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아버지와 아들 2대에 걸쳐 상세히 기술한 군대생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조선시대 군인들의 일상은 과연 어땠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다행히 조선시대 선조와 인조시대에 한 아버지와 아들이 군생활을 할 때 대를 이어 쓴 일기장이 발견되면서 사람들의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줬습니다
그런데 일기의 내용 중 그 당시 병영생활보다 훨씬 더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내용이 있었다고 하죠
대체 그 일기에는 어떤 내용이 기록돼있었던 것일까요?
'부북일기'는 조선의 선조와 인조시대에 무관이었던 아버지와 아들이 함경도에서 군관으로 복무할 때 남긴 일기입니다
1605년에 울산에 살았던 박계숙이 함경도에서 군생활을 하며 매일의 일상을 일기로 적어두었는데 이 일기를 1644년 박계숙의 아들 박취문이 똑같이 함경도에서 1년간 군 생활을 할 때 자신의 일상을 덧붙여 기록하면서 대를 이어 기록된 종군일기가 돼버린 것이죠
이 책은 원래 울산 박씨 문중의 귀중한 가보였는데 그 내용을 정확히 알아내기 위해 학자에게 번역을 의뢰하면서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부북일기는 1600년대 초중기 변경지방에서의 군복무와 생활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 울산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버지 박계숙의 일기는 1605년 10월 15일 울산에서 출발해서 함경도 회령부 보을하진에서 1년간 군복무를 한 후 1607년 1월 1일 집에 돌아올 때까지의 내용이 담겨있고 아들 박취문의 일기는 1644년 12월 9일에 출발해서 1646년 4월 4일 돌아올 때까지의 여정이 기록돼있다고 하죠
부북일기에는 최전방이자 변방 지역에서의 군복무 생활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잘 나와있으며 그렇게 힘든 생활을 하는 만큼 경제적으로 많은 세금 혜택을 받은 것뿐만 아니라 각종 부역(나라에서 백성에게 부여하는 의무적인 노동)특혜와 많은 급료를 보상으로 받았다고 기록돼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아들인 박취문의 일기는 본인의 개인적인 사생활까지 자세하게 기록한 덕분에 3일에 한 번씩 여자를 바꾸며 동침했다는 내용이나 자신의 동료들이 누구와 잤는지까지도 써있는 등 조선시대 군인의 성생활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아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고 하죠
먼저 박계숙의 일기를 살펴보면 1605년 10월 출발하기 전 마치 지금의 입대를 앞둔 청년들처럼 같은 동네에 살던 박계숙의 친구들이 술자리를 만들어줘서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후 고향을 출발해서 복무지인 함경도 회령부 보을하진에 도착한 후 본격적인 군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요
때로는 훈련을 빼먹었다가 곤장을 맞기도 하고 진지공사를 부실하게 했다는 이유로 상급자에게 욕을 먹기도 했으며 때로는 활쏘기 시합에서 1등을 하면서 칭찬을 듣고 상까지 받았다는 기록도 있죠
동료 군관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는 그를 돕기 위해 애썼다는 내용도 있으며 일을 대충 하다가 순찰사의 호출을 받아서 조사를 받기도 하는 등 박계숙은 게으른 모습을 보일 때도 많았지만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은 그럭저럭 해내는 보통의 군인이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렇게 1년간의 군생활을 마친 박계숙은 선조 39년인 1606년 11월에 소집해제 통지를 받고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다시 향하게 되면서 일기가 끝나게 되죠
박계숙의 일기는 조선시대 군인들의 일상을 살펴보는데 많은 참고가 되었는데 아들인 박취문의 일기는 거기에 더해 그 당시 군인들의 성생활까지 자세히 기록돼있었는데요
1644년 12월 10일 복무지를 향해 길을 떠난 박취문은 불과 하루 뒤 자신의 친척인 좌수 이득곤의 집에서 그 집의 여자노비인 '통진'과 동침했다고 나옵니다
5일 뒤 머물게 된 집에서도 그곳의 노비인 분이와 뜨밤을 보냈으며 하루 뒤에는 의성현의 '주탕' 춘일과 하룻밤을 보냈죠
이후 부북일기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 주탕에 대해서 잠시 설명을 해보자면 당시 관청에 소속된 여자 종들 중에서도 뛰어난 미모를 가진 사람들을 주탕이라 불렀다고 하는데요
이들은 주로 평안도와 경기도 북부지방의 관청에 소속돼 있었는데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이들의 접대를 주로 맡았다고 합니다
그 외에 관리들이 파견을 오거나 지방을 순찰하는 경우에도 이들에 대한 술접대와 성접대까지 모두 담당했다고 하죠
박취문은 그 후에도 근무지까지 가는 동안 12월 17일에 주탕 옥춘, 19일에는 청송부의 노비 그리고 22일과 26일에는 각각 다른 주탕들과 뜨거운 밤을 보냈으며 12월 30일과 1월 2일에는 강릉의 기생인 연향, 건리개와 동침하는 등 매우 활발한 성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강릉의 두 기생과의 하룻밤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요
박취문이 건리개의 집에서 그녀와 대화를 하던 중에 건리개가 갑자기 혹시 최근에 기생 연향을 가까이한 적이 있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박취문이 그렇다고 대답하니 건리개가 갑자기 크게 울기 시작했죠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건리개의 어머니와 남동생이 달려와 이유를 물었고 건리개는 박취문을 가리키며 "이분이 지난밤에 연향이와 같이 밤을 보냈다"라고 말했는데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말을 들은 건리개의 어머니마저 갑자기 그 자리에서 크게 울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답답해진 박취문이 그 이유를 묻자 연향이 매독에 걸렸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고 이후 박취문과 건리개는 자신들도 매독에 걸릴지 모른다는 걱정으로 밤을 새웠다고 하죠
관청에 소속된 주탕의 경우 앞에서 말한 것처럼 중국 사신단이나 지방으로 파견 나온 중앙의 관리들 그리고 박취문처럼 군복무를 하러 온 군인들을 상대로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온갖 성병에 걸리기 쉬운 환경이었는데 만약 그 기생이 성병에 걸렸다는 것이 소문나면 그동안 건리개를 찾던 사람들이 그녀를 만나지 않을 것이 뻔했고 병이 완치될 때까지는 돈을 벌수 없게 되었는데요
심할 경우에는 주탕 자리에서 쫓겨나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그 마을에서도 쫓겨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매독 증세가 심해지면 감염 합병증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여러모로 봤을 때 건리개에게는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죠
이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박취문은 건리개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을 주며 치료비로 쓰라고 했지만 오히려 건리개는 다른 지역에 와서 군복무를 해야 할 박취문의 어려움을 생각해 주며 그 돈을 거절했다고 하죠
이후 실제로 매독이 걸려서 그 병을 치료하기라도 했던 것인지 그는 한동안 성생활을 자제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하지만 불과 한 달이 지난 2월 5일이 되자 또다시 본격적인 번식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박취문이 근무하던 변방지역에서는 그곳에 근무하는 군관들을 위해 일시적으로 첩 노릇을 하던 '방지기'들이 배정됐는데요
다른 지역에서 온 군관들에게는 보통 한 명의 방지기가 배정되었으며 군관들은 방지기의 집에서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할 뿐만 아니라 그녀들과 잠자리까지 같이 했다고 하죠
방지기들이 일종의 현지처가 되는 셈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군관들의 방지기는 주로 관청에 소속된 기생이나 노비들이 맡았는데 박취문에게는 '의향'이라는 방지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의향은 회령부 읍내에 살고 있었고 그녀의 어머니는 조금 떨어진 시골에서 살고 있었죠
그녀의 어머니는 자주 의향의 집에 드나들었고 박취문과도 가깝게 지내면서 때로는 박취문이 아플 때 의향의 어머니가 그의 병문안을 오기도 했다고 하네요
이렇게 방지기는 일시적인 첩 노릇을 하던 존재로 군관들이 객지 생활을 하는데 여러 가지 불편한 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에서 생겨난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방지기는 해당 군현에 소속된 존재여서 그 지역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복무할 때는 마치 부부처럼 생활하다가도 군관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관계가 끝이 났다고 하죠
박취문 또한 회령에서 경성병영으로 옮겼을 때 경성에서 새로운 방지기를 배정받았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박취문의 일기를 보면 여러 사람과 각종 선물을 주고받았다는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그는 상관이나 동료에게서 받은 선물들을 자신의 집으로 보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기생들과 방지기에게 주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는데요
군생활을 하는 1년 동안 그가 잠자리를 함께했던 여성만 무려 20명이 넘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그 여성들을 유혹하기 위해서 박취문도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했던 것이죠
하지만 그의 작업이 늘 잘 풀렸던 것만은 아니었는지 하루는 과부이자 사노비인 '태향'이 박취문의 방지기가 되길 거부하자 그녀의 어머니와 오빠에게 곤장을 때렸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후 1646년 4월 4일에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박취문의 일기도 끝나게 되죠
지금까지 부북일기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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