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부릴 수 있는 온갖 욕심은 다 부리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성욕의 화신이던 메살리나는 로마 역사상 최악의 악녀이자 가장 음란한 황후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고대 로마제국의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48세의 나이에 새 아내를 맞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 맞이한 아내의 이름은 메살리나 발레리아 였죠.
그녀는 유명한 네로 황제의 사촌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메살리나는 결혼 당시 16세로 클라우디우스 황제와 32살의 나이차가 났죠.
이렇게 어린 아내를 새로 맞이한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메살리나와 1남 1녀를 낳는 등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나 싶었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메살리나는 황후가 된 이후부터 엄청난 사치를 일삼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온갖 악행들을 행한 악녀였으며 성욕도 너무나도 왕성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저질렀습니다.
그녀의 이런 행적들은 클라우디우스의 명성과 업적에 흠집을 내기에 충분했죠.
어느 날 로마제국은 브리타니아 정복을 기념하는 개선식에 나라 전체가 들썩이고 있었습니다.
개선식은 전쟁에 참가했으며 전쟁 승리에 기여한 장군과 병사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행진하는 중요한 행사였죠.
어이가 없게도 이 개선식에서 메살리나의 기행은 많은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브리타니아 정복에 전혀 기여도 하지 않은 황후가 스스로 개선식에 등장하여 정작 주인공인 황제 장군 병사들을 들러리 취급하며 자신이 주인공 마냥 행동했던 것이죠.
아무리 황제의 아내라 하더라도 전쟁에 참여도 하지 않은 여자가 개선식에 참가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고 이 장면을 본 로마 백성들은 기겁해 마지 않았습니다.
메살리나의 미친 행보는 이제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그녀는 사치와 물욕이 너무나도 강해서 한번 눈독 들인 재물은 무조건 가져야 했기 때문에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심지어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가져야 직성이 풀렸죠.
당시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제정한 간통죄로 처벌이 되면 재산을 몰수당했고 반역죄를 저질러도 재산을 몰수당했는데 그녀는 자신의 물욕을 채우기 위해 이 두 가지 법을 철저하게 사용했습니다.
마음에 안 들면 그냥 간통죄로 고발했고, 간통죄로 고발할 수 없는 경우에는 반역죄로 고발하는 식이었죠.
그녀는 로마제국에서 황제 다음으로 높은 위치에 있던 아시아티쿠스의 정원을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그 정원을 손에 넣기 위해 그를 반역죄로 고발했고 결국 아시아티쿠스는 '여자의 사기에 걸려들어 죽는 게 유감이다' 라는 한마디를 남기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 정원은 메살리나의 소유가 되었죠.
하지만 그녀가 현재까지 이토록 악명을 떨치는 이유는 그녀의 멈출 줄 모르는 성욕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인 클라우디우스가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궁정 안 깊숙한 곳에 은밀한 밀회 장소를 만들었죠.
그리고 그곳에서 애인들과 은밀한 육욕의 향연을 벌였습니다.
궁내의 잘생긴 남자들은 모드 그녀의 타깃이 되었죠.
어느 날 메살리나는 자신의 애인이던 잘생기고 유명한 배우를 포파이아가 가로채자 그녀를 간통죄로 고발해버렸습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고발장에 서명을 하자 포파이아는 스스로 죽음을 택했죠.
며칠 뒤 황제가 만찬회를 열었는데 포파이아의 남편인 스키피오만 만찬에 참석한 걸 보고 황제는 그에게 아내가 어디 갔냐고 묻는 말에 스키피오는 "죽었습니다" 라는 한마디만 했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클라우디우스는 며칠 전에 포파이아라는 이름이 적힌 어떤 서류에 서명을 한 것이 생각났는데 그것이 간통죄 고발장이었던 것이죠.
이처럼 클라우디우스는 어린 아내가 와서 귀찮게 징징대며 조르면 고발장을 읽어보지도 않고 서명을 해버렸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귀족들은 메살리나에 의해 온갖 누명이 씌워져서 죽기도 하고 풀려나기도 했기에 클라우디우스를 '아내한테 휘둘리는 늙은 얼간이' 라며 그가 죽은 후에도 비난을 멈출 줄 몰랐다고 하죠.
그녀가 점찍은 남자의 거절은 곧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녀는 마음에 드는 원로원 의원 아피우스 실라누스가 자신의 유혹을 거절하자 남편인 황제를 부추겨 죽이기도 했으며 자신과의 잠자리를 거부하는 남자들은 죽이거나 추방하는 등 성욕에 있어서도 거침이 없었죠.
메살리나의 한마디에 모든 남자가 옷을 벗으니 이 짓도 재미가 없어진 그녀는 더 큰 자극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신하와 명문 귀족의 부인들을 서로 관계를 시키고 관계 장면을 남편이 보게 하기도 했죠.
하지만 그녀의 끝없는 성욕은 마침내 폭발하게 되었습니다.
밤이 되자 그녀는 몰래 궁 밖으로 나갔죠.
그리고 스스로 매춘부가 되어 매춘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낮에는 황후로 지냈지만 밤에는 매춘부로 살아가는 이중생활을 시작하기에 이르렀죠.
처음에는 고급 매춘부로 시작을 했는데 그것으로도 만족이 되지 않았던 메살리나는 아예 천민들이 이용하는 최하층 매음굴에까지 들어가 몸을 팔기 시작했죠.
날이 밝을 때까지 엄청나게 많은 손님을 받으며 상상할 수 없는 온갖 음란한 성행위를 했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로마 거리 한가운데에 남자의 거시기 모형이 달린 '류카스카'라는 간판을 내걸고 매춘굴을 오픈해 더욱더 많은 손님을 받았다고 하죠.
그런 메살리나의 마지막 또한 충격 그 자체입니다.
자신의 남편인 황제 클라우디우스가 오스티아 건설을 시찰하기 위해 로마를 비운 틈에 자신과 불륜 관계이던 잘생긴 미중년의 원로원 의원 가이우스 실리우스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궁전에서 결혼식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거기다가 남편 클라우디우스를 폐위시키려는 반역까지 저지를 생각이었죠.
그러나 그녀의 반역은 황제의 충신이던 나르키수스가 황제에게 전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가이우스 실리우스에게는 사형선고를 내렸죠.
메살리나는 남편에게 살려달라고 매달리니 황제는 그녀의 처벌을 미루게 되었는데 루쿨루스 별장에 숨어있던 메살리나는 고작 31살의 나이에 클라우디우스의 측근들의 손에 결국 죽임을 당했습니다.
메살리나의 자식들도 결말은 좋지 못했습니다.
딸인 옥타비아는 착하고 현명했지만 남편이었던 네로에게 간통의 누명이 씌워져 죽임을 당했고 아들 브리타니쿠스 역시 네로의 황위를 위협하는 인물이라는 이유로 처단되었죠.
현대의 이탈리아어의 메살리나는 '성욕을 억제하지 못하고 아무하고나 자는 여자'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로마의 성적 타락의 상징이자 허영심과 물욕 성욕의 화신으로 불리고 있죠.
그녀는 중국의 서태후와 호태후를 섞어놓은 것에 +@급의 여자 같네요.
사람이 부릴 수 있는 온갖 욕심은 다 부리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성욕의 화신이던 메살리나는 로마 역사상 최악의 악녀이자 가장 음란한 황후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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