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균형이 팽팽하던 전장에 혜성처럼 등장해 거란군을 쓸어버린 귀주대첩의 숨은 영웅 김종현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서희가 잘 짜놓은 판에 강감찬이 지휘를 했지만 귀주에서 벌어진 대규모 전투에서는 고려군과 거란군 중 어느쪽이 이길지 몰랐던 대 혼전이었는데요
이때 홀연히 나타난 김종현이 고려군 승리의 종지부를 찍어버리게 되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김종현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시피해 그가 언제 태어났는지 언제 죽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가 처음 기록에 나온것은 현종 2년인 1011년에 감찰어사에 임명되었다는 내용이며 이후 기록에도 잘 등장하지 않다가 거란의 3차 침입때의 활약이 남아있는 것이죠
기록은 적지만 그가 해낸 활약은 그야말로 감탄을 자아 내는데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1010년 11월, 고려에 2차 침입을 감행한 거란은 결국 큰 소득을 얻지 못한채 피해만 받고 물러날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거란은 2차 침입때 실패한 경험을 살려 이번에는 기병을 이용해 고려의 수도 개경까지 직진해서 얼른 고려 현종을 사로잡고 항복을 받아내려는 직도전략을 쓰기로 마음먹었고 거란의 명장 소배압을 총사령관으로 한뒤 10만명의 병력을 동원해 고려에 3번째 침입을 강행했죠
이에 현종은 강감찬에게 약 21만명의 병력을 줘 이들을 막도록 했습니다
거란군이 흥화진에 이르자 강감찬은 매복과 수공 작전을 펼쳐 대승을 거두면서 기선을 제압했죠
하지만 소배압이 이끄는 거란군의 사기는 꺾이지 않았고 계속해서 개경을 향해 빠르게 진군하고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강민첨이 내구산에서 거란군을 격파했고 조원도 마탄에서 큰 승리를 거둬 이미 거란군 병사가 1만명이나 전사했을 정도로 타격을 입혔죠
하지만 소배압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기병의 우수한 기동력을 내세워 개경만을 바라보고 직진하고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고려 조정에서는 위기감을 느끼고 개경 일대를 계엄상태에 두었고 강감찬 역시 깜짝 놀라 얼른 김종현에게 1만의 병사를 내어주고 급하게 거란군을 뒤쫓아가 개경을 방어하라는 명령을 내렸죠
당시 김종현은 기병 1만을 가지고 추격을 했을거라고 예상되는데 사실 기병 1만을 주었다는 기록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거란의 기병을 추격하기 위해서 보병으로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아마 김종현이 이끈 부대는 기병이었을것으로 추측하고 있죠
아무튼 강감찬의 명을 받은 김종현은 즉시 소배압의 부대를 맹추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종현은 소배압의 거란군에 의해 개경이 함락되고 현종이 붙잡히기 전에 먼저 개경에 도착해 거란군을 막았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받았던 것이죠
한편 개경에는 있는대로 병력을 긁어모아 강감찬에게 모두 보내버렸기 때문에 정작 개경을 방어할 병력이 굉장히 부족했는데요
다행히 동북면병마사가 최정예병 3300명을 보내왔고 김종현도 밤낮없이 개경으로 달려와 추격에 성공할수 있었고 소배압군을 계속해서 견제해가며 마침내 개경에 도착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동북면병마사가 최정예병 3300명을 보내왔고 김종현도 밤낮없이 개경으로 달려왔던 덕에 거란군 추격에 성공할수 있었으며 그렇게 소배압군을 지속적으로 견제해가면서 마침내 개경에 도착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직도 전략을 택했던 소배압은 현지에서 식량을 조달했어야 하는데 이미 현종이 '두번의 몽진은 없다' 라고 외친뒤 모든 백성들을 성안으로 들어오게 했으며 우물은 메워버리고 식량은 쌀 한톨 남지 않도록 성안으로 옮겨놓은채 결사 항전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배압의 부대는 보급도 여의치 않았던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개경의 백성들도 현종의 결단에 감복해 사기가 충천해 있었기 때문에 쉽게 개경을 함락시킬수 없었던 것이죠
이후 소배압은 거짓퇴각을 하기도 하는 등 여러 방법을 사용했지만 모두 탄로나고 말았고 개경공격도 여의치 않고 현종의 청야 전술로 보급마저 위태로워지자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1019년 2월 전군 퇴각하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이때 거란군은 서경 근처의 고려군을 피해 크게 돌아가는 길을 택했는데 이 길을 쭉 따라 가게 되면 거란군은 반드시 귀주를 지나갔어야 했죠
귀주 일대는 4면이 산으로 둘러쌓인 분지형태로 되어있으며 길도 좁고 험한 계곡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적을 막기에 좋은곳이었던 것입니다
소배압의 퇴각 소식을 들은 현종은 김종현에게 즉시 거란군을 추격하라 명했고 이에 김종현도 휘하 1만의 기병을 이끌고 다시 거란군을 쫓아 북진하게 되었죠
그리고 강감찬도 퇴각해 올라오는 거란군을 공격하기 위해 준비를 했는데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고려군에게 전갈을 보내 모든 병력을 귀주로 집결시켰습니다
그런데 이상한점은 다른 부대는 속속 귀주로 집결했는데 김종현이 이끄는 기병 1만의 행방이 묘연해졌던것이죠
그렇게 강감찬 역시 초조해하며 김종현을 기다렸지만 결국 오지 않았고 먼저 거란군이 전장에 도착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쩔수없이 김종현을 빼놓고 거란군과 맞서 싸워야 했던 강감찬은 포진을 마친뒤 거란군을 기다리게 되었죠
그런데 오지 않은 김종현이 귀주대첩의 종지부를 찍을줄은 이때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당시 퇴각하던 거란군은 강감찬이 보낸 유격대에 의해 지속적으로 크고 작은 피해를 입고 있었지만 명장이던 소배압의 통솔로 인해 군의 전투력은 온전히 남아있는 상태였는데요
1019년 2월 1일, 거란군은 고려군을 보자마자 기다리기라도 한듯 주저없이 고려군을 향해 돌격했습니다
그렇게 20만 고려군과 약 8~9만정도의 거란군이 격돌하는 운명의 대회전이 벌어지게 되었죠
회전(會戰)이란 특정 지역에 양측 병력이 총 집결해 전투를 벌이는걸 말하는데요
만약 고려가 거란군과의 회전에서 지게된다면 고려의 운명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워질수도 있을정도로 서로간에 모든걸 건 승부였던 것이죠
그렇게 양군은 서로의 운명을 걸고 뒤엉킨채 죽고죽이는 대규모 혈투가 벌어졌고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어느쪽이 더 우세한지 우열을 가리기 힘들정도로 힘의 균형이 팽팽하던 그때였습니다
행방이 묘연했던 김종현의 기병 1만이 거란군의 후방에서 불쑥 나타난 것이었죠
거란군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기가막힌 타이밍에 1만명이나 되는 적의 기병이 느닷없이 등뒤에서 등장했던 것입니다
서로간의 주력군이 격돌하는 대규모 회전에서는 아주 작은 변수에도 승패가 좌우될 정도인데 1만명의 기병이 나타난것은 아주 큰 변수가 되었으며 이는 강감찬도 소배압도 전혀 예측하지 못하던 변수이기도 했죠
김종현의 부대가 늦게 전장에 도착한 이유가 현재까지도 불명확한데요
개경에서 출발이 늦어서 그랬거나 귀주까지 찾아오는 길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늦었을수도 있고 부대의 재정비를 위해 잠깐 시간이 지체되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아니면 기병으로 이루어져있던 부대였던 만큼 말의 관리와 컨디션도 굉장히 중요했기에 말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서 이거나 말에게 휴식시간을 줘야 했기 때문에 늦었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죠
당시 소배압도 직도전략으로 인해 굉장히 빠른속도로 개경으로 남하하다가 말들이 지쳐서 쓰러지기도 했다고 하며 전세계를 압도했던 칭기스칸의 부대도 한 사람당 말을 서너마리 데리고 다니면서 말이 지치면 바꿔타는 방식으로 빠른 기동력을 확보했던 만큼 말들의 체력 역시 기병에 있어서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던 것입니다
어쨌든 김종현은 아군과 적이 마구 뒤엉켜 싸우는 전장을 보고 주저없이 돌격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전방의 고려군을 상대한다고 정신이 없던 거란군의 후방을 제대로 때려버린것이죠
아무런 피해도 없이 병력을 퇴각시키는것만큼 전쟁에 있어서 중요한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적에게 등을 보이는것은 호랑이에게 등을 보이는것과 같을것 같은데요
적이 뒤에서 나타나면 병사들은 눈앞에 적도 그리고 보이지 않는 등뒤의 적도 상대해야 하기때문에 사기가 떨어질 뿐만아니라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면 대열에서 이탈하는 병사도 생기고 얼마안가 진영이 흐트러져버리는 것이죠
심지어 하늘도 도왔는지 갑자기 풍향이 북풍에서 남풍으로 바뀌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당시 고려군이 남쪽에, 거란군이 북쪽에 포진한 상태였기 때문에 고려군에는 순풍이, 거란군에는 역풍이 되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거센바람과 비는 고려군의 편이되어 화살도 순풍을 타고 더 멀리 날아가 거란군의 뒤쪽까지 공격했고 비바람은 거란군의 시야까지 흐리게 만들었으며 이 기세를 탄 고려군은 더욱 가열차게 거란군을 공격했죠
그렇게 김종현의 부대가 나타남과 동시에 비바람도 고려군에 유리하게 불기 시작하면서 팽팽하던 균형을 깨트려버렸고 완전 전투의 판세가 뒤집혀버리게 된것입니다
결국 거란군은 김종현의 기병에 크게 동요하여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게 되었고 살아돌아간 병사는 수천명에 불과했으며 소배압 역시 무기와 갑옷을 벗어 던지고 겨우 살아돌아갔다고 하죠
김종현은 그 이후에도 예부원외랑, 우간의대부, 우산기상시 등의 벼슬을 거쳤다고 합니다
만약 김종현이 그때 나타나지 않았다면 설마 회전에서 이겼다 하더라도 고려군 역시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텐데요
우연이라고 해도 김종현이 보여준 맹활약은 정말 감탄을 금치 못할것 같네요
1차 여요전쟁 때 안융진에서 소손녕의 군대를 막아낸 대도수와 유방
2차 여요전쟁 때 현종의 호위무사를 자처한 지채문
3차 여요전쟁 때 오늘 이야기한 김종현 등
총사령관의 명을 받아 훌륭히 임무를 수행한 부장들 역시 잊지말아야 할것 같습니다
사탐과탐 다른 포스팅은 어떠세요?
소배압. 알고보면 무모하고 능력없는 거란 장수 정도가 아닌 문무를 겸비했던 거란 최강의 명장이었던 인물
강감찬. 역사서에 등장하지 않다가 61세에 혜성같이 나타나 고려를 구해낸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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