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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서주대학살. 아버지의 복수를 하겠다며 서주 인구의 3분의 2를 죽여버린 조조가 일으킨 잔인무도한 대 학살사건

by 사탐과탐 2024.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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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복수를 하겠다며 서주 인구의 3분의 2를 죽여버린 조조가 일으킨 잔인무도한
대 학살사건 서주 대학살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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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시간이 지날수록 재평가를 받은 끝에

이제는 그를 두고 삼국지의 진짜 주인공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죠

하지만 그토록 완벽하다고 평가받는 조조에게도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흑역사가 있다고 하는데요

바로 수십만 명의 민간인들을 살해했던 사건인 서주대학살입니다

 

조조의 아버지인 조숭은 관직에서 은퇴한 이후 자신의 고향인 초땅에서 살다가

동탁토벌전 때 그 주변이 전쟁터가 되자 서주로 이사를 갔다고 하죠

그러다 193년에 조조가 조숭을 연주로 모셔오려 했는데

 

역사서인 '자치통감'과 도겸전의 기록에 따르면

조조를 두려워하던 도겸이 조숭을 지키라고 부하들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부하들이 조숭의 재물을 노리고

그를 죽인 뒤 도망을 가버리는 사건이 일어났죠

 

정사 삼국지의 기록에 따르면 조조는 성격이 매우 감정적인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평소 차분하고 점잖은 사람도

아버지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눈이 뒤집힐 텐데

다혈질인 조조가 아버지를 죽게 만든 도겸을 그냥 놔둘 리가 없었죠

 

병사들을 끌고 서주를 공격한 조조는 10개의 성을 함락시키는 데 성공한 뒤

서주의 핵심도시라고 할 수 있는 팽성에서 만 명이 넘는 민간인을 학살해 버렸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란 도겸은 '섬성'으로 도망을 가버렸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전투가 너무 길어진 탓에 군량이 떨어지면서 후퇴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자

조조는 도겸을 죽이지 못한 분풀이를 하기 위해

돌아가는 길에 있던 취려와 수릉, 하구를 약탈해 버렸습니다

 

이때 조조의 눈에 팽성에서 도망쳐 나온 피난민들이 들어왔죠

잠시 후 조조는 병사들에게 명을 내려

무려 10만 명이 넘는 민간인들을 학살했는데

죽은 백성들의 시체로 사수의 강물이 막혀버릴 지경이었다고 하네요

 

조조는 그 많은 백성들을 죽이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병사들을 시켜 주변 민가에 있던 닭과 개들까지 모두 죽여버린 후

집까지 허물어버리면서 아예 도시를 폐허로 만들어버렸다고 합니다

2달이 지난 후 조조군은 또다시 서주를 침공해 왔죠

도겸은 청주자사인 전해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전해는 유비에게 수천 명의 병사를 내주고는 도겸을 도우러 보냈습니다

 

조조군은 먼저 도겸이 다스리던 낭야와 동해를 약탈했는데

1차 침공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가는 길에 보이는 모든 것을 파괴해 버렸죠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유비가 이끄는 부대를 박살내버린후

근처에 있는 양륙이라는 도시까지 점령했습니다

 

그렇게 거침없이 진격하는 조조를 도겸으로서는 도저히 막아낼 수 없었는데

이때 연주에 있던 장막과 진궁이 조조를 배신하고 여포를 끌어들여서

연주에 있던 조조의 본거지를 공격하는 일이 일어났고

덕분에 조조는 군사들을 후퇴시킬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돌아가는 길에도 보이는 마을들을 모두 약탈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조는 193년 1차로 서주를 침공했다가 물러난 후

2달 만에 또다시 서주를 공격하면서

거의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서주에서 학살과 약탈을 반복했다고 하는데요

이 사건 이후로 당시 279만이었던 서주의 인구수가

100만 정도로 급격히 줄어들어버렸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물론 조조군이 170만 명을 다 죽인 것은 아니었고

학살을 당한 희생자와 조조군 때문에 다른 곳으로 도망간 피난민들

그리고 그 외의 이유로 서주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백성들을 모두 합친 숫자겠지만

기록에 의하면 죽은 사람만 20만 명에 가깝다고 하니

삼국지의 기록에서는 비슷한 사건을 찾기조차 힘든 대학살이었다고 하죠

 

삼국지에서 유명한 인물들이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사건이라고 하면

동탁이 군대를 이끌고 순찰하던 도중에

양성이라는 곳의 백성들 수천 명을 죽여버렸던 일과

 

장사태수 손견이 반동탁 연합군에 참가하기 위해 가던 길에

형주자사 왕예가 자신에게 무례하게 굴었다는 이유로

그를 죽여버리고 성안의 백성들을 학살해 버린 사건

그리고 손견의 아들 손책이 단양의 백성들을 학살해 버린 사건이 있는데

 

이 사건들의 희생자를 모두 합쳐도

조조가 저지른 서주 대학살로 인해 생긴

희생자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조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았음에도

이후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이때의 선택을

후회하는듯한 말을 하거나 죄책감을 가진 적이 없다고 하죠

 

'위서'의 기록에 따르면 조조는 죽기 직전에

완성에서 장수를 공격하다가 맏아들인 조앙을 잃게 된 일이나

첫 번째 부인인 정 씨와 이혼한 일은 평생의 한으로 남았지만

그 외에는 후회되는 일이 전혀 없다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조조가 그 일을 후회하지 않았던 것은

당시 서주대학살로 인해 조조의 이미지가 나빠지거나

조조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크게 없었던 것도 큰 이유였을 것이라 짐작되죠

 

인권에 대한 개념이 지금보다 훨씬 부족했던 당시 시대에서는

백성들을 대량학살한 것보다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유명한 인물을 죽여버리는 게 훨씬 더 큰 악행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진수의 삼국지나 '후한서'등의 기록을 봐도

조조가 서주에서 대학살을 일으켰던 기록보다는

현대인들에게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변양'이라는 인물을 살해한 일을

더 집중적으로 다루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원소가 조조를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을 때

원소의 부하중 진림이라는 사람이 명분을 얻기 위해

조조를 비난하는 격문을 만든 적이 있었는데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조조를 비난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이 격문에서도

조조가 죄 없는 백성들을 학살하고 약탈했다는 내용보다는

오히려 조조의 가문을 헐뜯는다거나

조조가 천명을 거슬렀다는 등 다른 이유를 내세웠죠

 

애초에 그 당시는 한나라가 망한 후 5호 16국이 시작되기 전까지

틈만 나면 전쟁이 일어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던 시절이기 때문에

백성들을 대규모로 학살하는 사건이

그 시절을 살아가던 백성들에게는 매우 두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당시의 군벌들을 포함한 유명인사들에게는 큰 영향이 없었다고 합니다

 

물론 당시의 백성들에게 조조의 이미지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 이유는 서주대학살이 아니라

그가 시행했던 둔전제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둔전이란 변경지역이나 군사적 요충지에서

나라를 지키는 군대가 직접 농사를 짓는 것을 말하는데요

 

이렇게 하면서 군량을 얻는데 쓰는 돈을 줄이고

군량을 운반하는데 드는 돈과 시간을 절약하려는 목적이죠

하지만 문제는 일반백성들이 피해를 입는 것에 관심이 없었던 조조가

둔전을 늘리는 과정에서 백성들을 강제로 이주시켜 버렸다는 것입니다

 

당시 둔전에서 일하던 백성들은

자기가 수확한 곡식의 절반정도를 세금으로 바쳐야 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일하는 백성들보다 더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고 하죠

 

그런데 자기가 원해서 간 것도 아니고

조조의 명 때문에 강제로 이주를 하게 되었으니

백성들은 당연히 조조에게 좋은 마음이 들 수가 없었고

결국 곳곳에서 도망치는 사람이 생기거나

심한 경우 반란을 일으키는 지역도 있었다고 합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조조가 살아있던 시절에는 백성들을 학살했던 일보다

당대의 유명한 인물을 살해했던 일들이 훨씬 더 큰 악행으로 평가받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인권에 대한 중요성이 점점 높아졌기 때문에

민간인을 대량학살한 일이 조조의 가장 큰 오점중 하나로 남게 된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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