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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장쉐량. 장제스가 다 박살내놓은 공산당을 다시 살려줘버린 중국 국민당 최악의 빌런

by 사탐과탐 2024.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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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가 다 박살내놓은 공산당을 다시 살려줘버린 중국 국민당 최악의 빌런 장쉐량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1936년 12월 12일 중국국민당의 우두머리 장제스를 납치해서

국공합작을 요구했던 '시안사건'은 어찌 보면 납치극에 불과한 해프닝이었지만

이 사건은 이후 중국의 현대사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데요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장쉐량'은 시안사건을 저지른 주범으로

그가 멍청한 실수를 할 때마다 중국의 역사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장쉐량은 1898년 6월 3일, 동북 3성을 다스리는 봉천군벌의 지도자로

만주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장쭤린'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인 장쭤린은 비록 시작은 마적 떼에 불과했지만

이후 마적들을 때려잡는 마적으로 이름을 알리면서 정식으로 군에 소속된 뒤부터는

동북 3성을 중심으로 만주일대를 주름잡는 군벌이 되면서

중국 대륙의 통일에 가장 가까운 인물로 평가받을 정도로 능력 있는 인물이었죠

하지만 그의 아들인 장쉐량은 군사적 재능은 물론

지도자로서의 능력까지 빵점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무능한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무능한 인물이 대체 어떻게 중국의 현대사에 영향을 미쳤냐고 생각되시겠지만

장쉐량이 워낙 엄청난 사고들을 연달아 저질러버린 탓에

그가 실수를 할 때마다 중국의 역사가 바뀌어버렸다고 하네요

 

1926년 국민당이 1차 북벌에 나서자

그와 맞서 싸우던 봉천군벌의 초대 우두머리 장쭤린은

군사적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일본에게 몰래

만주의 여러 이권을 내주겠다는 밀약을 맺었습니다

 

하지만 장쭤린은 일본을 이용해 먹을 생각이었는지

지원을 받은 후 일본과 했던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는듯한 태도를 보였죠

일본 관동군은 만주의 이권을 빼먹으려던 자신들의 계획이 장쭤린에 의해 막히자

장쭤린이 지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철길에 폭탄을 설치해서

장쭤린과 기차를 함께 날려버린 황고둔 사건을 일으켜 장쭤린을 암살하려 했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큰 부상을 입고 겨우 목숨만 건진 채 급히 원수부로 이동한 장쭤린은

아들인 장쉐량을 후계자로 임명하라는 말을 남긴 후 사망하게 됩니다

이후 일본은 봉천군벌에 계속해서 간섭을 해왔는데

장쉐량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것이 일본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자신이 봉천군벌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 최대한 노력했다고 하죠

 

그래서 장쉐량은 부하들에게 만약 일본군이 와서 도발을 하거나 어떤 군사적 행위를 해도

절대 반응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장쉐량이 이런 멍청한 명령을 내리는 바람에

만주사변 초기 일본군이 기습을 해왔을 때 봉천 군벌의 병사들이

진짜로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으면서 남만주를 통째로 빼앗기게 되죠

당시 장쉐량에게는 30만의 정규군과 18만 명의 비정규군이 있었으며

당시 중국 군벌 중 최대 규모의 함대와 300대의 전투기까지 있었습니다

반면에 일본의 관동군은 1만 5천 명에 불과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싸우면 절대 질 수가 없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장쉐량은 일본에게 만주를 통째로 점령할 생각이 없다고 판단하면서

그저 일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관동군이 만약 도발을 해오더라도 절대 무력으로 대항하지 말고

모든 무기를 병기고에 보관한 채 스스로 물러날 것이며

일본군에게 최대한 협조하라"

 

하지만 남만주를 점령한 일본군이 이후 북만주까지 침공을 해오자

장쉐량도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고는 부하들에게 일본군과 맞서 싸우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불리해져 있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게다가 장쉐량의 세력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을 본

화북군벌들까지 장쉐량을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장쉐량은 급속도로 몰락하기 시작했고

결국 만주 전체가 일본의 손아귀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만주국이 탄생하면서 가지고 있던 땅을 일본에 거의 다 빼앗긴 장쉐량은

자신에게 유일하게 남은 열하성(지금의 중국북구 허베이성의 청더시)에서

새롭게 시작을 하려고 했죠

 

하지만 1933년 2월 21일, 일본군이 열하성을 공격해

만주국에 합병시킨 '열하사변'이 터지면서

장쉐량은 남은 거점마저 일본군에게 모두 뺏기게 되었고

같은 중국인들마저 일본에 영토를 빼앗겨버린 장쉐량에게 엄청난 욕을 해댔다고 합니다

 

하지만 장쉐량의 트롤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당시 열렬한 반공주의자였던 장제스는

초공 작전을 세워 중국의 공산당을 모두 없애버리려 했습니다

장제스가 엄청난 화력을 앞세워 밀고 들어간 끝에

공산당 세력은 겨우 4만 명만이 살아남아 옌안에 거점을 마련하고 버티는 상황이었죠

 

이때 장제스는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장쉐량에게 옌안에 있는 공산당을 토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투에 나선 장쉐량은 무능함의 극치를 보여주며

싸울 때마다 패배를 거듭했고 그가 이끄는 부대의 사기는 바닥을 치게 되었죠

 

그 소식을 듣고 머리끝까지 화가 난 장제스는

어떻게든 승리를 해내라며 장쉐량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장쉐량은 자신의 무능함때문에 패배한 것에 대해 반성을 하는 게 아니라

장제스가 일본에게 빼앗긴 자신의 영토를 되찾아주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런 상황에서 자꾸 자신을 비난하는 장제스에게 원한을 품게 된 장쉐량은

공산당과 비밀리에 협약을 맺어 휴전을 하고 공격을 중단해 버렸습니다

이후 장제스가 빨리 공격을 시작하라고 재촉하자

장쉐량은 오히려 중공과 강화를 맺자는 엉뚱한 소리를 해댔죠

 

마침내 뚜껑이 열려버린 장제스는 정 그렇게 싸우기 싫으면

그냥 복건성이나 안휘성 같은 한가한 자리로 보내주겠다며 그를 좌천시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장쉐량으로서는 만약 복건이나 안휘로 떠나게 되면

더 이상 중국 정치계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가 없어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순순히 장제스의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죠

 

결국 장쉐량은 1936년 12월 12일 장제스를 시안으로 불러들여서 감금해 버린 뒤

국민당과 공산당이 협조해 일본을 토벌하자고 주장하는 시안사건을 일으켜버렸습니다

이후 소련의 지령을 받은 저우언라이와 장제스의 담판으로 국공합작이 이루어지면서

중국의 공산당은 완전히 부활을 하게 되었죠

 

장쉐량만 아니었으면 중일 전쟁 초기부터 일본군은 만주에서 발목이 잡혔을 것이고

장제스는 원하는 대로 중국 공산당을 멸망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장쉐량의 엄청난 트롤링 덕분에 결국 공산당이 중국대륙을 통일하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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