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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파양호대전. 최강의 적 진우량을 크게 격파해 버렸던 주원장 일생일대의 대승리

by 사탐과탐 2024.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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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적 진우량을 크게 격파해 버렸던 주원장 일생일대의 대승리 파양호 전투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인해 주원장은 대륙을 통일하고 명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중국의 유명한 수전 하면 적벽대전이 떠오르는데요

 

적벽대전은 다들 잘 알다시피

주유가 이끄는 오나라군이 조조의 위나라군을

화공으로 크게 무찔러 버린 전투였죠

 

그런데 그로부터 약 1100여년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바로 '파양호대전' 인데요

 

파양호 대전은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의 군대와

당시 최고의 군벌이던 진우량의 군대가 맞붙은 전투로

이때까지만해도 세계 최대 규모의 수전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주원장이 중국 최강자 자리를 꿰차게 된것이죠

 

오늘은 주원장이 역사의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전투

'파양호 대전'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당시 중국 대륙을 지배하고 있던 왕조는 바로 원나라 였죠

 

유럽지역까지 전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원나라는

14세기에 이르러 점차 나라의 명운도 기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1351년, 유복통이 일으킨 홍건적의 난을 시작으로

수많은 지역에서 농민 반란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죠

 

그 중 장강의 남쪽에서 반란을 일으킨 세력중에서는

굉장히 강력한 세력도 많이 있었습니다

 

바로 무창(현재의 우한)을 거점으로 한 진우량과

그리고 평강(현재의 쑤저우)를 거점으로 한 장사성이 있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또한 1355년, 홍건적의 수장이던 곽자흥이 죽고나서

그 세력을 이어받은 주원장은

요녕안과 유통해라는 장군 두명이 1000여척의 배를 이끌고와

자신에게 항복하자 이를 이용해 강을 건너 강남으로 세력을 확장 하면서

이후 태평과 채석, 우저, 그리고 응천부 까지 손에 넣었고

그렇게 진우량, 장사성과 더불어 강남의 강력한 세력으로 급부상 했던 것입니다

 

또한 이들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은 서로 인접해 있었기에

지속적으로 크고 작은 전투가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었죠

 

한편 진우량은 원래, 예문준이라는 인물 휘하에 있었는데요

이 예문준은 주군으로써 서수휘라는 사람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서수휘가 천완이라는 나라를 세웠지만

원나라와의 전투에서 패배해 세력이 약해졌고

이후 서수휘는 모든 힘을 잃고

예문준에게 좌지우지 되는 신세로 전락했죠

 

그러던 1357년 진우량은 예문준을 습격해 죽여버리고

서수휘의 세력을 통째로 집어 삼켜버렸습니다

 

이후 진우량은 수많은 지역을 먹어버리면서

장강 이남의 최대세력이 되었죠

 

그렇게 진우량과 주원장은 태평을 경계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1360년, 진우량은 주군이었던 서수휘까지 암살하고

자신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뒤 주원장을 공격하러 나섰죠

그리고 얼마안가 태평을 빼앗은 진우량은 장사성에게 사신을 보내

함께 응천부를 공격하자고 권했습니다

 

당시 주원장 입장에서는 진우량도 막기 힘든데

장사성까지 공격해 온다면 도저히 막을 방법이 없는 상태였죠

 

당연히 응천부에서는 난리가 났고

주원장은 역대 최대 위기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주원장 휘하의 장수들은 항복하자는 주장과

종산으로 도망친 뒤 굳게 수비만 하자는 주장,

그리고 그냥 맞부딪쳐 싸우자는 주장 등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었죠

 

결국 주원장은 싸우자는 주장을 받아들여

곳곳에 매복을 시킨뒤 진우량 군대를 포위해서 공격하자는 작전을 세웠고

마침내 용만이라는 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때 양군의 수군이 뒤엉켜 싸우는 와중

육지에서도 주원장의 군대가 협공을 가하자

진우량의 군대는 결국 엄청난 대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진우량은 작은 배로 옮겨탄뒤

급하게 달아날수 밖에 없었죠

 

이때 주원장 입장에서 정말 다행스러웠던것은

그가 가장 우려하고 있던 장사정과의 연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인데

당시 장사정 역시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 왔지만

강음을 지킨 오량에게 막혀서 진입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주원장은 최대의 위기를 벗어나는 동시에

지금까지 우세했던 진우량과의 격차를 많이 줄일수 있었죠

 

주원장은 기세를 몰아 이제는 공세적인 태도로

진우량을 밀어부치기 시작했는데

이후 태평을 다시 되찾을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우량도 당하고만 있을순 없었기에 반격에 나섰지만

또다시 패배해 거점이던 안경, 강주, 남창 등 수많은 영토를 빼앗기면서

근거지이던 무창까지 물러나는 수모를 겪어야 했죠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주원장은 급속도로 성장한 반면

최강자로 군림하던 진우량의 세력은 점점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더이상 참을수 없었던 진우량은

마침내 결단을 내리게 되었죠

 

진우량은 모든 전력을 동원해 주원장과의 맞붙어

다시 형세의 역전을 꾀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30미터 높이나 되는 대형 전함 수백척을 거느리고

60만 대군을 동원해 남창으로 향했죠

 

이때 주원장은 장사성의 영토인 안풍을 공격하고 있던 상황이었는데요

 

만약 진우량이 남창을 함락시키게 되면

주원장의 군대는 퇴로가 막혀

앞뒤로 장사성과 진우량의 공격을 고스란히 당해야했던 것이죠

 

그렇게 진우량 군대는 순식간에 남창을 포위해 버렸으며

남창을 공략하기 위해 운제(공성용 사다리) 와 충차 등

모든 것을 총동원해 남창을 공략하기 시작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당시 남창을 지키던 주문정과 등유는 85일간이나 악착같이 버텼고

그 사이에 주원장은 안풍의 포위를 풀고 무사히 돌아올수 있었던 것이죠

 

그러자 진우량은 어쩔수없이 파양호까지 군대를 후퇴시킬수 밖에 없었고

주원장은 20만의 병력을 동원해 파양호까지 진격한 뒤

진우량과의 운명을 건 결전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진우량의 수군 함선은 굉장히 높고 컸던 반면

주원장의 배는 작은 소함선으로 고개를 들어야지

적군을 바라볼수 있을정도 였는데요

 

진우량의 대형 전함들은 배와 배 사이를 사슬로 잇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느렸지만

주원장의 배들은 작지만 굉장히 민첩하게 움직일수 있었죠

 

그렇게 1363년 7월 21일 새벽

조용하던 파양호는 수십만 대군이 외치는 함성 소리로 가득 차면서

마침내 양군의 격돌이 시작되었습니다

 

대혼전속에서 주원장의 함선들은

진우량의 대형 전함의 공격으로 인해 속수무책으로 당할수 밖에 없었죠

 

심지어 진우량군의 장수인 장정변이

주원장이 타고 있던 함선을 발견해 이를 노리고 달려들면서

주원장의 목숨이 잃을뻔한 위태로울 지경에 이르기도 했지만

상우춘이 화살을 쏴 장정변을 물러나게 한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날수 있었을 만큼 굉장히 힘든 전투였죠

 

 

다음날인 7월 22일 전투에서도

진우량은 모든 전력을 쏟아부었는데요

 

대형전함의 위용에 주원장의 군대는 사기가 꺾일대로 꺾여버리고 말았고

전투에 나서려 하지 않았던 것이죠

 

이에 주원장은 직접 전선에 나가 지휘를 이어나가며

우물쭈물 하는 자는 스스로 베어버리기 까지 하면서 전투를 독려 했습니다

 

그러자 주원장의 병졸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결전에 임하면서

피 튀기는 엄청난 대 혈전이 벌어졌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게다가 이번에는 주원장의 곁에 있던 유기가

다른 배로 도망쳐야 한다며 소리치자

주원장은 영문도 모른채 다른 배로 이동했는데

이후 석포가 날아와 주원장이 타고 있던 배를

박살내버리기도 할 만큼 위태로운 전투였습니다

 

그 정도로 여전히 진우량군이 엄청나게 우세한 상황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진우량군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모든 전력을 쏟아부어 남창을 공략하려 했지만 실패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피로도가 누적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전투가 있기 전 주원장은

몰래 병력을 보내 진우량의 퇴로를 막아버렸기 때문에

진우량의 부대는 보급까지 원활하지 않았던 것이죠

 

그렇게 난전이 한창이었을때

갑자기 동북풍이 굉장히 맹렬한 기세로 불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하늘이 내려준 기회라 여긴 주원장은

일곱척의 불붙은 배를 진우량의 함대로 돌진 시켰고

서로 엮여있던 진우량의 대 함선들은 모조리 타들어가기 시작했죠

 

거센 바람도 한몫 단단히 하다보니

불길은 걷잡을수 없이 커졌고

연기와 화염이 하늘에 가득했으며

호수는 불빛이 비친건지 병사들이 흘린 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호수 전체가 붉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이에 진우량의 군대는 엄청난 혼란에 빠지고 말았고

소형 전함 위주였던 주원장의 수군은

오히려 기동력을 십분 발휘해 기세를 몰아

진우량군에 무서운 공세를 가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불에 타서 죽고, 물에 빠져 죽은 병사도 엄청 많았고

전투 중에 죽은 병사들도 헤아릴수 없을 만큼 많았습니다

 

심지어 진우량의 동생으로 용맹과 지략이 뛰어났던 진우인도

이때 전사하고 말았으며

그렇게 진우량군은 궤멸적인 타격을 받고 말았죠

 

더이상 버틸수 없었던 진우량은 결국 퇴각하려고 했지만

이미 퇴로까지 막혀버린 탓에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렇게 진우량은 또다시 며칠간 주원장군과 대치하다가

포위망을 뚫고 무창으로 도망 치려했지만 실패했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식량까지 바닥이 나자

진우량군 내에서는 굶어죽거나 도망치는 병사들이 속출했죠

 

그러자 어쩔수없이 진우량은 남아있던 모든 전함을 이끌고

호수 입구로 돌진해 들어간뒤 죽을 힘을 다해 싸웠지만

결국 벗어나지 못했고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피해는 커지고 밀리는 상황속에

결국 진우량은 화살에 눈과 머리를 관통당해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태자였던 진선아도 사로잡혔으며

주원장의 목숨까지 위협했던 장수 장정변이

진우량의 시신과 둘째아들 진리를 데리고

무창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죠

 

그렇게 진우량의 60만 대군은 모래성 무너지듯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진우량의 둘째아들 진리는 무창에 돌아간 이후 제위를 이어 받았지만

이미 세력을 다시 키우기에는 기세가 꺾일대로 꺾여 있었기에

이듬해인 1364년 주원장이 무창을 포위하자

성문을 열고 항복하는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완전한 승리를 거둔 주원장은

진우량이 거느리고 있던 장강 중류의 광대한 지역까지 손에 넣으며

마침내 장강 이남의 최강 세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파양호 대전은 중국 전쟁사에서

소수의 병력으로 승리를 거둔 대단한 전투 중 하나가 되었죠

 

그리고 주원장은 이후 주적이던 장사정과 원나라를 몰아내고

중국대륙을 통일한 왕조인 명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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