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제의 어머니 조희는 수많은 불륜을 일삼은 여인인데요.
욕정에 미쳐 아들인 진시황제를 몰아내고 불륜남과 낳은 자식을 왕으로 세우려고 한 골 때리는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진시황제는 중국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대업을 이루고 중국 역사상 첫 번째 황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후궁은 있었지만 황후를 두지는 않았죠.
그 이유는 자신의 어머니 조희 때문이었다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머니인 조희는 워낙 독특하고 이상한 인물이라서 그런지 여자에 대해 학을 떼었기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죠.
자식의 입장이던 시황제에게 어머니였던 조희는 굉장히 골 때리는 여인이었습니다.
조나라의 부유한 집안의 딸로 태어난 조희는 외모도 예쁜데 춤도 잘 추기로 소문이 나서 많은 남자들이 흠모하던 여인이었는데 당시 최고의 부자였던 여불위가 그녀를 꼬셔 첩으로 맞이했죠.
여불위는 여러 나라를 왔다 갔다 하며 장사를 하는 무역상이었는데요.
그는 조나라 수도 한단에서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죠.
그 남자는 영자초라는 사람으로 진나라 왕의 자식이었는데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와 있었습니다. (영자초 = 진시황제의 아버지)
여불위는 이 영자초의 잠재성을 꿰뚫어 보고 그를 왕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후원을 하기 시작했죠.
어느 날 여불위의 조나라 집에서 연회를 열게 되었는데 당연히 영자초도 초대되었습니다.
영자초는 여불위 곁에 있는 조희를 보고 첫눈에 반해 버렸죠.
그리고 영자초는 여불위에게 조희를 자신에게 달라고 했는데 여불위는 영자초의 요구를 굉장히 불쾌해 했지만 영자초를 왕위에 올리기 위해 이미 엄청나게 많은 재산을 쏟아부은 상태라서 결국엔 조희까지 바치게 되었습니다.
조희는 그렇게 영자초의 부인이 되었고 조나라에서 자식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시황제 영정이었죠.
이후 조희는 영자초와 함께 조나라를 탈출해 진나라로 가게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영자초는 진나라 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영자초는 왕이되고 불과 3년 만에 죽음을 맞이해서 아들 영정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죠.
그리고 조희는 태후가 되었습니다.
태후가 된 이후 그동안 하고 싶어도 못했던 자신의 욕정을 채우기 시작했는데 조희는 원래 자신의 남편이던 여불위를 조용히 불러 꼬시기 시작했습니다.
여불위도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받아주었죠.
그렇게 조희는 여불위와 간통을 하기 시작했는데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행여나 둘의 사이가 들킬까 두려웠던 여불위는 조희를 멀리하고자 했죠.
하지만 조희가 하도 시도 때도 없이 불러대니 하는 수 없이 자신의 대타로 노애라는 남자를 섭외하게 되었습니다.
노애는 이미 화류계에서는 대스타였는데 그 이유는 그의 거시기가 굉장히 크고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노애의 기가 막힌 특기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거시기로 큰 수레바퀴를 들어 올리는 것이었죠.
직업 없이 백수로 지냈던 노애는 주변의 여자들이 자신과 하룻밤을 보내는 것을 소망했기 때문에 그 여자들의 기둥서방 노릇을 하며 잘 먹고 잘 살고 있었습니다.
여불위는 그런 노애에게 수레바퀴를 거시기로 들어 올리는 것을 자주 하게 했고 그 소문이 조희의 귀에 들어가도록 했죠.
역시나 조희는 그 소문을 듣고 솔깃해 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불위는 곧바로 노애를 조희에게 소개해 줬고 노애와 함께 뜨밤을 보낸 조희는 당연하게도 노애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죠.
하지만 환관 이외에 남자는 궁내에서 살수 없었기 때문에 노애는 입궁하기 위해 환관으로 위장을 해야 했죠.
그래서 조희는 노애의 눈썹과 수염을 모두 뽑아버렸고 거세를 했다는 증거로 당나귀의 거시기를 보여줬다고 합니다.
조희는 환관인 척 들인 노애와의 간통이 시작되었습니다.
난리도 아니었죠.
조희는 노애를 매우 총애하여 여불위 따위는 쳐다도 안 볼 정도였습니다.
밤낮으로 노애와 함께 하고 싶었던 조희는 한 가지 꾀를 내었습니다.
어느 날 점쟁이를 불러 점을 치게 했는데 '태후 조희가 진나라 수도 함양에 거처하고 있으면 진나라에 좋지 않으니 함양에서 멀리 떨어진 땅으로 보내야 한다'라는 점괘가 나오게 만들었죠.
그래서 조희는 노애와 함께 함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옹 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거처를 옮긴 후 조희와 노애는 밤낮으로 마음껏 관계를 즐겼고 노애가 너무 마음에 들었던 조희는 노애를 열후에 봉해 권세까지 누리게 만들어줬습니다.
그의 집에는 노복이 수천 명에 달했고 벼슬을 얻기 위해 노애의 식객이 된 사람들도 천여 명에 달했다고 하죠.
이런 생활이 이어지다 결국 조희는 노애와의 사이에 두 명의 자식까지 낳게 되었습니다.
이에 기고만장해진 노애는 조희와 함께 아이들을 몰래 키우며 진나라 왕 영정을 몰아내고 자신들의 아들을 왕으로 삼고자 하는 모략을 꾸미기 시작했죠.
근데 조희 입장에서는 노애와의 자식들도 친자식이지만 현재 진나라 왕인 영정도 자신의 친아들이었는데 참 이해할 수가 없네요.
아무튼 기원전 238년이 되자 영정이 성인식을 치르기 위해 어머니인 조희가 있는 옹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연회 자리에서 한껏 거만해진 노애를 꾸짖는 한 신하가 있었는데 술에 취해 있었던 노애는 그 신하에게 "내가 왕의 계부인데 무엇이 두렵겠느냐"라고 했죠.
신하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영정은 아무도 모르게 그 말의 진위를 알아보게 되었는데 사실은 노애는 환관이 아니었고 조희와 간통해서 아들을 둘이나 낳아서 몰래 키웠으며 조희와 작당하여 영정을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삼고자 했다는 것까지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신과 조희의 불륜 관계가 영정에게 발각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노애는 바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영정은 당황하지 않고 창문군과 창평군에게 군대를 내어주어 노애의 반란을 순식간에 진압했죠.
이후 노애는 사로잡혀 거열형에 처해져 죽게 되었고 그의 삼족이 멸했으며 영정의 이복동생인 노애와 조희 사이의 아들 둘은 자루에 넣어져 맞아 죽었습니다.
이후 영정은 어머니인 조희를 매우 싫어하게 되어 그녀를 '옹'에 유폐시켜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고 심지어 조희와 불륜 관계에 있었던 당시 최고의 권력자였던 여불위도 벼슬을 빼앗고 낙양으로 유배를 보내버렸는데 실의에 빠진 여불위는 곧 스스로 목숨을 끊었죠.
훗날 한 신하가 영정에게 진나라는 천하를 통일할 나라인데 모후인 조희를 유폐시킨 이야기를 제후들이 듣고 진나라를 배반하지 않을까 걱정이라 말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영정은 조희를 다시 진나라 수도인 함양으로 불러 감천궁에 살게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조용히 살다가 조희는 기원전 228년에 죽게 되었고 자신의 남편이던 장양왕과 함께 묻히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녀가 애초에 사랑하던 남자는 여불위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노애를 정말 사랑했을 수도 있죠.
하지만 영자초는 사랑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영정도 자신의 친아들이기도 하지만 노애와 낳은 자식들을 왕으로 올리고 싶어 하기도 한 것을 보면 그렇죠.
조희는 영자초의 이기적인 욕심에 그의 아내가 되었고 왕비가 되었으며 그 이후로 성격이 이상하게 변한 불쌍한 여인이었을까요.
아니면 그냥 본능에 충실하고 친아들을 죽이려고한 매정한 어머니였을까요?
매우 특이한 삶을 살았던 시황제의 어머니 조희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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