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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284

위선적이고 허세 쩔었던 조선시대 양반들 조선시대 기득권 세력이었던 양반들은 권위적이고 품격있는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실상은 위선적이고 허세 쩔었던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고도 하죠. 조선시대 신분제도의 갑 오브 갑이었던 양반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392년 7월. 고려의 무관이던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했습니다. 조선 건국의 가장 많은 힘을 보태준 신진사대부들은 조선의 주요 관직을 차지하게 되었죠. 이 신진사대부들은 나중에 양반이라 불리게 되었는데요. 양반이란 문반과 무반을 합쳐 부르는 말이었죠. 조선시대 신분제는 양천제로 양반과 중인, 평민이 포함되어 있었던 양인과 노비와 백정, 기생 등이 포함되어 있는 천인으로 구분되었습니다. 법적으로 양인들은 모두 평등하다 했지만 실제로는 완전 천지차이이긴 했죠. 어쨌든 법적으로는 양인들이었.. 2021. 9. 29.
조선시대 왕자의 삶.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일부로 술과 기생에 빠져 방탕하게 살았던 왕자들 조선시대의 왕자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습니다. 정치에 밀려난 왕자들은 일부로 술과 기생에 빠져 방탕하게 살기도 했었죠. 그 외에도 살아남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했었는데요. 조선시대 왕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과거의 왕들은 자식을 굉장히 많이 두었었는데요. 조선시대 왕들 역시 자식을 굉장히 많이 낳았죠. 조선왕조 500년간 실제로 재위에 올랐던 왕은 27명이었고 사망 후 추존된 왕은 5명이었는데 그들의 자식만 해도 총 268명이나 되었습니다. 태종은 29명의 자식을 낳았고 성종 28명, 선조 25명, 정종 23명, 세종 22명의 자식을 두었죠. 하지만 이들 중 왕이 된 사람은 태조 이성계를 빼고 고작 26명 밖에 없었다는 뜻인데요. 그렇다면 왕이 되지 못한 이 많은 왕자들은 .. 2021. 9. 28.
왕의 사위이자 공주 또는 옹주의 남편인 '부마'의 억눌린 삶에 대한 이야기 왕의 사위이자 공주 또는 옹주의 남편인 부마는 결혼 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억눌린 삶을 살았는데요. 평생을 감시당하며 몸조심해야 했던 부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부마도위(駙馬都尉)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과거에 왕이나 황제들은 항상 암살의 위협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황제가 어디론가 행차를 할 때 같은 마차를 여러 개 준비해 어느 마차에 황제가 타고 있는지 모르게 했었는데요. 이 황제의 마차들을 끄는 말을 부마(駙馬) 라고 불렀고 부마들을 관리하던 직책을 부마도위 라고 했었죠. 이렇게 보면 별거 아닌 직책처럼 보이지만 황제가 어느 마차에 타고 있는지는 극비사항이었고 이 사실을 혼자만 알고 있는 직책이다 보니 부마도위로 임명되는 신하는 황제가 가장 믿고 있는 신하이기도 했습니다. 오.. 2021. 9. 27.
가희아. 조선시대 유일하게 기생신분으로 왕의 후궁까지 된 여인 조선시대의 왕들은 왕후 뿐만 아니라 수많은 후궁들을 두었었죠. 후궁들의 출신은 당연히 왕족이나 양반집 딸 또는 최소 궁녀들이었어야 했을텐데요. 조선시대 유일하게 가희아는 기생출신으로써 태종의 눈에 들어 후궁까지 된 여인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궁에서 하는 연회에 불려가 춤을 추고 흥을 돋구는 기생이 있었습니다. 일패기생이 그렇고 또한 예전에 소개해드린 초요갱도 그런 기생이었죠. 오늘 소개해 드릴 인물도 궁으로 가서 춤을 추던 그런 기생입니다. 근데 정말 특이한 점은 그는 나중에 옹주가 되는데요. 옹주라는 호칭은 왕의 후궁이 낳은 딸을 이렇게 부른다고 알고 있었는데 고려시대에는 왕의 후궁이나 왕녀에게 주는 봉작이기도 했다고 하죠. 고려시대의 호칭이 조선 초기로 이어져 왕실 여인을 궁주나 옹주라는 호칭으로 .. 2021. 9. 25.
조선시대 왕들의 독특하고 괴상한 정력제 이야기 조선시대에는 운동도 전혀 하지않고 스트레스 때문에 왕들은 정력이 그다지 쌔지 않을것 같은데요. 그들은 스태미너를 유지하기위해 별의 별걸 다 복용했습니다 그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정력에 대한 남자들의 관심은 20대부터 60~70대에 이르기까지 남자라면 거의 모든 연령대에 걸쳐 있을것 같은데요. 정력이 좋다는 것은 남자들에겐 최고의 찬사이자 그만큼 건강하다는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 자신감도 고취시킬수 있죠. 그렇다 보니 한국의 일부 남자들은 정력에 좋다는 음식이라면 가리지 않고 그게 무엇이든 다 먹을 정도 였는데요 . 최고로 좋은 상태의 몸과 정력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식습관과 굉장히 관련이 많습니다. 요즘 남자들은 운동도 많이 하고 음식도 옛날보다는 잘 먹기 때문에 그렇게 문제가 많지는 않.. 2021. 8. 27.
숙직상궁. 조선시대 임금의 잠자리를 감시하고 코치하던 8명의 감독관 조선시대 임금은 왕실의 법도 때문에 많은 제약을 받았었는데요. 잠자리까지 숙직상궁 8명에게 감시당하며 이런저런 코치 받아야 했죠. 숙직상궁의 임무는 오로지 왕실의 후사를 위해 임금의 잠자리를 감독하는 역할이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있을 때 누군가가 주위에서 은밀히 소리를 들으며 이래라 저래라 코치를 하고 있다면 어떠실거 같으신가요. 당연히 누구나 어이가 없고 소름 돋아 할 것 같은데요. 조선시대에는 성관계를 가질 때 이런 낮 뜨겁고 불편한 코치를 받던 존재가 있습니다. 이 불쌍한 사람은 바로 왕이었죠. 무려 8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주위를 빙 둘러싸서 남녀의 은밀한 소리를 들으며 이래라 저래라 코치를 했었는데요. 그 8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바로 숙직상궁들이었습니다. 도대체 그들.. 2021. 8. 22.
효장세자. 매흉과 화흉으로 어린 나이에 독살당한 비운의 왕세자 조선 21대 국왕이었던 영조는 사도세자를 죽인 비장한 아버지였었는데요. 영조에게는 사도세자가 있기 이전에 효장세자라는 끔찍이도 아끼고 예뻐했던 아들이 있었습니다. 1728년 11월. 영조의 외아들이었던 효장세자가 갑자기 병들어 쓰러지더니 시름시름 앓다가 불과 열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왜 죽었는지 이유도 모른 채 사랑했던 아들이자 후계자를 잃은 영조의 비통한 마음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었죠. 그렇게 자식을 잃고 애절하게 통곡을 한 영조를 본 신하들까지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훔쳤을 정도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2년 뒤인 1730년 3월. 온 조정이 발칵 뒤집어지는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바로 효장세자가 어떻게 죽어갔는지 이유가 드러났던 것이죠. 이에 눈 뒤집힌 영조는 사건에 연루된 모든 사람을 .. 2021. 8. 21.
삼정의 문란. 조선 말기 말도 안 되는 세금과 군역, 환곡 조선시대 말기 말도 안 되는 세금과 군역, 환곡으로 인해 백성들은 살아 숨 쉬는 것 조차 힘들어졌습니다. 나날이 피폐해진 삶에 지친 백성들은 최후의 몸부림으로 봉기를 일으키기도 했고 산으로 도망가 산적이 되기도 했었죠. 지난번에 조선 제25대 왕 철종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죠. 19세기 조선 왕조에 세도정치가 극에 달할 때 매관매직으로 수령직을 산 탐관오리들은 관직을 살 때 들었던 큰돈을 다시 벌어들이기 위해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전정, 군정, 그리고 환곡까지 정부의 세 가지 제도를 악용해 자신의 배를 불리는 데만 사용한 것이죠. 또한 수해, 흉년이 겹치고 콜레라 같은 질병까지 백성들을 덮쳤는데 그러자 백성들의 삶은 엎친데 덮친격으로 너무나도 피폐해지기 시작했고 피죽도 못 쒀먹고 굶.. 2021. 8.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