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왕족 출신의 바토리 에르제베트는 자신의 노화와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어린 여자들의 피를 원했다고 하는데요.
그게 진짜 사실인지 아니면 마녀사냥을 당한 것인지 재미있게 봐주세요.
오늘 이야기할 인물의 평가는 두 갈래로 나뉩니다.
하나는 마녀사냥으로 억울하게 희생당한 여인 그리고 또 하나는 수많은 여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악녀이자 마녀이죠.
그녀는 바로 헝가리 왕국 출신의 귀족 바토리 가문의 '바토리 에르제베트' 입니다.
왕족 출신인 만큼 바토리 가문은 그 유명한 합스부르크 가문과 비견될 정도로 동유럽과 트란실바니아 지방에서는 최고의 명문가로 위세를 떨쳤죠.
그만큼 재산도 어마어마 했습니다.
당시 헝가리 국왕보다도 더 많았다는 이야기도 있죠.
바토리 에르제베트는 1560년에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조용한 성격에 피부도 희고 미인이었죠.
하지만 당시 유럽의 여러 귀족 가문은 재산과 영지를 잃지 않기 위해 같은 성씨끼리 결혼하는 근친혼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로 인해 유전병으로 기형이나 정신질환을 겪는 경우가 많았죠.
바토리 가문 역시 그러했고, 그로 인해 에르제베트도 어릴 적부터 감정의 기복이 심했으며 성격 또한 난폭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그녀가 11세의 나이에 나더슈디 가문의 장남 나더슈디 페렌츠 백작과 약혼했는데요.
시어머니였던 오르쇼여는 결혼도 하기 전부터 에르제베트를 자신의 성인 샤르바르 성으로 불러 이것저것 잔소리하며 예절이나 결혼한 후 필요한 자질 같은 걸 가르쳤죠.
어린 에르제베트는 이때부터 시어머니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성격 또한 점점 더 까칠해졌죠.
그렇게 4년의 시간이 흘러 1575년, 에르제베트는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 하객으로 유력 가문들이 총동원되어 하객이 4,500여 명이나 왔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결혼생활이 평탄하지는 못했는데요.
남편은 오스만제국과의 잦은 전쟁으로 헝가리군을 지휘했었기 때문에 서로 자주 만나지는 못했던 것이죠.
그렇다보니 넓은 체이테 성에서 시어머니와 둘이서만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1604년, 남편이 전쟁 중 전사하며 그녀는 44세의 나이로 과부가 되어버린 것이죠.
남편이 죽자마자 그녀는 체이테 성의 주인이 되면서 가장 먼저 자신에게 잔소리하며 짜증나게 하던 시어머니 오르쇼여를 쫓아내 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 앞에 앉아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다 이미 늙어버린 스스로를 보면서 충격을 받았죠.
하필이면 그때 자신의 머리를 빗겨주던 시녀가 실수로 머리를 심하게 잡아 당겨버렸는데 안 그래도 짜증나있던 그녀는 이 사소한 일로 화를 내며 시녀의 뺨을 때려 버렸습니다.
그때 반지에 긁혀 시녀의 얼굴에서는 피가 났고 그걸 본 에르제베트는 묘한 황홀감 같은 걸 느끼게 되죠.
거기다가 자신의 손에 튀었던 핏자국을 닦아내니 그 부분의 피부가 유독 더 하얗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에르제베트는 젊은 여자의 피로 목욕을 하면 자신도 젊어질 수 있다는 비뚤어진 믿음이 생겨버린 것이죠.
그렇게 그녀의 첫 번째 희생자는 머리를 빗겨주던 시녀가 되었습니다.
뭐든 처음이 어렵지 그 뒤로는 쉬운 편인데요.
에르제베트는 자신의 영지 내에 있던 가난한 농민의 딸들에게 일자리를 준다고 속여 자신의 성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러자 가난한 농민들은 너도나도 돈을 받고 딸들을 보냈는데요.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누구도 몰랐죠.
또한 성에서 연회를 베푼다며 수십 명의 처녀들을 성안으로 끌어들였고 연회가 끝나면 그녀들은 모두 알몸이 된 채 죽임을 당했죠.
처녀들은 가시와 칼날이 박혀있는 철로 만든 새장 같은 곳에 갇혔는데 가시에 찔리고 칼날에 베이면서 피가 나면 그 피를 모두 모았습니다.
그렇게 모은 처녀의 피는 마시기도 하고 주로 욕조에 받아 목욕을 하는데 쓰였죠.
젊은 여자들은 좁은 새장 같은 곳에서 칼날과 가시에 찔려 피를 쏟으며 서서히 죽어간 것입니다.
처음에는 신부를 불러 죽임을 당한 여자들의 장례를 치러줬지만 시간이 갈수록 시신이 많아지다 보니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신부가 장례식 하기를 거부하자 나중에는 아무데나 버렸다고 하죠.
그렇게 체이테 성으로 일하러 들어간 처녀들이 단 한 사람도 돌아오는 사람이 없으니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는 뭔가 잘못된 것을 눈치챘고 고발하기도 했지만 바토리 가문 같이 명망 있는 명문가에서 그런 일을 벌였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마을에서도 딸들을 보내지 않기 시작하자 에르제베트는 근처 다른 마을로 가서 처녀들을 몰래 납치 해오기 시작했으며 이마저도 여의치가 않자 다른 방법을 고안해 냈죠.
그것은 바로 귀족적 소양을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성안에 귀족 여학교를 세웠고 그렇게 귀족 가문의 딸들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귀족들의 딸에게까지 그녀의 마수가 뻗치기 시작한 것이죠.
그러던 어느 날, 감금당했던 처녀 중 한 명이 극적으로 탈출을 했고 당국에 신고를 하면서 모든 일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죠.
1610년 12월 30일. 체이테 성안으로 들어간 조사팀은 경악해 마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고문 도구와 수많은 시신들 그리고 다행히 살아있던 적은 수의 생존자도 발견했습니다.
에르제베트의 일기에는 희생자의 수가 자그마치 612명이라고 기록되어 있었죠.
그렇게 재판이 열려 그녀의 악행을 도와준 시녀들과 하인들은 모두 사형을 당하게 되었고 에르제베트는 당시 귀족은 사형에 처할 수 없었던 법이 있었기 때문에 식사를 넣어주는 구멍 외에는 모든 곳이 막혀있고 조금의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탑 꼭대기에 갇혀 평생을 살아야 하는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에르제베트는 그 안에서 살다가 갇힌 지 4년 만에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죠.
여기까지만 보면 이보다 악한 여자는 없는 것 같은데요.
하지만 후대의 학자들은 그녀의 재산을 노린 자들이 에르제베트를 모함했고 마녀 같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죠.
16세기 당시 유럽은 종교개혁이 일어나는 등 사회 전반적으로 혼란이 거듭되던 시기였고 마녀사냥이 빈번하게 일어나던 때였기 때문에 혼자 사는 귀족 여인들이나 돈 많은 과부들은 타깃이 되어 마녀로 몰아 죽이고 재산을 빼앗는 일이 허다했었던 것입니다.
또한 에르제베트를 마녀로 고발했던 사람은 루터파 목사였는데요.
바토리 가문은 종교개혁 이후로 계속해서 칼뱅교를 믿었기 때문에 사이가 좋지 않았던 루터교에서 그녀를 마녀로 몰아세운 것 아니었나 하는 것이죠.
또한 억울한 모함을 받았다는 주장을 뒷받침 해주는 근거가 있는데요.
그녀의 재판 기록에는 구체적 죄명이나 범행에 대해서는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았고 오직 마녀라는 이유 하나로 종신 구금형을 선고했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612명의 희생자가 기록되어 있었다는 에르제베트의 일기의 존재도 조사관들 외에는 누구도 본 적이 없다는 것도 의문점을 자아냈죠.
에르제베트의 시녀들과 하인들은 그녀가 재판을 받기 전 먼저 사형을 당했는데요.
그러자 에르제베트의 결백을 증언해 줄 증인이 단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았다는 것도 다 그녀를 모함한 자들의 계획이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에르제베트의 사촌 오빠이던 헝가리 국왕 마티아스가 에르제베트에게 전쟁 자금을 빌려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당했고 이에 복수심에 불탄 국왕이 그녀의 재산을 몰수하고자 마녀로 몰아 죽였다는 주장이었죠.
그녀가 연쇄살인마가 아니라는 또 다른 근거로는 과학적으로 사람의 피로만 욕조를 채워 목욕을 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이었죠.
욕조를 채우려면 300리터 정도가 필요한데 그럴려면 한 번에 60여 명의 사람을 죽였어야 했다는 것이었고 그렇게 까지는 못했을 거라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피는 몸에서 빠져나오면 금방 굳어버리고 피에서 나는 악취는 상상을 초월해서 사람이 견딜 수 없다는 것이었죠.
그렇게 보면 에르제베트가 했다고 알려진 연쇄살인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도 황당무계한 사건이기도 한데요.
석연치 않은 재판 기록이나,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일기장이라든지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피로 목욕을 했다는 것 등을 보면 에르제베트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녀의 재산을 노린 자의 소행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녀는 정치적인 다툼으로 인해 희생당한 억울한 여인이었을까요?
아니면 실제로 마녀같이 처녀들을 살해한 악녀였을까요?
헝가리 최악의 악녀로 알려진 바토리 에르제베트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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