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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윌리엄 1세.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살벌하고 엽기적인 중세시대 정복왕의 프로포즈

by 사탐과탐 2022.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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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1세는 정복왕의 별명이 있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살벌하고 엽기적인 방법으로 프로포즈를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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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수많은 남자들은 여자들의 사랑을 얻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씁니다

진심 어린 마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능력을 어필하는 사람도 있죠

그런데 중세 유럽에서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무식하고 엽기적인 방법으로 프로포즈를 한끝에 결혼에 성공한 남자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윌리엄 1세입니다

윌리엄 1세는 1028년 프랑스의 노르망디 공작인 '악마공' 로베르 1세와 평민 출신 내연녀인 에를르바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하루는 에를르바가 밖에서 빨래를 하느라 맨다리를 드러내고 있었는데 로베르 1세에게 다리 페티시라도 있었던 것인지 그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고 하죠

 

윌리엄 1세의 나이 7살이 되던 해 아버지 로베르 1세가 예루살렘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에 갑자기 병을 얻으면서 세상을 떠났고 후계자였던 윌리엄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노르망디 공작이 되었습니다

미천한 평민 출신 내연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윌리엄 1세가 아버지의 뒤를 이을수 있었던 것은 그가 로베르 1세의 유일한 아들이었기 때문인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런데 로베르 1세가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전에 윌리엄을 후계자로 지목해놨기 때문에 윌리엄은 노르망디 공작이 되는 데는 성공했지만 사생아라는 그의 출신 때문에 친척들을 비롯한 그의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를 조롱했고 심지어 그를 못마땅하게 여겨 암살을 시도하는 사람까지 있었습니다

한 번은 윌리엄이 자신에게 대항하는 세력들의 성을 공격한 적이 있었는데 상대가 미천한 무두장이의 외손자인 윌리엄을 조롱하는 의미로 성벽에 무두질한 가죽을 걸어놓는 일도 있었죠

 

분노한 윌리엄은 성을 점령한 후 그곳에 있는 40여 명의 귀족들의 손을 잘라버리는 것으로 응답해줬다고 합니다

비록 윌리엄의 주변에 적들이 많기는 했지만 아버지의 충신들과 외숙부등 그를 도와주는 조력자들 또한 존재했기 때문에 그들의 도움에 힘입어 위기상황에서 벗어나게 되죠

그의 나이 20대 초반이 된 1050년 무렵 윌리엄 1세는 노르망디 공작으로서의 자리를 굳히기 위해 후계자의 필요성을 느껴 옆동네인 플란데런의 공녀 마틸다 판 플란데런에게 대리인을 보내서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마틸다는 대리인을 통해 너 같은 사생아 따위와 내가 격이 맞는다고 생각하느냐는 모욕적인 대답을 했고 그 말을 전해 듣고 머리끝까지 화가 난 윌리엄은 즉시 플란데런으로 달려갔죠

그리고는 곧장 마틸다의 방으로 쳐들어가서 다짜고짜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는 바닥에 패대기 친 후에 마구잡이로 그녀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윌리엄은 마틸다에게서 결혼을 하겠다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그녀의 머리채를 잡은 채 소처럼 질질 끌고 방을 돌다가 다시 그녀를 두들겨 패는 일을 반복하며 청혼을 했다고 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 소식을 듣고 놀라서 달려온 마틸다의 아버지 플란데런 백작 보두앵 5세는 자신의 딸이 미천한 사생아 공작에게 두들겨 맞고 있는 것을 보자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눈알을 허옇게 뒤집고는 "미천한 사생아 따위가 어디서 감히 내 딸을 때려?"라고 소리친 후 가지고 있던 칼을 뽑아서 윌리엄을 베어버리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황당한 일이 일어났는데요

바로 그때까지 윌리엄에게 두들겨 맞고 있던 마틸다가 갑자기 아버지를 말리면서 "전 윌리엄이 아니면 어떤 남자와도 결혼하지 않겠어요!"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보두앵 5세는 딸이 너무 많이 맞아서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니냐며 둘의 결혼을 결사반대했지만 그녀는 끝까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고 그렇게 윌리엄 1세와 마틸다는 4년 뒤에 결혼을 했다고 하죠

 

요즘 시대에 했다면 바로 경찰에 신고당해서 유치장으로 끌려갔을 역대급 청혼이었습니다

역사가들 또한 마틸다의 이런 황당한 결정이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는지 그녀에 대해 조사를 해본 사람이 많았다고 하죠

일부는 마틸다가 두들겨 맞거나 학대를 당하며 성적 쾌감을 느끼는 마조히즘 취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마틸다가 보기에 윌리엄이 사생아라는 말을 듣자 발끈해서 바로 플란데런까지 달려와 그녀를 두들겨 팰 만큼 사생아라는 단어에 민감한 사람이니 결혼하면 적어도 자신과 같은 사생아를 만드는 행동은 절대 만들지 않을 사람인 거 같다는 기적의 논리를 펼치며 결혼을 결심한 것이라고 짐작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그녀의 짐작대로 윌리엄 1세는 실제로 결혼한 후에 따로 애인을 뒀다는 기록도 없고 단 한 명의 사생아도 낳지 않았다고 하네요

부부간의 금슬도 좋아서 윌리엄 1세와 마틸다는 4명의 아들과 최소 5명 이상의 딸을 비롯한 많은 자식을 낳았습니다

훗날 윌리엄이 잉글랜드 원정을 떠날 때 마틸다가 남편을 위해 자신의 사유재산을 털어서 "모라"라는 이름의 배를 선물했다고 할 정도니 부부 사이가 굉장히 좋았던 것으로 짐작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윌리엄이 노르망디 공작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데는 당시 프랑스의 왕이었던 앙리 1세의 도움이 컸습니다

하지만 앙리 1세는 윌리엄이 공작이 되고나서부터 노르망디 공국의 힘이 점점 강해지자 위협을 느꼈는지 1054년과 1056년에 두 차례나 노르망디를 침공했죠

하지만 두 번에 걸친 앙리 1세의 공격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이제는 윌리엄이 자신의 왕위를 노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윌리엄이 노렸던 것은 프랑스가 아닌 잉글랜드의 왕위였는데요

1066년 잉글랜드의 왕위에 오른 것은 해럴드 2세라는 인물이었는데 이 헤럴드 2세는 과거에 배를 타고 항해를 나갔다가 윌리엄의 포로가 되면서 한동안 그의 신하와 비슷한 위치에 있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랬던 헤럴드 2세가 잉글랜드의 왕위에 오르자 윌리엄은 과거 헤럴드 2세가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적이 있으며 잉글랜드의 이전 왕이었던 참회왕 에드워드도 자신에게 왕위를 물려줄 것을 약속했다는 주장을 하면서 마틸다가 사준 모라를 타고 잉글랜드로 원정을 떠나게 되죠

이후 잉글랜드에 상륙한 윌리엄은 헤럴드 2세의 군사들과 헤이스팅스 전투를 벌였는데 그 전투에서 헤럴드 2세가 전사하고 윌리엄 군이 승리하면서 마침내 윌리엄이 잉글랜드의 국왕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그리고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런던으로 개선한 윌리엄이 웨스트민스터로 자신의 궁을 옮기면서 웨스트민스터가 행정수도로서의 역할을 하게 됐고 옆동네인 런던도 상업 중심지로서 번영하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잉글랜드의 수도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여담으로 1066년 12월 25일 윌리엄의 국왕 즉위식에서 그가 너무 큰 목소리로 선서를 해서 성당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노르망디 가문의 경비병들이 깜짝 놀라 갑자기 근처 집들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는 황당한 기록이 있습니다

 

큰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것과 주변에 불을 지른 것이 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그렇게 왕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윌리엄이지만 그 후로도 그의 앞날은 순탄치 않아서 그의 재위 기간 중 큰 반란이 일어난 것만 해도 5번이나 됐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에 분노한 윌리엄은 먼저 남잉글랜드를 정복한 후 자신에게 반항하는 앵글로색슨족과 데인족을 토벌하기 위한 북부 원정을 떠났죠

 

문제는 토벌 과정에서 그가 10만 명 이상이나 되는 사람들을 학살했다는 것인데 이 참혹한 학살은 여러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으며 당시에도 주변 국가들로부터 너무 잔인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상하게도 영국 내에서는 고대와 중세 시절 반항하는 주민에 대한 대학살은 정복 후에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했는지 윌리엄의 이런 학살에 대해 크게 문제 삼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하네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렇게 잉글랜드를 평정한 윌리엄은 1086년 왕국 내의 토지를 조사한 후 잉글랜드의 토지소유현황과 이용현 황등을 자세히 기록한 둠즈데이 북이라는 토지 조사서를 만들어서 무려 4천 명이나 되는 앵글로색슨계 귀족들의 토지를 몰수해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몰수된 영지는 자신을 따르는 200명의 노르만계 귀족들에게 나눠졌다고 하죠

 

잉글랜드의 상황이 안정되자 윌리엄은 프랑스로 눈을 돌렸고 이후 프랑스 내의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프랑스와 전쟁까지 벌이게 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평소 사이가 나쁘다 못해 철천지 원수처럼 지내던 자신의 큰아들 로베르와의 불화가 더 심해지면서 로베르가 프랑스의 왕인 필리프 1세와 손잡고 아버지를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킨 막장 사건이 일어났죠

 

이후 쿠데타가 실패하자 로베르는 프랑스로 도망가버렸고 윌리엄은 크게 화를 내며 로베르의 모든 권리를 박탈했지만 그래도 죽기 전에는 마음을 바꿔 노르망디 공작의 계승권을 넘겨줬다고 합니다

 

윌리엄은 1087년 프랑스의 망트를 공격하다 병을 얻어 사망한 후 캉에 있는 생 테티엔 성당에 묻혔다고 하네요

지금까지 유럽의 상남자 윌리엄 1세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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