들의 힘든 생활을 같이 느끼고 있었죠
또한 과거부터 해오던 옷을 짓는 작업을 계속해
이젠 후궁들과 공주들을 불러 함께 옷을 만들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옷들은
직접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선정을 베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황후는 남을 못믿고 다혈질적이며 성격이 괴랄맞던
남편에게 항상 조언을 아끼지 않았는데요
중국 대륙을 평정하는 과정 중에도
항상 살육을 최소화 해야 한다고 강조했었습니다
신하들에게는 그렇게 폭군이던 주원장은
그녀의 조언은 항상 잘 따랐다고 하죠
젊었을적부터 여러번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주었고
함께 개고생했던 마황후에게 주원장은 항상 고마워했으며
그 덕분에 그녀를 무척이나 아꼈던 것입니다
둘사이엔 이런 일화도 있었는데요
당시 귀족의 여인들은 전족을 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전족은 어렸을때부터 발을 꽁꽁 싸매서 더이상 성장하지 못하게 하여
억지로 작은 발을 만들던 그런 악습이었죠
그런데 귀족이 아니었던 마황후는 전족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발은 큰편이었으며, 이로인해 '큰발 마황후' 라는 별명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발이 크다고 지적하는것은
그녀의 신분이 천하다는걸 의미하는것이기도 했었죠
주원장과 마황후가 결혼하고 난 첫날밤에
주원장이 마황후의 발을보고 발이 크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에 마황후는 주원장에게
"나도 당신의 못생긴 얼굴을 좋아하니, 당신도 나의 발을 좋아해주세요"
라고 대답했다고 하죠
또한 한번은 마황후의 큰발을 조롱하는 그림이 도성내에 붙었는데
주원장이 이를 보고 격분해 그림앞에서 낄낄 대며 웃고 있던 백성들을
모조리 붙잡아 죽여버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에 마황후는 "제가 발이 큰건 사실이니, 고작 그런일로 처형하지 마세요" 라고 말해
주원장도 그들을 살려주었다고 하죠
어쨌든 마황후는 자식들의 교육에도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아들 5명에게 철저한 교육을 시켰지만
막내인 주숙이 가장 큰 말썽쟁이였죠
이에 그녀는 후궁인 귀비 강씨에게 주숙을 감독하라 명했고
만약 주숙이 잘못했을때는 자신의 베옷과 매를 이용해
호되게 야단치라고까지 했으며
그렇게 했던 덕분에 이후 주숙도 올바른 방향으로 자랄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황후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주원장이 무자비하게 신하들을 숙청하는 것을 그녀가 막아냈던 것이죠
당시 주원장은 가장 천한신분에서 황제까지 올랐다보니
그 전부터 귀족이었던 사대부들은 그를 은근히 무시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주원장은 자신의 심기를 조금만 건드려도
얄짤없이 모조리 죽여버렸는데요
심지어 숙청 과정도 엄청나게 잔혹했다고 합니다
이런 남편의 잔인한 숙청들을 막은 사람이 바로 마황후였던 것이죠
무분별하게 숙청을 감행하기 시작하면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 그 누구도 눈돌아간 주원장 앞에 나서지 못했지만
이때 마황후가 나서서 그가 이성적으로 판단하게끔 이끌어 주었던 것입니다
이는 자칫 잘못하면 아무리 마황후라고 해도 목숨을 잃을수도 있는 일이었죠
하지만 그런 위험천만한 일을 아내로써 남편의 폭주를 막기위해 나섰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설득을 하면 열받아서 길길이 날뛰던 주원장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신하들을 용서해 주기도 했으며
그녀 덕에 수많은 충신들이 목숨을 건질수 있었죠
태자 주표의 스승이던 대학자 송렴도 그녀가 살려준 인물 중 한명인데요
송렴은 호유용의 옥사에 연루되어 죽을날만 기다리고 있던 어느날
마황후는 송렴이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는걸 알고
주원장을 찾아가 송렴을 구제해 달라고 간청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주원장도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는데
다음날 주원장의 수라상을 마황후가 직접 들고 주원장 앞에 나섰죠
그런데 술과 고기가 없는걸 본 주원장은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소첩이 얼마 안 있으면 죽을 송선생을 위하여 재계하고자
술과 고기를 올리지 않았습니다"라고 하는것이었죠
마황후가 그렇게까지 하는 모습을 보이자 주원장은
송렴을 유배 보내는걸로 처벌을 면하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이런걸 보면 마황후도 참 대단한 여걸인것 같아 보이네요
어쨌든 그렇게 마황후는 주원장의 옆을 지키면서
항상 정확하고 옳은 조언을 올렸으며
주원장은 매우 어질고 현숙한 그녀의 조언을 잘 받아주었다고 하죠
그렇게 시간이 흘러 1382년 어느날,
마황후는 오랜 지병으로 앓아 누워있었는데요
그녀는 태의가 지은 탕약을 먹지 않겠다고 거부했다고 하죠
그 이유는 만약 자신이 그 탕약을 먹고 죽으면
남편이 또 노발대발하며 태의에게 죄를 물어 그를 죽여버릴것이라는
걱정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만약 자신이 죽더라도
태의들에게 벌을 주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하죠
결국 병세가 악화된 마황후는
죽기 직전 홍무제에게 마지막으로 유언을 남겼다고 하는데요
그녀는 "널리 현자를 모셔와 그들의 간언을 받아들이고
명나라를 처음 세웠을 때의 마음이 끝까지 변치 않기를 바랍니다" 라고 말한뒤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자 주원장은 매우 비통해 하며
일주일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마황후의 죽음을 슬퍼했다고 하죠
그리고 이후 황후를 더 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황후가 죽고나자 더이상 주원장을 말릴사람이 없어졌고
이후 완전 폭주한 주원장은 숙청에 숙청을 거듭해
숙청의 달인이 될 정도로 신하들에게는 폭군 그 자체의 인물이 되어버렸죠
그러자 어느날 태자였던 주표가 주원장에게
"위에 요순같은 임금이 있으면 아래에 요순같은 백성이 있는법"이라며
눈돌아간 주원장에게 한마디 했는데
이 말을 들은 주원장은 격분하여 주표를 잡으려고 쫓아갔습니다
이에 주표는 황급히 도망가다가 그림 한장을 떨어트렸는데
그 그림은 과거에 전장에서 마황후가 주원장을 업고
도망치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고
그 그림을 본 주원장이 마황후가 생각이 나서
주표를 잡으려던걸 멈췄다는 일화도 있죠
마황후는 아내로써 남편인 주원장을 물심양면 도와왔고
그런 아내의 마음을 잘알았던 주원장도
그녀에게 항상 감사하고 그녀를 많이 사랑해주었다고 합니다
서달이나 유기, 이선장 같은 뛰어난 신하들이 있기도 했지만
자신을 믿고 항상 독려해주던 든든한 아내가 있었던 것도
주원장이 중원을 통일하고 명나라를 세울수 있었던
큰 힘이 되어 주었던 것 같네요
한국에 대표적인 현모양처로 신사임당이 있듯이
중국에는 마황후가 현모양처의 표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사탐과탐 다른 포스팅은 어떠세요?
먼저 때리는 쪽이 무조건 진다? 한국과 일본이 전쟁나면 누가 이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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