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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바르바리 해적. 이슬람 국가들의 지원을 받아 열심히 유럽인들을 잡아와 노예로 팔아버린 최악의 해적들

by 사탐과탐 2024.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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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국가들의 지원을 받아 열심히 유럽인들을 잡아와 노예로 팔아버린 최악의 해적들
바르바리 해적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레콩키스타'라는 말을 아시나요?

 

이는 '재정복'이라는 뜻의 스페인어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카톨릭 세력이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했던 활동을 의미하죠

 

그리고 1492년, 이 레콩키스타는

스페인의 왕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1세에 의해 완성 됩니다

 

바로 711년에 북아프리카에서 이베리아 반도로 건너와

800여년동안 그곳에서 살던 이슬람 세력을

1492년에 완전히 몰아냈던 것이죠

 

그렇게 레콩키스타를 완성하고 끝이면 좋았겠지만

사실 유럽국가들의 악몽은 이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내쫓긴 무슬림과 유대인들이 갈 곳이라고는

북아프리카 지역밖에 없었고

자신의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은

이후 복수심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던 것이죠

 

그렇게 이전부터 북아프리카 지역은 해적들의 소굴이었는데

이곳으로 흘러들어간 사람들은

해적들 밑으로 들어가 함께 지중해를 휩쓸어 버리는 해적이 되고 만것입니다

 

북아프리카에 있는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등의 지역 해안가를

'바르바리' 라고 불렀는데요

 

그래서 이곳에서 활동하던 해적들을

'바르바리 해적' 이라고 불렀으며

이들은 이때부터 19세기 초까지 약 300여년동안

전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오늘은 이 '바르바리 해적'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바르바리(Barbary)라는 말은

그리스인들이 타민족을 야만인이라는 뜻의

'바바리안(barbarian)' 이라고 부른데서 유래했다고 하죠

 

이 바르바리 지역은 바르바리 해적이라고 부르기 이전부터

'사라센' 이라고 불리던 무슬림 해적들의 본거지 였습니다

 

이곳에서 살던 사라센 해적들은 십자군 전쟁이 끝난 이후로도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과 기독교도들을 죄인 취급하며

그들을 잡아 노예로 만드는것은 자신들의 권리이자 의무 라고 하면서

그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당시 바르바리 지역의 환경이 굉장히 척박했기에

생존을 위해서는 해상 무역이 필수였지만

해상 무역을 할수 있는 기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들이 먹고살기 위해서 한 일이 바로 해적질 이었던 것이죠

 

사라센 해적들도 굉장히 악질이었지만

레콩키스타 이후 분노와 복수심까지 더해진 바르바리 해적들은

규모와 악행 면에서 더욱 무서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바르바리 해적들은 무차별적인 약탈을 자행하기 시작했죠

 

특히나 유명했던 바르바리 해적이 있었는데

바로 오루츠 레이스와 바르바로스 하이레딘 파샤 형제였습니다

그들의 주 수입원은 바로 노예 사냥이었는데요

 

사람이면 누구든 쓸모가 있었기에

못사는 백성들이나 잘사는 귀족들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유럽인들을 잡아갔습니다

 

지위가 높은 귀족들은 막대한 몸값을 받은뒤 돌려 보내줄수도 있었고

돈이 없다면 그냥 노예로 팔아버리면 됐었죠

 

흑인노예들은 노동력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여자보다는 남자들을 선호했지만

백인들은 남자보다 여자들을 더 선호했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 이유는 백인 여성은 환락가에 비싼값에 팔수도 있고

당시 아랍의 귀족들이나 왕족들 사이에서

아름다운 백인 여성을 첩으로 삼는것이 유행이었기에

잘만 잡아오면 많은 돈을 벌수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바르바리 해적들은 이슬람 여성들도

돈이 된다면 가지리 않고 잡아왔다고 하죠

 

그렇게 백인여성들은 왕족의 시녀가 되거나 귀족의 첩이 되어

이슬람 사회에서 부인들의 거처인 '하렘'에 평생 갇혀 살아야 했습니다

 

아니면 온갖 잡일을 하는 하녀가 되기도 했죠

 

그리고 남자들은 가장 많은 수가 해적선의 노잡이로 팔려나갔습니다

 

붙잡힌 백인 남성들은 온몸의 털을 깎인채로

사슬에 묶여 죽을때까지 해적선의 노를 저었어야 했죠

 

아니면 노역장에 끌려가 강도높은 노동에 시달려야 했으며

운이 좋은 경우에는 집안일이나 정원을 관리하는 노예로 팔려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붙잡힌 경우에도 몸값을 지불하면 돌려 보내지기도 했는데

왠만큼 부자인 귀족 집안이 아닌이상

대부분은 돈없는 평민이었기에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고 하죠

 

그렇게 바르바리 해적의 노예사냥으로

모로코와 알제리를 포함해 여러 지역에 잡혀간 유럽사람들은

거의 150만명에 달했을 정도로 악명이 자자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유럽인들은 바르바리 해적이라면 치를 떨었다고 하죠

 

한편 잡혀온 백인들 중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면

같은편으로 받아들여 주기도 했는데요

 

심지어 개종한 백인중에는 바르바리 해적 두목이 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네덜란드 출신 얀 얀스존은 이슬람으로 개종한 뒤

바르바리 해적을 이끄는 두목이 되었는데

1627년에 아이슬란드를 침략해 400여명의 주민들을 잡아갔고

노인과 병든 사람들은 노예로써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

교회안에 몰아 넣은뒤 불에 태워 죽이는 잔인한 짓을 저지르기도 했죠

 

그렇게 잡혀간 사람들 중 주교인 올라프 에길슨은 몸값을 낸뒤 풀려나

아이슬란드로 돌아온 후에 노예로 잡혀있던 고통스러운 경험을

책으로 써서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후로도 아이슬란드까지 진출한 바르바리 해적들은

수도인 레이캬비크를 약탈하기도 했는데

이에 충격받은 아이슬란드에서는

'터키(튀르키예)인은 눈에 띄면 바로 죽여야 한다'

라는 법이 만들어 질 정도로

그들을 두려워하고 증오했다고 하죠

 

또한 바르바리 해적의 공격을 받았던 유럽 해안가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생활터전을 버리고 그들의 공격이 닿지 않는 내륙으로 떠날수밖에 없었고

다시 해안가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것은 19세기가 지나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낱 해적들이 이렇게 대규모로 왕성하게 활동할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는데요

 

그 이유 중 하나는 아까 말한 레콩키스타 이후 이기도 하지만

다른 하나는 바로 북아프리카에 있던 이슬람국가들이

과거 1400년대부터 무슬림 해적들의 후원자 역할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바르바리 해적들은 해안도시 영주들에게

노획물에서 생기는 이익과 항구 이용료 등을 바쳤고

대신 영주들은 해적들에게 머물수 있는 은신처와

약탈한 물건들과 노예를 거래하는 시장을 제공했죠

 

심지어 바르바리 해적은 오스만 제국에게 막대한 지원을 받았습니다

 

위에서 말했던 바르바로스 하이레딘 파샤 형제의 악행이 너무 심하다보니

1511년 스페인에서는 원정군을 보내 형이던 오루츠 레이스를 죽이고

본거지이던 알제를 점령해버렸는데

이때 바르바로스는 오스만 제국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죠

 

이에 동유럽을 정복하던 과정중에

당시 강대한 힘을 가진 서유럽과의 싸움을 원치않았던 오스만 제국은

서유럽 국가들이 움직이지 못하도록하기 위해서

바르바리 해적을 이용하면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거기다가 그들을 흡수하면 북아프리카 해안에서의 통제권까지

힘 안들이고 확보할수 있으며

당시 강력한 해군 함대가 필요하다는걸 느낀 오스만제국이

해군 함대를 새로 만드는것보다 바르바리 해적들을 해군으로 써먹는게

더 싸게 먹힐것이라 판단해 바르바로스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결국 오스만제국의 지원을 받은 바르바로스는 알제를 다시 되찾을수 있었던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리고 바르바리 해적들은 오스만제국의 범선 제조 기술까지 배우게 되었고

이후 범선을 이용해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지중해 해안지대만 약탈하던 것에서

아일랜드와 영국,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등 북유럽까지 활동무대를 넓혀나갔습니다

 

아까 말했던 아이슬란드도 이 범선을 이용했기에

침략할수 있었던 것이죠

 

그렇게 바르바리 해적들은 배로 갈수 있는곳은

어디든지 가서 약탈을 일삼았으며

그렇게 그들의 악명은 유럽 전체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물론 유럽국가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는데요

 

일부 유럽인들은 복수를 하기 위해 해적단을 만든뒤

이슬람 도시들을 공격하기도 했는데

해적들에게 복수를 한다기보다 똑같이 일반 도시를 공격한뒤

아랍 일반인들을 잡아 노예로 팔았다고 하죠

 

그 외에 유럽국가들은 피해를 당했지만 유화책을 계속 썼는데요

 

당시엔 유럽 내부에서도 내전이나 종교전쟁, 다른나라와의 전쟁 등으로

정신 없는 상황이었기에 따로 병력을 빼내

해적퇴치에 눈을 돌릴 틈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슬람 국가들과 바르바리 해적들에게

뇌물이나 돈을 주고 나포된 자국민을 풀어달라고 하거나

자국은 공격하지 말아 달라고 하는등

굉장히 소극적으로 대하기만 했죠

 

그만큼 바르바리 해적들의 힘은 상당히 강했으며

이렇게까지 좋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이 바르바리 해적은 어떻게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을까요?

 

1700년대 후반의 어느날 신생국이던 미국의 선박이

바르바리 해적에게 약탈을 당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나라가 만들어진지도 얼마 안되어

해군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기에

미국에서도 해적들에게 뇌물을 갖다 바치며 안전을 보장 받는 회유책을 쓰기도 하고

아니면 뇌물을 준 다른 나라의 선박 뒤에 붙어 항해를 하거나 하는

소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미국의 배들이 약탈을 당하고

국민들이 노예로 팔려나가자

프랑스의 대사로 파견 나가있던 토머스 제퍼슨은

런던 주재 트리폴리 대사를 만나

니들이 무슨 권리로 미국 선원들과 여행자들을 납치하냐며 항의를 했던 것입니다

 

그때 돌아온 트리폴리 대사의 어이없는 대답은

'코란과 이슬람 율법을 인정하지 않는 모든 국가 사람들은 죄인이며

대항하는 자는 죽이고 항복하는 자는 노예가 된다' 라는 대답을 했다고 하죠

 

참 앞뒤 꽉막힌 대답이 돌아오긴 했지만 강력히 항의를 했음에도

미국 선박이 오랜기간 지속적인 피해를 입자

훗날 미국의 3대 대통령이 된 토머스 제퍼슨은

해적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단호하게 조치를 취할것을 다짐했고

그렇게 미 해군은 트리폴리를 공격해 초토화 시켜버리면서

바르바리 해적들의 세력을 크게 줄여버렸습니다

 

거기다가 이들에게 그동안 신물이 날 정도로 괴롭힘을 당했던 유럽 열강들도

산업혁명 이후 발전된 해군력을 이용해 바르바리 해적들에 맹공격을 퍼부으면서

해적들은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죠

 

그리고 결국 1830년 프랑스가 해적 소탕을 명분으로 알제리를 공격해

그곳을 식민지로 만든것을 시작으로

다른 유럽 제국들도 바르바리 지역으로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약 300여년간 유럽을 공포에 몰아넣은

바르바리 해적은 역사속으로 이름을 감추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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