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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이야기들

스티브잡스. 여러번의 실패와 몰락을 딛고 일어서서 21세기 최고의 업적을 쌓은 혁신의 아이콘

by 사탐과탐 2023.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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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은 개차반이었지만 세상을 두번이나 바꿔버린 인물 여러번의 실패와 몰락을 딛고 일어서서 21세기 최고의 업적을 쌓은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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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분들은 지금 무슨 핸드폰을 사용하고 계신가요?

요즘 스마트폰의 양대산맥, 삼성 갤럭시 시리즈와 애플의 아이폰 둘 중 하나를 쓰고 계실거 같은데요

오늘은 21세기 혁신의 아이콘이자 유비쿼터스 시대의 발판을 마련한 인물인 스티브 잡스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바로 이 스티브 잡스가 만든 매킨토시가 있었기에 각 집마다 개인용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고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열기도 했으며 훗날 스티브 잡스가 만든 아이폰을 통해 스마트 폰이 널리 보급되며 오늘날의 모바일 시대를 연 인물이기도 하죠

또한 스티브잡스는 한마디로 한 기업인이 창의적인 아이템을 통해서 개인용 컴퓨터 시대의 시작과 스마트폰 시대의 시작, 이 두 거대한 시대를 만들고 사람들의 삶을 두번이나 바꾼 혁신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제품 개발 뿐만아니라 광고 기획, 프리젠테이션까지 직접했고 신제품 발표회를 할때마다 대박을 치며 마케팅 업계에서도 신화적인 평가를 받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업계사람들에게 많이 까이기도 하는데요

혁신적인 제품들도 그가 만든것이 맞고 애플도 그가 설립한것이 맞지만 거의 모든 공학적인 부분은 스티브 잡스가 아니라 동업자였던 스티브 워즈니악이 담당했다고 합니다

 

디자인이나 마케팅 쪽이나 애플사의 경영 방침이나 독창성에서는 기여도가 굉장히 크지만 기술적인 면이나 IT 분야에 관해서는 딱히 많은 지식은 없었다고 하죠

또한 그는 성격이 완전 개차반이라서 욕도 많이 먹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번쩍이는 아이디어는 현재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치명적이라 할 정도로 많이 사용되고 있기에 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죠

 

스티브 잡스는 미국인 어머니와 시리아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아랍계 미국인 혼혈 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결혼을 하기전에 스티브를 가지게 되었죠

그러나 아버지의 반대로 인해 스티브의 어머니인 조앤 시블과 그의 친부는 헤어진 상태였기에 스티브는 태어나자마자 입양을 보내지게 되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렇게 그는 친부모와 헤어져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되었죠

폴과 클라라는 잡스를 자신들의 친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잡스를 수영교실에 보내기위해 가정부 일을 했을정도로 지극 정성으로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오냐오냐 키웠기 때문인지 어렸을 때 잡스는 꼴통으로 명성이 자자 했다고 하죠

 

또한 그때 형성된 까탈스럽고 이기주의적인 성격으로 인해 훗날 자신의 적도 많아졌고 그의 발목을 잡기도 하는 등 좋지않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아버지 폴 잡스의 말에 따르면 어릴적 스티브에게는 천재적인 면모는 전혀 없었다고 하는데요

그는 어릴적 친구들을 괴롭히거나 선생님을 조롱하다 정학을 맞는 등 꼴통에 가까웠죠

 

하지만 그는 고아라고 놀림을 당하기도 했기때문에 혼자 차고에서 버려진 부품들로 뭔가 만드는걸 좋아하긴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뛰어난 기술자라 그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죠

그런 좋은 부모의 손에 자라서 그럴까요?

잡스는 "양부모"라는 단어를 굉장히 증오하는데, 폴과 클라라 잡스 부부만을 진짜 부모로 여기고 있으며 자신을 낳아준 부모는 죽을 때까지 친부모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무튼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전자공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졸업 후 HP사에서 여름 인턴으로 채용되며 Apple을 같이 만들었던 '스티브 워즈니악'을 만나게 되었죠

인턴이 끝난후에는 리드 칼리지 철학과에 입학했는데 부모님이 모아놓은 돈을 다 투자 할만큼의 대학생활은 가치가 없다고 여긴 그는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동양 철학에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그 영향으로 인해서인지 그의 종교는 불교였죠

 

자신도 스님이 될까 고민했을 정도로 불교에 심취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학교를 그만두고 1년 정도 문학과 철학에 대해 공부하다가 우연히 게임회사 아타리에 게임디자이너로 취직하게 되죠

그곳에서 비디오 게임에 빠지게 되고 컴퓨터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 잡스는 아타리에서 사표를 내고 그때까지 HP에서 일하고 있던 워즈니악과 함께 컴퓨터를 제작하게 되는데 1976년 마침내 Apple 1 이라는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어 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Apple 1 은 케이스도 나무로 만들어졌고 플라스틱 기판에 온갖 칩이 마구 꽂혀있는 현재의 컴퓨터랑 비교하면 이게 컴퓨터가 맞나 싶을정도로 투박하지만 당시에는 큰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꽤 많은 돈을 벌어다 주었죠

그러나 훗날 워즈니악은 자서전에 "Apple 1, Apple 2는 스티브가 한건 전혀 없고 다 나 혼자 만들었다" 라고 적었다고 합니다

또한 워즈니악의 아버지는 "왜 그 놀고먹는 백수와 돈을 45:45로 나누느냐?!"라고 말했다고 하는데요

 

사실 스티브는 기술적인 면에서는 지식이 거의 없어서 주로 영업과 마케팅을 위주로 했기 때문에 아무일도 안한것 처럼 보일수는 있지만 사실 당시에 컴퓨터 라는건 큰 회사나 대학, 정부기관 등에서 쓰는게 일반적이었고 개인용 컴퓨터라는 정의나 명칭 또한 없던 시절이라서 사실 스티브의 화려한 말빨을 동원한 영업이 없었다면 Apple 1은 역사에서 사라졌을수도 있죠

 

당시 Apple I의 가격은 666.66달러였는데요

그냥 숫자가 반복되는게 멋져보여서 그렇게 정했다는게 어이없긴 하죠

이후 출시된 Apple 2, Apple 2 Plus 등의 모델들이 차례로 성공하면서 스티브 잡스는 많은 돈과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Apple 3는 폭망을 해버렸는데 그 이후부터 그래픽으로 만든 인터페이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죠

 

윈도우와 매킨토시가 나오기 전까지는 프로그램을 실행시키기 위해서는 명령어를 입력하는 방식을 썼지만 매킨토시가 아이콘을 클릭하는 방식을 사용하며 컴퓨터계의 혁신을 일으켰습니다

이때 애플사에서는 Apple 2, 리사, 매킨토시 이렇게 세팀이 격한 경쟁을 하며 매일을 서로 으르렁 거렸다고 합니다

 

다 같은 회사에서 다른 팀들끼리 격하게 싸우게 된 중심에는 스티브 잡스가 있었죠

확실히 그는 같이 일하기 정말 싫은 그런 상사 였다고 하는데요

자신의 뜻대로 부하직원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내는 그런 부류의 상사라고 합니다

 

어느날 애플사에서는 배달용 차량을 여러대 구매한 일이 있었는데 회사 건물의 색상인 흰색과 매치가 잘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징징대며 화를내자 다시 많은돈을 들여 차 색깔을 바꾸기도 했죠

또한 픽사를 인수하고 얼마안가 직원들을 아무런 통보나 퇴직금도 없이 대량으로 해고를 시키자 여러 직원들은 '갑자기 해고를 시키면 곤란하니 2주의 기간을 주자' 라고 잡스에게 애원했고 그러자 잡스는 '그럼 2주전에 통보한걸로 치자' 라는 어이없는 말을 해버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때 펩시의 전 CEO 였던 존 스컬리를 애플의 CEO로 영입을 했는데요

잡스는 존에게 "설탕물이나 파는거 그만하고 나랑 같이 세상을 바꿔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라며 제안을 했고 이 말에 설득된 존은 애플의 CEO가 되었죠

아무튼 그러다 리사팀, 매킨토시팀, 애플2 팀들의 연봉문제가 터지게 되었는데 그 여파로 인해 회사에 이익은 커녕 손해만 끼치고 있고, 그의 독선적이고 까탈스러운 성격으로인해 임직원들의 신망도 잃었던 터라 이사회에서는 잡스의 해임에 손을 들어줬고 1985년, 그는 자신이 만든 Apple 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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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에서 나올때 그는 기술자 몇명을 데리고 나왔는데 그들과 NeXT 라는 회사를 차렸죠

하지만 여기서도 잡스의 성격에 대한 문제점은 많았는데요

그의 더러운 성격탓에 92년부터 1년동안 부사장급 임원 9명중 7명이 사표를 내고 회사를 떠났고 그도 느낀것이 좀 있었는지 이 이후로 그의 성격은 많이 변하게 됩니다

 

이전의 잡스는 아주 사소한것까지도 자신이 모든것을 지시하고 운영했으며 부하 직원이 무슨말을 하든 듣지를 않았죠

그러나 이 일이 일어나고 나서부터는 직원들에게 권한을 위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뉴욕타임스에서는 "스티브잡스가 황야에서 배운것"이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죠

 

1986년에는 NeXT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픽사를 인수했는데, 이 결정은 잡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당시 픽사는 500만달러의 적자를 내는 기업이었고 NeXT 역시 적자 행진 중이었죠

그러다 픽사에서 발표한 '틴 토이' 라는 애니메이션이 뜬금없이 아카데미상을 받게 되자 그는 자비를 들여가며 3D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잡스는 디즈니와 계약을 맺었는데 수입의 87.5%를 디즈니가 가져간다는 불공평한 계약 임에도 불구하고 계약을 맺게 되었고 1995년에 개봉한 '토이 스토리'가 초대박을 치게 되었죠

그는 토이스토리가 개봉하기 전부터 성공할것이라며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픽사를 나스닥에 상장 시켰는데 이 또한 대박이 터져 잡스가 보유하고 있던 픽사의 지분 80%의 가치는 순식간에 1조원을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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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월트 디즈니 컴퍼니에 주식 맞교환 방식으로 74억 달러에 픽사를 팔게 되었고 잡스는 디즈니의 지분을 7% 소유하게 되었죠

한편 애플사는 그가 나오고난뒤 계속되는 부진으로인해 한해에 10억달러가 넘는 적자를 기록하며 서서히 망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애플에서는 다시 잡스를 경영 고문으로 불러들이자는 결정을 했고 그렇게 다시 애플로 돌아온 그는 곧바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 했죠

 

제품의 종류를 줄였고, 꼭 필요한 사업을 제외한 여러 사업을 없애 버렸으며 직원 3,000여명도 해고를 했습니다

그러자 10억달러 적자 회사였던 애플을 단 1년만에 3억달러 흑자로 돌리는 기적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죠

그리고 픽사의 두번째 애니메이션 '벅스 라이프' 까지 대박을 터트리며 잡스는 완전히 다시 일어서게 되었고 2000년에 Apple의 CEO로 성공적으로 복귀하게 되었죠

 

이후로 애플은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되는데요

2003년에 출시한 iPod 4세대가 대박의 조짐을 보이더니 2005년에 iPod nano가 나오면서 대성공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아이팟은 무려 1억대가 넘는 물량을 팔았고 현재도 아이튠즈에서는 한해 1억 5천만곡의 MP3 음원이 판매되고 있죠

 

하지만 그의 거침없는 질주를 저지시키는 충격적인 일이 발생합니다

2004년 8월 췌장암에 걸렸다는 믿지못할 일이 벌어지고 만것이죠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잡스의 췌장암은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암이었고 수술은 성공적이긴 했죠.

아무튼 그는 이후로도 계속해서 활발한 활동을 했는데요

iMac 등을 출시해 PC 시장에서도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으며 그러던 중 2007년 6월 29일에는 대망의 iPhone을 출시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는 프리젠테이션에서 "오늘, 바로 오늘, Apple은 휴대폰을 재발명 합니다." 라는 멘트를 시작으로 아이폰을 소개했는데요

아이폰의 핵심 컨셉인 휴대폰, MP3 플레이어, 인터넷을 보여주며 "이것들은 분리된 세 기기의 기능들이 아닙니다, 하나의 기기입니다!" 라며, 아이폰은 편리하고 혁신적인 제품이라는 것을 발표했습니다

 

게다가 기존에 스마트폰에서 쓰이던 버튼들을 모두 없애고 키보드를 화면에 띄우며 터치 인터페이스 개념을 확립했죠

또한 기존에 휴대폰에서는 계산기를 사용하려 할때는 '메뉴 - 목록 - 항목'의 절차를 거쳐야 했지만 아이폰에서는 계산기를 쓰려면 그냥 계산기 앱을 터치 하면 되는 매우 직관적이면서 편리한 인터페이스를 구축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굉장히 혁신적이었고 그로인해 아이폰 역시 혁신적인 스마트폰이 된것이죠

또한 이 정도만 해도 아이폰은 기존의 스마트폰들에 비해 엄청난 차별성을 두게 되었고 비싼 가격이었지만 610만대나 팔려나가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하지만 잡스가 원하던 결과는 아니었는데요

이는 3G가 아닌 2G였기 때문이었죠

 

지금의 아이폰이 생긴 최대의 사건은 바로 앱스토어가 만들어지고 아이폰 3GS가 나오면서 부터였습니다

이후 아이폰은 스마트폰이라는 개념 자체를 새로 만들었고 이때 만들어진 개념으로 인해 지금도 대부분의 스마트폰은 아이폰의 컨셉과 크게 다르지 않죠

그리고나서 2010년에 9.7인치의 태블릿PC인 iPad를 출시했으며 이 또한 아이폰 못지 않는 대박을 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췌장암 수술을 받은후 그는 이해하지 못할 행동들을 하는데요

바로 대체의학에 의존을 하기 시작한 것이죠

더이상의 수술은 거부하고 정신수행과 식이요법, 침 등을 맞으며 암을 고치려고 했던것입니다

그렇게 그의 병세가 안좋다는 소문이 퍼지자 애플의 주가가 급락해 시가총액 220억 달러가 증발하기도 했죠

 

이는 애플이 얼마나 잡스에게 의지하고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좋은 예시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1년 3월 3일 아이패드 2 발표회장에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 자신에겐 아무 문제가 없음을 과시했고 덕분에 애플의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달성 하기도 했죠

하지만 그이후 병세는 급격히 안좋아지기 시작했고 2011년 8월 25일 결국 CEO직에서 사임을 했습니다

 

잡스는 지독한 채식주의자 였는데 췌장암 수술 후에는 단백질 섭취가 굉장히 중요했지만 채식만을 고집한것이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처음 발견 당시에 췌장의 5%만 퍼져있던 암은 9개월후에는 췌장 전체로 퍼지게 되었고 수술을 한 뒤에도 전이가 계속되어 2011년 10월 5일, 56세의 나이로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된것이죠

 

그는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데요

스티브 잡스는 빌게이츠나 마크 주커버그와 같은 개발자가 아닌 사업가이죠

기술적인 부분은 별로라고 FBI 보고서에도 평가 되어있는데 그가 이룬 업적은 이 모든걸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는 천재도 아니었고 대학중퇴자에 성격도 개차반이었던 그가 21세기 IT 계의 아이콘이 될 정도로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정도의 입지전적인 인물이죠

또한 떼돈을 번 사람 치고는 한평생 같은 패션만 고집한게 신기할 정도인데요

실제로도 그의 옷장에는 리바이스 501 청바지 그리고 검은 터틀넥만 가득했다고 하죠

또한 신발은 항상 회색 뉴발란스 992를 신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이 패션은 그만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기도 했죠

여담으로 그는 프랑스 대통령 주최의 오찬에 참석한적이 있는데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에게

"느끼한 프랑스 요리 말고 이탈리아 요리는 없나요?

지난주에 이탈리아에서 먹었는데 참 맛있던데.."

라고 했던, 또라이 기질도 다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현재 그가 창립한 애플은 전세계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높은, 세계 1위의 회사로 우뚝 서있죠

21세기의 IT 업계를 주도한 인물이자 여러번의 실패와 몰락을 경험했지만 다시 일어섰고 이를 모두 만회하고도 남을정도의 업적을 쌓은 스티브 잡스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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